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노동자 연대〉 구독

전투적인 노동계급 투쟁에 참가하거나 체제에 저항하거나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다 보면 국가의 권력에 직면하게 된다. 경찰은 우리가 시위를 벌이면 가까이서 감시하다가 우리가 통제를 따르지 않거나 어느 수준 이상으로 투쟁적이 되면 우리를 체포한다. 지난해 노동자 대회 때도 경찰은 집회장에 폭력적으로 난입해 십여 명을 연행했다. 법원은 체포된 활동가들에게 유죄를 선고하거나, 파업 노동자들이 사측에 막대한 액수의 손해 배상금을 내라고 판결한다. 국가 관료는 우리를 옭아매는 그 법들을 집행한다.
우리는 지난해 윤석열이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겠다며 군부와 경찰 등 국가 기관들을 동원해 일으킨 군사 쿠데타 미수 사태도 목도했다. 국회 다수파인 야당의 입을 막고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노동자 운동을 탄압하려는 것이었다. 계엄 포고령에는 파업과 시위 금지도 명시돼 있었다. 쿠데타가 실패한 후에도 쿠데타에 동조한 국가 기관들과 그 주요 인물들은 버젓이 활보하고 있다. 국회 봉쇄를 지휘한 경찰 지휘관들은 승진해 요직에 배치됐고, 검찰과 국정원의 쿠데타 연루 의혹 수사는 오리무중이다.
그런 만큼 국가의 본성과 근원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삶은 계급과 계급 분단의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에 남긴 유명한 구절처럼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였다.” 그 역사에는 피착취 계급의 반격도 있다. 고대 로마의 노예 반란이나, 중세의 농민 반란, 오늘날의 노동자 파업이 그런 사례다.
계급 적대의 산물
계급 사회에서 지배 계급은 늘 피지배 계급을 억압하려고 애써 왔다. 이를 위해 지배 계급은 역사에 따라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왔다. 오늘날 지배 계급은 대중을 각개격파하려고 이간질하는 선전을 미디어에 맡길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지배 계급은 여전히 폭력과 강제력을 동원한다.
국가는 계급 적대의 산물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처음 지적했듯이 국가는 “무장한 자들의 특별한 기구”로 이뤄져 있다. 감옥과 경찰, 군대, 사법부 등의 선출되지 않은 관료 기구들이 국가의 강제력을 이룬다. 국가는 “합법적 폭력”을 독점한다. 2009년 용산참사는 이를 보여 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경찰은 철거민 32명이 농성 중인 옥상에 무리하게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6명이 사망했다. 같은 해 경찰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평택 공장 점거 농성장에도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강제 진압했다. 경찰은 유독성 최루액이 섞인 물 20만 리터를 헬기로 살포하고 대테러장비인 테이저건과 다목적 발사기를 노동자들에게 사용했다. 그 작전은 이틀 동안 계속됐다.
미국, 영국과 같은 서구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도 자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폭력을 동원한다. 트럼프는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를 폭력 진압했고, 무장한 이민세관단속국(ICE) 병력을 동원해 주요 활동가들을 납치·구금하고 있다. 2022년 3월 영국에서는 경찰에 의해 살해된 사라 에버라드를 추모하는 촛불 집회를 경찰이 곤봉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프랑스 정부의 악명 높은 시위 진압 경찰 브라브엠도 시위대의 실명과 사지 절단까지 초래한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악명이 높다.
이것은 어떤 일탈적 현상이 아니다. 한국은 물론 서구의 국가들도 평범한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둘러 온 오랜 역사가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국가는 반전 시위 학생들을 사살한 바 있다. 1970년대 영국에서는 나치 정당인 국민전선에 맞서는 운동이 일어났을 때 교사이자 반나치 활동가인 블레어 피치가 경찰 특수부대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1961년 프랑스 경찰은 당시 파리에서 알제리 독립을 요구하는 수많은 알제리인 시위대를 공격해 200여 명을 센강에 빠뜨려 죽였다. 그런 사건이 벌어지면 국가의 관료 기구들은 사태의 전말을 축소·은폐하거나 왜곡하려 한다. 현재 프랑스 정부는 1961년 사망한 알제리인 중 40명의 죽음만 인정하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지배계급들은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국가의 권력을 이용한다. 서방 국가들은 특히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대해 야만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스라엘의 식민 정착자 국가를 온갖 무기로 무장시켜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말살하려 하고 미국 제국주의의 경비견 구실을 하게 한다.

국가는 언제나 있었던 것인가?
국가는 언제나 있었던 것이라는 가정이 흔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역사 속에서 인류는 원시적 혈연 집단이나 씨족 등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조직화하지 않았던가? 그런 것들은 국가가 아닌가?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고 썼다. 그렇다면,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기 위한 국가도 늘 있었다는 말인가?
여기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말한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사회”는 계급 사회를 뜻한다. 나중에 엥겔스는 그 구절에 주를 달아서 그것이 “기록된 역사”에 한정되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회는 계급이 등장하기 전에도 있었다. 마르크스는 그런 사회를 “원시 공산주의”라고 불렀지만 “계급 발생 전 사회”라고 부르는 것이 더 쉬울 듯하다. 계급 발생 전 사회를 결코 이상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사회의 존재는 계급, 착취, 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가 가능함을 보여 준다. 그런 사회에는 여성 차별이 없었다. 그런 사회에 여성 차별이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인류학적 증거는 없다.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도 없었다.
근본적으로, 계급 발생 전 사회에서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 위에 군림하는 일이 없었다. 애초에 계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의 표현을 빌리면, 그런 사회에는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해 그들을 지배하고 지배를 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이 없었다. 이처럼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국가도 없었다. 계급 발생 전 사회에는 피지배 계급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굴복시키기 위한 감옥, 경찰 등의 기구도 없었다.
“무장한 자들의 특별 기구”
통제와 강압을 위한 특별한 기구인 국가는 사회가 계급으로 나뉘면서 비로소 생겨난 것이다.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국가가 등장한 과정을 파헤친다. 엥겔스는 정착 농경의 발전 덕분에 사회에서 “잉여”가 생산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생산 방법에는 더 많은 계획이 필요했고, 그걸 위해 사회 구성원 일부가 고된 노동을 짊어지지 않게 됐다.
잉여를 관리하는 집단은 세월이 흐르면서 계급을 이뤘다. 사회의 소수가 나머지 사람들의 노동에 의지해서 살아가면서, “무장한 자들의 특별한 기구,” 즉 국가가 필요하게 됐다. 레닌이 설명했듯이, 국가는 “화해 불가능한 계급 적대의 산물이자 표현”인 것이다.
시대에 따라 계급이 변화하면서 국가도 변화했다. 고대 그리스나 고대 로마와 같은 노예제 사회의 근본적 분단선은 노예와 노예주 사이에 있었다. 한편, 봉건 사회의 근본적 분단선은 농노와 영주 사이에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싸우는 영주들이 농노 위에 군림했지만, 나중에는 중앙집권적 절대 왕정이 등장했다. 그러나 그 구조가 무엇이든 간에 지배 계급은 국가를 계급 지배 수단으로 이용했다.
자본주의 국가
그 후 봉건제는 자본주의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도 계급 착취에 기반을 둔 또 다른 계급 사회였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일컫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자본주의 발전에 장애물이 되는 낡은 절대 왕정 국가를 분쇄했다. 그 혁명은 유럽 전역에서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우세해지는 조건을 조성했다.
산업혁명과 무역의 어마어마한 확대, 제국의 확장을 위한 노력은 새로운 계급의 형성을 촉진했다. 이 새로운 계급을 “부르주아지” 또는 쉬운 말로 “자본가 계급”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썼듯이, 자본주의는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도 만들어 냈다. 바로, 사용자들에게 이윤의 원천이 되는 노동계급이 그들이다. 대도시에 모여 살게 된 노동계급은 사용자들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부르주아지는 국내와 국외에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산업혁명을 이끈 영국에서는 19세기 초에 강압과 통제의 새로운 수단으로서 직업 경찰이 생겨났다.
오늘날 지구상에 자본주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나 권위주의적 국가 등 국가는 상이한 형태를 띠지만 모두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국가들은 민주주의 국가를 자처한다. 보통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국민의 정부,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5년에 한 번 투표 용지에 기표하면 15분 만에 끝나는 민주주의는 극도로 형해화된 형태의 민주주의다. 의회제 민주주의는 경제에 관한 중요한 결정들을 노동계급 사람들이 아닌 대기업들에 맡긴다. 국회의원들은 일단 선출되면 유권자에게 책임을 거의 지지 않는다. 그리고 국회의원을 제외한 판사, 군 장성, 경찰청장 등 국가 내의 선출되지 않는 중요한 직책들이 강력한 관료 기구를 이루며 대기업들과 한통속이 돼 활동한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서구의 많은 국가들은 사회 보장을 크게 확장했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달래야 한다는 위기감과 전쟁의 참상에 직면해 국가는 의료 서비스, 복지, 교육을 확대했다. 1943년 영국 보수당의 한 원로는 이렇게 말했다. “국민에게 사회 개혁을 선사하지 않으면 국민이 사회 혁명을 선사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이러한 기능들도 자본 축적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도입된 것이다. 보편적 의료 보장은 노동자들을 비교적 건강하게 해, 더 생산적이고 더 효율적이게 한다. 교육 제도는 현대 자본주의에 필요한 교육받고 숙련된 노동력 인구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교육 제도는 지배 계급에 이로운 이데올로기적 기능도 한다. 친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자국 역사와 ‘민족’에 관한 신화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노동자들도 이러한 개혁들에서 득을 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국가의 계급적 성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어떤 국가들은 더 자유주의적 외양을 띤다. “무장한 자들의 특별한 기구”는 무장한 남녀의 특별한 기구가 되기도 한다. 어떤 국가는 더 진보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권력에 도전하면 국가는 자신의 기구들을 동원해 우리를 짓밟을 것이다. 미국의 전임 대통령 바이든은 재임 당시 말로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고 떠들면서 해외의 유색 인종을 폭격하는 것은 얼마든지 승인했다. 진보적 외양을 띠더라도 국가는 여전히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는 수단인 것이다.

마르크스의 국가관은 어떻게 변했는가?
국가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사회에 필요하다는 주장이 흔하다. 17~18세기의 초기 자본주의 철학자들은 ‘인간 본성’을 근거로 그런 주장을 폈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살던 시기에 흔한 주장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널리 받아들여진다.
1830년대에 저술 활동을 시작한 마르크스는 처음에는 국가를 “시민사회”의 갈등에서 중립적이고 시민들의 “공통의 이익”을 나타내는 것으로 봤다. 당시 마르크스는 헤겔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청년 헤겔주의자들”로 알려진 급진적 헤겔 지지자의 한 명이었다. 당시 마르크스가 살던 독일은 절대 왕정이 지배하는 봉건적인 나라였다. 젊은 마르크스는 프랑스 대혁명을 우러러보며 그 혁명을 모범 삼아 독일에서 민주공화국을 건설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계급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 분석을 발전시키면서 국가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해도 달라졌다. 1830년대에 마르크스는 자유주의적 자본가들과 동맹을 맺고 민주개혁을 성취하려 했다. 그러나 이내 마르크스는 구질서의 지주들과 신흥 기업인들이 사유 재산을 지키는 데서 계급적 득을 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기존 국가를 넘겨받아 사회주의적 변화를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국가관은 1871년 파리 코뮌의 영향을 받았다. 파리 코뮌은 노동자들이 일시적으로 권력을 장악해 최초의 노동자 국가를 세운 사건이었다.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이 “노동계급이 그저 기존 국가 기구를 장악해 자신에게 이롭게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 줬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대혁명 다음에 올 대혁명은 관료·군사 기구를 그저 한 세력의 수중에서 다른 세력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기구를 “부스러뜨리는” 혁명일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강조했다.
노동자 평의회
혁명이 일어나면 노동계급 사람들은 대안적 지배 기구가 될 잠재력이 있는 자신들의 민주적 기구를 세운다. 러시아 혁명 때는 소비에트(노동자 평의회)가 바로 그런 기구였다. 1970년대의 이란 혁명에서도 노동자 “쇼라”라고 하는 그와 비슷한 기구가 잠깐 등장했다. 이런 기구들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를 민주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한다. 근래의 수단 혁명에서도 이와 비슷한 저항 위원회가 등장했다.
이러한 평의회들은 노동자들이 일터를 통제하는(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면 “생산수단을 장악하는”) 첫 단계이자,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내는 첫 단계다. 그런 평의회들이 결집해 러시아 혁명에서처럼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경우 그 기구들은 노동자 국가의 기반이 된다.

노동자 국가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다음 물음을 던져야 한다. 자본주의 이후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다 해도 즉시 계급 없는 공산주의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혁명이 성공하고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장악하면 자본가들은 경제적·정치적 권력을 빼앗기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절치부심하며 권력을 되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또, 혁명이 아직 성공하지 않은 나라들의 자본가들도 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때 이런 상황은 혹독한 내전으로 이어졌다. 영국, 미국 등 전 세계 14개 제국주의 국가의 군대가 혁명 러시아를 침공해, 권력을 되찾으려는 백군과 같은 편에서 싸운 것이다. 간단히 말해, 혁명이 성공하더라도 이러한 반혁명적 세력에 맞설 방법이 필요하다.
이처럼, 혁명이 성공하더라도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는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가 계급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배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수를 상대로 폭력과 강제력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살인을 훈련받은 소수 전문가들이다. 예컨대 경찰은 자본주의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훈련받고, 인종차별 등 지배계급의 관념에 찌들어 있으며, 노동계급 구성원들을 “용의자”로 보도록 교육받는다. 노동자 국가에서는 노동자 대중과 분리된 무장 집단이 없을 것이다. 노동자 시민군은 노동자 대중에게 책임지지 않는 장교단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이 직접 선출한 대표자들로 운영될 것이다.
이 새 국가는 노동자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혁명 과정에서 생겨나는 노동자 권력 기관을 이용할 것이다. 노동자 민주주의가 없으면 노동자 국가일 수 없다. 이는 혁명 러시아에서 스탈린이 일으킨 반혁명을 보면 알 수 있다. 스탈린의 반혁명은 노동자 통제를 폐지하고 소련을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만들었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점은 노동자 국가는 영구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국가는 “시들어 없어질 것이다.” 국제주의와 노동자 지배가 기존 질서를 대체해 사회주의가 전 세계에서 우세해지면 옛 지배 계급은 사라질 것이다. 노동자 국가가 반혁명 세력을 억누르는 데 이용하던 수단들은 서서히 쓸모없어질 것이다. 억눌러야 할 반혁명 세력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를 두고 “국가가 시들어 없어진다”고 했다. 엥겔스는 이렇게 썼다. “국가가 사회 관계에 개입하는 일이 일정한 영역에서 불필요해지고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고 그런 뒤에는 다른 영역들에서도 잇달아 그렇게 될 것이다. 인간을 다스리는 통치는 업무를 조율하는 행정으로 대체될 것이다.” 강압의 필요성은 사라질 것이고, 노동자 평의회들이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어떻게 생산하고 자원을 배분할지 결정하는 시스템만이 남을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범죄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사람들의 필요가 충족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일자리가 있고 삶에 필요한 것들이 제공될 것이므로 절도나 강도를 벌일 필요가 사라질 것이다. 난폭 운전이나 공공기물 훼손과 같은 범죄들도 줄어들 것이다. 삶을 충만하게 하는 활동을 부담 없이 할 기회가 더 많이 제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사회는 그 밖의 폭력 범죄나, 차별에서 비롯하는 범죄의 사회적 근원도 제거할 것이다.
이러한 풍요와 평등한 분배 속에서 화폐도 사라질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는 화폐야말로 맨 마지막으로 “시들어 없어질” 것으로 봤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것을 누릴 수 있는 사회에서는 돈이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사회가 “능력에 따라 기여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썼다. 이것이 우리의 목표다. 즉, 착취를 폐지하고 차별의 근원을 제거해 평등과 정의와 자유에 기초한 사회를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기성품처럼 미리 만들어진 유토피아” 같은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평등하고 정의롭고 자유로운 사회는 아래로부터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사회는 당장 이뤄지지 않겠지만 국가가 시들어 없어지고 사회주의 사회가 전개되면 점차 현실이 될 것이다.
국가는 수천 년 전에 생겨났다. 국가는 권력을 갖게 됐고 오늘날에는 자본주의의 무기가 돼 있다. 국가는 노동자들의 권력 장악을 한사코 저지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러한 국가를 부스러뜨려야 한다. 그러면 사회의 계급 적대가 해소되면서 노동자 국가도 서서히 사멸할 것이다. 이를 가장 잘 요약한 레닌의 말이 있다. “국가가 있는 한 자유도 없을 것이다. 자유가 있는 곳에서 국가는 없어질 것이다.”
이 글의 원작: Sky Harrison, ‘Marxism 101: What’s the role of the state?’ (2022. 1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