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건의료인들, 구호품조차 가로막는 이스라엘을 규탄하다
〈노동자 연대〉 구독

인종 학살 국가 이스라엘이 구호품 반입을 차단해 팔레스타인인들을 기아로 내몰고 대량 학살을 저지르며 전 세계의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보건의료인들이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7월 29일(화) 오후 12시 30분, 환자를 돌보는 현직 의료인 20여 명이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 모였다. 또, 2023년 10월 7일 직후부터 한국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굳건히 건설해 온 재한 팔레스타인인 나리만 씨 등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팔연사)’ 활동가들이 동참했다.
불길 같은 더위가 이글거리는, 그늘 한 점 없는 광장에 나선 참가자들의 표정은 결연했다. 이들은 굶주림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생명을 살리려 애쓰는 가자지구 의료인들의 호소에 응해 모였다.
참가자들은 가자지구 알아크사 병원의 의사이자 가자지구 보건부 대변인인 칼릴 알다끄란 박사의 호소를 영상으로 전했다. 아랍어 전문 통역사인 박이랑 팔연사 활동가가 이를 통역했다.
“가자지구의 상황은 ‘재앙’의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가자지구의 병원 38곳 중 22곳의 가동이 완전히 정지됐습니다. … 이는 명백히 이스라엘 점령군이 굶주림을 무기 삼아 민간인을 상대로 벌이는 의도적 전쟁 행위의 결과입니다.”
알다끄란 박사는 한국의 팔레스타인 연대자들에게 특히 감사를 표하며 호소했다.
“저희들에게 연대해 주시는 한국인들에게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저희는 한국인들이 언제나 원칙 있고, 정의롭고, 역사의 바른 편에 서 있는 분들임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연대자들과, 특히 의료 종사자들과 보건의료 단체들에게 간절히 호소합니다. 이스라엘 점령군을 규탄하고 압박해 의약품, 의료 장비·시설, 의료진이 가자지구에 들어올 수 있도록 힘써 주십시오.”

이 호소에 응해 나흘도 안 돼 680명 넘는 한국의 보건의료인들이 이스라엘 규탄 연명에 동참했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지난 24시간 동안에도 가자지구에서 14명이 아사했다”며, “60만 명의 어린이와 6만 명의 임산부들이 영양실조 상태[인데도] … 이들을 의도적으로 굶겨 죽이는 최악의 인종청소를 두고볼 수 없다는 분노와 절박함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이상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취지 발언에서 가자지구의 상황은 “그저 열악한 인도주의적 상황이 아니라 … 감옥이고, 수용소이고, 집단 학살 현장[이며] 조직적 파괴와 학살”이라고 규탄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의료인으로서 이 자리에서 국제 사회의 공동 행동을 촉구합니다. 그 시작이 바로 이 기자회견입니다.”
이어서 의료인들의 규탄 발언이 이어졌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박일성 소아과 전문의는 가자지구 봉쇄 즉각 해제와 식량·의약품 즉각 반입을 요구했다.
“소아과 교과서는 분명히 적고 있습니다. ‘음식 섭취가 중단되면 어린이는 성인보다 훨씬 빠르게 … 죽어 간다.’ 이것은 책 속의 문장이 아니라 지금 가자지구의 현실입니다.
“아이들은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현직 소아과 의사로서 저는 침묵을 거부합니다. 가자지구가 해방되는 그날까지 연대해 싸웁시다.”

현직 간호사인 김혜정 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 사무국장은 경찰 저지선 너머 이스라엘 대사관을 바라보며 발언을 시작했다.
“지금 우리 앞에는 이스라엘 대사관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인자들이 이 땅에서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있을 수 있습니까?
“살인자들은 이 땅을 떠나십시오! 보호받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 살인자들이 아니라, 죽음으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실상을 알리는 사람들입니다!”
김혜정 사무국장은 분노로 말문이 막히는 듯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힘차게 발언했다.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가자지구 사람들에게 우리가 결코 잊지 않았다고,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외칩시다. 가자지구 아이들에게 생명을!”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활동가는 가자지구 병원의 97퍼센트가 손상됐다는 최신 조사 결과를 소개하며, 이스라엘의 봉쇄 때문에 “약만 있으면 충분히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람들이 2차 피해를 받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동근 활동가는 “여러 차례 이 땅의 무너진 민주주의를 세웠던 한국의 시민들[이] … 자신의 무너진 삶의 터전을 세우고자 하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으로, 재한 팔레스타인인 나리만 씨가 발언했다. “동정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의를 고발하고 정의를 요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는 그녀의 비장한 발언에 참가자들은 깊은 동감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합시다. 전쟁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전쟁은 인간보다 돈과 지배를 더 중시하는 자들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이들은 인간의 존엄과 음식, 약, 삶을 앗아 가고도 그 위에 군림하려 합니다.
“이 지옥 속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싸우는 이들, 바로 의료진이 있습니다. … 가자지구에서 의사들은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인간이라는 이유로 거기에 있습니다. 생명을 구하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버티고 서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자리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회복하자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 호소합니다. 기아를 전쟁의 무기로, 학살의 도구로 삼는 것을 규탄합시다. 생명을 구하려는 이들을 외면하지 맙시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연대의 뜻을 담아 “팔레스타인에 해방을!” “Free Free Palestine” 구호를 함께 외치고, 보건의료인 선언문을 낭독한 후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인종 학살 만행을 이어 가는 이스라엘에 맞서, 모든 양심 있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팔레스타인 연대자들은 서울 등 도심 거리에서, 대학가에서, 또 일터에서 이스라엘을 규탄하기 위한 운동을 힘차게 건설하자.

관련 기사
7월 26일 서울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와 행진:
폭염을 뚫고 가자지구 최악의 기아와 인종학살에 항의하다

팔레스타인:
인종청소를 위한 강제 수용소 짓겠다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구호 식량을 무기화하는 이스라엘

서방 지도자들의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약속은 사기다
—
두 국가 방안은 현상 유지일 뿐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를! 95차 집회·행진 (서울):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과 이를 비호하는 공범들의 위선을 규탄하다

제보 / 질문 / 의견
〈노동자 연대〉는 정부와 사용자가 아니라 노동자들 편에서 보도합니다.
활동과 투쟁 소식을 보내 주세요. 간단한 질문이나 의견도 좋습니다. 맥락을 간략히 밝혀 주시면 도움이 됩니다.
내용은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독자편지란에 실릴 수도 있습니다.
앱과 알림 설치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보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