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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가사·돌봄노동자 권리보장 연대회의:
신규 유입 반대하면서 기존 이주노동자 처우를 제대로 개선시킬 수 없다

숙소를 이탈해 미등록자가 됐던 필리핀인 가사노동자 2명이 출입국 당국과 경찰의 추적 단속에 붙잡혀 10월 10일 끝내 추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열악한 처우로 고통받았던 이들을 도리어 강제 추방 하다니 잔인함이 따로 없다.

이런 가운데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을 반대해 왔던 ‘이주 가사·돌봄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이 지난 9월 26일 ‘이주 가사돌봄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로 재출범했다. 필리핀인 가사노동자 유입을 반대하다가, 이들이 유입돼 일을 시작하자 그들의 처우 개선을 내세우는 이름으로 변경한 것이다.

연대회의에는 이주노동자노동조합,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공공운수노조, 사회주의를향한전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여성민우회, 노동당 여성위(준) 등이 속해 있다.(전진은 기후 연대체에서 진보당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지 말고 자신이 왜 자신의 주장과 전혀 모순되는 이런 연대체에 남아 있는지부터 성찰해야 한다.)

연대회의는 출범 기자회견에서 공동행동을 계승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시범사업이 끝나면 본 사업이 시작되는 것을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최영미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10월 2일 〈이데일리〉 주최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범사업 이후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본다. 외국인 서비스 확대 계획을 중단하고 외국인 수급계획부터 세워야 한다.”

요컨대 연대회의의 입장은 ‘이미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조직하고 처우 개선을 위해 함께 싸우지만, 이주노동자 신규 유입은 반대한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한국행을 원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절박함을 외면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들어온 이주노동자의 처우 개선 문제에서도 일관될 수 없다.

예컨대 연대회의와 그 소속 단체들은 이탈자 발생이 열악한 처우 때문이라며 서울시와 고용 업체를 옳게 비판했다. 그러나 이탈자 2명이 붙잡혔을 때 추방하지 말라는 입장을 내지는 않았다. 그동안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신속하게 규탄했던 것과 대비된다.

이탈자 추방을 반대하면 이들의 한국 유입을 반대한 기존 입장과 모순을 빚기 때문일 것이다. 연대회의 소속 단체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추방을 일반적으로 반대해 왔지만, 정작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방어하지 않는 일이 생긴 것이다.

또한 신규 이주노동자 유입과 같은 효과를 내는 이주민 처우 개선 조처들을 지지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예컨대 현재 한국에 온 유학생들은 취업 시간과 업종 제한 때문에 학비와 생활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유학생들이 제한을 풀어 달라고 요구하면 지지할 수 있을까? 또는, 한국에서 더 일하기 위해 미등록자 되기를 선택하는 것을 지지할 수 있을까?

특히 난민 유입을 일관되게 지지하지 못할 것이다. 난민은 계획되지 않은 이주민 유입인데, 일단 들어오면 그들도 일해서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금도 ‘경제적 목적의 가짜 난민’을 걸러내야 한다며 난민 심사를 매우 까다롭게 하고 있는데, 이로부터 난민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산업 예비군”

대체로 연대회의 소속 단체들은 가사·돌봄 부문에 이주노동자를 유입시키기 전에 내국인 채용을 유도하라고 주장해 왔다. 즉, (흔히 암시적으로) 내국인 고용을 우선하라고 요구해 온 것이다. 이주노동자 유입이 내국인 노동자의 일자리 감소와 임금 저하를 유발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미 들어온 이주노동자 차별은 반대하면서도 신규 이주노동자 유입을 반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내외국인 노동자들이 경쟁해 정해진 몫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전제하고는 이민자들이 너무 많으면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처럼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우파나 정부가 기존 이주노동자까지 문제 삼는 것에 취약해질 수 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이주노동자는 마르크스가 말한 “산업 예비군”과 같은 구실을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상대적 잉여 노동인구, 즉 자본의 평균적 필요에 넘치는 인구를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는 생산을 확대하면서, 생산수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점점 더 적은 노동력만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대적 잉여 노동인구”는 취업해 있는 노동자들을 대체할 수 있어 기존 노동자들에게 끊임없는 위협이 된다. 산업 예비군(실업자)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 자체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취업해 있는 노동자들이 실업자들을 경쟁 상대로 여겨 배척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마치 지금의 이주노동자처럼, 노동시장에 진출하려는 여성들이 기존 노동자들의 경쟁 상대로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1830년대 영국의 재단사들은 여성들의 낮은 임금이 남성 노동자들의 임금을 끌어내린다며, 여성 고용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태도는 한 세기 이상 지속됐다. 이에 맞서, 여성에게 동등한 임금과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모든 노동자에게 득이 된다고 설득하는 것이 당시 좌파적 활동가들의 과제였다.

자본가들은 노동력의 이주를 때로는 허용하고 때로는 제한함으로써 세계 시장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 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이주 규제가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는 없다. 노동자들은 이주의 완전한 자유를 주장할 때 사용자들에 맞설 힘이 커진다.

고용과 임금 수준은 노동자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저항하느냐에 따라 가장 크게 좌우된다. 신규 이주노동자 유입을 반대하는 태도는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의 단결을 해쳐, 기존의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 모두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국경을 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 노동자들이 그들을 국제 노동계급의 일원으로 환영하고 단결해 함께 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