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서이초 1주기, 교사 운동의 평가와 과제:
교사 운동의 전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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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서이초 교사 1주기를 맞아 교사 운동 1년을 돌아보면서 운동이 남긴 성과는 무엇이고 어떤 한계에 직면해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어서 교권 운동 내 주요 쟁점을 살펴보고 운동이 전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서이초 이후 2달여 간의 교사 운동의 과정은 ‘사회 전반에 큰 파급력을 미친 교사 운동’을 참고하시오.)
서이초 사건으로 촉발된 교사들의 대중운동은 교권 관련 법 개정뿐 아니라 교육계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미치는 효과를 낳았다.
무엇이 변했나
우선 법과 제도의 변화를 살펴보자. 정부와 국회는 폭발적인 교사들의 대중행동에 압력을 받아 신속히 대책을 내놓고 입법을 추진했다.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8월 17일), 교권회복 및 보호강화 종합방안(8월 23일), 교권 보호 4법 개정(9월 27일), 아동학대처벌법 일부 개정(12월 8일) 등. 각 시·도교육청에서도 각종 교권 보호 대책을 쏟아 냈다.
수업 방해 학생 분리 제도와 학교민원대응팀 운영,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해 아동복지법상 일부 금지행위 적용 제외, 아동학대 범죄로 신고된 교원에 대해 정당한 사유 없는 직위해제 처분 방지, 아동학대범죄 신고 시 교육감의 신속한 의견 제출, 교육감 등의 교육활동 침해 대응 강화 및 피해 교원 보호·회복 지원 확대, 학교장의 민원 처리 책임 부여 및 교원 개인정보 보호 책무 강화 등. 이런 조처들은 사실상 미봉책으로 교권을 보장하는 실질적 대책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교권을 보호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교사 운동의 성과라 할 수 있다.
법·제도 개선 외에도 교사 운동은 교육계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교사 운동은 교권을 사회적 문제로 부각했는데, 운동이 확대하면서 교권 보호에 대한 광범한 지지가 형성됐다. 학교 비정규직 노조를 비롯해 많은 노조와 사회단체들이 교사들의 집단행동을 지지하는 입장을 발표했고, 학부모 다수도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교권 보호’는 보수적 요구라며 교사 운동에 거리를 두던 일부 좌파들도 운동이 지속되고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자 지지 입장을 발표하거나 운동에 참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투쟁을 통해 얻은 노동자들의 경험도 중요하다. 대규모 집회를 경험하면서 집단적 힘을 느끼고 자신감을 얻는 교사들이 늘었다. 운동이 확대되면서 학교장과 교육청이 책임지라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교사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집단적으로 행동해야 하고, 집단행동을 통해 요구를 쟁취할 수 있다는 인식은 교원노조, 교원단체들의 조직 확대로 이어졌다.
교사들의 불만 고조와 대중운동의 여파로 교원노조와 교원단체가 팽창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교사가 노조나 교원단체에 신규로 가입했다. 특히, 2017년 12월 373명으로 시작했던 교사노조연맹(이하 교사노조)의 조합원 수가 5년 만에 200배 이상 증가했다. 교사노조는 특히 문재인 정부와 진보 교육감 시대에 개혁주의가 부상하는 가운데 급성장했다.
지난해 교사 운동이 크게 벌어지는 가운데 ‘노조 가입 운동’이 나타나면서 교사노조의 규모가 더욱 커졌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벌어진 지 두 달 만에 조합원이 43퍼센트 늘어 11만 6000여 명에 이르렀고, 올해는 12만 명을 돌파했다. 교원 노조 조직률은 2002년 33퍼센트로 정점을 찍은 뒤 2015년에 15퍼센트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는데, 2020년(17퍼센트) 반등을 시작해 2022년 21퍼센트까지 성장했다. 전교조(4만 5000여 명)와 교사노조 조합원(12만 명)을 단순 합산할 경우 조직률이 30퍼센트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단체교섭권을 가지고 있어 사실상 노동조합에 해당하는 한국교총(15만 명)을 추가할 경우, 교사 절반이 조직돼 있는 셈이다. 교사 운동이 교사 대중조직의 성장으로 이어진 것이다.
또한 대규모 운동은 교육부 징계 위협을 무력화시켰고, 정부는 분노하는 교사들을 달래기 위해 교사 수당(담임수당, 보직수당 등)을 일부 인상하고, (교권 침해 논란이 벌어진) 교원평가를 유예했다.
교사들은 정부의 징계 위협에도 집단행동을 멈추지 않고 지속했다. 특히, 지난해 9월 4일의 집단적 ‘연가 투쟁’은 정부에 맞서는 정치적 효과를 냈다. 이 운동은 교사 노동자들뿐 아니라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에게도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등 고무적 효과를 냈을 것이다. 가령, 공무원 노동자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악성 민원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 7월 6일에는 공무원·교사 수만 명이 모여 임금 인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정치권에서도 교사 문제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총선에서 각각 교총과 교사노조 출신을 국회의원으로 영입했다. 22대 국회에서 최근 교권 관련 법안 발의와 논의가 활발하다.
한계와 문제점
지난해에 대규모 교사 운동이 벌어졌음에도 운동은 여전히 많은 한계에 직면해 있다. 교사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학교 현장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교사노조가 지난 4월에 실시한 전국 교사 설문조사(1만 1359명 응답) 결과를 보면, 교권4법 개정 이후 학교의 근무 여건이 좋아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긍정 응답은 겨우 4.1퍼센트에 그쳤다. 게다가 교권 침해 역시 별로 줄지 않고 있다. 최근 1년간 학생에게 교권 침해를 당한 적이 있다는 교사가 57퍼센트, 학부모에게 교권 침해를 당했다는 교사가 53.7퍼센트에 이른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 때문에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는 교사가 77.1퍼센트에 이르고, 수업 방해 학생 분리 제도가 잘 운영되고 있다는 응답은 겨우 12.6퍼센트에 불과했다. 민원 대응 시스템이 잘 운영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한 의견이 58퍼센트에 이른다.
지난해 정부가 수업 방해 학생 분리 제도와 민원 대응 시스템을 교권 보호 대책으로 내놨지만, 제도 운영을 위한 인력과 예산은 지원하지 않고 개별 학교로 책임을 떠넘기는 바람에 실효성 있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월에 실시한 6개 교원단체 공동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민원 창구가 일원화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은 29.3퍼센트에 그쳤다. 또 교육활동 침해 우려로 분리된 학생에 대해 전문적 지도가 이뤄지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는 응답이 11.5퍼센트에 그쳤다. 서이초 사건 이후 학교 내 민원상담실을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94.5퍼센트가 ‘없다’고 답했다. 교사들은 “제도는 만들어졌지만 현실에서 이를 적용할 여건은 마련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각종 교권 보호 대책에도 불구하고 교권 침해는 되레 늘었다. 교육부 조사를 보면, 지난해 교권 침해(교권보호위원회 개최 건수 기준)가 5050건으로 2022년(3035건)보다 66.4퍼센트(2015건) 증가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2662건)보다 갑절 가까이로 늘어난 것이다. 게다가 올해 3월 28일부터 6월 30일까지 약 3개월간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건수는 1364건에 달했다. 교사들의 적극적인 신고로 사건 접수가 증가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교권 침해가 꾸준히 지속·증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교육부에 신고된 교권 침해는 1만 4213건으로, 이 가운데 교사를 상대로 한 상해·폭행 피해는 전체 10퍼센트 수준인 1464건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발생한 상해·폭행은 503건으로 2019년 248건보다 갑절로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에 신고된 교권 침해 건수 중에서도 상해·폭행이 전체의 15퍼센트로 비율이 뚜렷이 증가했다. 교권 침해 형태가 다양하고 심각해져 교사의 고통이 커지면서 피해 교사의 병가·휴직 등도 급증했다. ‘2020~2023년 교권침해 피해 교원 조치 현황’을 보면, 최근 4년간 병가·휴직자가 1760건으로 3년 사이 9배나 늘었다.
교사의 조건이 더 악화되고 있다. 올해 교육 예산이 대폭 삭감되고 교사 정원이 계속 줄어들면서 교사들의 수업시수와 업무 부담이 증가하는 등 교사들의 조건이 악화하고 있다. 유보통합, 늘봄학교, 고교학점제 등 새로운 교육정책들이 정부의 충분한 지원 없이 진행되면서 교사들의 노동강도는 더 강화될 전망이다.
학생인권이 후퇴하고 있다. 정부는 교권 보호를 핑계로 학생인권을 공격하고 학생 통제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충남·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됐고, 경기 등 다른 지역에서도 폐지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교권 관련 법령이나 대책 중에는 교권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처들도 있지만, 정부의 주된 방향은 교권과 학생인권을 대립시키고 이를 통해 학생인권을 제약하려는 것이다.
학부모가 학교에서 배제되고 있다. ‘진상 학부모’, ‘괴물 학부모’ 등 학부모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분위기 속에서 학부모는 민원인으로만 취급된다. 악성 민원을 막겠다고 학부모의 정당한 의견 표출까지도 차단하는 것은 문제다. 학부모가 민원이나 고소·고발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쓰는 것은 적절한 의견 개진 통로가 마련돼 있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다. 학부모와의 소통을 단절하는 것은 관계를 악화하고 갈등을 키울 공산이 크다.
교권 침해의 구조적 원인이 심화하고 있다. 입시 경쟁교육으로 학교 구성원들 간의 불신과 갈등이 심화되는 것은 교권 침해 발생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고교 다양화, 지역발전특구(자공고 2.0) 등 학교 서열화와 입시 경쟁을 강화하고 있다. 경쟁교육 강화는 교사-학생-학부모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교육공동체 붕괴를 가속화할 수 있다. 한편, 교육예산과 교원 정원 감축은 교사들의 조건을 악화시키고 교육의 질 하락과 교육 불평등 심화를 초래한다. 이것은 정서행동위기 학생을 증가시키고, 학부모들의 불신과 불만을 키우며, 이런 문제에 대응하는 교사들의 능력(조건)을 약화시킬 것이다.
전례 없는 교사의 대중운동이 벌어졌지만 왜 현장의 변화는 별로 없을까? 교사 운동이 교사들의 대중운동으로 성장했지만, 법과 제도 정비에 초점을 맞추고 실질적인 조건 개선이나 구조 개혁 요구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는 (생활지도권 정도에 국한한) 협소한 교권 개념이 지닌 한계일 수도 있고, (교사와 학생·학부모를 대립시키는) 정부의 프레임에 갇힌 탓일 수도 있고, 아직 교사들의 자신감이 낮은 문제일 수도 있다.
법 개정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치권과의 협상에 기대게 됐고, 엄청난 규모의 대중행동에도 불구하고 급진화하지 못했다. 교사 운동을 이끈 ‘전국교사일동’이 ‘정치 배제’(정치적 중립)를 표방했던 것은 교사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는 데에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고 운동 규모를 확대하려는 전략이지만,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고무하고 급진화하기 위한 좌파의 정치와 개입을 차단하는 효과를 내기도 했다. 이런 속에서 노조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개혁주의 전략(지배자들을 설득해 입법을 통해 개혁 과제를 달성)에 더욱 충실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는 교사 운동 내 쟁점 혹은 극복해야 할 주요한 약점들을 다뤄보겠다. 현재 운동은 법제화에 올인하고 있고, 협소한 교권 개념을 넘어서지 못하며, 학생인권과 교권의 대립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이러한 약점이 왜 생겨났고 각각 어떤 문제점을 낳는지 살펴보자.
법제화에 올인
교권 보호 5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현실을 보며 추가적인 법 개정·제정을 바라는 교사들이 많다. 교사들이 법제화 즉 교권을 법적으로 보장받고자 하는 데에는 교사들을 괴롭히는 주된 수단이 현행법에 따른 신고나 고소·고발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서이초 1주기를 맞는 이때, 전교조와 교사노조를 비롯한 교원단체들은 교권 보호를 위한 추가(후속 또는 보완) 입법에 올인하고 있다.
추가 입법 요구 1순위는 아동복지법 개정이다. 문제시되는 조항은 아동복지법 제17조 ‘정서적 학대행위 금지’인데, 이 조항은 범위가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해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나 훈육을 아동학대로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교사들은 정서적 아동학대 조항을 ‘학생 기분상해죄’라고 자조한다.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면 그때부터 교사는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다. 무죄로 판명 나더라도 그 과정에서 피폐해진다. 그래서 일부 교사들은 정서적 아동학대 조항 폐지나 교사들의 전면 면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비록 많은 사례는 아닐지라도, 교사들에 의한 정서적 아동학대가 엄연히 발생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가 대중적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대신 ‘교권 보호 5법’에서는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교원지위법에는 “무고의 죄와 교원의 교육활동을 간섭 및 제한하는 행위는 교권침해로 규정”하고 교사의 아동학대 피신고시 아동학대(정당한 생활지도) 여부를 판단하는 교육감 의견 제출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들이 ‘무고성·보복성 신고’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교사들의 불안이나 공포는 여전하다. 서울교사노조(한길리서치)가 지난 6월 실시한 교사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시급한 사안은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를 막기 위한 아동복지법 및 아동학대처벌법 개정’(58.7퍼센트)이, 교육활동을 가장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는 ‘무고성 아동학대 피신고의 두려움’(56.2퍼센트)이 각각 가장 많았다.
지난 7월 22일 전교조를 비롯한 4개 교원단체 협의회가 공동성명을 통해 아동복지법 개정을 요구했는데, 핵심은 ‘정서적 아동학대 행위 요건’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다(가령 ‘반복적·지속적이거나 일시적·일회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가 심한 것으로 판단하는 행위’). 이러한 요구는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아동복지법 개정뿐 아니라 교원단체들은 교권 보호를 위한 여러 내용을 패키지로 담은 특별법을 발의하거나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교사노조는 백승아 민주당 의원을 통해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일명 ‘서이초 특별법’을 발의했다. 교사 본질업무 법제화, 학생 분리제도 법제화, 정서적 아동학대 구성 요건 명확화, 학교 민원창구시스템 법제화, 학교폭력예방법개정(학교폭력업무 전담 기관 법제화) 등이 골자다. 한편, 전교조가 제정을 촉구하는 ‘공교육 정상화 특별법’은 교사의 교육활동 보호·지원, 교사 마음 건강 증진, 정서·행동 위기 학생 지원, 교사 직무 법제화, 교사 정치기본권·노동권 보장이 핵심이다.
교권 보호법 제·개정을 넘어 교사 정치기본권을 보장하는 입법 추진에도 힘을 쏟고 있다. 5개 교원단체(전교조, 교사노조연맹, 새학교네트워크, 실천교사모임, 좋은교사운동)는 지난 7월 16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교원 정치기본권 확보를 위한 입법을 촉구했다. 5개 단체가 공동으로 실시한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 교사의 98.2퍼센트가 교육권 보장 등 교사 요구가 수용되지 않는 주요 원인으로 정치기본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인천 교사노조 관계자는 “개정된 교권 보호 5법은 강제성이 부족하다 보니 학교 현장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진정한 교권 보호를 위해선 조금 더 강력한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교원노조 지도자들의 공통된 인식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학교 현장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는 것은 법이 부족한 탓이므로, 더 많은 법, 더 강력한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교사 정치기본권을 강조하는 데에도 학교 현장을 잘 아는 교사들이 국회로 진출해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교사들은 여전히 교권 침해로 고통받고 있고, 안전하게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서이초 1주기를 맞는 이때, 교사들의 요구가 여전히 법제화(법과 제도 개선)로 수렴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법 개정이 불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법제화 올인’ 전략의 문제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첫째, 법과 제도 개선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법 조항의 문제에서 비롯하기보다는 정부가 제도 실행에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제화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정부를 상대로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지금 입법 논의 중인 법안들을 살펴보면, 이미 시행 중인 제도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상당수여서 법제화가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둘째, 변화를 기대할 만한 내실 있는 법안 통과를 위해서라도 대중투쟁이 중요하다. 법 개정에 집중하는 전략은 법안 통과를 위해 정부나 정치권에 타협하고 의존하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보면 정부에 맞서 교사들의 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을 자제하거나 뒤로 미루게 되고 정치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요구를 삭감하기도 한다. 국회 밖 투쟁이 없는 상황에서는 “실제 인력과 예산 등을 지원하는 현장 밀착형의 구체적인 법안”이 아니라 “선언적인 법안”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그런데 교원노조 지도자들은 교사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투쟁 조직은 뒷전으로 미루고 교권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 개선’에만 집중하고 있다. 교원 정원 축소와 예산 감축, 낮은 교사 임금 등 교사의 조건 문제에 진지하게 대응하는 단체는 보이지 않는다. 서이초 1주기를 맞아 교원단체들은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나 토론회에는 열심이었지만, 정부를 상대로 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대중행동을 조직하지는 않았다. 1주기 추모제가 전부였다. 지난 총선을 통해 교원단체 출신의 대표들(국힘 정성국(교총), 민주당 백승아(교사노조))이 국회에 진출한 것이 입법 추진 전략을 더 강화하는 듯하다. 법안 발의에 큰 의미를 두는 노조 지도자들은 발의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국회를 압박하기 위해 투쟁(집회)을 조직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사 출신 국회의원들을 통해 법안을 발의하고 국회 토론회를 열 수 있으니 힘들게 대중투쟁을 조직할 동기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법령이 교사들을 보호해 줄 수 있을까?
서이초 사건이 발생한 당시, ‘교권보호조례’는 전국 17개 교육청 중 이미 10곳에서 제정해 시행 중이었다. 일부 조례안에는 정부가 교권 보호 대책으로 내놓은 방안이 이미 포함돼 있었다. 예를 들어, 보호자 등의 악성 민원을 차단할 방안이나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에 대해 조치할 수 있는 수단(수업 방해 학생에 대한 퇴실·징계 등), 민원인이 학교를 방문할 때 사전에 예약하는 시스템을 갖출 것, 교원 휴대전화번호 등 개인정보와 사생활 보호 등이 여러 조례에 규정돼 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인권 보장에 많은 한계를 보여 왔듯이, 교권보호조례도 교권 보호에 실효성이 없었다. 2020년 10월 경기도교육청은 교권보호조례를 제정하면서 교권 보호에 대한 기대를 높였지만, 교권 침해는 도리어 2020년 277건에서 2022년 799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교사의 권한을 ‘법률’로 보장하면 상황이 달라질까? 교사에게 강력한 생활지도권을 부여한 영국의 사례를 보자. 영국에서도 2000년대 들어와 교권 침해 문제가 심각해지자 2006년부터 교사가 학생을 훈육할 수 있는 권한을 법에 명시하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타당한 처벌 권고 지침’이 만들어졌는데, 학생이 교육활동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 교사는 학생을 교실 밖으로 추방하고, 정학 처분을 내릴 수 있고, 수업에 방해되는 소지품을 압수할 수 있으며, 필요시 합당한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후 영국 교사들의 처지는 어떻게 됐을까? 2021년 2월 영국 교원노조(NASUWT)의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학생들로부터 신체적 폭력 위협을 경험한 교사가 10퍼센트에 달했다. 노조는 “너무 많은 교사가 학생들로부터 교실에서 용인할 수 없는 수준의 언어적, 신체적 학대를 겪고 있고, SNS를 통한 ‘위협과 조롱’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응답 교사의 38퍼센트는 학생들로부터 언어 폭력을, 6퍼센트는 실제로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학생들에 의한 교권 침해를 경험한 교사를 대상으로 학교가 적절하게 대처했는지 묻는 질문에 42퍼센트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노조는 이와 관련해 “학교가 교권 침해를 당하고 있는 교원을 지원하지 않거나 교원이 학생들로부터 폭행을 당해도 이를 교육 당국에 보고하는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뿐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도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이 국가들은 흔히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강화하는 법과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교사들의 고통을 완화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교권 추락의 근본 원인은 교육의 구조적 모순(공교육의 위기)과 경쟁교육 시스템으로 인한 교육 주체 간의 갈등에 있다. 따라서 교육구조 개혁과 교육공동체 회복 없이는 교권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둘째, 현재 교사들이 겪는 고통은 ‘교권’으로만 환원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들과 연관돼 있다. 교사들은 교육권 보장을 통해 자신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모든 학생의 학습권이 보장되고 안전한 교육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은 ‘수업권’이나 ‘생활지도권’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교사의 노동조건과 교육 환경 개선이 꼭 필요하다.
학교의 사법화
‘법제화에 올인’하는 전략은 교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을뿐더러 ‘더 많은 법, 더 강한 법’이 ‘학교의 사법화’를 심화시키고 교사-학생·학부모 간의 갈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
교원단체들은 실효성 확보를 위해 강제 또는 처벌 규정을 두는 방향으로 교권 보호법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세세한 법 조항이 오히려 법적 분쟁을 증가시키고 소송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사를 보호하려 만든 규정이 오히려 소송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세한 매뉴얼은 오히려 교사의 교육활동을 얽매기도 한다. 가령,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고시’ 발표 이후 일선 학교의 학칙에는 ‘수업방해 학생 분리 절차와 방법’에 대한 복잡한 규정이 담겼다. 이러한 규정은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학부모가 학교와 교사가 내린 조치의 정당성을 문제 삼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교권 보호 대책은 교권 침해 학생·학부모에 대한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 교원단체는 악성 민원 처벌, 교권 침해 학생 생기부 기록 등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로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건수가 증가하면서 가해 학생에 대한 처분도 급증했다. ‘2020~2023년 교권침해 가해 학생 조치 현황’을 보면 최근 4년간 봉사·특별교육·출석정지·전학·퇴학 처분은 9568건이었다. 전학·퇴학 처분은 2020년 113건에서 2023년 564건으로 3년 사이 5배나 증가했다. 한편, 교육활동 침해 보호자를 대상으로 관할청이 고소·고발한 건수는 올해 상반기 12건이었는데, 2022년 4건, 2023년 11건에서 늘었다.
자녀가 ‘교권보호위원회’에서 징계 처분을 받게 될 경우, 일부 학부모가 보복성 아동학대 신고를 하는 경우가 있다.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과 제도가 학생이나 학부모와의 갈등을 더욱 키워 결국 교사들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영국 〈가디언〉의 보도를 보면, 2022년 이후 영국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내려진 정학·퇴학 처분 건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2023년 봄 학기에는 정학 처분 건수가 2021년 봄 학기보다 무려 40퍼센트 이상 늘었으며, 퇴학 처분 건수도 2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정학 처분이 크게 늘었는데, 2023학년 봄 학기 기준, 영국 초등학교 학생 10명 중 1명은 정학 처분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학생 징계 급증의 원인으로 교육예산 감축, 교사 수 부족, 교사의 과중한 업무, 정서행동위기 학생의 증가 등 여러 가지 요인을 지목한다. 영국 교사들이 수업과 생활지도 부담 증가에 대해 학생 징계 조치로 대응하면서 생긴 결과로 풀이된다. 영국의 사례는 교권 문제를 단지 (법적인) 생활지도권 강화로만 접근할 경우, 학교 내 갈등이 더 첨예해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교권을 법적으로 규정(보호)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 실제 교권은 교사가 맺는 관계에서 구성되기 때문이다. 교육당국과 관리자와의 지배·통제 관계, 학생·학부모와의 갈등을 양산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법은 무용지물이다. 설사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를 줄인다고 하더라도 불신과 불만에 가득 찬 학부모는 교사를 괴롭히는 또 다른 수단을 찾아 나설 것이다.
‘교권’ 담론의 문제
교사 운동 내에서 교권을 수업권이나 생활지도권 정도로 한정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교권은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교권은 교사로서의 신분 및 사회·경제적 지위를 보장받을 권리, 교사가 교육활동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직무상 권한, 그리고 교육자로서의 전문적·도덕적 권위를 포함한다.(교권 개념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교권 위기의 대안은 무엇인가’를 참고하시오.)
1980~1990년대 활발했던 교권 투쟁이 쇠퇴하고 교권 법제화가 부상하면서 교권을 ‘교사의 직무상 권한(교사 교육권)’으로 한정하는 경향이 증가했다. 그마저도 교육과정 편성·운영, 수업 내용·방법 결정, 평가 등 교육활동 전반에 대한 권한은 빠지고 생활지도권에 한정하는 경향이 자랐다.
그러면서 정부와 우파의 교권 담론이 득세하게 됐다. 정부는 교사들의 권리나 권한으로서의 ‘교권’보다는 주로 ‘교육활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 목적은 교사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활동’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의 가장 큰 문제는 교육활동 침해의 주체를 학생과 보호자로 한정하고, 교육 당국을 교권 침해자에서 교권 보호자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정부는 교육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교사의 학생 통제권을 회복해) 학생의 권리를 제약하면서, 동시에 교육활동이 국가가 정해 준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교사의 권리도 제약한다. 정부의 진정한 관심사는 학생인권이나 교권 보호가 아니라 학교의 질서 유지를 통한 ‘교육활동 보호’(자본주의 학교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교사들의 ‘교권 보호’ 요구와 정부의 ‘교육활동 보호 조처’의 몇몇 내용이 같다 하더라도 맥락이 다르다. 현장 교사들이 교육권을 요구하는 것은 교육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권이나 안전한 작업환경을 요구하는 것이다. 반면 정부의 교권 보호 대책은 학생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교사들의 ‘교권 보호’ 요구를 보수적이라고 일축하거나 ‘교권’을 불온시하는 것은 일면적인 시각이다.
그럼에도 지금 운동에서 지배적인 교권 담론(교권을 협소하게 생활지도권으로 한정하는 관점)에는 중대한 약점이 있다. ‘교권 보호’를 ‘교육활동 보호’의 차원으로 접근하면 교권 침해의 진정한 원인을 가리고 잘못된 대책으로 미끄러지기 쉽다.
첫째, 교권을 교사의 ‘수업권’이나 ‘생활지도권’으로 한정해서 보면, 학생이나 학부모가 잠재적 가해자로 보일 수 있다. 역으로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교사는 잠재적인 학생인권 침해자로 보일 것이다. 교권 침해 문제를 표면적으로만 보고 구조적 문제와 연결해 보지 않으면 개인의 권리 대 권리의 충돌로 바라보게 된다. 학교 내 갈등을 교육 주체들 간의 권리가 서로 경합한 결과로 보면 결국 제로섬 게임이 된다. 정부는 이러한 프레임을 강요하며 교권 침해를 소위 문제아와 진상 학부모의 문제로 몰아가고 있다. 그들도 잘못된 구조의 피해자들인데 말이다.
둘째, 교사의 수업권과 교사의 다른 권리(노동·정치기본권, 교육과정과 평가에 대한 자율권,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 등)가 별개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전교조를 비롯한 노조와 교원단체들은 교권과 교사의 노동조건 개선을 분리시키고 운동의 요구를 ‘교권 보호 대책’ 수립에 한정하고 있다.
교사의 교육권은 교사의 다른 권리, 조건 개선 문제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과중한 업무를 대폭 줄이고 학급 당 학생 수를 줄여야 한다. 이를 실현하려면 교원과 직원을 확충해야 한다. 교사가 학생들의 흥미와 요구에 맞춰 수업과 평가를 수행하려면 교육과정 편성, 교육내용 선정, 평가 방식 등에서 폭넓은 권한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학생인권과 학생자치를 보장하려면, 평교사가 학교 운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학생의 학습권을 차별 없이 보장하려면 교육복지를 확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입시 경쟁교육을 없애야, 학생들이 행복하고 안전한 학교에서 생활할 수 있다. 잘못된 정부 정책에 저항해 효과적으로 싸우려면, 교사들에게 파업권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을 제공하려면, 교사에게도 정치기본권이 보장돼야 한다.
셋째, 진정한 교권 침해의 원인을 가린다. 교권 개념에서 기본권이나 폭넓은 직무 권한을 배제한 결과,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만 부각되고 교육 당국의 교권 침해는 간과된다. 그러나 교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진짜 원인은 잘못된 교육 시스템이고 교권을 침해하는 주범은 정부와 교육청이다. 교권의 침해자가 학생과 학부모라는 생각은 교권에 관해서 교사들이 관리자나 교육청과 이해관계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고, 또 교권 대책을 위해 정부나 교육 당국에 기대는 경향으로 연결되기 쉽다.
학생인권 대 교권
정부와 우파는 ‘교권 보호’를 핑계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등 학생인권을 공격하고 학생통제를 강화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말 ‘학교 구성원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예시안)를 발표하면서 시·도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손볼 것을 주문했다. 2023년 12월 충남 조례가, 2024년 4월 서울 조례가 폐지됐다. 경기는 학생인권조례 개악 시도가 불발하자, 학생인권조례와 교권보호조례 폐지를 전제로 한 ‘학교구성원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입법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학생인권조례 폐지 흐름에 맞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2024년 3월 강민정 의원의 ‘학생인권보장을 위한 특별법안’ 발의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22대 국회에서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학생인권법)’ 입법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한창민 의원(사회민주당)과 김문수 의원(민주당)도 각각 법안을 발의했고 입법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그러나 교권 보호를 요구하는 교원단체들이 이 법안에 대해 우려를 표하거나 반대하고 나섰다. 오랫동안 학생인권을 옹호해 온 전교조도 학생인권법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교사에게 불합리한 인권 침해 신고가 남용될 우려가 있고, 특별법(상위법)으로 학생인권법을 제정하면 여러 법령에 명시한 교사의 생활지도 권한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말이다.
교사노조 관계자는 “교사들이 반대하는 것은 학생인권법이지 학생인권 자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학생인권을 지지한다면 학생인권법을 지지하는 것이 옳다. 더군다나 학생인권이 공격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인권법을 반대하는 것은 학생인권을 더욱 위축시키는 일이다.
학생인권법으로 교사의 생활지도권이 무력화된다는 주장은 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시킨다는 점에서,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과 교실 붕괴의 원인이라는 우파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학생인권법이 학교교육의 사법화를 촉진시킨다”는 교원단체들의 주장은 교권보호법도 마찬가지로 사법화 현상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중 잣대다.
교원단체들이 교권 약화를 우려하며 학생인권법을 반대하는 것은 정부가 강요하는 ‘학생인권 대 교권’ 프레임을 강화할 뿐 교권 보호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늘 그래왔듯 교권을 핑계로 학생인권을 공격하면서, 다음번에는 학생인권(더 정확하게는 학습권)을 핑계로 교권을 제한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생·학부모를 대립시키는 프레임에서 득을 보는 것은 책임을 학교 구성원 개인들에게 떠넘기고 교육 주체들의 분열을 이용해 경쟁교육을 강화하려는 교육 당국뿐이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반비례 관계가 아니다. 학생인권이 신장해 교권이 추락한 것이 아니라 교권을 보호하는 제도와 시스템을 책임져야 할 국가가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교권 침해는 법과 제도보다는 경쟁과 갈등을 양산하는 경쟁교육 시스템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교권 침해는 ‘학생인권의 과잉’ 때문에 벌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학생인권이 체계적으로 억압돼 교사-학생의 갈등이 벌어지는 것이 (때로 학생이 왜곡된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이) 원인이다. 따라서 학생인권법이 학생인권을 신장함으로써 교권 침해 요인을 완화할 수 있다면 교사에게도 이로운 것이다.
학생인권과 교권이 상호 비례한다는 것은 통계나 연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교권 침해 자료를 살펴보면, 조례가 있는 지역이 없는 지역에 비해 교원 1인당 평균 교권 침해 건수가 낮고 학부모와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 비율도 상대적으로 낮게 나온다. 한 연구에서는 인권 보장 수준이 높고 인권 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일수록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교사의 권위 인정과 교육권 존중에 적극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학교에서 학생인권이 더 잘 보장될수록 학교폭력이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인권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은 위계화된 학교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 교사한테 부당하다고 항의하고 싶어도, 학생부 기록에 악영향을 줄까 봐 주저한다. 그렇다고 학생은 을이고, 교사는 갑인가? 둘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교사들은 각종 평가에 얽매이고, 교육 당국과 관리자의 통제를 받고, 학생들의 눈치를 보고,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린다. 혹자는 교사들이 평가권을 휘두르며 학생들을 맘대로 조종하는 것처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성적에 민감한 학생·학부모들이 이의 제기하고, 문항 출제나 채점, 학생부 기록 내용, 심지어 수업 내용과 방식에 대해서도 학부모들이 민원을 내니 수업부터 평가까지 교사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일부 교사들은 때때로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 학업성적으로 학생을 차별 대우하거나 학생부 기록이나 수행평가를 무기로 학생을 통제하기도 한다. 또 용의·복장을 감시하며 ‘학생다움’을 강요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특별히 교사들이 더 보수적이어서가 아니다. 더군다나 교칙(학칙)은 교사의 재량도 아니다. 문제는 교사들이 학생을 관리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압력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가령, 용의·복장 지도를 소홀히 해 학생들이 흐트러지면 면학 분위기를 해치고,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 더 많이 입학하면 학교 분위기 망가지고 생활지도도 어렵고 학교 위신이 떨어진다는 식의 걱정을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학부모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해 강한 생활지도를 요구하기도 한다. 교권을 침해하는 학생의 행위가 구조적 문제이듯이, 학생인권을 억압하는 교사의 행위 역시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한다.
교사들의 교권은 모순적인 처지에 있다. 교사들은 별 권리도 없으면서, 무한책임으로 고통받으면서 경쟁교육 시스템에서 학생들을 통제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교사들이 원칙적으로는 학생인권을 지지한다고 말하면서도 학생인권 신장을 불편해하는 이유는 교실에서 학생을 통제해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권과 학생인권이 교실에서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본주의 교육 시스템에서 체계적으로 억압받는 같은 처지다. 따라서 교권 보호와 학생인권 보장 둘 다 지지해야 하고, 둘 다 일관되게 옹호할 때 교권도 학생인권도 살릴 수 있다.
일부 좌파는 교권 보호법과 관련 대책이 학생인권을 제약한다며 반대한다. 그러나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가 수업을 방해하거나 다른 학생의 안전을 위협하는 학생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 다른 학생의 안전이나 학습권을 위해 불가피하게 수업 방해 학생을 분리해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교사 또는 학교의 조처가 학생의 인권과 학습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그러한 조처가 일반적으로 학생인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일부 교사들은 학생인권법이 교사의 생활지도를 무력화한다며 반대한다. 교사의 생활지도권은 교사의 안전, 그리고 모든 학생들의 안전과 권리(학습권)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생활지도권은 기본적으로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선에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학생인권법이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제약한다는 주장은 학생인권을 제약하지 않고는 학생 생활지도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교사에게 적절한 생활지도권을 부여하는 것이 학생인권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듯이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제약하는 것은 아니다.
운동의 퇴조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교권과 학생인권이 정부와 시스템에 맞서 싸우는 운동 속에서는 충돌하지 않았다. 서로 연대하고 마치 한 몸처럼 싸울 때도 있었다. 1988년 국회에 제출된 전국교사협의회의 개정안에는 학생의 자치활동권, 징계진술권, 체벌을 거부할 권리 등 학생 권리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다. 전교조 결성에 대한 정부 탄압이 거세지자 고등학생운동의 주체들은 전교조 탄압에 맞서 연대했다. 억압적 교육체제 아래에서 서로 대립적 관계에 놓인 것처럼 보였지만, 정부와 체제에 맞서는 운동에서 두 주체는 서로 연대할 수 있었다. 전교조 해직 사태에 47만여 명의 학생들이 ‘선생님을 지키자’는 슬로건을 갖고 참가했다. 1989년에는 하루가 멀다고 고등학생들의 시위와 농성이 벌어졌다.
그런데 요즘 교사 운동 진영과 학생인권 운동 진영은 왜 서로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교권 보호법과 학생인권법)을 불편하게 느끼게 됐을까?
교사들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 정부와 교육 당국에 맞서 싸워 온 전교조는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2010년쯤부터 투쟁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아래로부터의 투쟁보다는 진보 교육감과 협력해서, 교육청을 활용해서 학교 교육을 바꾸는 방식을 선호했다. 교육 당국과 관리자와 싸우면서 교권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점차 그들과 협상하거나 그들에 기대어 교권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대체됐다. 교권보호조례는 그러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교권 투쟁이 퇴조하면서 교권과 학생인권을 대립시키는 우파의 프레임이 득세했고, 교육 당국은 교권 침해자에서 교권 보호자로 둔갑했다. 교권은 교사들의 투쟁을 통해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교육활동을 보호하는 문제로 변질됐다.
2000년대 들어 부상한 청소년인권 운동은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생인권을 법적으로 명시하고 학생인권을 교육의 핵심 가치로, 사회의 주요 문제로 부각했다. 그러나 교사 운동이 퇴조하고, 투쟁보다는 법제화에 힘을 쏟으면서 드러낸 약점을 학생인권 운동 역시 공유하고 있다.
첫째, 학생인권운동이 법 제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학생들의 자발적인 조직과 직접 행동이 약화됐다. 2000년대 초반 학생들의 자발적인 운동, 2008년 청소년들의 집단행동의 에너지가 법 제정으로 수렴되면서 운동의 잠재력이 약화됐다.
법제화 전략은 정치권(특히 민주당), 정부, 교육청에 의존하는 경향을 키웠다. 학생인권조례는 시·도교육청이나 도의회의 협의 과정에서 알맹이나 주요 조항이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인권 행정의 형식화라는 문제를 낳았다. 인권은 더 이상 운동이 아니라 행정이 됐고, 인권의 주체는 학생이 아니라 학생인권을 보호하는 교육청이 됐다.
둘째, 협소한 의미의 ‘학생인권’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가령, 두발·용의·복장 규제 등. 내신이나 수능 등 학생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경쟁교육 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도전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흐름 속에서 입시 체제와 억압적인 학교 체제에 저항하며 정치적이고 전투적이었던 고등학생운동은 1990년대 초반 쇠퇴했다. 1990년대 중반 고등학생운동은 ‘청소년 인권운동’으로 전화되기 시작했다. 청소년 운동은 이전 고등학생 운동과 몇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첫째, 학생이 아니라 ‘청소년’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시 말해 학교교육의 주체(혹은 억압적인 교육체제로 고통받는 대상으)로서의 학생이 아니라 학교라는 공간과 별개로 ‘나이’나 ‘세대’를 뜻하는 ‘청소년’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웠다. 둘째, 청소년 ‘인권’의 문제에 집중했다. 학생인권이 억압받는 현실에서 청소년 ‘인권’ 문제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구조나 체제에 도전하지 않는 ‘청소년 인권’ 의제는 그 대립물로서 교사나 성인을 설정하기 쉽고, 제도권에 의탁하는 방식을 선택하기 쉽다.
정리하자면, 교권과 학생인권이 갈수록 충돌을 빚는 것은 두 운동이 ‘교사와 학생을 대립’시키는 정부와 시스템에 맞서 싸우지 않고 정부와 정치권에 의탁해 법과 제도 개선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미 학교의 사법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각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더 강력한 법’은 권리 다툼으로 비춰질 수 있다. 교권 보호법이나 아동학대법, 학생인권법 자체가 서로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무기로 삼아 서로 싸우고 방어해야 하는 구조적 상황이 문제다. 따라서 교권과 학생인권이 상생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시스템에서 교권과 학생인권의 균형을 맞출 것이 아니라 서로의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시스템에 도전해야 한다.
교권 보호법이 교사를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듯이, 학생인권법도 마찬가지다. 왜냐면 교권 침해와 마찬가지로 학생인권 침해 역시 자본주의 교육 시스템과 교육 주체들 간의 관계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교육의 목적은 ‘체제에 순응하면서도 경쟁력 있는 노동력’을 기르는 것이다. 미래의 노동력으로서의 학생은 ‘미성숙한 존재’, ‘교육의 대상’으로 규정해, 현재의 권리를 유예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자본주의에 적합한 인간, 이윤 창출에 쓸모 있는 노동력으로 길러내기 위해 학교는 학생의 사고와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 학생을 통제하려면, 그들을 가르치고 보살피는 교사들에 대한 통제 역시 필요하게 된다. 자본주의 학교 시스템에서 교사와 학생이 모두 권리를 침해당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전망과 과제
지금 교사 운동(의 리더들)은 몇 가지 약점을 보인다. 법제화에 올인하기, 협소한 교권에만 집중하기, 학생과 학부모와 거리 두기 등. 이러한 약점은 교사 운동의 잠재력을 소진하고 실질적인 교사 조건 개선의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그러나 교사 운동의 에너지가 사그라든 것은 아니다. 교사들은 여전히 불만이 높고 기대도 크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교사들의 처지를 점차 악화시킬 공산이 크다. 윤석열 퇴진 운동의 확산 등 사회 전반의 투쟁 상황과 계급 세력 관계에 따라, 교사 운동이 확대·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교사 운동이 진정한 대중투쟁으로 발전하고 급진화하려면 좌파의 의식적인 노력과 개입이 필요하다.
교사들의 처지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면 교육권 보장을 넘어 교사의 조건과 환경 개선을 위한 투쟁으로 발전해야 한다. 또한 법 개정안이나 방안 마련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재정과 인력 투입을 요구하는 등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해야 한다. 교권 침해는 공교육의 위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따라서 교권 위기를 극복하려면 공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말로는 교권 보호 운운하면서도 교원 감축, 재정 삭감 등 되레 교사들의 조건을 공격하고 있다. 경쟁교육을 강화하면서 교권을 핑계로 학생인권을 공격하고 학생 통제를 강화하는 등 학교를 더 위험한 공간으로 만들려 한다. 따라서 교권 보호를 위해 정부에 기댈 것이 아니라 정부에 맞서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 위기 심화에 직면해 긴축을 펴고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교육 경쟁과 통제를 강화하려는 정부를 상대로 양보를 얻어 내려면 만만찮은 투쟁이 필요하다.
영국의 교사들은 2013년에 도입된 이른바 ‘교권 보호 조처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2014년 업무 경감과 임금 인상 등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지난해에는 물가 인상으로 인한 실질임금 삭감에 맞서 12퍼센트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역대 최대 규모의 교사 파업이 벌어졌다. 그 결과 정부로부터 상당한 양보를 얻어 냈다.
역사는 권리가 법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쟁취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 줬다. 서이초 1주기를 맞아 교원노조들이 입법 토론회에 집중하고 대중 집회 한번 열지 않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교사들의 조건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원노조 지도자들은 교권 법제화에 올인할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을 고무해야 한다.
정부로부터 실질적인 개혁을 얻어내려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지배 전략에 효과적으로 맞서고 연대를 구축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교사 운동은 정부의 갈라치기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지 못하며 학생·학부모와의 연대에 실패하고 있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공존이 가능하다고 하면서도 ‘학생인권법’을 지지하지 않는다. 유보통합과 늘봄학교 등 여러 교육 문제에서 노동계급 학부모와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놓치고 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에도 소홀히 해 왔다. 학생, (노동계급) 학부모, 교사, 학교 노동자는 교육에 관한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같다. 정부의 긴축과 경쟁교육에 맞서 연대해 싸울 수 있고, 연대 투쟁을 통해 교육과 주체들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다.
정부로부터 개혁 조처를 얻어 내서 교사들의 조건과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근본적으로 교사의 위기는 자본주의 학교 시스템의 본질에서 비롯한 구조적이고 심층적인 문제다. 교권 위기를 극복하려면 교사·학생·학부모가 학교 교육의 온전한 주체로 자리매김돼야 하고, 신뢰·존중·협력의 관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학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면 자본주의 교육시스템은 구성원들을 소외시키고(권한·통제력 박탈), 경쟁과 갈등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본주의 학교는 태생부터 지금까지 평화로운 적이 없었다. 교사에 의한 학생 체벌, 학교폭력, 교권 침해, 학부모의 교사 괴롭힘 등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마치 피해자-가해자를 서로 바꿔가며 괴롭히는 것처럼 갈등이 이어졌다. 갈등과 폭력이 구조화된 자본주의 학교는 점점 더 교육이 불가능한 곳이 돼 가고 있다.
잔인한 경쟁교육 시스템에서 교사, 학부모, 학생 모두 자유롭지 못하고 서로 갈등하고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교사, 학생, 학부모는 근본에서 이해관계가 다를까? 교권(교사의 교육권)은 학생의 ‘학습권’이나 학부모의 ‘교육권’과 대립하는 것일까?
경쟁 구조에서는 모두가 이기적인 개인으로 존재하도록 강요받기 때문에 교실에서 서로 권리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이해관계가 다르지 않다. 무한 경쟁에서 이득을 얻는 사람은 소수의 지배 엘리트와 운 좋게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뿐이다. 대다수 평범한 노동자·서민,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차별받고 배제된다.
자본주의 교육체제에서 학생의 ‘학습권’이나 학부모의 ‘교육권’이 뜻하는 바는 국가로부터 주어진 교육과정을 배우는 것,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성적을 받는 것이다. 인간 발달이나 민주시민으로의 성장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동은 누구나 자신의 개성을 실현하고 전면적 발달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자본주의 학교 시스템하에서 학생들은 경쟁력 있는 노동력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기계가 되기를 강요받는다. 지배 질서에 순응하기 위해 자신의 개성과 본성을 억압해야 한다. 주로 특정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도록 교육받는다. 그러니까 자본주의 학교 시스템하에서의 ‘학습권’과 ‘교육권’ 보장은 사실상 학생이 전면적으로 발달할 권리를 체계적으로 억압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경합하는 권리로서의 교권·학습권·학부모 교육권이라는 프레임에 도전해야 한다. ‘아동의 전면적 발달’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교사·학생·학부모는 경쟁교육을 끝장내고 질 높은 평등교육을 실현하는 데에 같은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고, 이를 위해 함께 싸울 수 있다. 모두의 교육에 관한 권리를 온전히 실현하려면 자본주의 교육 시스템에 도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