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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독재자 알아사드의 몰락: 배경과 전망

독재자 아사드의 초상화를 불태우는 시리아인들

폭정과 억압의 아사드 독재 정권이 50년 만에 마침내 붕괴하자 시리아인들이 기뻐하고 있다. 시리아에서뿐 아니라 이스탄불, 런던, 베를린, 워싱턴 DC, 파리 등 전 세계에 흩어진 시리아 난민들이 환호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2000년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 사망 이후 시리아를 통치해 온 바샤르 알아사드는 지난 12월 8일 수도 다마스쿠스를 떠나 러시아로 망명했다. 순식간에 붕괴한 아사드 정권을 보며 전 세계 독재자들은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린 이슬람주의 무장 단체인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 레반트 해방 위원회)은 지난달 말 전격적인 공세를 시작하여, 북부 도시 알레포를 장악한 후 남쪽으로 진격해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했다. 시리아 정부군 대부분은 거의 저항 없이 투항하거나 군복을 벗고 도주했다.

HTS가 다마스쿠스를 점령하자, 시리아인들은 대통령궁으로 몰려가 아사드 독재 정권의 상징물들을 파괴했다. 반군들은 감옥을 개방하며 수감자들을 석방했다. 반대파 3만 명이 고문 후 처형된 곳으로 악명 높은 ‘인간 도살장’ 사이드나야 감옥의 끔찍한 내부 모습이 공개돼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졌다.

현 상황은 2011년 시리아 혁명 초기부터 아사드 정권이 저질러온 폭력과 범죄의 귀결이다. 아사드 정권은 드럼통 폭탄부터 화학무기까지 모든 잔인한 수단을 동원하여 비무장한 민간인을 체계적으로 학살하고, 러시아 군대와 민병대를 동원해 반대파를 제거했다.

그럼에도 현재 국면은 아사드 정권을 위기로 몰아간 2011년의 대중 반란과 성격이 매우 다르다. 현재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린 이슬람주의 무장 단체들은 시리아 혁명의 대중적, 민주적 기반을 파괴하는 반혁명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성장한 세력들이다. 일부는 반혁명에 직접 가담하기도 했다.

HTS는 어떻게 이토록 신속하게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었을까? 일차적으로 HTS는 더 응집력 있고 잘 훈련된 군사 조직을 구축했다. 정부군의 주요 병력은 사기 저하와 가혹 행위에 시달리는 징집병들이었다.

HTS의 지도자인 아부 무함마드 알줄라니(본명 아흐마드 샤라아)는 절묘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2011년 시리아 혁명에서 아사드 정권을 구한 것은 러시아의 공군력과 헤즈볼라, 이란, 이라크 민병대 등의 동맹 세력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묶여 있고,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으로 일부 약화되고,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응하느라 여력이 없자, 이슬람주의 반군 세력은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아사드 정권의 지하 감옥 ⓒ출처 Suwayda 24

다마스쿠스를 장악한 주요 세력은 누구인가?

수도 다마스쿠스와 주요 도시를 점령한 주요 반군 세력은 이슬람주의 무장 단체인 HTS이다. HTS의 전신은 자브하트 알누스라(알누스라 전선)이다.

알누스라 전선은 2011년에 결성된 수니파 이슬람주의 무장 단체로, 영토를 점령하고 주민들에게 반동적인 정책을 강요했다. 이들은 애초에 알카에다와 연계돼 있었으나 2016년에 결별을 선언했다.

2016년 이후 알누스라 전선은 다른 정파와 합쳐서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으로 이름을 바꾸고 강령에서 강경한 요소를 일부 삭제했다. HTS의 목표는 민족주의적이었고, 현재의 국경를 초월한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것이 아닌 시리아 자체를 장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아사드 정권을 전복하기 전, HTS는 시리아 북서부를 대부분 장악하고 있었다. HTS가 지원하는 ‘시리아 구원 정부’는 그 지역에 공공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반동적인 정치로 인해 HTS의 통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또 다른 세력인 시리아국민군(SNA)은 2011년 시리아 혁명을 방어하던 자유시리아군(FSA)이 와해되고 그 일부를 튀르키예가 포섭하면서 2017년 알레포에서 결성된 조직으로 튀르키예의 감독하에 쿠르드족의 저항을 겨냥한 튀르키예의 군사 작전에 참여했다. 이들은 2011년 시리아 혁명의 초기 이상을 고수하기보다는 시리아 내 쿠르드족 조직을 분쇄하고 쿠르드족의 자치권을 짓밟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새 시리아의 정권은 튀르키예의 꼭두각시가 될 것인가?

튀르키예는 이제 시리아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려 할 것이다. 이는 분명 시리아 내 쿠르드족의 운명뿐 아니라 시리아인들의 자유와 외세 개입 반대를 향한 열망을 위협할 것이다.

물론 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튀르키예가 쿠르드족 민병대를 분쇄하기 위해 특정 무장 세력을 지원한다고 해서, 그 세력이 반드시 에르도안 정부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하마스가 이란의 무기를 지원 받는다고 해서 이란의 꼭두각시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튀르키예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은 특히 HTS의 공격이 기세를 올리자 이를 정치적으로 적극 지원했다. 에르도안의 목표는 두 가지인 듯하다. 하나는 시리아 북동부의 쿠르드족 자치 지역을 약화시키고, 시리아 내 쿠르드족과 연계된 튀르키예 내 쿠르드 운동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여러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시리아가 당분간 불안정할 수 있음에도 시리아 난민들을 튀르키예에서 내쫓으려는 것이다. 이는 튀르키예 우익과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아사드의 몰락이 촉발한 역학 관계가 반드시 에르도안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쿠르드족 무장 단체 지도자들은 아사드의 몰락을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환영했다. 그들은 즉시 “모든 시리아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와 정의에 기초한 새로운 시리아를 건설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며, HTS와 회담을 갖고 “확전 완화”를 촉구했다.

에르도안은 ‘새로운 시리아’ 내에서 쿠르드족의 운동이 약화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사드 이후 시리아가 어떤 모습을 띨지, 튀르키예가 그 과정을 통제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아사드 정권의 붕괴가 팔레스타인 저항과 이스라엘에게 주는 의미는?

아사드의 몰락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이익이 될까? (이란과 헤즈볼라의 역내 주요 동맹이 하나 사라졌다는 면에서는 이득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몇 달 동안 아사드 정권은 이스라엘의 침략에 대항하는 보루가 아니라는 것이 잘 드러났다. 아사드 정권은 가자지구와 레바논 남부의 저항 세력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하지 못했다. 그 저항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다마스쿠스의 독재자는 아무 기여도 한 바 없다.

2018년 네타냐후는 “지난 40년 동안 골란고원에 총성 한 발도 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사드 정권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자신이 실제로 우려하는 것은 시리아 정권 자체가 아니라 시리아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이라고 했다.

아사드 정권은 이스라엘이 거듭 시리아 영토를 폭격하는데도 단 한 번도 대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몇 년 전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 아랍에미리트 지배자들과 같은 ‘아랍 시온주의자들’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시리아의 새 정권이 동맹자가 돼 줄 것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HTS의 지도자 알줄라니의 할아버지는 1967년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리아의 골란고원 출신이다.

알줄라니는 2000년 팔레스타인 제2차 인티파다가 자신의 정치적 의식 발전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자신을 급진 이슬람주의로 이끌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의 정치적, 개인적 이력을 봤을 때 HTS 지도부가 이스라엘에 우호적일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알줄라니의 개인적 성향을 떠나서, 시리아 국가를 책임지고 있는 그 누구도 이스라엘의 파괴적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는 지난 며칠 동안 이스라엘군이 시리아를 맹폭하며 지상군을 투입해 골란고원 인근 지역까지 점령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12월 8일 반군이 다마스쿠스를 점령하자 이스라엘은 아사드 정권의 무기고를 폭격하여 반군이 무기를 탈취하지 못하끔 했다. 그리고 1973년 이후 처음으로 골란 고원의 더 넓은 지역을 침공하여 반군 세력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 줬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군과 시리아 반군 사이에 “완충 지대”를 만들 것을 명령하면서 “우리는 적대 세력이 우리 국경에 자리 잡는 것을 일절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수니파 이슬람주의 정치가 주도하는 시리아의 새 민족주의 정권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지름길을 열어 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의 집권은 이집트, 요르단, 걸프 국가 등 이 지역 다른 곳에서 수니파 이슬람주의 반정부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11월 29일 스웨이다에서 열린 시위 ⓒ출처 Suwayda 24

앞으로의 전망은?

아사드 정권의 몰락은 걸프 지역의 통치자들과 아랍 독재 정권, 특히 이집트 정권을 확실히 겁에 질리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몰락이 중동의 혁명 및 민주화 세력의 승리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승리한 각종 무장 세력 또는 지역 세력이 영향력 경쟁을 벌이면서 종파 간 또는 부족 간 긴장을 고조시킬 위험도 분명히 있다.

소규모 무장 단체의 정권 장악과 국가 운영을 둘러싼 각종 세력의 경쟁은 수많은 평범한 시리아인들의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HTS는 이미 시리아 내 러시아 군사 기지를 존치시키는 것을 놓고 러시아 정부와 협상을 하고 있다. 이전까지 러시아 군은 아사드 정권에 맞선 반란을 앞장서 파괴해 왔다. 그러나 시리아인들은 빈곤과 전쟁을 종식시키고 전쟁과 파괴를 불러오는 지정학적 경쟁의 덫에서 벗어날 진정한 변화를 열망하고 있다.

그런 변화를 실현하려면 아사드 정권의 잔재뿐 아니라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역내 지배계급들 간의 공조에도 맞서 싸워야 한다.

시리아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이스라엘에 맞선 팔레스타인·레바논의 저항과 연결시키려면 만만찮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시리아인들의 열망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평범한 시리아인들이 탄압을 무릅쓰고 대중적인 형태의 시위를 계속 조직한 것도 정권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2023년 다라아와 스웨이다에서 일어난 물가 인상에 항의하는 대중 시위가 그런 사례다. 아사드 정권이 장악하고 있던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HTS의 지원을 받는 이들리브의 ‘시리아 구원 정부’하에서도 권위주의적 통치에 도전하는 시위가 거듭 일어났다.

현재 시리아를 장악한 최고위층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모두 ‘질서 있는 전환’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아사드 정권하의 국가, 행정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와 빈곤층이 스스로 조직화하여 기회를 잡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2011년 시리아 혁명은 무엇이었나?

2010년 말, 2011년 초 튀지니와 이집트에서 시작해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휩쓴 ‘아랍의 봄’ 혁명은 시리아로도 확산됐다. 2011년 3월, 시리아 경찰은 남부 도시 다라아의 한 학교 담벼락에 “의사 선생, 이제 당신 차례야”(바샤르 알아사드는 안과 의사 출신이다)라고 낙서한 10대 소년들을 납치해서 고문했다.

이에 분노해 벌어진 시위가 빠르게 번졌다.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는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가 그랬던 것처럼 시위대를 사살하고 활동가들을 투옥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아사드의 군대는 반란을 일으킨 마을과 도시를 포위하고 주거 지역을 폭격해 그곳의 사회 조직을 붕괴시키려 했다.

그리고 아사드는 반란을 일으킨 대중 사이에서 종파적 분열을 조장하기 시작했다.

한편 정부군 소속 군인들이 시위대에 발포하기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주민들은 민병대를 조직해 지역을 방어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유시리아군(FSA)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이는 중앙집권적인 지도부가 없는 파편적인 조직이었다.

2012년부터 아사드는 제국주의의 지원을 끌어들였다. 러시아 전투기가 시리아 마을을 폭격했다. 이란도 병력을 파견했으며 레바논 저항 단체인 헤즈볼라가 개입했다. 그 결과 인구가 2200만 명인 시리아에서 60만 명이 목숨을 잃고 1300만 명이 국내외 난민이 됐다.

시리아가 내전으로 더 깊숙이 빠져들면서 이슬람주의 무장 단체가 번성했다. 이들은 대중적 지지에 기반했던 혁명의 성격이 무장 저항으로 뒤틀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잔혹한 내전에도 불구하고 혁명적인 시리아인들은 정권이 붕괴할 때까지 계속 시위를 벌이며 혁명의 정신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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