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기 사건을 계기로 경찰 부패의 구조적 원인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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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광주지검과 경찰청 ‘장윤기 사건 진상규명 특별수사단’(이하 특수단)이 각각 별도의 영장을 받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를 압수수색했다. 장윤기 사건의 부실·은폐 수사에서 국수본이 관여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장윤기 사건 수사 형사들은 국수본이 장윤기의 여고생 살인 사건과 이전 성폭력 사건을 분리해 수사하라고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또한 두 사건을 통합해 수사해야 한다는 건의를 국수본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도 진술했다.
국수본은 단순히 경찰청 안의 한 수사부서가 아니라 전국 경찰 수사를 지휘·감독하는 수뇌부다. 국수본이 사건 축소·은폐에 실제로 관여했다면, 단지 한 지방 경찰서의 부패 문제에(이것도 작은 문제는 아니다) 그치지 않게 된다.
검찰과 특수단은 공무상 비밀 누설과 증거인멸 지시가 실제로 있었는지, 누가 어떤 근거로 지시했는지, 이것이 장윤기의 성범죄 목적과 계획범죄 정황을 축소하는 결과를 낳았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장윤기 사건 피해자 고 이채원 여고생의 어머니는 지난 8일 광주경찰청 1층 로비에서 열린 부실·은폐 수사 규탄 및 유착 경찰관 구속 촉구 기자회견에서 절규하듯이 이렇게 규탄했다.
“가해자가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건을 축소하고 조직적으로 은폐했다. 누구보다 엄정하게 수사해 우리 채원이의 억울함을 풀어 줄 것이라 믿었던 경찰이 우리 편이 아니라 살인마의 편이었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 보더라도 경찰의 장윤기 사건 축소·은폐 시도는 고 이채원의 어머니의 말처럼 조직적이었다. 광주 광산경찰서와 광주경찰청 내에서 장윤기 부친의 사건 축소·은폐 시도를 반대하거나 제지한 이는 없었던 듯하다. 오히려 다른 경찰관들도 장윤기 부친의 증거 인멸을 도왔고, 장윤기의 큰아버지인 또 다른 경찰 간부도 이 사건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리고 지금 경찰청 국수본이 받는 혐의도 있다.
장윤기의 흉악한 범행뿐 아니라, 경찰 지휘부의 부패 여부가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
“비리 근절과 민주적 통제 강화”?
이재명 정부에서도 경찰의 억압적 기능은 정상 작동하고 있다. 경찰은 반미자주파 활동가들을 압수수색했고,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과 연대자들을 체포해 연행했다.
CU 화물 노동자 파업에서는 경찰의 무리한 진압이 노동자 사망으로 이어졌다. 노동자를 죽게 한 대체수송 차량 운전자와, 경찰과 충돌한 화물연대 조합원들에 대한 형사처벌 절차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대체수송 차량의 출차를 위해 노동자들을 밀어내고 위험한 상황을 조성한 경찰 지휘 라인에 대한 처벌이나 징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성신여대 학내 투쟁의 주동자를 처벌하겠다며 남성 형사들이 여학생 원룸 자취방에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이재명 정부는 심화되는 정치 위기와 정치 양극화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을 사실상 강화해 왔다. 올해 초에는 바닥 정보 수집을 확대하기 위해 일선 경찰서 정보과를 되살렸고, 집시법을 개악해 경찰의 억압 기능을 뒷받침해 줬다. 경찰 인력과 예산도 대폭 늘렸다.
현재 이재명 정부는 장윤기 사건으로 불거진 경찰에 대한 불신에 대처하기 위해 (윤호중 행안부 장관의 발표를 통해) 여러 조처를 내놓고 있다. 행정안전부 산하인 국가경찰위원회의 산하에 민간 감찰기구를 설치하고, 경찰수사심의위원회를 법제화하고, 공소청(검사)의 보완수사 요구권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경찰 내부의 썩은 부분을 과감히 도려내 다시는 억울한 피해자가 눈물 흘리는 일이 없도록 근본부터 바로잡겠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런 조처들을 “경찰 수사 내부비리 근절 및 민주적 통제 강화 방안”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각 기구와 위원회가 실질적 조사 권한과 결정의 구속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반응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국가경찰위원회조차 행안부 산하 자문기구에 불과한데, 그 기구의 산하기구가 실질적 힘을 발휘할 성싶지 않다.
행안부와 공소청 모두 국가기구의 일부로, 기존 사회 관계와 질서를 유지하는 데서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그러므로 그 기구들이 가동되더라도 그 목적은 경찰의 정통성을 회복하는 데 있지, 경찰의 부패를 근절하는 데 있지 않다.
무엇보다 경찰 부패의 근본적 원인은, 경찰이 체제 수호 기관으로서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음에도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찰의 근본적 성격과 기능 때문에 “썩은 부분”을 도려낸다고 부패가 사라지지 않는다.
‘민주적 통제 강화’라는 그럴듯한 말 뒤에 숨겨진 진짜 목적은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안정적 작동을 위해 경찰에 대한 불신이 더는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민주적 통제가 이뤄지려면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선 아래로부터 대중의 권력이 등장해야 한다.(관련 기사: ‘장윤기 사건과 관련된 정치적 쟁점들’의 6절)
권력이 큰데도 통제받지 않는다
경찰 부패는 낯설지 않다. 2019년 버닝썬 사건은 경찰과 강남 클럽·유흥업소 사이의 유착 문제를 드러냈고, 일부 경찰관이 업소 관계자들의 부탁을 받고 단속 정보를 확인하거나 전달한 사실도 밝혀졌다.
2007년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의 보복 폭행 사건에서는 최기문 전 경찰청장의 청탁을 받은 현직 경찰 간부가 현장 수사팀에 철수를 지시했다. 경찰은 피해자와 목격자를 조사해 구체적인 첩보보고서를 작성하고도 수사를 중단·지연했고, 사건 발생 약 한 달 반 뒤 언론 보도가 나온 뒤에야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그 밖에도 경찰 부패 사례는 (밝혀지거나 의혹의 대상이 된 것만도) 너무 많다.
경찰 부패는 일부 비위 경찰관을 적발해 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경찰 조직 자체가 부패의 화수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경찰은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다. 특히 정보력과 수사권이 경찰 권력의 핵심이다.
경찰은 신고, 순찰, 민원, 동향 조사 등을 통해 일상적으로 전국과 지역의 정보를 수집한다. 범죄 의심 신고, 노동 쟁의, 좌파 동향, 지역 내 갈등, 사업가와 정치인의 인맥 등 갖가지 정보가 경찰 조직 내에 공식·비공식으로 축적된다.
경찰의 정보 수집 권한은 법으로 보장된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은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한 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를 경찰의 주요 직무로 명시한다. 구체적 범죄 혐의가 파악되기 전부터 공공안녕을 명분으로 정보 수집과 분석, 신원 조사 등을 진행한다. 그리고 범죄 혐의가 구체화되면 경찰은 강제력을 동원해 더욱 구체적이고 광범하게 정보를 수집한다.
경찰은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수사에 착수하며 인적·물적 조사를 병행한다. 사건의 송치 여부를 결정할 권한도 행사한다. 특정 사안이 사건화되는지 여부를 경찰이 결정하며, 경찰의 발표는 곧 공식적 사실로 굳어진다.
경찰의 수사 재량도 막강한 권력이다. 의도적으로 수사를 소홀히 하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확대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즉, 수사의 범위와 강도가 선택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
경찰 수사의 선택적 집행은 흔히 계급 차별적 양상을 띤다. 노동자 등 서민층이 입은 피해는 소홀히 다뤄지거나 무시되는 경우가 잦다. 2018년 ‘불편한 용기’ 시위 참가자들은 경찰에 불법 촬영 피해를 신고해도 묵살당하기 일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반면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피해를 수사할 때는 효과적으로 움직인다.
경찰은 “국민의 재산을 보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민이 일상에서 겪는 소액 절도나 사기, 임대차 피해는 수사팀의 과부하나 민사 사안이라는 것을 이유로 지연되거나 외면받기 십상이다. 수사 자원은 대개 고액·대형 사건이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재산 범죄에 집중된다. 특히 노동자 파업으로 기업주의 재산권이 침해될 때 경찰은 신속하게 개입한다.
경찰의 수사 과정은 보안을 이유로 외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수사 보안의 필요성을 일부 인정하더라도, 이것이 조직의 보신주의와 결합하면 위법 행위나 부실 수사, 직무 유기를 은폐하는 명분이 돼 버린다.(“수사 중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
이러한 막대한 정보 수집력과 수사 재량은 유착과 비리로 이어지곤 한다. 경찰과 유착하면 첩보 누락, 참고인 조사 제외, 수사 범위 조정 등 다양한 특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기업, 고위 관료, 지역 유지, 언론사주 등은 경찰과 긴밀한 인맥을 형성하려 하고 실제로 그렇다.
요컨대 경찰의 막강한 권한이 부패의 토양이 된다.
도돌이표
경찰 부패가 반복됨에도 그 권한이 통제받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경찰 부패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경찰은 권한과 강제력을 정당화하고자 자신들의 과오와 부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경찰의 내부 감찰은 진실 규명과 조직 쇄신이 아닌 조직의 권위 보호를 위해 작동한다. 부패의 진상을 밝히기보다 내부 고발자 보복, 보신주의에 따른 사건 축소, 꼬리 자르기로 대응하기 일쑤다.
상명하복 문화와 위계질서 역시 자정 작용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경찰관 개인은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기보다 직속 상관과 조직에 충성한다. 상급자의 인사·징계권과 ‘제 식구 감싸기’ 문화는 양심적 내부 고발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경찰의 위계질서와 상명하복 문화는 (뒤에서 얘기할) 경찰의 억압적 기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정부와 경찰 지휘부의 결정을 일선 경찰관들의 통일된 물리력으로 일사불란하게 이행하려면 그 과정에서 생기는 내부 이견과 양심적 거부를 억눌러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경찰 부패의 핵심 원인은 민주적 통제의 부재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기구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체계적으로 억압된다. 핵심 기구일수록 민주적 통제에서 면제되며, 선출되지 않는 관료들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자본주의 국가는 중립적 기구가 아니라 계급 사회에서 생겨난 계급 지배의 도구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군대, 경찰, 법원, 교도소 등 ‘특수한 무장 조직’이 국가기구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자본주의 국가의 핵심적 억압기구다. 지배계급의 이익과 체제를 수호하는 것이 경찰의 핵심 목적이다.
그런 중요성 때문에 지배계급은 경찰의 권위와 강제력을 보존하려 한다. 물론 경찰 부패가 국가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해칠 때는 일부를 처벌하기도 한다. 그러나 체제 수호에 필요한 경찰의 권위를 약화시킬 정도로 경찰 조직 전체의 책임을 추궁하지는 않는다.
사법부와 검찰이 경찰의 불법 행위를 처벌하기도 하나 이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다. 검찰과 경찰은 앙숙처럼 경쟁·갈등하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질서와 국가기구의 권위를 수호하는 데서는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그래서 검찰과 사법부가 경찰을 수사하더라도 부패의 구조적 원인을 파헤치지 않고, 일부 지휘 간부나 일선 경찰관의 일탈로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부패 근절보다 국가기구에 대한 신뢰 유지가 핵심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국가기관들도 경찰의 권력 행사를 필요로 한다. 검찰은 경찰의 수사에, 법원은 경찰이 확보한 증언과 증거에 크게 의존한다. 정부도 시위와 파업을 억제하기 위해 경찰을 동원한다.
경찰은 자본주의 질서와 자본가 계급의 권력을 지키려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는다. 이 같은 역할 때문에 부패가 반복돼도 경찰 조직은 존속되며 면책을 받는다.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본질적 성격과 작동 방식이 경찰 부패가 반복되는 근본적 이유다.
경찰은 왜 생겨났는가
경찰의 역사적 기원은 그 근본적 성격을 이해하는 열쇠다.
근대 경찰은 자본주의 발전으로 도시 인구가 집중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자본가 계급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노동계급을 도시로 불러 모았지만, 동시에 공장에서 집단적 노동을 하며 도시에 밀집한 노동계급의 소요와 파업을 두려워했다. 자본주의의 부를 생산하는 노동계급의 대규모 저항은 체제를 위협하는 방향으로 성장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 등장 전에는 노동계급 투쟁을 막으려 군대를 동원했다. 그러나 군대의 사병들은 배경이 비슷해 노동자의 불만에 동조할 위험이 있었다.
또한 전쟁용으로 조직된 군대는 진압이 아닌 살상을 목적으로 훈련받는데, 살상은 자칫 대중의 분노에 불을 붙여 더 큰 저항을 부를 수 있었다.
근대 경찰이 처음 탄생한 곳은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발전한 영국이었다. 1829년 영국 런던에서 광역경찰청이 창설됐다. 이후 영국에서는 차티스트 운동, 1926년 총파업, 1970~1980년대 광원 파업 등 계급투쟁이 고조될 때마다 경찰력이 대폭 확대됐다.
경찰은 군대보다 더 효과적으로 노동계급 투쟁에 대처했다. 총알 대신 경찰봉으로 해산시키고, 주동자만 체포하며, 파업 파괴자를 보호하는 식이다.(물론 숱한 사람들이 그동안 경찰 폭력으로 살해됐다.)
거기에다 경찰은 치안 기능도 수행하면서 경찰의 필요성에 대한 대중적 동의를 획득하기도 했다. 계급투쟁이 첨예해지면 경찰 본연의 임무가 밝히 드러나지만 말이다.
한국 경찰의 기원
한국 경찰도 국가와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한국 경찰의 뿌리는 미군정경찰이다. 군정경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안진, ‘미 군정경찰의 형성 과정과 그 성격에 관한 고찰’, 한국사회사학회, 1988.)
미군정은 해방의 염원과 저항이 분출하던 불안정한 정국에 대처하고자 친일 관료를 대거 등용해 국가기구를 재정비했다. 이어서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수 있는 중앙집권적 경찰기구를 창설했다.
경찰력은 대규모로 증강됐다. 해방 직전 한반도 전체에서 1만여 명이었던 조선인 경찰은 해방 후 3개월 만에 남한 지역에서만 1만 5,000명으로 늘었고, 1946년 말에는 2만 5,000명으로 늘었다. 남한 단독 정부 수립 직전에는 4만 5,000명에 이르렀다.
군정경찰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파업과 제주 4·3 항쟁을 진압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이는 정부 수립 이후 한국 경찰의 모태가 됐다.
이후 한국 경찰은 내무부 산하 치안국을 거쳐 1974년부터 치안본부로 개편돼 독재 정권의 수족 노릇을 했다. 박종철을 고문치사하게 했던 것도 치안본부 보안수사대였다.
1991년 경찰청 체제로 바뀐 뒤에도, 민주당 정부들 하에서도 경찰은 자본주의 질서와 계급 지배를 지키는 역할을 해 왔다.(본지 427호 기사 ‘경찰국 신설 논란을 계기로 보는: 경찰의 흑역사’를 보시오.)
경찰의 부패·무능·무책임을 다루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 추천
- 영화 〈부당거래〉(2010): 경찰이 실적과 조직 보호를 정의보다 우선하는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또한 경찰과 검찰의 경쟁이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다툼이라는 점을 풍자한다.
- 드라마 〈비밀의 숲 2〉(2020): 검찰·경찰의 수사권 문제와 경찰의 조직적 부패를 다룬다.
- 드라마 〈괴물〉(2021) — 경찰 조직의 침묵과 자기보호 문화를 잘 묘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