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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인 가사노동자 2명 생활고로 이탈, 미등록자 될 위기
사측과 정부는 체불임금 지급 및 처우 개선을 하고 이직을 허용하라

기사 발행 이후 알려진 필리핀인 가사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와 사측의 통제 조처들을 추가했다.

필리핀인 가사노동자 2명이 생활고로 ‘무단 이탈’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될 위기에 놓였다. 이들은 임금 체불로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숙사 통금과 외박 금지 등 사측의 사생활 통제와 열악한 처우에도 시달렸다.

9월 23일 〈이데일리〉의 단독 보도를 보면, 이들은 9월 15일 서울 역삼동에 마련된 숙소에서 짐을 챙겨 나간 뒤 현재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휴대폰 연락도 두절된 상태다.

지난 8월 6일 입국한 필리핀인 가사노동자 100명은 9월 2일까지 직무교육을 받고 9월 3일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첫 월급날인 8월 20일에 직무교육에 대한 수당이 지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고용한 홈스토리생활(서비스명 대리주부)과 휴브리스(돌봄플러스)는 교육수당 201만여 원을 체불했다. 이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자, 9월 5일에 절반가량인 약 95만 원만 우선 지급했다.

40만 원으로 강남에서 한 달 살기? 고객의 요청사항을 확인하는 필리핀인 가사노동자 ⓒ출처 서울시

그런데 9월 13일 두 업체는 두 번째 월급날인 9월 20일에 나머지 교육수당 106만여 원만 지급한다고 통보했다. 서비스 이용 가정의 변동이 잦기 때문에 임금을 다음 달에 정산하는 게 업계 관행이라며, 9월 근무에 대한 임금은 10월에 지급한다며 말이다.

어처구니없게 고용노동부도 사측을 지지하며 임금 체불이 아니라는 행정해석을 내렸다.

게다가 세금과 4대보험료, 무엇보다 9월부터 공제되기 시작하는 숙소비 약 54만 원을 빼면 두 번째 월급날 실수령액은 더 줄어든다. 또한 필리핀인 가사노동자들에게 지급된 휴대폰 요금 4만 원, 교통카드 요금 6만 5000원은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결국 필리핀인 가사노동자들이 손에 쥐는 돈은 약 40만 원에 그치는 것이다. 이 돈으로 어떻게 강남 한복판에서 한 달간 살 수 있단 말인가.

사측의 통보를 받고 이틀 만에 노동자 2명이 이탈한 이유가 당장 부족한 생활비,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와 무관치 않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한 필리핀인 가사노동자는 “[이탈한] 2명은 급여를 더 많이 주는 곳을 찾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 월급이 체불됐을 때도 필리핀인 가사노동자들은 돈을 빌리러 지인들을 찾아다녀야 했다.

이탈자 발생 사실이 알려지자 서울시는 임금 지급 방식의 주급제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급제로도 임금 체불에 대한 우려와 턱없이 적은 임금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는 힘들 것이다.

자유

또, 서울시와 고용노동부는 9월 24일 부랴부랴 사측과 필리핀인 가사노동자 중 2명을 불러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필리핀인 가사노동자 자스민 에리카 씨는 열악한 처우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하루 8시간을 한 가정에서 일하지 못하고 3가정까지 쪼개서 일하다 보니 이동이 부담되고 공원이나 지하철역에서 식사를 때우고 있습니다.”

또한 필리핀인 가사노동자들은 사측이 기숙사 통금 시간을 정해 이를 확인하고, 추석 연휴 이외에는 외박도 금지했다고 폭로했다. 조안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일을 마치고 강남의 숙소에 도착하면 밤 9시쯤 되는데 통금이 밤 10시라 사회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없습니다.

“밖에서 사회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성인이기 때문에,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 노동자라면 이런 상황에서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이직하려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필리핀인 가사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했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근무지에서 5영업일 이상 무단결근하면 사용자가 지방노동청에 ‘이탈 신고’를 할 수 있고, 이후 한 달 동안 근무지로 돌아오지 않으면 미등록 체류자가 된다. 이주노동자에게 이직의 자유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미등록자로 전락시키는 고용허가제 자체가 문제다.

사측은 하루빨리 체불된 9월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필리핀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을 도입한 고용노동부와 서울시는 책임지고 이를 강제해야 한다.

9월 26일 적반하장이게도 사측은 이탈한 2명의 필리핀인 가사노동자에 대해서 이탈 신고를 했다. 정부는 이들에게 합법 체류자격을 보장해야 한다. 이탈한 2명을 포함해서 필리핀인 가사노동자들이 사업장과 업종 변경을 원한다면 허용해야 한다. 현행 법률로도 “월 임금의 30퍼센트 이상의 금액을 2회 이상 지급하지 않거나 지연하여 지급한 경우” 사업장 변경 사유에 해당한다.

이주민 유입 환영해야 처우 개선도 가능하다

이번 사건이 알려지자 9월 23일 진보당은 “필리핀 가사노동자에 대한 차별임금과 임금체불, 즉각 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동시에 “그 출발부터 잘못 꿰어진 이 사업, 계속 가져갈 수나 있겠습니까?” 하고 반문하며, 필리핀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고도 시사했다.

진보당은 지난해 시범사업 계획이 처음 발표됐을 때 “국내 인력보다 저렴한 외국인 노동자를 도입하여 노동의 값을 후려치겠다는 발상이 말이 되는가!” 하며 반대했다. 이주노동자 유입이 내국인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킨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6개월의 시범사업 기간 동안 드러나는 열악한 노동조건 문제를 부각시켜, 시범사업 종료 후에는 해당 업종에 이주노동자 유입을 막아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

9월 23일 한국노총은 “무분별한 외국 인력 도입은 국내 노동자 일자리의 임금과 노동조건까지 함께 악화시켜 지금도 심각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더욱 공고히 할 뿐”이라며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여러 연구들은 이주노동자가 내국인 고용과 임금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거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고용과 임금 수준은 노동자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저항하느냐에 따라 가장 크게 좌우된다.

이주노동자들은 절박한 필요로 한국에 온다. 한국행이 막히면 그들은 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더 열악한 일자리에 취업하거나, 아예 실업자가 될 수도 있다. 한국행을 막는다고 그들이 열악한 처우로 고통받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와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이주노동자 유입을 반대하거나 그 수급 조절에 자신들이 관여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면, 이주노동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내국인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를 경쟁자로 여기는 정서를 부추기고 단결을 도모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는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 모두의 조건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리핀인 가사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려면 그들이 한국에 와서 일하는 것을 환영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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