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극우의 노래 – 한국의 극우, 그들은 누구인가》(남태현 지음, 오월의봄):
진보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극우의 궤적을 묘사하는 책
〈노동자 연대〉 구독
《극우의 노래 – 한국의 극우, 그들은 누구인가》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한국 극우가 성장해 온 궤적을 살펴보는 책이다. 특히, 극우가 주류 우파와 상호 작용하며 성장해 왔음을 잘 보여 준다.

“극우 메시지가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고, 이것이 극우 세계에 퍼지면서 정치적 무게는 점점 더 커졌습니다.
저자는 극우와 주류 우파의 상호 작용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부터 일어났다고 지적한다.
“뉴라이트는 이명박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이로 인해 뉴라이트의 많은 지도자가 새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하게 됩니다. ... 박근혜 정부는 실질적으로 극우 조직을 지원하고, 감독하기까지 했습니다.”
최근 극우의 폭발적 부상에서도 주류 극우 정치인들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통령[윤석열]이 앞장서자 중국 음모론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습니다.”
저자는 김민전, 황교안, 나경원, 안철수 등 전현직 국민의힘 정치인들도 “부정선거와 중국을 이으며 극우 선동과 장단을 맞췄[다]”고 지적한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태극기 부대’가 출현할 때도 주류 우파 정치인들이 극우에 힘을 실어 줬다. “새누리당 김진태, 이우현 의원 등 주류 정치인도 태극기집회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김문수, 조원진 같은 극우 정치인들에게 “거리 정치는 정치적 생명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제도권 정치로 복귀할 발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김문수가 지금 그 루트를 걷고 있다.
한편, 한국 극우의 핵심 강령은 친미와 반공이다. 그런데 저자의 지적처럼 반공은 남한 국가의 수립 과정에서부터 시작된 한국 우파 전체의 오랜 전통이다. “반공주의는 새로 탄생한 대한민국 정체성의 핵심이 됐습니다.”
극우는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지원하고 한국전쟁에서 남한을 도운 미국을 “슈퍼맨”으로 여긴다.

저자는 이제 극우가 친미 반공을 앞세워 청년층에서 새로운 지지자들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하면서, 누가 청년층을 극우로 당기려 하는지 분명하게 말한다.
“2030 청년들의 극우 동조 현상 뒤에는 정치 지도자의 선동이 있었습니다. 윤석열이 그 중심에 있었죠.”
저자는 국민의힘도 청년층의 극우 유입에 일조하고 있음을 옳게 강조한다.
역대 민주당 정부들은 정말 개혁적이었나
그러나 극우 부상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대안에는 커다란 약점이 있다.
저자는 극우의 성장을 역대 민주당 정부하에서의 “진보 정치의 발전”에 대한 반발로 본다.
그러나 역대 민주당 정부들의 개혁 배신이 극우 성장의 토양이 됐음을 짚지 않고서는 극우를 저지할 진정한 대안을 내놓을 수 없다.
역대 민주당 정부들은 개혁을 약속하며 집권해 놓고 노동자 등 서민층의 염원을 배신했다.
저자는 노무현 정부의 복지·노동 정책을 특별히 호평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기조 속에서 개혁 약속을 배신했다. 노조들을 탄압하고 비정규직법 개악안을 통과시키고 이주노동자들을 야만적으로 추방했다.(관련 기사: 본지 286호, [재게재] 노무현 사망 10년 ─ 노무현을 알면 문재인이 보인다)
저자가 높이 평가하는 역대 민주당 정부들의 외교·안보 정책도 실제로는 평화 증진의 방향이 아니었다. 역대 민주당 정부들 모두 한미동맹이라는 한국 지배계급의 전통적 노선을 거스르지 않았다. (관련 기사: 본지 315호, 한미동맹의 추악한 실체 ③: 민주당 정부도 한미동맹에 충실해 왔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는 남북 간 평화를 말하면서도, 임기 첫날부터 사드 배치 공사를 강행하고 F-35 도입 등 군사력 강화에 매진하면서 그에 반대하는 평화 활동가들을 탄압했다.
“이대남을 극우의 품으로 밀어낸 배경은 페미니즘이라고 볼 수 있[다]”는 흔한 주장도 민주당 변호론의 일종이다.
그러나 정작 “페미니즘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하에서 평범한 여성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일부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의 과도함이 반감을 산 것은 맞지만, 그것이 자동으로 극우화를 이끌진 않는다.
문재인의 입발린 위선에 대한 청년 남성들의 반감을 극우가 이른바 ‘문화 전쟁’을 통해 파고들었다.
결국 민주당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환멸을 극우가 적극적이고 교활하게 파고든 것이다.
저자가 중요하게 조명하는 서구의 극우도 신자유주의 중도 좌우 정부들의 실패와 그에 따른 환멸을 활용해 성장했다. 미국이나 한국에선 그 극우가 상대적 우파 정당을 극우화시키며 성장한다는 점에서 형태가 다소 다르지만, 그 동학은 본질적으로 같다.
빈곤과 정치적 소외
저자는 노년층과 청년층의 빈곤·정치적 고립에서도 극우 부상의 원인을 찾는다. 그런 현상이 극우 성장의 배경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소외는 좌파에 대한 지지로 옮겨 갈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그런 요인들이 극우 지지로 이어졌다면, 그 매개를 밝혀내야 한다.
그런데 저자도 인정하듯이, 문재인 정부하에서도 노인 빈곤은 나아지지 않았고, 노인 자살률은 계속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요양병원의 노인 환자들은 사실상 방치됐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에게 좌절을 안겨줬다.
그래서 전 세대에 걸쳐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 이반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급진적 해결책이 필요하므로, 너무 진보적이어서 극우가 성장했다는 저자의 주장과는 모순된다.
문제는 당시 주요 좌파가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맞서 아래로부터의 대규모 투쟁을 건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주변화됐고, 국힘과 극우가 그 틈을 파고들어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환멸 을 공략하며 반사이익을 거의 가로채갈 수 있었다.
주요 좌파 정당들은 점점 선거와 의회 진출을 중시하고, 노동조합 운동은 상층 협상에 주로 의존하는 패턴이 자리잡으면서 기층에서 대중 자신의 활동과 투쟁이 약화돼 왔다.
그 결과,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적 고립감을 극복할 왼쪽에서의 공간은 허약해져 온 반면, 극우는 거리와 지역사회에서 대중 운동 건설을 시도하며 좌절과 고립에 빠진 사람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극우에 반대하는 대중적 운동이 중요하다
요컨대 저자는 민주당을 방어하는 스탠스에서 극우를 비판하지만, 그 방향은 진보화가 아니라 중도화를 향하고 있다. 지나친 진보성이 반발을 낳았다는 것이니 말이다.
바로 그 때문에 저자는 극우의 대중 운동을 중요하게 다루면서, 왼쪽에서 대중 운동이 건설돼야 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지키고 극우의 전진을 저지하려면 왼쪽에서 집단적 대중 투쟁이 대규모로 일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저자의 대안은 정치 제도 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예컨대, 저자는 “법이 허용하는 정치 제도 안에서 목소리를 내고 토론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극우를 공식 정치 내로 포섭해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흔히 제기되는 주장이다. 공론장과 선거가 좌우 급진 세력을 중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생각의 발로다. 그러나 지금 같은 정치적 양극화 시기엔 그저 환상일 뿐이다.
오히려 극우는 공식 정치 무대를 활용해 극우적 주장을 공공연하게 펼치며 자신들을 정상적 정치 세력으로 포장하고 새로운 간부층을 육성한다. 새로운 성장의 기회만 제공해 주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극우는 기층 운동과 의회 진출을 모두 중시하는 이중 전략을 펼치며 성장하고 있다.
책의 많은 부분에서 극우가 공식 정치 내 우파와 상호작용하며 성장해 왔음을 잘 지적한 저자가 극우를 공식 정치 내로 포섭해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결론 짓는 것은 모순이다. 중도로 수렴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스스로 자신의 분석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극우를 저지할 진정한 힘은 왼쪽에서의 대규모 대중 운동에 있다. 정치적 소외에 빠진 집단에게 대중 투쟁의 힘을 보여 줘 좌파적 대안의 설득력을 높여야 한다. 극우 반대 운동을 대중적으로 건설하는 것은 사활적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