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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중학교 교사 자살 추모:
서이초 사건 이후에도 그대로인 현실에 교사들이 불만을 터뜨리다

5월 22일 제주에서 한 중학교 교사가 학생 보호자의 민원을 홀로 감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그 교사는 학생의 무단 장기 결석과 흡연을 지도했지만, 학생 가족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항의 전화를 했다고 한다. 해당 교사가 남긴 유서에는 ‘민원으로 인해 힘들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제주 교사의 죽음 전에도 교육청에 여러 차례 “살려 달라”며 학생 수를 줄여 달라고 요구하다 목숨을 끊은 인천 특수교사의 사례도 있었다.

교사들의 죽음이 이어지는 것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모아 6월 14일 서울 경복궁역 인근에서 대규모 교사 집회가 전교조, 교사노조연맹, 교총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30도가 넘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교사 1만여 명이 검은 옷을 입고 모였다.

교사들은 고인을 추모하며, 서이초 교사 죽음 이후 2년이 흘렀지만 교사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교육 시스템이 여전한 것에 분노했다.

2023년 서이초 교사의 죽음으로 촉발된 교사들의 대규모 교권 운동이 거리를 뜨겁게 달구었다. 당시 교육부는 부랴부랴 교권 보호 대책을 내놨다.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 민원 창구를 단일화하고, 교사 개인 휴대폰으로 오는 민원과 교사가 홀로 민원을 감당하는 일을 없애겠다고 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도 학교 현장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많은 교사들은 민원대응팀을 무용지물이라고 여긴다. 실질적으로 운영할 인력·공간·예산이 없다 보니 교사들은 여전히 민원 갈등, 교권 침해 앞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안전한 교육 환경을 조성하라는 2년 전 외침이 무색할 정도다.

14일에 모인 교사들은 ‘제주 교사 죽음 진상 규명과 순직 인정’, ‘아동복지법 및 아동학대처벌법 개정’, ‘학교 민원대응 시스템 전면 개편과 악성 민원 처벌 강화’, ‘현장 기반 교육정책 마련을 위한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 등을 요구했다.

재정 지원 없는 허울뿐인 ‘교권 보호 대책’ 때문에 교사 순직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진

경기의 한 초등교사는 교육적 지도마저도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로 되돌아오는 현실, 어떤 학부모, 어떤 학생을 만나느냐에 따라 교사의 1년이 뒤바뀌는 현실을 규탄하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전북의 한 초등교사는 2년 전 약속한 민원대응팀이 실질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현실을 폭로했다.

대구에서 온 한 교사는 대구교육청이 위험한 현장체험학습을 교사에게 강요한 일을 고발했다.

“대구에서는 지금도 6학년 학생들이 반드시 팔공산으로 가서 텐트를 치고, 냄비밥을 짓고, 텐트에서 숙영하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몇 해 전에는 팔공산 체험활동 중 한 학생의 옷에 불이 붙어 화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는데, 교육청이 내놓은 대책은 ‘방염 팔토시 제공’과 ‘다음 날 아침 식사 제공’이었습니다. 사고 이후에도 ‘주식은 쌀이며 즉석밥 사용은 자제’라는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전쟁 및 유사 상황에 대비해야 하니 어떻게든 냄비밥을 애들이 해 먹게 해야 한답니다.”

그런데 체험학습 이후 온갖 민원과 책임이 교사에게 전가됐다. 학교 안이든 밖이든 교사 1인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구조가 교사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집회에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소속 국회의원들도 참가했다. 지난 서이초 교사 운동의 성과로 국회에 입성한 교사 출신 백승아 민주당 의원은 제주 교사의 죽음이 자신의 책임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면서, 지금까지 통과시킨 ‘교권 보호’ 법들과 현장체험학습지원법 등을 얘기했다.

문제는 법 제·개정만으로는 안전하게 교육할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 현장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려면 예산과 인력을 대폭 늘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서이초 교사 운동의 교훈은 법이나 제도 개선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정부가 재정과 인력을 투입하도록 대중적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로부터 대중 운동이 필요하다. 2023년 정부와 국회가 그나마 몇몇 개혁 조치들을 도입한 것도 거대한 시위가 수 개월간 지속됐기에 가능했다.

6월 14일 대규모 집회는 여전히 교사들에게 그럴 잠재력이 있다는 점을 보여 줬다. 기층에서 교사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을 활성화하는 게 중요하다.

아동학대방지법 개정, 처벌 강화가 악성 민원을 근절할 수 있을까?

교사들의 교육 행위에 대해 학부모들이 부당하게 민원을 제기하는 것은 교사에게 교육 의지를 잃게 만드는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더구나 평교사가 교육 정책을 만들거나 바꿀 권한이 없는 현재의 구조에서, 25명 내외의 학생 교육과 돌봄, 안전 등 모든 것을 교사 혼자서 책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학부모 민원이 교사에게 부당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학부모 고소만으로 유죄 취급을 받고, 교사 혼자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당한 현실은 개선돼야 한다.

그러나 소위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과연 악성 민원을 막을 수 있을까?

사실 대다수 민원은 학부모의 인격이나 교사의 자질 때문이 아니다. 경쟁적 입시 교육 시스템에서 비롯하는 학교 구성원 간 갈등과 소외가 악성 민원 남발의 진짜 원인이다.

또한 교육 당국이 비용 절감을 앞세워 교육 환경을 개선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학부모의 정당한 불만마저도 제대로 소통할 통로가 없어 법적 고발을 남발하게 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아동학대방지법의 ‘정서적 아동학대 행위 요건’을 강화하더라도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갈등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법·제도들이 바뀌더라도 교사들은 큰 변화를 체감하기 힘들 것이다. ‘정당한 교육 행위’냐 아니냐를 둘러싸고 학생·학부모와 교사 사이의 분쟁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사와 학부모의 갈등을 방치·방조하고 경쟁 교육 시스템을 지탱해 온 교육 당국이 규탄 받고 책임져야 마땅하다. 이에 대한 개선 없이 ‘악성’ 민원을 막겠다고 학부모 처벌을 강화하라고 한들 제대로 개선이 될 리도 없고 문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학부모와 일선 교사의 갈등만 부추겨질 것이고, 교육 당국은 그 둘의 갈등을 조장하며 계속해서 진정한 책임을 피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근본에선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을 교육에서 소외시키는 경쟁 교육 시스템을 철폐시키는 운동이 성장해야 한다. 경쟁 교육 철폐를 위한 투쟁은 능력주의를 부추기고 경쟁 교육을 추동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운동과 연결될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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