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국제주의가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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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필리핀인 가사노동자 100명이 입국했다. 입국한 필리핀 노동자들은 한국 생활에 대한 기대가 묻어나는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좌파와 노동운동 내에서 필리핀 노동자들을 환영하는 목소리를 듣기가 어렵다.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그전에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주노동자의 유입을 지지하지 않았다.(더 자세한 내용은 ‘필리핀인 가사노동자 입국 환영한다! 정부는 더 좋은 처우 보장하라!’를 읽으시오.)
반면 노동자연대는 필리핀 (더 일반으로 외국인) 노동자 입국을 환영한다고 분명하게 주장했다.
이런 차이에 근본적으로 깔려 있는 쟁점은 국경 개방(이주민 환영)과 국경 통제(이주민 통제) 중 무엇을 지지할 것인가, 즉 국제주의인가 국가주의(이하 민족주의)인가 하는 문제다.
노동자연대가 지지하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국경 통제를 반대하고 국경 개방을 일관되게 옹호한다. 그것이 노동자 연대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의 결론인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아래 글에서는 토박이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국제주의를 다루겠다.(국제주의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 간의 제국주의적 전쟁, 팔레스타인 민족해방 운동 등을 다루는 데서도 유용한 분석 방법을 제공하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추후에 다룰 예정이다.)
왜 마르크스는 국제주의를 강조했는가
국제주의의 필요성은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 자체로부터 제기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 분단선은 자본가 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 놓여 있고, 따라서 한국 노동자는 한국 자본가가 아니라 필리핀·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이집트·미국·프랑스 등지의 노동자와 공통점이 훨씬 더 많다.
또, 자본주의가 세계 시스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맞서려면 세계적 수준에서 싸워야 한다.
따라서 혁명가들에게 국제주의는 온정주의적 생색내기가 아니라 정치적 필요성의 문제다.
카를 마르크스가 국제주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것도 그래서다.
두루 알듯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세계화‘를 처음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계급 국제주의를 원칙이자 전략으로 제시한 최초의 사상가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제1인터내셔널(1864~1876년)의 규약을 작성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노동계급의 해방은 한 지역이나 일국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서, 그것은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을 포괄하며, 그 해결책은 가장 선진적인 나라들의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협력에 달려 있다.”
제1인터내셔널 출범 연설에서도 마르크스는 국제주의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국제 정치의 수수께끼에 통달하는 것이 [노동계급의] 의무다. 어떻게 해서든 자국 정부의 외교 활동을 감시하고, 필요하다면 최선을 다해 저지한다. 저지할 수 없다면 일제히 규탄해야 한다.
“그런 대외 정책에 맞선 투쟁은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한 보편적 투쟁의 일부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마르크스 당대에 “현대 사회,” 즉 자본주의는 서유럽과 북미에 한정돼 있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문자 그대로 전 지구적으로 확대됐고, 각각의 국민경제가 그에 종속돼 있는 세계 경제가 창출됐다.
그런 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통합돼 있다. 그래서 하나의 사건이 국제적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예컨대, 세계 경제 시스템은 전 지구적 위기를 만들어 낸다. 세계적 규모의 경제 위기,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지정학적 충돌, 재앙적인 기후 위기, 팬데믹 등등.
동시에,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세계 노동계급이 창출됐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 즉 노동계급을 만들어 낸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많은 노동자들을 공장과 사무실에 한데 모은다. 그들이 대규모로 파업하면 공장과 사무실이(그리고 효과적인 경우 사회 시스템도) 멈춘다.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데에 객관적 이해관계가 있다. 그래서 계급투쟁은 세계 노동자들의 공통된 투쟁 방식이 된다.
계급투쟁이 고양되면 국경을 넘어 국제적 규모로 확산된다. 1917~23년 러시아와 서구 혁명, 1968~75년 반란, 2011~13년 아랍 혁명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혁명적 좌파와 개혁주의적 좌파의 차이
그러나 세계 노동계급이라는 생각이 많은 노동자들에게 인식될 만큼 계급투쟁 수준이 높게 고양되는 것은 안타깝게도 흔치 않고 이례적이다.
그래서 국제주의가 많은 노동자들이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주장으로 들릴 때가 훨씬 더 많다. 가령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내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나 노동조건을 악화시킨다는 주장을 흔히 접한다.
이런 시기에 국제주의는 애국주의(민족주의)와 국익이라는 사상에 맞서야 함을 포함한다.
그래서 혁명가들은 독일 혁명가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주창한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기치를 국제주의의 핵심으로 삼는다.
국제주의는 해외의 투쟁들을 (그저 찬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활용해 국내에서 자국 지배계급과 그들의 정책을 반대하는 운동을 건설하려 애쓰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조국이 없다”고 말한 것도 그런 의미였다.
개혁주의자들의 입장은 이와 정반대다.
민주노총 지도부나 진보당·정의당 등 ‘진보’ 정당들은 국내 거주 이주노동자의 조건 개선을 요구하면서도(그 자체는 필요한 일이다), 이주노동자의 새로운 유입을 (노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대개 이주 노동자들이 임금을 낮춘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사용자들이 내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깎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수입한다는 것이다. 사용자들이 그런 식으로 임금을 낮추고 싶어 할 수는 있겠지만, 모든 통계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의 임금 수준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보여 준다.(관련 기사: ‘이주민 유입에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 열악한 처우를 이유로 지지하지 않는 것이 옳은가?’를 보시오.)
개혁주의자들이 국경 통제를 반대하지 않는 더 원칙적인 이유는 개혁주의에 내재된 고유한 문제점과 관련 있다.
개혁주의의 정치적 목표가 기존 국가를 인수하는 것이라면 그 국가의 이익(‘국익’으로 불리는)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다.
그리고 그 국가는 자국 자본 축적에 조응해 노동계급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는 국경 통제를 유지한다. 이주노동자가 산업예비군 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에(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그들을 본국으로 추방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를 수도꼭지 열고 잠그듯이 유연하게 유입하기 위해서다.
결국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개혁주의자들의 태도는 이주노동자들의 필요성이나 노동계급의 단결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자국 자본주의의 상태와 선거 압력에 따라 결정된다.
국제주의는 공상이 아니라 활동 길잡이이다
국제주의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쟁점 하나는 우리가 국제적인 적과 대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일국 수준에서 분쇄될 수 없다. 마르크스의 절친이자 혁명가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47년에 쓴 《공산주의의 원리》에서 이렇게 썼다.
“이 혁명[1848년 노동계급 혁명]은 어느 한 나라에서만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 아니다. 세계 시장을 만들어 낸 대규모 산업 때문에 이미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은 …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과 무관하게 살 수 없다.”
무엇보다, 세계의 지배계급이 성공한 혁명을 교살하기 위해 유혈낭자한 개입을 할 태세가 돼 있음을 역사는 거듭 보여 줬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 그랬다.
그러나 국제 지배계급의 반혁명적 개입은 서로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이 서로를 지지하며 자국 지배자들에 맞서는 운동을 구축함으로써 상쇄할 수 있다.
그래서 레닌은 1918년, “독일 혁명 없이는 우리가 멸망할 것이라는 점은 절대적인 진리”라고 말했다.
독일 노동자들이 러시아 노동자들처럼 자국 지배자들을 전복하고 노동자 국가를 수립하면 러시아 혁명도 유지되고 강화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런 기대는 헛된 꿈이 아니었다. 독일 노동자들이 1918~1923년 혁명을 일으켰다. 이탈리아에서는 1919~1920년 노동자들이 공장 점거 운동을 벌였다(‘붉은 2년’). 헝가리·핀란드에서도 혁명이 일어났다. 서유럽 전역에서 노동자 운동이 크게 고양됐다.
곳곳에서 사회주의를 위한 객관적 조건들이 존재했다. 볼셰비키 혁명이 촉발시킨 국제적 위기로 인해 국민국가의 경계선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를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에서 결여됐던 것은 볼셰비키와 같은 효과적인 혁명적 조직이었다.
독일 노동계급과 병사들은 혁명을 일으키고 노동자·병사 평의회를 건설했지만 사회민주당의 교란과 집요한 방해로 혁명이 패배했다.
혁명의 국제적 확산이 여의치 않게 되자 볼셰비키는 암울하게 버티며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노동자 반란을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거나, 아니면 서방과 경쟁하기 위해 자국 노동자와 농민을 착취해야 했다.
레온 트로츠키가 이끈 좌익반대파는 전자의 노선을 대표했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주장했다. “사회주의 건설은 일국적·국제적 규모에서 계급투쟁의 기초 위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후자의 노선은 스탈린이 지도하는 신흥 관료층이 대표했다. 스탈린은 서로 투쟁하는 국가들로 이뤄진 세계 시스템 안에서 다른 국가와 경쟁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위해 수많은 농민들이 땅을 빼앗겼고, 굴락(강제노동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의 숫자는 최대 550만 명(1953년)이었으며, 생산의 노동자 통제는 깡그리 파괴됐다.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을 희생시켜서라도 국가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과 동의어가 됐다.
러시아 혁명이 촉발시킨 국제적인 혁명 물결은 비록 패배했지만, 국제 사회주의는 추상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실질적 가능성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1917~23년이 국제 사회주의의 실제적 가능성을 보여 준 유일한 시기였던 것도 아니다.
국제 운동의 역학은 결코 유토피아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구조 자체를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각국의 투쟁은 동일한 속도로 발전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세계 시스템이지만, 국민국가가 위기의 파장과 영향을 조절한다.(그래서 국가는 자본가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좌파와 노동운동의 상태도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나라 간의 차이로 인해 각국의 투쟁은 불균등하다. 그러나 한두 주요국에서 성공을 거둔 운동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행동을 하도록 고무할 수 있다.
20~21세기 역사는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을 장식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 세계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가 진실임을 얼핏얼핏 보여 줬다.
마르크스에게 그리고 오늘날 활동하는 혁명가들에게 국제주의는 공상이 아니라 활동 길잡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