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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사회주의자가 말하는:
사도광산과 일본 제국주의

이 기사는 같은 제목으로 열린 4월 21일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공동 발제자였던 일본인 사회주의자의 발제문 기사를 함께 읽으시오.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는 시도는 일본 정부가 추진해 온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만들기’ 프로젝트의 연장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로, 일제 시대 강제동원 현장인 군함도를 포함해 여러 근대 산업시설들이 이미 2015년에 유네스코에 등재됐습니다.

유네스코는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국제 힘 관계와 무관하게 인류의 유산을 등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군함도는 등재된 반면 위안부 관련 기록물 등재는 보류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일본 정부는 근대 산업유산 유네스코 등재를 통해 일본 역사를 “자랑스러운” 것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일본의 우파 정치인 아베 신조는 일본이 “사죄와 반성만 되풀이하는 부끄러운 나라”에서 벗어나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나라”가 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가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며 입 다물게 만들려 한다든가, 일본이 러일 전쟁을 일으켜 많은 아시아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주장하는 식입니다.

이 밖에도 일본 정부는 역사 교과서를 개정하고, 고노 담화처럼 전쟁범죄에 대한 도의적 사과에 그친 담화마저 수정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과거사를 왜곡하고 미화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오늘날의 세계 정세,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긴장과 갈등이라는 맥락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이유

오늘날 일본의 위상은 1980년대에 비하면 꽤 하락했습니다. 1980년대에 일본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이자 아시아 지역의 명실상부한 최강대국이었죠.

반면 중국은 1990년대 이후 무서운 기세로 부상했습니다. 그 결과 2010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경제 규모 세계 2위에 올라섰고, 2011년에는 국방비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도달했습니다.

역전된 중국과 일본 일본은 깊은 불황에 빠진 반면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일본 지배자들의 위기감은 깊어졌다

이런 변화는 아시아·태평양의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과 그 핵심 동맹인 일본에 매우 위협적이었습니다. 중국이 성장하자 아시아의 그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이 강화됐기 때문입니다. 한국만 해도 2000년 이전에는 미국·일본 무역으로 먹고살았지만, 2000년 이후에는 중국과의 무역이 훨씬 중요해졌습니다. 또, 중국은 힘이 세지면서 인근 바다와 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고자 미국은 아시아 전략을 변경했습니다.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을 통해 중국을 포위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전략에서 중추 구실을 하는 것이 바로 일본입니다. 일본을 중심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동맹을 구축하려는 것이죠.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과 일본 일본은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전략에서 중추 구실을 한다

이와 맞물려, 일본 지배계급 내에서는 공격형 군사력을 갖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평화헌법’을 개정하거나 해석을 변경해, 제약을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미국 지배계급 상당 부분도 이를 바라고 있고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역사 미화 프로젝트도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베 신조는 2015년 8월,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해 “전쟁 이전의 강한 일본을 되찾자”고 천명했습니다. 침략 역사는 “부끄러운 역사가 아닌 재현해야 할 영광”이고 아시아에 이로운 것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이 이러는 이유는 과거사가 일본이 지금 하려는 일, 즉 지역적 위상과 군사 개입력을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침략 역사 문제는 중국이 일본을 견제하며 아시아 주변국을 포섭하는 데는 유리한 쟁점인 반면, 일본이 주변국을 중국 포위 전략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걸림돌로 작용해 왔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일본은 과거사 논란을 집요하게 은폐하고 왜곡하는 것입니다.

계급과 제국주의

일본 정부의 역사 미화 시도는 국내적 의미도 있습니다. 고도 성장과 제국을 이뤘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면 일본의 온 국민이 뭉쳐야 한다는 애국주의적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 침략 전쟁에서 대다수 일본 노동자들은 전쟁의 전방과 후방에서 죽음에 내몰리고 가혹하게 착취당했습니다. 사도광산은 그 수많은 사례의 하나일 뿐입니다.

사실 일본 노동자들의 처지는 일본 국가나 자본가들보다 조선인 노동자들과 훨씬 더 가까웠죠.

마찬가지로, 오늘날 일본이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전쟁을 벌일 수 있는 국가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도 결코 평범한 일본인들에게 이익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지배자들과 평범한 노동계급은 일본의 과거사와 제국주의 문제에서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한국 자본주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전략에 협력하면서 성장했습니다.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하려고 일본을 성장시키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전쟁 범죄를 청산하기는커녕 천황제, 대기업 집단(자이바츠, 즉 재벌), 심지어 전범들을 존속시켰죠. 그리고 한국에게 일본과 화해하도록 종용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역대 한국 정부는 일본과 과거사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처음에는 국민 정서와 눈치를 보다가도 결국에는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가 중요하다며 유야무야해 왔습니다. 우파 정부든 민주당 정부든 비슷한 패턴을 보였죠.

우파 정부든 민주당 정부든 비슷한 패턴 항의는 잠깐일 뿐, 우선순위는 늘 한미일 동맹이었다

한국은 더는 미국이나 일본에 종속된 (“신식민지”) 국가가 아니었고, 오히려 지난 수십년 사이에 세계 10위권의 중간 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오늘날의 한미일 관계를 이해하려면 이 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한국 지배계급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미국·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해 왔고, 그래서 제국주의 체제의 유지가 그들에게 득이 됩니다.

이 점을 보지 못하면, 한국 지배계급 또는 적어도 그 일부가 노동계급과 한편이 돼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기를 기대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에게서 독립적이지 못한 입장, 곧 민중주의적·민족주의적 입장에서 과거사나 한일 갈등 문제를 다루려고 하면 운동의 전망이 매우 어그러질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 약속을 저버렸는데도 정의기억연대 등 진보 민족주의·포퓰리즘 지도자들이 이에 도전하지 않았던 것이 하나의 사례입니다.

또, 2019년 한일갈등 국면에서 정의당이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서 국익을 지키자며 만들어진 민관정협의회에 들어간 것이나, 민주노총이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부품 국산화를 주장한 것도 그런 사례입니다.

한국과 일본 노동자들의 연대

저는 오늘 두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첫째,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를 현재의 제국주의라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사 문제가 오늘날 제국주의 질서에 맞서 싸우는 것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둘째, 일본과 한국 양국 모두에서 과거사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지배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계급투쟁적이고 국제주의적인 반제국주의 운동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국주의에 맞서 서로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함께 싸울 수 있는 주체는 한국과 일본의 노동계급입니다. 우리는 미국·일본 제국주의와 그에 협조하는 한국 정부에 반대하고, 두 나라 노동계급의 공통의 이익인 경쟁적 군비 증강 반대, 일본 평화헌법 개정 반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등을 주장해야 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적으로 군사적 긴장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지금, 계급투쟁적·국제주의적 관점과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