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박스쿨 극우 강사들 여전한데 손놓고 있는 교육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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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육부가 전국 초등학교에 리박스쿨 관련 전수 조사한 결과, 관련된 강사 43명이 57개 초등학교에서 최대 4년간 늘봄학교 수업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해당 강사들에 대한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경기도교육청과 인천시교육청은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하거나 민원이 제기된 강사들이 없었다며 이들을 그대로 학교 현장에 방치하겠다고 한다.
이런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단순히 민원이 없었다고 하여 교육 내용에 문제가 없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되레 리박스쿨과 그 관련 단체들이 교육계 곳곳을 광범위하게 활용하려고 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근 리박스쿨 협력단체인 대한민국교원조합(대한교조)은 온라인 육아커뮤니티(맘카페)를 중심으로 극우 역사관을 전파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교조의 조윤희 위원장은 2023년 국가교육개혁국민협의회를 출범시키며 청소년 1만 명에게 이승만·박정희의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 교육 프로그램을 실행하겠다고 한 작자다. 그는 여전히 교육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국가교육위원회 비상임위원에 리박스쿨 관련자들이 포진해 있다는 것도 드러났다. “[이한열·박종철 열사 등을 언급하며] 좌파는 사람까지 죽인다”는 좌파 혐오적 극우 발언을 한 김주성, 대한교조의 자문변호사이자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건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고 있는 연취현 등.
전교조는 극우 단체 관련 위원들을 즉시 해임하고, 독립적 진상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리박스쿨 관련 강사와 운영 학교가 가장 많은 대전의 사례는 이런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대전에서는 특별히 ‘대전판 리박스쿨’이라고 불리는 ‘넥스트클럽’(극우적 사관에 입각한 교육을 주요 목표로 삼는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지역에서 보수적 성교육으로 논란이 됐던 넥스트클럽은 2011년 비영리단체로 설립돼 성폭력 예방교육 강사를 양성하고 각급 학교에서 성폭력 예방교육 등을 진행해 왔다. 2019년 넥스트클럽 소속 강사가 한 고등학교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면서 “성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여성으로서의 성품을 갖추어야 한다”며 혼전 순결을 강조하는 문제적 교육 내용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 단체의 대표인 남승제 목사는 그간 국가인권기본정책과 차별금지법, 학생인권조례 등에 반대하는 활동에 앞장서 온 보수 기독교계 인사로 알려져 있다.
2023년에는 대전시 청소년 관련 기관에서 인권교육을 위탁받아 인권교육 강사들을 면접하면서 ‘섹슈얼리티, 젠더, 성적자기결정권, 성인지감수성’ 등 4개 용어를 강의에서 사용하면 안 될 단어로 지목한 일도 있었다. 이후에도 넥스트클럽은 대전의 청소년센터, 돌봄센터, 공동육아나눔터 등 온갖 교육복지 시설에서 아동·청소년의 교육을 담당해 왔다.
넥스트클럽
넥스트클럽이 여러 차례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문제 제기를 받았음에도 지역 교육복지 시설의 교육을 담당할 수 있었던 것은, 대전시교육청이 이 단체 소속 강사들을 ‘성폭력 예방 교육 우수 강사’로 지정했기에 가능했다. 대전시교육청 내에 이들을 비호하는 극우 정치 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러한 강사들의 이력을 알 방법이 없으므로, 대전시나 대전시교육청의 추천이 아니면 넥스트클럽이 대전의 청소년 성교육을 담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전인권행동은 넥스트클럽 소속 강사들을 전면 조사하고 현장에서 추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대전교육청은 교육부 지침에 넥스트클럽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현재로서는 전수 조사 등의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런 점을 볼 때, 교육계 전반으로 침투해 오는 극우에 맞서기 위해서는 교육 당국에(만) 기대어서는 안 된다. 교육부, 교육청, 국가교육위원회 등에 극우적 인사나 보수 교육감들이 포진되어 있고, 이런 지위를 이용해 리박스쿨과 같은 극우 단체의 활동을 비호하며 이들의 성장을 도왔기 때문이다.
또한, 이재명 정부가 좌우 통합을 강조하며 우파와 타협하려는 점도 국가 기관을 활용해 교육계 극우 세력을 뿌리 뽑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한편,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 주장도 극우의 교육 침투를 막는 무기로 쓸 수 없다. ‘정치적 중립성’은 그동안 진보적 교사들의 입을 단속하는 국가의 무기로 쓰여 왔고, 바로 그것이 학교에서 일선 교사들이 극우 단체의 활동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것을 더 어렵게 하는데 일조했다.
최근 초등학교 정규 수업에서 “경제 발전 과업 수행을 위해 강력한 통치력이 필요했다”며 박정희 정권의 비상계엄 선포를 정당화하는 내용의 자료를 활용한 사례가 보도돼 큰 파장을 낳은 바 있다. 이 수업을 설계한 한 초등교사모임은 뉴라이트 역사관을 담은 《이야기로 읽는 대한민국 경제사》란 책을 활용했다고 한다. 일부 교사들도 성장 담론에 몰입하면서 극우적 역사관에 무감각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따라서 진보적 교사들이 극우의 교육 침투를 폭로하며 학부모·학생들과 연대해 극우 프로그램 폐지와 극우 사상에 반대하는 활동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