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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제국주의론》: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신 단계다

중·고교 교과서는 보통 제국주의를 19세기 후반~20세기 중엽까지 존재한 서구 열강의 식민지 지배로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 세계에서도 제국주의는 엄연히 현실이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자본주의 강대국 간의 갈등이 점증하고, 이 때문에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많은 좌파들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론이 아니라 평화주의를 받아들인다. 얼마 전 노동당이 “20세기 초반 개념”이라며 강령에서 제국주의라는 용어를 삭제한 것은 최근 사례 중 하나다.

ⓒ그래픽 조승진

물론 지난 1백 년 동안에 자본주의는 변했다. 공식 식민지는 몇몇 예외를 빼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레닌은 제2차세계대전에서 사용된 가공할 핵무기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제국주의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비롯해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제국주의 분석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독점

레닌은 《제국주의론》을 제1차세계대전이 한창인 1916년에 썼다. 그 책에서 그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특징의 발전이자 그 직접적 연장”이 제국주의라면서,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최신 단계”임을 강조했다. 즉,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발전 단계라고 규정한 것이다.

레닌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쓸 당시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자유경쟁을 ‘자연법칙’으로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생산과 자본의 집중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독점이 자유경쟁을 대체했다고 지적했다.

자본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윤을 계속 재투자하면서 덩치를 키우게 됐고, 약체 기업을 더 강하고 효율적인 기업이 집어삼켰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독점 기업(거대 기업)들이 경제를 쥐락펴락하게 됐다. 그리고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이 융합된 ‘금융자본’이 전례 없이 집중된 경제력을 구축했다.

이렇게 독점자본주의가 확립됐다고 해서 경쟁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윤과 시장점유율을 늘리려는 독점 기업들의 욕구는 자국 경제로 만족할 수 없다. 독점 기업들은 시장과 원자재 등을 놓고 세계시장에서 필사적으로 경쟁했다.

레닌은 이때 자본 수출이 중요해진다고 주장했다. 아시아·아프리카 등지의 저발전 지역이 대기업들의 원자재 공급원이자 투자 기회 제공처가 돼 줬다. 강대국의 자본가들은 잉여 자본의 상당 부분을 저발전 지역으로 수출했다. 그리고 거기서 막대한 이윤을 얻었다.

이제 경쟁은 국가들 사이의 군사적·지리적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독점 기업들과 연계를 맺은 국가들이 국익을 위해 해외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애쓰고, 그래서 독점 기업들 간의 경쟁은 세계 여러 지역을 차지하려는 국가들 간의 투쟁으로 발전했다. 그 결과,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세계를 분할하게 됐다.

이렇게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자본에 비례해”, “힘에 비례해” 세계를 분할하지만, 얼마 안 가 강대국들이 세계 재분할을 둘러싼 투쟁으로 나아간다고 레닌은 지적했다. 자본주의의 역동적 성격 탓에 경제 발전의 순위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균등 발전 때문에 정치적으로 강력한 국가의 순위도 바뀌게 된다.

그러면 한때 강대국들의 힘의 차이에 조응했던 기존의 ‘분할’은 더는 맞지 않게 되고, 신흥 강대국이 기존 강대국이 차지한 ‘전리품’을 다시 나눌 것을 요구할 것이다. 따라서 국가 간 합의는 휴지 조각이 되고, 강대국 간 갈등은 다시 커진다. 레닌이 보기에, 자본주의 체제에서 평화는 결코 항구적일 수 없고 전쟁과 전쟁 사이의 휴전(무장한 평화)일 뿐이었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정리해 보면, 그가 제국주의를 그저 강대국의 약소국 지배로 협소하게 이해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레닌이 보기에,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정상 상태에서 잠시 벗어난 일탈이 아니고 오히려 자본주의의 내재적 동학에서 비롯한 결과였다. 그리고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세계를 지배하려고 서로 경쟁하는 체제라고 봤다.

노동계급

물론 레닌의 《제국주의론》에는 약점도 있다. 예컨대,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이라는 ‘금융자본’ 개념은 당대 독일의 경제 상황에는 맞았지만, 영국 등 다른 제국주의 국가의 경제 상황에는 부합하지 않았다. 즉, 레닌은 당대의 ‘금융자본’ 구실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자본수출과 식민지 확장의 관계는 실제로는 레닌이 주장했던 것보다 더 불균등했다. 예컨대 당대 미국, 러시아, 일본은 모두 제국주의 국가였지만, 자본 수출국이 아니라 수입국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거대 기업과 제국주의 국가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미국은 가장 강력한 국가이지만, 중국·러시아 등 경쟁 강대국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그 경쟁이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즉,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나온 지 1백 년이 지났지만, 그가 본 제국주의의 핵심 특징은 변하지 않았다.

제국주의와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사회세력인 노동계급의 자력해방을 촉진시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주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결론이며, 핵무기 경쟁의 시대에도 그 점은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