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된 노동 개악에도 사회적 대화 추진으로 시간 허비하는 민주노총 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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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지도부는 7월 23일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에서 ‘사회적 교섭 논의 건’을 상정해, 기존 경사노위와 다른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 구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새로운 사회적 대화 추진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인공지능(AI) 산업 전환 대응이다. 6월 29일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한 것이 민주노총 지도부의 사회적 대화 참여를 특히 자극한 듯하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정부가 추진 중인 국가AI전략위원회, 메가프로젝트 등 굵직한 정책들이 노동계 참여 없이 논의·결정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정부의 일방통행식 독주가 아닌, 노동의 목소리를 담아낼 사회적 대화 기구 마련이 절박하다”는 점을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의 필요성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최근까지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 추진 상황은 지지부진하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가 “(정부의) 일방적 결정과 (노동조합의) 거수기 전락을 막기 위해 참여 주체들의 충분한 숙의와 토론을 보장하는 합의제 방식”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당연한 말이다. 노사정 대화를 수차례 경험한 대다수 조합원들은 여전히 사회적 대화가 시한을 정해 놓고 ‘합의’를 압박하는 정부 정책 추진 수단으로 여긴다. 상대가 민주당 정부임에도 기대가 크지 않은 이유다.
그래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전원합의제 방식의 사회적 대화 기구 설치를 위해 정부와 경사노위법 개정 등을 논의하고, 8월 20일 중집에서 이를 점검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정부와의 논의가 진척되지 않아 협의 기간을 연장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부 장관 김영훈은 민주노총 8월 중집을 하루 앞둔 8월 19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야 이렇게 밝혔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 복귀 내부 논의를 시작한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고, “(경사노위) 운영 방식을 전원합의제로 해 대화를 활성화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9월 3일 이재명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이뤄진 양대 노총 위원장과의 차담회에서 정년 연장 연내 입법과 함께 양대 노총이 모두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복원을 강조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가 제기한 ‘숙의형, 합의제 사회적 대화’는 시작도 하기 전에 삐걱거리고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를 요구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은 7월 말, 메가특구 관련 법률에 “기간제 노동자 사용 기간을 현행 2년에서 최대 4년까지 확대, 파견 허용 업종도 늘리고, 연구개발 직군에 대해선 주 52시간 노동상한제 적용을 제외하는” 노동 특례가 검토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물론 민주당은 메가특구 노동 특례가 확정된 것은 아니라며 노동계와 협의를 이어 가겠다고 밝혔다. 8월 초에 김영훈 노동부 장관이 양대 노총 위원장과 비공개로 만나 일방적인 추진을 하지 않겠다고 달랬다.
그러나 9월 7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민주당 대표 김민석은 “정기국회 최우선 입법으로 메가특구 특별법을 통과시키겠다”면서, “중국 등 경쟁국과 상대할, 효율적인 인력 운용 실현 방안”(노동 특례)을 ‘8자 회의’(중앙정부·지방정부·국회·지방의회·대학 및 시민사회·기업·노동계 등)에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8자 회의는 노사정 대화보다 노동계 몫이 대폭 줄어드는 것이고, ‘숙의’는커녕 국회 일정에 종속된 논의 틀이 될 것이다. 즉, 시한을 정해 놓고 합의를 압박하면서, 사회적 대화를 정부 정책 추진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점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줬다 뺏기 노동 개악
마찬가지로, 고용노동부는 영업이익 N퍼센트 성과급 요구를 교섭 대상에서 제외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시행지침을 발표했다. 대통령과 양대 노총 위원장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차담회를 한 날이었다.
공장 신설·이전, 사업 매각·인수, 인공지능 등 신기술 도입 등 경영상 결정도 교섭 대상에서 배제됐다. 하청 노동자들이 기대한 원청 교섭이 사실상 겉도는 상황에서, 파업권과 교섭권마저 후퇴시킨 셈이다.
이재명 정부는 국회 입법 협상 과정에서 누더기가 되는 우여곡절 속에서 그나마 몇 개 지켜낸 노란봉투법의 개혁적 조항마저 시행지침 변경으로 무력화해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줬다 뺏는 노동 개악이다.
그런데 정부의 노란봉투법 개악 지침 발표가 이미 예정돼 있었는데도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통령과의 차담회에 참여해 사회적 대화를 요구했다.
일부 대기업 노조가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삼성전자노조가 호남 반도체 메가프로젝트를 단체교섭 의제로 삼겠다고 밝힌 뒤, 이재명은 두 쟁점 모두 “쟁의 대상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때부터 이번 개악은 예견된 것이었다.
이뿐 아니다. 최근 발표된 내년 예산안에서 보듯이, 정부는 200조 원가량으로 예상되는 추가세수 대부분을 재정 적자 감축, 미래대응기금 등 기업 지원에 사용하기로 했다. 반면, 민주노총은 AI 산업 대전환 관련 사회적 대화에서 AI·반도체 호황으로 거둔 추가세수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분배할지도 주요 의제라고 주장해 왔다.
7월 28일 민주노총을 방문한 기획예산처 장관 박홍근에게 양경수 위원장은 “기업의 이익과 초과 세수를 어떻게 나누고 사회로 환원할 것인가는 이재명 정부의 성패를 가를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재정 지출이 불평등과 양극화 해결에 주로 쓰여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투쟁과 대화 병행? 무엇이 우선인가?
정부의 계속된 개악 추진에 민주노총 지도부가 대응하는 것을 보면, 투쟁과 대화를 병행한다는 노조 지도자들의 흔한 주장이 얼마나 무력한지 드러난다.
대화가 진행 중일 때 지도부는 대화가 결렬되지 않도록 투쟁 수위를 스스로 조절해야 하고, 투쟁에 나서야 할 상황에서는 협상 파트너가 대화의 신뢰가 깨진다고 압박한다.
그래서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의 불만 때문에 투쟁에 나섰다가도 어떤 시점에서 투쟁을 중단하거나, 투쟁 수위를 하향 조정한다. 요컨대 투쟁과 대화의 병행은 동반 상승하는 효과를 내기는커녕 투쟁을 확대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최근 민주노총 지도부는 새로운 사회적 대화 추진에 몰두하느라 정말 소소한 항의 행동조차 자제해 왔다. 예를 들어 메가특구법 노동 개악이 발표되자 항의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양대 노총은 노동부 장관과의 비공개 만남 이후 기자회견마저 연기해 버렸다.
노란봉투법 개악 지침이 발표된 뒤에도 민주노총은 전국 지역고용노동청 등에서 농성에 들어가는 형식적인 항의 행동에 그치고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숙의와 전원 합의 방식으로 AI 산업 대전환에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겠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이에 아랑곳 않고 일방적으로 개악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 제의가 “정부의 일방통행식 독주”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그 때문에 정부에 끌려다니며 두들겨 맞고 있는 형국이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9월 4일 민주노총 출신 김경자 청와대 사회수석에게 “과연 정부가 노동자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있는가 의구심이 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발표와 추진이 계속된다면 민주노총으로서는 대화와 협력을 이야기하기보다 투쟁을 우선하거나 저항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위협은 실제 행동으로, 만만찮게 나타나지 않는 한 상투적인 말로 여겨질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반노동 정책이 노골화할수록 사회적 대화에 참가해야 최악이라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전호일 민주노총 대변인(부위원장)은 사회적 대화에 대한 우려에 대해 “정부의 노동정책에 우려할 내용도 있지만, 그럴수록 더 대화하며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말도 상투어다.
그러나 정부가 속도전을 운운하는 상황에서는 대화가 개악의 시간을 끄는 효과조차 누리기 힘들다.
이런 제안은 기존의 노사정 대화와 마찬가지로 민주노총을 ‘답정너’ 식 결말로 끌고 가거나, 기껏해야 알량한 보완책에 타협하게 만들어 개악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뿐이다. 만약 민주노총이 지금 사회적 대화에 참가한다면, 메가특구법 노동 개악이나 노란봉투법 개악 지침 논의에서부터 이런 조건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각종 개악 속도전
이재명은 차담회에서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 복귀 논의를 시작한 것을 환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노동의 AI(인공지능) 전환, K자형 양극화 해소 등 노사정이 함께 풀어야 할 국가적 과제가 산적한 만큼 양대 노총이 모두 참여하는 온전한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아달라.”
그러나 앞서 봤듯이, 이재명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대화 테이블에 앉히려 하지만, 그 요구는 별로 존중하지 않고 각종 개악을 마구 추진하고 있다. 9월 3일 양대 노총 위원장들과의 차담회를 하는 날, 노란봉투법 개악 지침을 발표했고, 9월 4일 시민단체 초청 간담회 날에는 이란 전쟁 파병 검토 입장을 내놨다.
이재명 정부가 사회적 대화 추진으로 노리는 것은, 노동자들의 불만을 자아낼 정책을 더 원만하게 추진하기 위해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을 사회적 대화에 묶어 두려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대화 제스처만 취할 뿐, ‘속도전’ 또는 ‘전격전’을 강조하며 경제 살리기(자본 축적)에 매진하고 있다. ‘속도전’과 ‘전격전’을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에게 사회적 대화가 거추장스러울 것이다.
이는 경제적·지정학적 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은 반도체 대호황으로 3퍼센트가 넘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한국 국가의 걱정거리는 ‘잠재성장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AI이 거품이 터질까 봐 세계경제 전망도 불안하다. 미국·프랑스·영국·일본 등 주요국의 국가 부채 위기도 세계경제에 어마어마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는 이란·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하면서 지정학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런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 이란 전쟁 파병 추진, 대미 투자 등으로 한미동맹을 고려하면서 줄타기를 하려 하지만, 미·중간 제국주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어 줄타기 여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처럼 세계와 한국 경제의 성장률 둔화가 예상되고 지정학적 갈등도 커지자 이재명 정부는 ‘국가경쟁력’ 강화에 몰두하고 있다.
이재명이 대선 때부터 특히 강조한 것은 AI, 에너지, 방위 산업 투자였다. 지금 추진 중인 메가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AI가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데서 핵심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메가프로젝트의 신속한 실행과 성공을 위해 노동자들의 희생을 얻어 내려 한다. 또, ‘사회적(노·자 계급 간) 평화’ 분위기를 만들어서 노동자 투쟁을 순치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정부의 계속된 개악 추진으로 노동자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런 불만을 투쟁으로 발전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노동자 투쟁만이 정부와 자본가들의 양보를 얻어 낼 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