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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 좌파 단체,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외국인 가사노동자 “환대”한다면서 그들을 마뜩잖게 여기는 연대체에 가입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으로 일할 필리핀인 노동자 100명이 지난 8월 6일 한국에 왔다. 이들은 9월 3일부터 서비스를 신청한 가정에서 일을 시작한다.

이런 가운데 8월 20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이하 사회주의전진)이 ‘자본주의의 실패와 필리핀 이주 가사노동자’(필자 정은희)라는 글을 발표했다.

사회주의전진은 이 글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정주 가사노동자들이 계급적 단결을 조직해야 할 대상이자 투쟁의 주체다.”

“아무리 이주 가사노동자들을 짓밟고 올라서도 정주 가사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자명하다. 노동자 간 경쟁을 용인하는 한, 노동자는 자본가들의 잇속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처지로 빠져들게 된다. … 한국에서도 이주 가사노동자를 환대하고 단결하며, ‘전 세계 노동자는 하나’라는 구호를 현실화해야 할 때다.”

사회주의전진의 이번 입장이 혁명적 국제주의자들에게 반가운 것은, 최근 정부가 이주노동자 유입 규모와 업종을 확대하자 진보 정당과 노동조합의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이주노동자의 한국 유입을 지지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가 유입되면 그 부문의 임금이 떨어지고 내국인 고용이 줄어든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주의전진은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반대해 온 ‘이주 가사·돌봄 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에 속해 있다. 이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환대하자는 이번 글의 입장과 모순되는 행동이다.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은 가사·돌봄 부문에 노동력이 부족한 이유가 해당 일자리의 임금이 낮고 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라며 일자리의 질 개선을 주장한다. 그리고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한국에 와서 겪을 열악한 처우를 반대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언뜻 이주노동자를 위하는 듯이 보이지만, 이주노동자를 유입시키기 전에 먼저 내국인의 유입을 유도하라는, 즉 내국인 고용을 우선하라는 주장(때로 암시적이다)이 담겨 있다.

기대와 절박함 필리핀인 가사노동자들이 한국에 오기 전 교육받으며 사용한 명찰 ⓒ출처 DMW Pre Employment and Government Placement Bureau In Action

예컨대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에 속해 있는 최영미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8월 12일 SBS의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주장했다. “인력 부족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 논의는 없이 무조건 외국인력을 싸게 들여와야 한다[는] … 정책의 기본 전제부터 잘못됐다.”

이는 이주노동자 유입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보수적 요구에 이주노동자 차별 반대라는 진보적 포장지를 씌운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전진이 이번 글에서 썼듯이, “필리핀·인도네시아 등 이주 가사노동자를 송출하는 저개발국가에서, 이주 여성들은 높은 실업률과 빈곤율 속에서 아이를 먹이기 위해, 아픈 가족 구성원을 위해, 아니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이주한다.

그래서 본지가 지적했듯이, 한국행을 막으면 이들은 자국에서 실업과 빈곤으로 고통받거나 한국보다 노동조건이 더 나쁜 홍콩, 싱가포르,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가야 한다.

사회주의전진이 아무리 이주노동자를 환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들,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에 속해 있다면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의 신뢰를 얻고 단결을 도모할 수 없을 것이다.

모호함

사회주의전진이 이주노동자 환대 입장과 모순된 실천을 하는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올해 총선을 앞둔 지난 4월 2일, 사회주의전진 울산지역위원회는 “노동자들에게 울산 동구 노동당 이장우 후보에 대한 지지와 계급투표를 제안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회주의전진 울산지역위원회가 이장우 후보를 전적으로 지지한 것은 아니다. 이장우 후보가 조선산업 국유화, 노동자의 산업통제 투쟁 촉구 등에 미치지 못하는 공약을 내놨다며 그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이유를 밝혔다.(이 요구들은 사회주의전진이 내놓은 ‘대중투쟁강령’에 포함된 것들이다.)

그러나 이장우 후보가 이주노동자 유입을 지지하지 않는 주장을 펴며 선거운동을 한 것은 비판하지 않았다.

이장우 후보는 1월 11일 ‘조선업을 위기로 몰아넣는 윤석열 정부와 HD현대, 이주노동자 확대 중단하고 임금을 인상하라!’ 기자회견을 했다. 또, 1월 15~27일 현대중공업 출입문에서 “비숙련 이주노동자 확대는 저임금 고착! 인력난 해법은 임금인상”이라는 문안의 팻말을 들고 출퇴근 인사 선거운동을 했다. 한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위해 이주노동자 고용을 늘리지 말라는 주장을 한 것이다.

물론 좌파가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비판적으로 지지한다고 해서 그 후보의 선거공약 전체를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 후보가 노동계급의 단결을 저해하는 공약을 내놓았다면 이를 비판하는 입장을 삼가서도 안 된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이주민에 대한 차별이 가장 중요한 쟁점의 하나가 돼 있는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선거 운동을 한 후보를 지지하라고 요구하는 건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일이다.

사회주의전진은 ‘대중투쟁강령’에서 특별히 건설업과 조선업을 지목하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배척 요구가 아니라, 차별 없는 노동권을 위해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이 계급단결 투쟁에 나서는 것”이라고 밝혔음을 상기해야 한다.

본지는 지난 총선에서 진보당·정의당 등등 좌파 후보 지지를 주장하는 맥락에서 이장우 후보도 지지했지만, 이장우 후보가 이주노동자 유입을 지지하지 않는 입장이었던 것은 비판한 바 있다.(본지 기사 ‘좌파 후보라면 이주노동자 확대를 반대할 수 없는데도’를 보시오.)

조선업은 최근 이주노동자가 많이 늘어난 업종의 하나다. 그런데 조선업 노조들의 일부 지도자들은 이주노동자 배척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타협하는 이장우 후보의 입장을 비판하지 않고 투표를 호소한 것은 사회주의전진이 이주노동자 환영 입장을 진정 실천의 지침으로 삼고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극우·파시스트들이 이주민 배척을 전면에 내세우며 활개를 치고 있고 중도 좌파들이 이주민 배척에 영합하거나 침묵하는 상황에서, 좌파가 이주민을 방어하고 나서는 것은 사활적으로 중요해졌다.

급진 좌파가 소속 연대체와 입장이 다소 다를 수 있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타협이 연대체의 핵심 요구 자체에 관련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타협이 아니라) 배신적인 타협에 해당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전진은 퀴어퍼레이드 주최측에 핑크 워싱 제국주의/시온주의 국가의 대사관들을 배제하라고 강력히 촉구한 적 있다. 이는 노동자연대도 한 적이 없는 행동이다. 우리는 핑크 워싱 국가와 대기업들이 퀴퍼에 참가하는 것을 비판한 적은 있어도 그들의 배제를 주최자들에게 요구한 적은 없다. (우리는 참가가 정해진 상황에서 그런 찍어내기 요구는 과도하다고 본다.)

이처럼, 성소수자와 노동계급에 대한 태도의 차이는 무엇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