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본 입장 해설 10:
이주민·국경 통제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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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과 언론들은 이주를 당연히 통제해야 한다고 여긴다.
이주민을 옥죄는 조처들의 가혹함과 위선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어떤 식으로든 이주를 통제하기는 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기는 어렵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주에 대한 통제는 오로지 노동계급 사람들을 단속하고 인종차별적 분열을 퍼뜨리기 위해 이뤄진다. 그것은 우리의 적인 기업주들과 국가의 도구다.
이주 통제는 매우 그릇되고 위험한 관념을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만든다. 노동자들이 한정된 자원을 두고 서로 경쟁해야 한다는 관념이다. (친)서방 세계의 기성 정당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열악한 보건과 복지, 고용 불안, 저임금에 대한 분노를 이주민에게 돌리기를 바란다.
심지어 좌파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같은 논리를 고스란히 되풀이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주민들이 아니다. 이주민을 항상 불안에 떨게 하는 단속·수용소·추방 시스템은 출신지를 불문한 모든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다.
유럽의 극우들은 유럽이 이주민들로 미어터진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 영국의 사례를 들어 반박해 보자.
첫째, 영국에는 수많은 골프장이 있어서 인구 수로 나누면 3만 7000명 당 하나 꼴이다. 그러나 골프를 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그 골프장들의 면적은 영국의 모든 주거용 부동산을 합친 면적과 비슷하다. 런던의 골프장들은 런던의 브렌트구보다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영국 지방 정부 협의체에 따르면 잉글랜드에만 100만 채가 넘는 빈 “주거지”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공간 문제는 핵심이 아니다.
세계의 가장 가난한 나라들 중에는 인구 밀도가 영국보다 훨씬 낮은 곳도 있다. 반면, 인구 밀도가 영국보다 훨씬 높은 모나코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둘째, 이주민의 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실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의 진정한 원인을 가릴 수 있다. 부는 공평하게 분배되지도, 합리적으로 분배되지도 않는다.
이용 가능한 공공서비스의 수준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을 무기에 써야 할까, 의료 서비스에 써야 할까? 이런 결정들은 지배계급이 한다. 그리고 그들은 당연히 모든 사람을 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노동자들은 언제나 세계 곳곳에서 이주를 해 왔다. 세계가 더 불평등하고 위기에 취약해질수록 이주도 늘어난다. 사람들은 그저 방랑벽 때문에 온 세계를 떠도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삶의 터전과 가족들을 뒤로하고 이역만리 먼 길을 떠나는 것은 선진국들이 환상적인 곳이어서가 아니다.
탄압을 피하거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다. 이주는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에 따라 언제나 늘거나 줄었다.
자본주의 체제는 전 지구로 뻗어 있다. 그러나 세계의 모든 곳을 균등하게 발전시키지 않았다. 어떤 곳이 호황을 구가하는 동안 다른 곳은 깊은 불황에 시달리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언제나 자기 노동에 대한 수요가 가장 큰 곳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아일랜드인들은 가난과 기아가 만연한 아일랜드를 떠나 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영국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19세기 중엽 미국 정부는 건물과 철도를 짓기 위해 중국인 수백만 명이 이주하도록 주선했다. 이들 이주민은 미국 자본주의가 빠르게 성장하는 데 핵심적 구실을 했다.
제1차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여권과 비자라는 게 없었고 사실상 누구나 다른 나라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때에만 다른 나라로 이주했다.
가령, 1930년대에 영국으로 이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영국인들은 대규모 실업에 시달렸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유럽 국가 지배자들은 이주민을 적극 유치했다. 노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주민 중에는 서독에 파견된 한국인 간호 인력과 광부들도 있었다.
이주는 경제 위기를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의 효과를 낼 때가 많다.
기업주들은 버튼을 한 번 누르는 것만으로 수조 원의 돈을 세계의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마음대로 국경을 드나들면 안 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력을 “합법”과 “불법”으로 나누는 것은 정부와 사용자들에게 득이 된다. 모든 정부들은 이주를 규제해 인종차별적인 책임 전가, 희생양 삼기를 부추긴다. 이간질해 각개격파하려는 전략이 그 동기인 것이다.
이들은 인종차별을 부추겨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분노와 좌절을 국내의 진정한 적들, 즉 정부와 대기업들이 아닌 “외국인”에게 돌리게 하려 한다.
혁명가들이 채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정책은 이주와 난민을 규제하는 모든 법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 글은 본지의 기본 입장을 해설하는 기획 연재의 열 번째 글이다. 다음 연재에서는 왜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야 하는지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