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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사건:
교권 보호 대책보다 교사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7월 18일 서울 서초구의 서이초등학교에서 2년차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교사들의 애도와 분노가 쏟아졌다.

사건 직후 초등교사가 많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인디스쿨’에서 몇몇 교사가 제안한 집회가 크나큰 호응을 얻었다. 7월 22일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집회에는 교사 5000여 명이 모여 고인을 추모하고, 교사들의 열악한 처지를 규탄했다. 7월 29일 오후 2∼4시 서울 광화문 앞에서 열릴 2차 집회에도 교사 수천 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7월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앞에 지난 18일 이 학교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선택을 한 2년차 교사를 추모하는 동료 교사와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진

이번 사건은 현재 경찰이 조사 중이고 고인이 유서를 남기지 않아 그 전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일기장에는 학교 업무로 힘들어 했음을 짐작케 하는 내용이 있었다. “월요일 출근 후 업무폭탄과 ○○[학생의 이름] 난리가 겹치면서 그냥 모든 게 다 버거워지고 놓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고인의 일기 내용은 현재 학교 현장에서 많은 교사가 겪는 어려움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고인은 학교에서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관리 업무를 맡았는데, 최근 도입된 4세대 나이스가 먹통 사태를 일으켜 전국 학교의 업무가 마비되는 등 문제가 많았던 것을 고려하면 고인의 업무 부담은 상당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교사는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 생활 지도를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지만, 추가로 과도한 행정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는 ‘학급당 학생 수 20명 상한제’ 실시와 이를 위한 교사 충원 요구를 계속 무시해 왔다. 윤석열 정부는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오히려 교사 정원 감축을 추진 중이어서 교사들의 업무 부담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고인은 학부모들의 민원을 처리하느라 큰 고통을 겪은 듯하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이 고인의 동료들에게서 받은 제보에 따르면, 최근 고인이 맡았던 학급에서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이마를 연필로 긁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후 학부모에게서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많은 교사들도 학부모들의 온갖 민원 때문에 수업과 학생 생활 지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 시행 뒤 교사들을 위축시키는 일이 빈번해졌다. 아동학대처벌법에 따르면, 일단 아동 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사실관계 확인이나 교사의 소명 기회도 없이 바로 직위 해제, 담임 교체 처분 등 교사와 학생의 분리 조처가 진행된다. 곧장 교사 징계가 실행되는 것이다. 게다가 교사 스스로 소송을 치르며 아동 학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불만을 가진 학생이나 학부모가 악의적으로 교사를 아동 학대로 신고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반면, 교사의 처지에서는 아동학대 신고를 한 번만 당해도 교직 인생에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

그래서 많은 교사는 자신도 아동 학대 혐의로 신고당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학생과 학부모의 민원은 무조건 이행해 줘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교육활동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교사가 폭행, 수업 방해 등과 관련해 심리 상담을 받은 건수는 1만 9799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7년 3498건보다 대폭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교권보호위원회에서 심의·처리한 ‘교육 활동 침해’ 건수는 2662건에서 3035건으로 증가했다. 교사들이 구제 절차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피해 신고를 한 경우가 이 정도이니, 학생·학부모의 항의를 참고 넘기는 교사의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많은 교사는 과중한 업무와 학부모의 민원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교사들이 서이초 교사의 죽음에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낀 이유다. 집회 주최 측은 이런 절박한 상황을 ‘교사 인권’, ‘교사 생존권’이라는 (다소 모호한) 구호로 표현했다.

전현직 교사 및 예비교사 수천여 명이 7월 22일 오후 서울 보신각 인근에 모여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고 교사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진

학생인권조례가 문제?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교사들의 불만이 터져나오자 정부와 각 교육청은 부랴부랴 교원단체, 교사들과 간담회를 여는 등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행태를 보면, 그들은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교권 추락의 주요 요인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지목하며 이를 무력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은 “당,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조례 개정도 추진하라”며 학생인권조례를 겨냥했다. 교육부장관 이주호도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수업 중 잠자는 학생 깨우는 게 불가능하고 학생 간 사소한 다툼 해결에도 나서기 어려워져 교사의 적극적 생활지도가 크게 위축됐다”며 학생인권조례를 꼭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곳은 17개 시도교육청 중 6곳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시도교육청 11곳에서는 ‘교권 추락’이 없었다는 말인가?

게다가 학생인권조례는 상징적인 선언 이상의 효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의 정치 활동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치열한 입시 경쟁과 억압적인 교육 환경 때문에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없다. 또, 조례 특성상 강제력도 별로 없다. 초중등교육법상 학칙 제개정의 권한이 학교장에게 있어, 아직도 반인권적 학칙이 횡행한다.

이런 단순한 사실만 보더라도 윤석열 정부와 국힘의 학생인권조례 공격은 데마고기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교권 보호 대책은 미봉책일 뿐

한편, 정부와 각 교육청이 내놓은 방안은 대부분 ‘교권 보호’를 위한 대책들이다.

예를 들어, 부모들의 ‘악성 민원’을 교권 침해로 규정, 교권 침해 행위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 교사의 정당한 생활 지도에 아동학대 면책권 부여 등을 위한 법 개정, 교사의 생활지도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가이드라인(고시)안 마련 등이다. 또, 학부모 민원 응대 매뉴얼을 마련하고, 교사가 개인 전화로 민원 요구를 받지 않도록 통합 민원창구 도입도 검토하기로 했다.

물론 많은 교사들은 학부모의 무분별한 민원과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를 막기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부 대책 중 아동학대로 신고된 교사가 아무런 조사도 없이 즉각 직위해제 되는 것을 막는 방안은 교사의 부담을 약간 덜어 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권 보호’ 대책은 교사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는커녕 교사들을 계속해서 갈등과 분란에 빠트릴 공산이 큰 미봉책이다.

예컨대, 많은 교사는 교육활동 침해 사안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 우려한다. 학교폭력 사안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한 후 갈등 심화와 소송으로 학교 현장이 몸살을 앓고 있고, 교사의 교육적 개입은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는 점을 많은 교사가 이미 체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녀가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되거나 교육활동 침해로 징계 대상이 되면, 아동학대처벌법으로 교사를 고소하는 학부모가 생겨나고 있다.

마찬가지로, 법과 정부 가이드라인 등으로 학부모의 악성 민원,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권을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구체적 사안에서 그것이 정말 ‘악성’ 민원인지, ‘정당한’ 생활지도권인지를 둘러싸고 또다시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몇몇 장애아동학부모 단체나 진보적 교육단체들은 교사들에게 아동학대에 대한 면책권을 주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미 역대 정부는 10여 년 전부터 다양한 교권 강화 대책을 내놨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는 점도 봐야 한다.

예를 들어, 학교에 교권보호위원회가 설치됐고, 교원지위법을 개정해 학교장이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대해 조처하도록 하고, 교육청이 심대한 행위에 대해 고발 조치를 하는 것이 의무화됐다. 지난해 12월에는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 교사가 학생 생활을 지도할 권한이 명문화됐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이 교사의 교육권을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느낀 교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학부모가 민원과 소송을 위협하기만 해도 이런 권한들은 행사되기 힘들고 기구들은 마비될 수밖에 없다. 이번 대책들도 그렇게 될 공산이 크다.

아쉽게도 전교조는 현재 정부나 교육청들과 큰 차이가 없는 대책을 내놓는 데 그치고 있다. 학부모 민원에 대한 교사들의 불만이 워낙 크니, 일단 지금은 교사의 법적 대응력을 키우는 안을 내놓는 게 최선이라고 보는 듯도 하다.

그러나 전교조는 10년 전에만 하더라도, 학교 구성원 간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잘못된 교육 구조와 교육 당국에 집단적으로 저항하며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더 초점을 뒀었다. 지금처럼 정부의 대책을 대체로 지지하면서 교사의 법적 대응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기울면 학교 분쟁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고, 교사 처우 문제에서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는 세력으로서의 존재감은 더욱 미미해질 것이다.

교육 상품화와 교사 지위 하락

20여 년 전과 비교해 보면 오늘날 교사의 사회적 지위는 분명 하락했다.

이전에 교사들은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노동자였다면, 이제는 여느 서비스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지위로 떨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은 교사들의 교직 만족도에서도 드러난다. 교총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교직 생활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23.6퍼센트에 그쳤다. 2006년에 67.8퍼센트에서 크게 하락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또, 〈문화일보〉 보도를 보면, 최근 5년(2018∼2022년)간 전국 10개 교대에서 자퇴·미등록·미복학 등의 이유로 중도탈락한 학생이 1037명에 달했다. 2018년 134명에서 2019년 141명, 2020년 228명, 2021년 269명, 2022년 365명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특히, 부유층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교사들은 더욱 무시를 당할 것이다. 서이초 사건 이후 한 교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오히려 교사들이 강남 지역을 기피한다. 강남·서초는 잘 사는 동네고 부모들이 법에 대해서 해박하기 때문에 소송이 유난히 많다. … 그런 부분들이 교사들한테는 실질적인 위협으로 작용한다.”

더 일반적으로도, 광범한 지역에서 많은 교사가 학부모들의 다양한 민원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 노동계급 학부모들도 교사들을 여느 서비스직 노동자로 인식하는 듯하다.

이런 현상은 1990년대 후반부터 더욱 강화된 교육 상품화와 관련 있을 것이다.

그동안 노동시장에서의 경쟁이 격화되고, 각국 정부가 기업들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학 교육을 확대하면서, 초중등 교육은 대학 진학을 위한 교육 서비스 구입처라는 성격이 더 강화됐다. 이른바 ‘교육 개혁’은 학교 내, 학교 간 경쟁을 더욱 강화하면서, 이를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

이런 일들은 교사가 여느 서비스 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강화했다.

게다가 한국은 대학 입시 경쟁이 유난히 심하다 보니 초중등학교는 입시 문제를 풀이하는 학원과, 그리고 학교 교사들은 학원 강사들과 별 다를 게 없다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로서 학부모의 권리’에 맞서 ‘교사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해법이 되기 힘들다. ‘권리 대 권리’의 갈등이 부각되며 구조적 문제는 가려지게 된다.

치열한 입시 경쟁과 억압적 교육 환경에서 가장 억압받고 소외되는 이들은 바로 학생들이다. 학생들의 극심한 소외와 억압은 학교 생활에서 교사의 지도에 대한 불응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다시 강화하며 엄벌주의로 대처하는 것은 학생의 반발심을 키우고 교사와 학생 간의 갈등만 키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교사와 학생·학부모 사이의 갈등이 부각될수록 교육 환경에 책임이 있는 정부와 대기업들은 면피를 하고 빠져나가기 쉬워진다는 점이다. 교육부장관 이주호는 이번 대책에서 교사 업무 경감을 위한 실질적 대책을 전혀 내놓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별 효과도 내기 힘든 ‘교권 강화’에 기대를 거는 게 아니라, 학급 당 학생 수 감축, 교사의 교육 외 업무 감축, 상담·특수 교사 증원 등 교사 처우 개선과 전반적인 교육 환경을 개선하라고 요구하며 싸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