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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인 가사노동자 환영한다! 정부는 더 나은 처우 보장하라!

8월 6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필리핀인 가사노동자 100명이 한국에 왔다.

현재 이들은 경기도 용인시에서 직무와 한국 생활 등에 대한 4주간의 교육을 받고 있다. 9월부터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통해 서비스를 신청한 가정에서 일을 시작한다. 6일까지 가정 751곳이 이 서비스를 신청했다고 한다.

입국장을 빠져나오며 취재진의 인터뷰에 응한 카일리 글로리 마시나그(32) 씨는 한국어로 이렇게 말했다.

“필리핀 대학에서 마케팅 공부했습니다. 한국에서 좋은 추억 만들고 싶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한국에서 일할 가사관리자 모집에] 합격했을 때 많이 놀랐습니다. [주변에서] 부러워했습니다. 한국에 많이 오고 싶어 합니다.

“나중에 돈 많이 모으고 필리핀에서 사업하고 싶습니다. 가족도 도와주고 필리핀에서 대학원 다시 공부 다니고 싶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카일리 씨의 표정에서 한국 생활에 대한 기대가 묻어났다.

“한국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습니다.”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인 가사노동자들이 출국 전 필리핀 마닐라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DMW Pre Employment and Government Placement Bureau In Action

한국 정부는 돌봄 서비스에 대한 지원 책임을 회피하고 저렴한 노동력 투입으로 때우려고 혈안이다. 그만큼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처우는 열악할 것이고 이에 반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필리핀인 가사노동자들의 숙소는 역삼역 근처 원룸텔로 알려져 있는데, 1.45평짜리 1인실이 월 45만 원, 1.96평짜리 2인실이 월 39만~42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매우 비좁은 데다가, 시간당 최저임금인 9860원을 받는다는 점과 서울의 높은 물가를 고려했을 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아이 돌봄과 그 외 가사 서비스 영역 사이에서 직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서비스 이용자와 갈등을 빚을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또, 시범사업 기간이 6개월에 불과해 한국행에 든 비용을 충분히 벌충하고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도 전에 금세 돌아가야 하는 것도 문제다.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들어온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받지만, 윤석열 정부와 서울시장 오세훈 등 여권 인사들, 보수언론은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최저임금 적용 배제를 꾸준히 주장해 왔다.

정부와 사용자들이 이주노동자들을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모는 것은 당연히 규탄하고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조합 지도자들 등 개혁주의자들은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열악한 조건으로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이유로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한국 유입을 지지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노동계급을 분열시킬 민족주의

이주노동자노동조합과 민주노총 등이 포함돼 있는 이주노동자평등연대는 8월 6일 논평에서 필리핀인 가사노동자의 열악한 처우 문제를 제기하며 “시범사업 프로세스에 이주노동인권단체와 노동조합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가 ‘이주 가사·돌봄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에 속해 있다는 점에 비춰 보면, 외국인 가사노동자 유입을 막거나 적어도 그 수급 조절에 자신들이 관여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진보당은 8월 6일 논평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이 “저출생 반전 대책이 될 수 없다”며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옳게 비판했다. 그러나 진보당은 지난해 시범사업 계획이 처음 발표됐을 때부터 (저출생 대책이 될 수 없고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시범사업을 반대했다.

그러나 이번에 입국한 필리핀인 가사노동자들의 반응을 보면 이런 입장이 당사자들의 절박한 필요를 외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 재한 필리핀인 공동체 활동가에 따르면, 100명을 모집하는 이번 시범사업에 필리핀 현지에서 무려 1만 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이들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왔다. 한국행이 막히면 이들은 자국의 더 열악한 일자리에 취업하거나, 조건이 형편없이 열악한 나라로 가거나, 실업자가 돼야 할 수 있다. 홍콩, 싱가포르,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주노동자를 가사노동자로 쓰는 나라들의 노동조건은 한국보다 더 형편없다.

한국 유입을 막는다고 해서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일자리에서 고통받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좌파 단체들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이들의 열악한 처지 개선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입장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운동과 좌파를 불신하게 만들 뿐이다.

사실 외국인 가사노동자 유입을 지지하지 않는 노조와 좌파 단체들의 입장은 저임금의 이주노동력 유입을 막아 내국인 일자리와 임금을 지키자는 보수적 개량주의에서 비롯한 것이다.

예컨대 8월 12일 SBS 비즈 ‘‘필리핀 이모님’ 100명 입국 … 논란 딛고 순항?’에 출연한 최영미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이렇게 주장했다. “인력 부족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 논의는 없이 무조건 외국인력을 싸게 들여와야 한다[는] … 정책의 기본 전제부터 잘못됐다.” 가사·돌봄유니온도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에 속해 있다.

내국인 노동자들 사이에 이런 정서가 확산되면 실업과 저임금에 대한 불만을 정부와 사용자가 아니라 이주노동자로 돌리게 되기 쉽다. 결국 정부와 사용자들이 이주노동자를 속죄양 만들고 노동운동을 이간질 하는 것에 취약해질 것이다.

그러나 여러 권위 있는 연구들은 이주노동자가 내국인 고용과 임금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거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고용과 임금 수준은 노동자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저항하느냐에 따라 가장 크게 좌우된다.

노동자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국경을 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 노동자들이 그들을 국제 노동계급의 일원으로 환영하고 단결해 함께 싸울 수 있도록 계급의식이 제고돼야 한다.

앞서 인용한 필리핀인 가사노동자 카일리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문화를 즐기고, 한국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습니다.”

이유가 뭐가 됐든 이들의 한국 유입을 꺼림직하고 떨떠름하게 여기는 태도로는 이들과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고 고용되는 것을 무조건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한다. 그래야 함께 싸워 모두의 조건을 개선할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