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민족주의의 부상을 계기로 민족과 민족주의를 다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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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좌파 운동이 대체로 민족주의 사상을 취하며, 정부가 친미적·친일적, 심지어 매국적이라고 종종 비난했다. 그중 가장 민족주의 경향이 강한 계열은 스스로 자민통(자주·민주·통일) 계열이라고 불렀다. 물론 통일의 상대로 여겨지던 북한 정권이 지난해 초에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자 그 좌파 경향은 민족주의를 계속 내세우기가 어색하거나 민망해졌다.
그러나 이제 극우파가 민족주의를 새로이 강하게 내세우기 시작했다. 반중·혐중 감정을 섞어. 그러나 친미를 강력히 표방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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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기회에 민족주의에 관해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민족과 민족주의에 관한 필자의 이전 기사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민족주의의 기원’ 그리고 ‘민족주의의 본질과 모순’).
민족주의는 애국심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저 애국심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민족주의는 경쟁적 애국심이다. 국가들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국가들은 경제적·지정학적 경쟁을 한다.
국가간 경쟁이 격화되면 이 애국심은 열정적이거나 심지어 열광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정도로 고양된 애국심을 국수주의나 배외주의라고 하는데, 특히 갑자기 전쟁이 일어났을 때 흔히 볼 수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중국과 미국의 전쟁이 임박하지 않았는데도 윤석열 탄핵 반대 극우 운동의 주도자들은 중국의 ‘개입’을 둘러싼 음모론을 퍼뜨리며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국수주의·배외주의 태도를 드러내고,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민족주의는 널리 퍼져 있는 통념을 이용한다. 즉, 애국심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나라를 사랑하고, 국제 스포츠 경기 대회에서 ‘우리나라’ 팀을 응원하고, 국제 경쟁에 직면해 ‘우리’ 경제와 ‘우리나라’ 기업을 지원하고, 전쟁에서 ‘우리’ 군대를 성원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민족주의는 자연스럽지도 당연하지도 않음을 알 수 있다. 민족주의는 근대에야 비로소 생겨난 산물이다. 고대와 중세의 ‘민족’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부족이나 종족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을 완전히 부정확하게 말하는 것이다.
고대와 중세에는 민족이 존재하지 않았다. 고대 문명에서 인류의 생활 근거지는 도시(그리스-로마의 경우 폴리스)였다. 결코 민족이 아니었다.
중세 유럽의 왕국과 제국도 오늘날의 민족과 비슷한 점이 별로 없었다. 중세의 왕국과 제국이 벌인 수많은 전쟁도 왕 개인의 재정적 뒷받침을 받은 소규모 용병 부대가 주로 벌인 것이었다.
당시의 백성들과 벼슬아치들도 민족으로서의 충성심이나 민족으로서의 일체감 따위를 느끼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개봉됐던 영화 ‘전,란’이 두드러졌던 점은 도요토미 정권 군대와 조선 왕실과 의병의 관계를 시대착오적인 항일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프리즘으로 보지 않고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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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례는 시온주의이다. 시온주의는 유대인 소수파의 근대 민족주의 사상인데, 기원전 6세기 초까지 (약 3세기 동안) 존재하던 유다 왕국의 국교를 전통으로 삼으며 지중해 연안 지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의 후손을 자처한다. 그러고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모조리(인종 청소) 팔레스타인 땅에서 몰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유대인은 민족도, 종족도 아니고 자본주의에 의해 ‘사회적으로 구성된’(발명된) ‘인종’일 뿐이다. 모든 유대교·그리스도교 신학자·역사가들이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유대인을 민족으로 규정하는 것은 총체적으로 혼란된 역사 인식으로 이끌 뿐이다.
민족은 자본주의 발생의 산물이다. 신흥 부르주아지에게는 화폐와 사법제도가 단일하고 언어와 문화가 대동소이한 자유 교역 지역이 필요했다. 그런 자유 교역 지역은 상시적 국내시장 구실을 했다. 그런데 시장경제의 발흥을 뒷받침할 공통의 소통 수단이 필요했다. 그때 언어가 민족 형성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시장의 교환 네트워크에 편입된 상이한 지역사회들이 서로 연결되려면 공통의 언어나 방언이 필요했던 것이다.
민족의 형성에서 언어는 중요한 요인이긴 했지만, 언어만 갖고는 독자적인 민족을 이루지 못한다.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공통의 언어인 세르보-크로아티아어를 공유하는데도 서로 다른 민족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심지어 1990년대에는 유혈낭자한 전쟁까지 벌였다.
노르웨이와 스웨덴도 같은 언어를 사용했지만 둘은 1905년 서로 분리하는 것을 택했다.
한편, 스위스는 네 가지 언어(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시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지만 어느 한 언중(言衆)도 자신을 비(非)스위스인으로 여기거나, 나머지 언중과 다른 민족으로 여기지 않는다.
언어와 자본주의 경제 생활이 모두 공통돼도 하나의 민족이라고 할 수는 없다. 캐나다인들과 미국인들은 언어가 같고 지리적으로 인접한 자본주의 사회인데도 서로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잉글랜드인들과 스코틀랜드인들과 아일랜드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인들과 뉴질랜드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스위스의 독일어 사용자들은 독일과 하나의 국가를 세우자고 하지 않는다. 하나의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족은 자본주의의 발생과 함께 도래한 것이지, 공통의 언어만으로는 민족이 성립하지 못한다. 한글이 백성(민중) 수준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끝 무렵에 한글 전용을 시행하며 독립신문이 발간 보급되면서였다. 조선 왕조가 중앙집권적 소국이었으므로 언어의 공통화는 쉬운 일이었을 텐데도 말이다. 그때 이후로 사용된 한국어는 한글 창제 때인 15세기에 사용된 한국어와 사실상 다른 언어라고 해야 한다.(언어학자 출신의 언론인 고종석의 지적이다.)
민족이 성립하려면 언어와 경제라는 객관적 요인 말고도 민족 의식이라는 주관적 요인이 필수적이다. 민족 의식의 핵심 요소는 국가 수립 의지이다. 부르주아지는 국민 국가를 세우기 위해 봉건 귀족에 맞서 수공업자·노동자·농민 등 자기 밑에 있는 계급들을 동원해야 했다. 그런데 민족주의는 해당 영토 내의 계급들이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고 따라서 단결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므로 이 과업에 안성맞춤이었다.
민족 형성과 함께 전통 문화나 고대 신화가 발명되거나 각색됐다. 전통 문화의 사례로 독립신문·대한매일신보 등에 실린 애국 시가(詩歌)들이 있었고, 고대 신화의 사례로 아더 왕의 전설이나 단군 신화 등이 있다.
물론 고조선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상 실재했던 존재다. 그러나 고조선의 존재는 엄청나게 부풀려져 있다. 고조선은 국수주의적 한국사학자들이 말하는 “대제국”이기는커녕 기원전 4세기경에야 비로소 그 존재가 중국 쪽에 알려진 모종의 사회였다. 냉철한 역사학자들은 고조선이 존재하기 시작한 때가 기껏해야 기원전 7∼6세기였을 것으로 본다. 고조선의 위치도 알 수 없고 고조선과 연결되는 물질 문화가 무엇인지도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한다.
민족주의자들은 고유한 ‘민족 문화’를 자부하지만, 문화는 일찍이 고대부터 국제화해 왔다. 가깝게는 중국과 일본, 멀게는 아랍과 로마와 주고받으며 문화는 융합돼 왔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화의 본성은 분리가 아니라 퓨전이다.
그래서 ‘순수 민족 문화’의 추구는 착각이고 역사에 대한 오해이다. 정수일 전 단국대 교수는 고대사의 각종 사례를 문명 교류라는 관점으로 설명하는 역사학자다. 그는 단군신화를 비롯해, 빗살무늬토기·고인돌·동검 등 고대 유물, 서복·허황옥·처용 등 전설의 인물, 신라 금관, 백제 금동대향로, 무열왕릉, 석굴암, 팔만대장경, 직지심경 등 문화 유산, 혜초·고선지·문익점 등 저명한 역사적 인물에 이르기까지 그중 “어느 것 하나 세계와 무관한 것이 없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한국적인’ 것의 대명사인 소주나 고추도 아랍을 비롯한 외국에서 들어왔다. 그냥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주고받으며 변용시키며 절충했다.
다시 말하지만, 문화는 서로 접촉하며 변용되는 것이 그 본성이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민족(국민) 간 문화의 차이보다는 계급 간 문화의 차이가 더 크다. 민족(국민) 내의 불평등이 하도 커서 민족(국민) 간 문화의 차이가 무색해진다.
한국의 노동계급은 문화적으로 한국의 지배계급보다 미국의 노동계급과 더 비슷하다. 우리는 모든 곳의 노동자들이 비슷한 라이프스타일로 살고 있음을 본다. 똑같은 로고나 상표명의 옷을 입고 똑같은 음악을 듣는 우리는 서로 비슷비슷해 보인다.
지배계급들도 람보르기니나 포르셰 같은 똑같은 고급승용차를 타고 아르마니 양복 같은 똑같은 고급 양복을 입고, 비슷한 기생충 같은 라이프스타일로 사는 것을 보면 서로 비슷비슷해 보인다.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자본주의 열강의 민족(국민)들은 모두 자본주의 발전 과정의 산물이었다. 그 가운데 일부, 예컨대 독일이나 이탈리아는 겨우 19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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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민족주의는 주로 제국주의와 국제 노동계급 운동에 대한 대응이었다.
첫째, 제국주의에 대한 대응이었다. 식민주의적 강점과 억압은 필연적으로 약소국의 저항을 불렀다. 민족 해방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에 따라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에 독립국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한반도에서 민족은 개화기부터 산업화까지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형성됐고, 민족 의식과 운동은 개항 직후부터 등장하기 시작해 마침내 1905년 일제에 의한 조선 강점을 계기로 급속히 고양됐다. 의병 투쟁이나 3·1운동 같은 민족 해방 투쟁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일본 제국의 억압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불렀고 식민지에서도 자본주의가 발전하자 그 저항의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의 형태를 취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민족 해방 투쟁들이 민족주의 사상에 이끌려 전개됐다.
20세기 민족주의의 둘째 특징은 국제 노동계급 운동에 대한 대응이었다. 민족주의는 자본가 계급이 이민자와 내국인 노동자를 분열시킴으로써 노동계급 투쟁의 칼날을 무디게 만드는 데 결정적 무기 구실을 했다.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민족주의는 노동계급 지도자들로 하여금 제국주의를 지지하게 하는 데 이용됐다. 제3세계에서 민족주의는 계급 갈등을 은폐하는 데 이바지했다. 이를 통해 중간계급 지도자들이 반제국주의 운동을 지도할 수 있었다(예: 중국 공산당이나 쿠바 카스트로의 7·26운동).
김대중과 노무현은 대북 화해·협력을 내세워, 좌파적 민족주의자들을 달래고 투쟁적 노동자들과 급진 좌파를 고립시키려 했다(예: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선언). 2019년 문재인도 “국민의 이익” 어쩌고 하며 민족주의를 갖고 놀았는데, 이것도 민족주의의 바로 이런 점, 즉 노동계급 운동의 칼날을 무디게 만드는 효과를 이용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민족주의는 허구적 민족 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민족 담론이 허구라 해서 민족의 존재가 허구인 것은 아니다. 지배 이데올로기가 전체적으로 허구라 해서 지배계급이 실체 없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듯이 말이다. 민족은 분명히 실체가 있다.
그러면 2019년 한일 갈등을 민족의 용어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레닌은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 자립을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본의 국제적 통합이 상당히 이뤄진 현대 세계 속에서 더 작은 경제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더 큰 경제와 밀접하게 연계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스트들과 좌파적 민족주의자들이 말하는 일본으로부터의 경제적 자립은 공상적 레토릭일 뿐이다.
하지만 레닌 지적대로 제국주의 하에서도 정치적 독립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레닌은 반제국주의 투쟁이 성공적으로 전개된다면 제국주의 국가에 정치적 불안정을 안겨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이고, 한국 정부에도 반대한다는 뜻이다. 1960년대 초 이후 한·미·일은 짧은 이례적 기간들을 제외하면 트리오였다.
이제 반제국주의 투쟁은 본질적·강령적으로 반자본주의적이고 (한미일 노동계급이 연대하는) 국제주의적으로 발전해야 올바른 궤적을 밟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