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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보호 4법 국회 통과:
교사 운동이 첫 성과를 내다

9월 21일 ‘교권보호 4법’인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에 분노한 교사 운동이 터져나온 지 2개월 만에 교권 보호에 일부 진전을 이뤄낸 것이다. 그동안 매주 주말 폭염 속에서도 교사 수만 명이 집회를 개최했고, 9월 2일 집회에는 무려 20만 명이 참가했다. 9월 4일 ‘공교육 멈춤’ 행동에는 전국적으로 15만 명이 참가했다. 이 중 수만 명은 교육부의 중징계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고 참가했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하는 교사들의 행동 9월 16일 국회 앞에서 열린 교사 집회 ⓒ조승진

초·중등교육법이나 유아교육법 개정안은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게 골자다. 교육기본법 개정안은 부모 등 보호자가 학교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협조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개정안들이 교사의 교권을 보장할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교사 생활지도권 보장을 재천명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교원지위법 개정안에는 몇 가지 실효적인 대책이 포함됐다. 우선, 교원이 아동학대로 신고됐더라도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직위해제를 당하지 않는다. 그동안 아동학대 신고만으로 직위해제가 돼, 조사·수사나 재판이 끝날 때까지 1년 넘게 교사들이 실질적 징계에 해당하는 조처를 당해 온 것을 고려하면, 이는 교사들의 숨통을 틔워 주는 조처가 될 것이다.

또, 교원지위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교사가 아동학대 범죄로 신고돼 조사·수사가 진행되는 경우 교육감이 의무적으로 의견을 제출해야 한다. 정부도 교육감의 의견 제출 제도를 즉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조처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아동학대 조사·수사에 현장 교사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외에도 교육감이 교사들을 각종 소송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공제사업을 할 수 있다는 조항도 담겼다.

상당히 뒤늦었지만 시도 교육청들도 교권 보호 대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경찰 수사를 받는 교사들을 변호할 변호사 증원, 교권 침해 전수 조사, 악성 민원인 고발, 교사의 심리검사 실시 등이 발표됐다.

첫 걸음

많은 교사들은 이번 입법과 교육부·교육청의 대책들이 교권 보호를 위한 첫 걸음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교육 현장에서 교권 보호 조처가 실제 효과를 내려면 추가적인 입법과 정부 지원 방안 등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초·중등교육법이나 유아교육법에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아동복지법이나 아동학대처벌법에서 교사의 생활지도를 제외하는 개정안은 아직 통과되지 못했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 이후에도 교사 6명의 죽음이 더 알려졌지만, 교사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조사와 사후 대책 마련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서이초 사건의 경우 교육청 조사를 거쳐 경찰 수사에 들어갔지만 진상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2년 전 극단적 선택을 한 의정부 초등교사의 사건 이면에 악성 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학부모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어떤 학부모는 수업시간에 페트병을 자르다가 손을 다친 자녀의 치료비 명목으로 8개월 동안 교사에게 400만 원을 뜯어내는 짓을 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건들에서 교권 보호를 위해 나서야 할 학교 관리자들이나 교육청, 교육부가 뒷짐을 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교사들이 어려움을 호소했는데도 이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다가 교사의 비극적 죽음을 단순 추락사로 보고한 관리자들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한편, 정부가 여러 대책들을 뒷받침할 인력과 예산 마련을 전혀 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다.

교육부는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보장한다며 생활지도 고시안을 발표해, 수업 방해 등을 하는 학생을 일시 분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분리 학생을 어디서, 누가,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전혀 내놓지 않고, 각 학교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학교민원대응팀 구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교사, 행정직, 공무직 등이 포함된 민원대응팀 구성을 대책으로 내놨지만, 이를 위한 추가 인력과 재정 지원 등의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대책들이 교사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추가적인 업무 부담으로만 돌아오고 있다. 업무 분담을 둘러싸고 교사 간, 그리고 교사와 그 학교의 다른 노동자들 간 갈등과 혼란만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정부는 긴축 재정과 세수 감소를 이유로 올해 교육청 교부금을 대폭 삭감했다. 올해 지방교육교부금은 75조 7000억 원으로 예상됐지만 실제 지급액은 65조 원으로, 11조 원이나 줄인다는 것이다. 내년 교부금도 이미 7조 원가량 줄이는 것으로 발표됐다.

교사 선발도 대폭 줄이고 있다. 내년 초등교사 선발은 올해보다 11.3퍼센트나 줄였고, 유치원 교사도 28퍼센트 줄이기로 했다. 교사들이 과중한 업무로 고통받고 있는 데다 교권 보호 대책으로 더 많은 교사가 필요해진 마당에 예산과 인력을 줄이고 있으니, 교사들의 고통이 줄어들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정부는 늘봄학교 확대 정책과 유보 통합을 추진하고 있지만, 부족한 인력과 삭감된 예산으로 각 교육청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어서 교사들의 업무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교육예산 긴축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의 말뿐인 교권 보호 대책 때문에 교사들은 행동을 이어 나가기로 했다. 추석 이후인 10월 14일에도 추가적인 법 개정과 실효성 있는 지원 대책을 촉구하는 집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정부에게서 받아 낼 때까지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