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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의 대만 방문과 후폭풍

이 기사는 8월 18일에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의 발제문이다.

8월 2일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펠로시는 홀로 대만으로 향하지 않았다. 항공모함, 강습상륙함, 전투기 등 미국의 강력한 무력이 그를 호위했다. 그렇게 대만에 도착해서는, “세계는 [중국·러시아 같은] 독재 정치와 [미국·대만 같은] 민주주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하고 주장했다.

사실 펠로시의 이런 입장은 위선이다. 그는 예전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테러 용의자를 해외 비밀 감옥에서 물고문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묵인해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선출된 대통령을 쿠데타로 제거하려던 베네수엘라 우익을 지지하기도 했다. 펠로시의 인권 옹호는 ‘그게 미국 제국주의에 이익인가, 아닌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중국 시진핑 정부는 미국 최고위급 정치인인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드는 도발이라면서 크게 반발했다.

중국군은 펠로시가 대만을 떠난 직후인 8월 4일부터 대만 주변을 에워싼 봉쇄 훈련을 벌였다. 이 훈련으로 대만의 주요 항로와 항구가 막혔다. 심지어 중국군이 발사한 미사일 4발이 대만 상공을 가로질러 대만 동쪽 바다에 떨어졌다.

중국군은 대만을 포위해 침공하는 모의 훈련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 유사시 대만을 지원하려는 미국과 일본 군함을 미사일로 저지할 것임도 보여 줬다. 중국의 무력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이전에는 접근하지 않았던 대만 인근으로 중국 전투기와 군함들이 연일 진입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인도·태평양 조정관 커트 캠벨은 조만간 미국 군용기와 군함이 대만해협을 통과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따라서 대만을 둘러싼 긴장이 한동안 고조될 듯하다. 이 긴장은 대만해협을 비롯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일대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긴장 고조는 장기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을 낳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왜 이토록 악화되고 있는지, 대만해협의 불안정이 주변 지역과 한반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겠다.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

펠로시의 대만 방문은 미국 정치권의 대만 정책 변화와 관련이 있다.

1979년 미국은 소련을 고립시키려고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그러면서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의 주장을 존중하기로 했고, 대만과 국교를 단절했다. 다만 미국은 대만관계법 등으로 대만의 안보를 보장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미국과 대만의 외교 관계는 변하고 있다.

2018년 미국 의회는 대만여행법을 제정했는데, 이 법은 미국과 대만 정부 고위 관료의 상호 방문을 권고하는 법이었다. 2020년에 제정된 타이베이법에는 대만의 국제기구 참여를 미국이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밖에 대만보증법, 전략적경쟁법 등 대만에 대한 지원 강화를 담은 법안이 의회를 속속 통과해 왔다.

현재 민주당과 공화당 중진이 함께 내놓은 대만정책법이 미 의회에 상정돼 있는데, 이 법안은 대만을 미국의 중요 동맹국으로 인정하고 45억 달러의 안보 지원을 하도록 돼 있다.

대만에 대한 안보 지원 법안이 의제가 될 만큼 대만 문제에 대한 미국 정가의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왜 그럴까?

중국은 지난 수십 년의 경제 성장으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면서, 미국을 서태평양 너머로 밀어내려 한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인도양에 이르는 해상교통로의 안전 확보는 중국에 매우 중요하다. 대외 무역 의존도가 높고 원유 같은 중요 자원을 바닷길로 수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바다를 1945년 이래 미국이 지배해 왔다. 중국은 이를 불안하게 여겨 미국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훨씬 먼 동쪽으로 밀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중국은 유사시 대만을 비롯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미군의 접근을 저지할 수 있는 군사력을 키우려고 애썼다. 그래서 어느덧 중국의 군비 지출이 일본과 대만을 합친 것의 4배가 넘는다.

중국의 이런 시도는 미국의 세계 패권 지위를 대체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역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도·태평양 지역의 패권은 미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는 데서 매우 중대한 기반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선 중국의 도전을 좌시할 수 없다.

대만은 미국과 중국의 동중국해-남중국해 제해권 경쟁 한복판에 얽혀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중국은 미국을 서태평양 너머, 즉 제1도련선 너머로 밀어내려 하는데 대만은 일본 오키나와에서 필리핀·보르네오로 이어지는 제1도련선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대만을 장악하면 중국은 결정적 이점들을 손에 쥐게 된다. 제1도련선 너머로 군사력을 투사하기 훨씬 용이해지는 것이다. 또 세계에서 물동량이 가장 많고 한국·일본 등이 의존하는 바닷길도 중국이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일본만 해도, 해상 교역의 40퍼센트와 에너지 수입의 90퍼센트를 남중국해에서 동중국해로 이어지는 항로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이 대만을 장악하면, 아시아에서 미국의 동맹 체계를 뿌리째 흔들 수 있다. 미국으로선, 대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곳이다.

최근 또 다른 이유에서 대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대만은 미국과 중국이 모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반도체 핵심 생산국이다. 그래서 미국 정·재계 인사들은 대만의 반도체 생산 기반이 중국에 넘어가면 미국 경제가 치명상을 입는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중국에도 대만은 포기할 수 없는 “핵심 이익”이다. 중국 지배자들은 대만 장악을 통한 통일을 중요한 과제로 제시해 왔다. 대만의 독립 선언을 막지 못하면, 중국공산당의 통치 정당성은 크게 훼손될 것이다. 분리 독립을 원하는 중국 내 소수민족들도 대만 독립 선언에 자극받을 것이다.

대만을 둘러싼 최근의 갈등 증대

시진핑 정부는 대만 내 독립 주장에 거칠게 반응하며, 미국이 대만의 독립 주장을 고무할까 봐 예의 주시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20여 년 만에 중국 전투기들이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기 시작하는 등 중국의 무력시위가 강화됐다. 중국은 여러 수단을 동원해 2016년 이래 8개국이 대만과 단교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는 이전 정부들에 비해 대만 문제에 적극 관여하고 있다. 미국 군함이 대만해협을 관통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 빈도를 이전보다 더 늘렸고, 취임 이후 지금까지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을 5차례나 승인해 줬다.

또 바이든은 중국을 겨냥해 동맹을 결집해 왔다. 지난해 미·일 정상회담은 매우 주목할 만한데, 처음으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거론했다. 바이든은 영국·호주와도 중국을 겨낭한 오커스 동맹을 결성했고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 6월에 열린 나토 정상회의는 중국을 “구조적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의 대만 정책에 반발해 시진핑 정부도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중국 정부는 해상교통안전법을 개정해 자국 영해에 진입하는 외국 선박에 대한 사전 신고를 의무화했다. 이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벌이는 미군을 겨냥한 조처였다. 자국이 선포한 영해에 진입한 미군 함정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만을 비롯한 동아시아 불안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쟁이 시작되자 커트 캠벨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외에 다른 전쟁에도 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대만에 소홀하지 않으니 ‘오판’하지 말라고 중국에 경고한 것이다. 이후 바이든은 유사시 대만에 군사 개입할 의향을 묻는 기자 질문에 “그렇다” 하고 답했다. 이것은 그 전까지 미국이 유지해 오던 전략적 모호성과는 상당히 다른 태도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은 일본 정부가 군비 증강과 미일동맹 강화를 추진하는 명분을 제공해 줬다. 대만도 군 의무복무 기간 연장을 검토하는 등 안보 태세를 강화하는 중이다.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등이 대만 인근에서 펠로시를 호위했다 ⓒ출처 미 해군

후폭풍과 주변에 미치는 파장

펠로시 대만 방문 이후 상황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지난 8월 16일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대만해협에 “뉴 노멀”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미국 관리들의 정치적인 [대만] 방문에 대응해 광범하고 실질적인 순찰이 일상화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중국 해군과 공군이 대만해협 전체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것이다.”

이처럼 중국이 공세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이런 움직임은 미국을 적잖이 자극할 것이다. 특히, 중국이 대만 봉쇄 훈련으로 미군의 대만 접근을 차단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과시했으니 말이다.

안 그래도 미국 국방부와 유력 싱크탱크들은 대만해협에서 중국과 충돌하면 미국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워게임 결과를 계속 내왔다. 미군 전력은 전 세계에 분산돼 있는 반면, 중국은 본토 가까운 곳에 전력을 비교적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 정가에서 대만 문제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8월 15일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 회장은 중국의 “뉴 노멀” 주장에 대응해 “[중국에 대한] 억제력이 재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무력에 저항할 대만의 능력을 키우고, 역내 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증강, 미·일 협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만 문제에 적극 관여하려는 일본의 움직임도 중요하다. 일본은 인접한 대만에 걸린 자국의 경제적·지정학적 이해관계를 중시한다. 그래서 최근 집권 자민당은 “대만 유사 사태는 곧 일본의 유사 사태이고, 일미 동맹의 유사 사태”라고 강조하고 있다.

일본은 대만에 대한 미일동맹의 관여를 위해 제도를 정비하고 있고,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난세이 제도에 미사일 부대 등 군사력을 전진 배치해 왔다. 또한 “반격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경항모, 중거리미사일 같은 무기를 도입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동중국해에서 중국군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자민당은 5년 이내에 방위 예산을 국내총생산의 2퍼센트까지 올리려 하는데, 그러면 일본의 군비 지출 규모는 단숨에 세계 3위로 치솟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대만을 둘러싼 긴장이 증대하는 것은 강대국들이 경제적·지정학적 이익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긴장 증대는 주변국들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일본도 장사정 미사일 등 군비 증강으로 동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출처 일본 육상자위대

당장 대만 문제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 미군 정찰기가 대만 봉쇄 훈련 중인 중국군을 감시하려고 주한미군 기지에서 발진해 대만해협으로 갔다. 주한 미7공군사령관은 주한미군이 한반도 바깥 어디든 투입될 수 있다고 언론에 밝혔다.

대만해협 분쟁이 벌어진다면, 성주의 사드 같은 주한미군 전력이 동원되고, 제주 해군기지나 오산 공군기지 같은 곳이 미군의 발진 기지가 될 수 있다. 한반도가 대만을 둘러싼 충돌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윤석열은 이번에 방한한 펠로시를 만나지 않았는데, 이는 대만 문제에 휘말리는 것에 대한 국내의 상당한 우려를 반영한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대만 문제에서 미국 편에 기울어 있고 한미동맹 강화에 적극적이다. 이것은 대만을 둘러싼 충돌에 휘말릴 위험을 키우는 짓이다.

북한은 대만 문제를 둘러싼 긴장 증대와 주변 강대국들의 군비 증강을 상당한 위협으로 느낀다. 지난해 북한 외무성 부상은 대만 주변에 집결되는 ‘미국과 동맹국들의 방대한 무력이 북한에도 위협’이라고 말했다. 이런 압력 때문에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배 관료들이 핵과 미사일 같은 ‘비대칭 무기’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처럼 미·중 경쟁은 대만뿐 아니라 한반도에도 커다란 불안정을 낳고 있다.

미국과 중국 제국주의 모두에 반대해야

물론 미국과 중국에게 대만해협 전쟁은 아직은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무역 전쟁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상호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월가 투자자들에게 중국은 탐나는 시장이고, 중국 지배자들도 서방 경제와의 연결이 끊어지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 상호 의존이 양측의 전쟁을 막아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상충하는 경제적·지정학적 이해관계 때문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 상호 적대가 계속 증대해 왔고, 양측의 갈등을 열전으로 뒤바꿀 변수가 이 지역에 많다.

미·중 간 군사 충돌이 벌어진다면 대만해협 외에 다른 지역으로 번질 공산이 크고, 최악의 경우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얼마 전 미국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는 대만에서 미국과 중국이 붙는 워게임 결과를 공개하면서, 미국과 중국 모두 신속히 승리하기 어렵고 전쟁 장기화 속에 대만해협 전쟁이 괌·일본·호주 등지로 번지며 핵전쟁으로 치닫는다고 전망했다. 참으로 두려운 시나리오다.

우리는 자국의 패권을 위해 이 지역을 위험에 빠뜨리는 제국주의에 반대해야 한다.

우선, 중국과 대만의 갈등을 키우는 미국에 반대해야 하고, 한국 정부가 대만 문제에서 미국 편을 드는 것을 반대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대만 문제에 관여한다는 미국 정치인들의 주장은 그럴듯한 거짓말일 뿐이다. 미국이 대만 독재자 장제스를 후원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또, 중국 정부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해서도 안 된다. 일부 좌파는 중국을 미국에 대항하는 진보적 세력으로 여기고, 대만 문제를 중국의 “내부 문제”로 여긴다. 그러나 중국은 힘을 과시해 자국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제국주의 강대국이다. 대만인들은 중국과 통일할지 아니면 분리해 살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중국이 대만을 위협하고 대만 국민의 자결권을 침해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한반도가 대만해협 충돌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에서도 한반도에 사는 우리가 미국과 중국이 경합하는 제국주의 체제와 그들의 긴장 증대 행위 모두에 반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한국 정부가 대만 문제에서 미국 제국주의를 편드는 것, 군비 증강 등 지역 불안정에 일조하는 행위 일체에 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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