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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12문 12답: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반대해야 하는 이유

12문 12답 차례


2019년 1월 28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참가 안건이 상정된다. 애초 민주노총 집행부는 지난해 10월 경사노위 참가를 결정하려 했었다. 하지만 정책 대의원대회가 유회되면서 불발됐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우향우 행보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이 반영된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11월 22일 경사노위를 출범시키고 민주노총에 참가를 압박했다. 경사노위가 민주노총 참여 권고문을 의결했고, 심지어 대통령이 나서서 “각급 위원회 논의 참여”를 촉구했다. 정기대의원대회를 앞둔 최근에 민주노총 위원장과 청와대 접촉, 2월 초 대통령 면담 추진 등도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가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보다.

이 글은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가가 노동자들의 조건과 투쟁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인지, 대안은 무엇인지에 답하고자 한다.


Q1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하의 사회적 대화는 경제 위기 시 양보를 압박하던 이전 정부들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하는데요.

A 지금 한국 경제는 성장이 둔화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투자가 급감하고 고용 사정이 악화됐습니다. 올해는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질 전망입니다. 중국 경제의 추락이나 트럼프의 무역전쟁처럼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세계경제 불안정화 요인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처럼 국내외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는 지금, 문재인 정부 하의 사회적 대화가 경제 위기 시 양보 압박을 목적으로 했던 옛 노사정위와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안일한 판단입니다. 이런 시기에 정부와 사용자들은 기업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전에 줬던 것도 빼앗으면서 노동자들의 조건 후퇴를 강요합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성장률과 고용 사정이 나빠지자 지난 몇 달 동안 급격하게 친기업, 반노동 행보를 노골화했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이] 도약할 미래”가 사회적 대타협에 달려 있다면서 “대화, 타협, 양보, 고통분담”을 공공연하게 촉구해 왔습니다. 얼마 전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아예 대놓고 “양보할 것 없으면 경사노위에 들어올 필요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양보” 요구는 김대중 정부가 노사정위에서 얘기하던 것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IMF를 불러들인 경제 위기 극복이 사회적 대타협에 달려 있다면서 노동자들에게 “고통분담”을 강요했습니다. 당시에 노·사·정은 노사정위에서 정리해고, 파견근로 법제화 등에 합의했습니다. 당시 이 합의의 옹호자들은 이를 통해 노동계도 재벌개혁, 노동기본권, 복지 확충을 얻었다고 정당화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시간의 검증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 뒤 재벌들은 더 거대하고 부유해졌고, 비정규직과 빈곤층은 더 늘고 더 가난해졌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사회적 대화는 항상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요구했습니다. 가령 문재인 정부는 네덜란드의 사회적 대타협을 모델로 제시합니다. 네덜란드 모델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삭감하는 것이었습니다(바세나르 협약). 그러나 이 협약의 결과 시간제 일자리가 늘고, 저임금 노동자가 증가하고, 여성 빈곤이 확대됐습니다.

경제 상황이 나쁠 때는 노동자들에게 더한층의 양보, 일방적인 양보가 강요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회적 협약의 출생지인 유럽에서는 지금 그것이 쇠퇴하고 있습니다. 1970~1980년대에는 노동조합이 양보한 대가로 알량하게나마 복지가 제공됐지만, 1990년대 들어 점점 일방적 양보만 강요됐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이 양보한 대가가 공공정책 결정에 (별로 영향도 못 미치며) 참여하는 것 정도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2010년 유로존 재정 위기 이후로는 이마저 후퇴했습니다.

그래서 보수적 개혁을 추구하는 국제노동기구(ILO)조차 〈ILO보고서〉(2018. 10.)에서 이렇게 조언할 정도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사회적 협약 체결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대신 조직이나 노동자의 이익과 권리를 방어하는 기본적인 노사관계 업무에 그들의 에너지와 자원을 집중시키는 것이 차라리 현명할 수 있다.”


Q2 경사노위는 옛 노사정위와는 달리 그 운영과 논의구조가 노동자 측에 불리하지 않다는 게 사실인가요?

A 기존 법안을 전부 개정하고 사회적 대화기구를 개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법안 문구가 바뀌고 구조도 변경됐음에도 지금 문재인 정부의 실천을 보면, 노동조합들이 제기해 온 핵심 불만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노동조합들은 노사정위가 시한을 정해 놓고 ‘합의’를 압박하는 정부 정책 추진 수단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는 ‘협의’ 기구(장차 사회적 교섭기구)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탄력근로제 확대 문제나 ILO 기본협약 문제 등에서 보듯이, 2월 국회 일정에 맞춰 합의안을 내놓으라고 압박하기는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까지 합의가 안 되면 정부안을 내겠다고 협박하면서 말입니다. 즉, 시한을 정해 놓고 합의를 압박하면서, 사회적 대화기구를 정부 정책 추진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점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것입니다. 경사노위는 그럴듯한 대화 모양새로 구색을 맞춰 주고 정부 정책을 정당화할 뿐입니다.

또한 경사노위는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 노동조합 대표성은 여전히 약합니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참가하더라도 본 위원회 18명 중 1명이 될 뿐입니다. 민주노총의 대표성은 노사정위에서보다 더 축소되는 셈입니다.

일각에서는 미조직 노동자를 대변해 여성, 청년, 비정규직 대표가 참여하게 된 것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대표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교육공무직본부, 의료연대본부,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등 비정규직 노조들을 필두로 여러 노조들이 경사노위에 참가한 ‘비정규직 대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게다가 부문 대표들의 일부는 문재인 정부와 흡사한 정책을 주장해 왔습니다.


Q3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경사노위를 통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요?

A 문재인 정부가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에 참가시키려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에 한국 자본주의의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는 개혁에 노동자들의 협조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첫째, 임금 억제, 노동시간 유연화 등 노동조건의 양보를 얻어 내려 합니다. 임금 억제와 장시간 노동은 착취율을 높여 자본가들이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광주형 일자리, 탄력근로제 적용 단위기간 확대 등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임금 수준이 오르면 사회적 대타협을 해야 할 국면이 온 것”이라며 임금 억제 의도를 드러냈습니다.

직무급제 도입의 주된 목적은 자동 호봉 상승에 따른 임금 인상을 억제하려는 것입니다. 직무급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차별 시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허울 좋은 명분일 뿐입니다. 이것은 정부가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전환자들에게 적용한 직무급(표준임금모델)이 차별 해소는커녕 저임금 고착화를 낳고 있다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광주형 일자리는 임금 격차 해소 방안이라고 그럴 듯하게 포장돼 왔습니다. 하지만 저질 일자리이자 임금 공격 모델입니다. 기존 완성차 노동자 임금의 절반을 주고 소형차 생산 공장을 돌린다는 계획으로,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떨어뜨리는 정책입니다.

탄력근로제 확대는 사용자들에게 노동시간 운용의 유연성을 증대시켜 주는 것입니다. 사용자들이 원할 때, 별도의 연장근로 수당도 주지 않고 노동자들을 장시간 부려먹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장시간 노동체제의 연장인 동시에, 임금 삭감 공격이기도 합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면 실질임금이 약 7퍼센트 감소합니다.

둘째,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자 투쟁을 억제하고 계급협조주의를 강화하려 합니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노사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면 공멸”한다면서, “노사 공동운명체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노동자이지만 사용자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라는 것입니다.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는 기본 관점은 노·사 또는 노·사·정이 국가 경제나 지역사회의 공동 번영을 함께 추구하는 ‘파트너’라는 것입니다. 사회적 대화의 옹호자들은 “이제 노동조합도 생산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말을 즐겨 합니다.

그러나 “노사 공동운명”이라는 말은 노동자들의 일방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곧잘 사용됩니다. 특히 경제가 어려울 때 그렇습니다. 1998년 노사정위 합의 경험을 봐도, 노·사·정 협조가 노동자들에게 공동 번영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 후 오히려 빈부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사회적 대화는 또한 노동자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회적 대화의 옹호자들은 사업장 바깥에 대화(교섭)기구가 있으면, 노동현장의 갈등과 투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데 주목합니다. 그러면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생산성 향상에 참여시키기가 더 좋다고 말입니다.

이처럼 사회적 대화(파트너십)의 중요한 목적 하나는 “노사 공동운명체 정신”으로 노동자들을 현혹하는 사이에 노동운동을 무장해제시키는 것입니다.


Q4 현재 경사노위에서는 어떤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나요?

A 첫째,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탄력근로제 확대는 사용자들에게 노동시간 운용의 유연성을 증대시켜 주는 것으로,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개악입니다. 경사노위는 2월 안에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합니다.

둘째, 노사관계제도개선위원회는 1월 말, 사용자들이 제기한 의제(이른바 사용자 대항권)를 논의할 예정입니다. 사용자들은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 금지, 쟁의행위 찬반투표 투명성 제고, 단협 유효기간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체행동을 제약하고 무력화하는 개악 중의 개악입니다. 그런데도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경영계로서는 이런 제안을 할 수 있는 거라고 했고, 대체근로 허용을 제외하면 합의 가능하다고도 했습니다. 지난해 나온 공익위원안에 경영계 요구를 반영하겠다는 것입니다.

한편 노동기본권 관련 공익위원안도 노동계 요구와는 거리가 멉니다. 해고자와 실업자의 기업노조 내 활동은 제약이 크고,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는 대통령 공약인데도 “방안 모색”이라는 말로 모호하게 처리했습니다.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 철회는 회피하고 법 개정 문제로 떠넘겼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민주당이 낸 노조법 개정안(한정애 의원 대표발의)은 더 후퇴해, 사내하청, 특수고용, 간접고용 노동자의 사업장 노조 활동에도 제약을 가하고 있습니다.

셋째, 국민연금특위에서는 노후생활 보장에 관해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논의는 국민(공적)연금이 ‘최저’ 노후생활 보장을 담당하고 ‘적정’ 노후생활비는 민간(사적)연금에 의존하는 틀을 인정하는 속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런 방향은, 세계적 경험을 보면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개악인데도 말입니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이런 방향의 국민연금 개악안을 내놓았습니다. (1) 그대로 내고 덜 받기 (2) 그대로 내고 조금 덜 받기 (3) 더 내고 그대로 받기 (4) 훨씬 더 많이 내고 조금 더 받기라는 4개의 개편안을 내놓고 그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안들은 모두 신자유주의적 연금 삭감안에 불과합니다.

넷째, 경사노위는 그동안 구조조정 문제에도 긴밀히 관여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이 중재한 “성동조선해양 상생 협약”은 구조조정의 모범처럼 제시됐습니다. 이것은 정리해고를 철회시킨 협약으로 알려졌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노동자들은 무려 28개월간 무급휴직을 하고 M&A(인수·합병)와 경영 정상화에 협력한다는 거의 백지수표에 가까운 희생을 강요당했습니다.


Q5 문재인 정부가 점점 친기업·반노동 입장을 노골화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럴수록 사회적 대화에 참가해 정책 논의에 개입해야 최악이라도 막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A 문재인 정부와 친문 인사들, 그리고 사회적 대화 옹호론자들은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가하지 않으면 주변화되고 개악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개악안을 내놓은 사람들이 (애초에 개악을 추진하지 않으면 될 것을) 대화해서 보완책을 논의하자고 하는 것은 속 보이는 제안일 뿐입니다. 보완책은 일단 개악을 현실로 인정해야 논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이런 제안은 민주노총을 ‘답정너’ 식 결말로 끌고 가거나, 기껏해야 알량한 수정안(최악을 조금만 수정한)에 타협하게 만들어, 개악을 정당화하려는 것입니다. 만약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가한다면, 탄력근로제 확대와 사용자 대항권 논의에서부터 이런 조건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경사노위는 일단 사회적 대화에 참가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타협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합니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최근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지금까지 논의 과정을 보면, 자기 얘기만 하고 안 받아들여지면 빠져나가 버린다. 이건 사회적 대화가 아니다.”

그러나 최악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사회적 대화에 참가해 개악에 타협하면,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개악을 정당화해 투쟁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됩니다. 현장 노동자들이 사용자의 개악 실행에 맞서 저항할 때 이들은 ‘너희 지도자들이 동의한 것이다’ 하면서, 노동자들의 투쟁을 비난하고 고립시키기가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경사노위 바깥에서) 개악을 방치하는 것과 (경사노위 안에서) 개악에 합의해 주는 것, 두 나쁜 선택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사노위 바깥에서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싸운다면, 촛불 염원을 무시하고 보라는 듯이 친기업·반노동으로 치닫는 문재인 정부를 한 발 물러서게 만들 수 있습니다.

김명환 집행부는 민주노총이 대안 없이 즉자적인 “반대 또는 저지 투쟁”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마치 사회적 대화에 참가해 정책 논의에 개입해야 성과를 남길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문재인 집권 이후만 돌아봐도, 투쟁이 필요한 수준에 못 미치며 불충분했던 게 문제이지, 그 반대는 아니었습니다.

가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자회사 방안 문제를 봅시다. 문재인 정부가 자회사 방안을 강력하게 고수하는 상황에서 이를 저지하려면 단위노조 차원의 투쟁에 내맡기지 말고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 차원의 투쟁으로 확대해야 했습니다.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이 이렇게 하지 않고 가령 잡월드 투쟁을 경사노위 중재에 의존한 것은 문제였습니다.

또, 자회사 방안 반대(저지)가 대안 없는 투쟁은 아니었습니다. 직접 고용이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회사 방안 반대’를 대안 부재로 본다면, 그것은 자회사 방안을 일단 현실로 수용하고, 어떤 자회사인가(‘좋은 자회사’ 방안)를 협상해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것은 최악을 막는 방법이 아니라 최악으로 가는 길을 여는 방법일 뿐입니다.

사실, 문재인 정부를 대화 테이블에서 설득해서 변화시키겠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규제 완화와 탄력근로제 확대, 임금 억제, 연금 개악 등에 확고한 본성과 의지가 있기 때문에 노동계급의 압도적인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만이 최악을 막을 수 있는 길입니다.


Q6 경사노위에 참가하더라도 대화에만 치중하지 않고 투쟁과 대화를 병행하면 문제 없지 않을까요? 어차피 노동조합이 협상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A 물론 노동조합은 결국 협상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투쟁을 해서 사측이나 정부를 협상장으로 끌어내는 것과, 사측이나 정부와의 파트너십을 전제로 사회적 대화를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파트너십을 전제로 한 사회적 대화는 노·사 또는 노·사·정 간의 투쟁 억제가 중요한 목적입니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노조 있는 곳의 노동자는 임금이 한껏 올라 굳이 투쟁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경사노위는 싸움을 말리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싸움을 제일 잘 말릴” 것으로 기대돼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에게] 경사노위를 맡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회적 대화 참가자들은 상대가 투쟁에 나서면 대화(의 신뢰)를 깨뜨리는 행위로 이해합니다. 즉, 대화를 하려면 투쟁을 접고 들어오라고 합니다. 최근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민주노총더러 투쟁과 교섭을 병행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경사노위에 참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기구가 구성됐을 때도(2015년) 노동조합더러 대화 전에 투쟁부터 중단하라고 했습니다.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은 투쟁과 대화를 병행하겠다고 흔히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병행론은 그 논리상, 대화가 결렬되지 않으려면 투쟁을 너무 밀어붙이면 안 된다는 것으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노동자들의 불만 때문에 투쟁에 나섰다가도 어떤 시점에서 투쟁을 중단하거나, 투쟁 수위를 하향 조정합니다. 투쟁이 협상에 압력을 가하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협상에 종속)되는 것입니다.

협상 중인 상층 지도자는 투쟁이 자기 통제 하에 있기를 바라고, 자기 운신의 폭이 줄어들까 봐 대중의 독자적인 운동을 자제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투쟁은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이 언제든 쉽게 꺼내어 쓸 수 있는 주머니칼이 아닙니다. 투쟁은 생물과도 같아, 기회를 놓치면 동력이 소진되고, 되살리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요컨대 투쟁과 대화의 병행은 동반 상승하는 시너지 효과를 쉽사리 내지 못합니다. 거꾸로 대화에 연연하다 보면 투쟁을 확대하는 데 걸림돌이 됩니다. 지난해 6월 30일 7만 명 규모의 비정규직 철폐 전국노동자대회 직후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청와대 면담 등 대화 추진으로 나아가면서 투쟁이 확대되지 못했던 것이 그런 사례입니다. 지금 김명환 집행부가 경사노위 참가 추진에 주력하면서, 탄력근로제 확대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악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친기업·노동개악을 예고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가한다면, 지도부가 ‘투쟁-대화 병행론’에 따라 투쟁 계획을 내놓더라도, 조합원들은 그것이 적절한 수위로 조절될 것임을 간파하고 적극성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노동조합이 투쟁을 통해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전망을 추구하지 않으면, 그저 주어진 현 상황을 전제로 이해당사자들 간의 타협을 중시하는 경향이 확대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노동계급 내부의 다양한 부문이 (투쟁을 통한 연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라는 이름으로 타협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노동계급 내부의 다양한 부문이 서로 반목할 수 있고, 오랫동안 차별을 겪어 온 희생자들에게 현실론이라는 이름으로 양보가 강요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경사노위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Q7 경사노위는 사회 양극화 해소를 주요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좋은 것 아닌가요? 민주노총 노동자들도 여기에 협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A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격차 해소에 주력하고자 ‘양극화해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했습니다. 경사노위법에도 그 목적이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도모하며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양극화(빈부격차)는 왜 벌어졌고, 누구와 누구 사이의 격차가 진정한 문제입니까? 촛불 투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주장했듯이, 역대 정부들의 신자유주의 정책들로 기업인·권력자들은 더 부유해지고 노동자·민중은 열심히 살아도 더 가난해진 것이 오늘날 사회 양극화 문제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사회 양극화를 노동계급 내부의 격차 문제로 치환합니다.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 간의 격차라는 근본 문제를 제쳐둔 채, 문제를 호도하는 것입니다. 경사노위 박태주 상임위원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양극화 해소의 핵심은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를 줄이는 것”이라고 강조(호도)했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저임금 해소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대기업·공공부문·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박근혜가 추진했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다를 바 없습니다. 즉, 격차 해소를 명분으로 대기업·공공부문·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과보호”)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박근혜 정부에 맞서 주장했듯이, 대기업·공공부문·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한다고 해서 비정규직·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임금 삭감은 기업 수익성 회복을 위한 것일 뿐, 결코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공무원의 낮은 기본급 인상률(2.6퍼센트)을 근거로 들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를 외면했던 것은 이를 잘 보여 줍니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이 격차 해소 방안으로 꼽은 광주형 일자리도 완성차 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떨어뜨리려는 정책으로, 현대차 사용자에게만 득이 될 것입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전 세계 경험을 바탕으로 정규직 ‘과보호’가 공격받은 곳에서는 한결같이 비정규직의 처지도 더 어려워졌다고 지적했습니다. 노동계급의 가장 잘 조직된 부분들이 양보를 강요받으면서도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면, 계급 간 세력관계가 불리해져서 나머지 노동자들도 공격받기가 더 쉬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격차 해소가 아니라 하향 평균화입니다.

또, 문재인 정부가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양극화 심화의 주범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재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규제완화, 감세, 민영화, 노동 유연화, 연금 개악 등이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들인데, 지금 문재인 정부는 이 모든 것을 추진 중입니다. 이런 정책들이 양극화를 심화시키는데도 말입니다.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는 길은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중단시키고, 지난 20년 동안 부를 축적하고 누려 온 자들이 복지 확충 등을 위해 재원을 내놓도록 강제하는 것입니다.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이를 위해 조직된 힘을 사용하는 것이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 기여하는 길입니다.


Q8 개악 합의는 거부하더라도 사회안전망 논의나 업종별위원회 논의에는 참가해야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전체 노동자와 취약계층을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요?

A 설사 경사노위 산하위원회 가운데 특정 위원회의 논의가 노동계에 유리하다 해도, 그런 위원회에만 참가하는 것은 대화 상대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대화의 정신인 대타협(빅딜도 포함)에 걸맞지 않은 것입니다.

게다가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나 업종별위원회 참가가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거나 득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선, 사회안전망 개선 문제를 살펴봅시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고용안정유연모델”을 구축하겠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고용안정(망)’은 실업급여 증액을, 유연모델은 쉬운 해고와 임금 삭감을 뜻합니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의 사회안전망 개선이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보완 조처임을 보여 줍니다.

해고를 쉽게 하려면 사회안전망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것은 1998년 IMF의 조언이었고, 김대중 정부의 노사정위가 추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두루 아다시피 이들의 “고용안정유연모델”은 신자유주의의 폐해로부터 노동자들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지금 경사노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회안전망 개선안도 그 수준이 너무 미미해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시킬 수 없습니다. 가령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에서 처음 합의한 ‘한국형 실업부조’는 청년 구직자와 폐업한 영세자영업자에게 고작 3개월 동안 매달 30만 원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 지금 논의 중인 사회서비스원을 들 수 있는데, 일자리의 규모와 질이 턱없이 부족하고 재정이 보장되지 않는 안으로 대통령 공약 위반 사항입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사회안전망은 노동시장 유연화와 맞바꾸기인 데다 그조차 재정 지출을 하지 않아 개선이 형편없다는 것이 핵심 문제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말하면서도 지난 2년 동안 실제로는 긴축 정책을 지속해 왔다는 것이 최근 통계로 드러났습니다.(2017, 2018년 2년째 매해 남은 세금이 10조 원)

민주노총은 긴축 반대, 복지 확충을 위한 대규모 저항에 나서야 합니다. 서유럽에서도 복지가 확대된 것은 아래로부터의 대규모 투쟁 덕분이었습니다. 민주노총이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 논의에 참가하고 형편없는 안에 합의하는 것은 결코 노동자와 취약계층을 대변하는 길이 될 수 없습니다. 지난해 말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9차 일자리위원회에 참석해서 (위에서 언급한) 사회서비스원에 찬성했는데, 이런 합의는 문재인의 공약 위반을 정당화할 뿐입니다.

그다음으로, 업종별위원회 문제를 살펴봅시다. 지금 설치돼 있는 업종별위원회를 보면 주요 의제는 해당 산업의 발전과 일자리 창출입니다. 여기에 원·하청 문제나 임금 개편 문제 등이 추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노동친화형 미래 산업”을 창출하도록 산업 정책을 전환시키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경사노위에서 ‘산업 발전에도 좋고 노동자에게도 좋은’ 경제구조를 만들기는 불가능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동자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도 우리 전체 경제가 살아나는 과정에서 가능하다.” 이는 경제 발전이 우선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더니 기업인들을 만나 신산업(미래 산업) 육성을 위한다며 규제 완화를 약속하고 대규모 투자프로젝트 전담반도 가동하겠다고 합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를 만드는 건 기업”이라며 기업 지원 방향을 분명히 해 왔습니다.

‘낙수효과 없다’며 떠벌린 ‘소득주도성장’은 완전한 빈말이었고, ‘기업 주도 성장’이 문재인의 본심이자 실천입니다. 청와대 새 비서실장이 된 측근 노영민은 이 문제를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경제는 없다.” 소득주도성장의 초심을 잃지 말라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에게 선을 그으며 한 말입니다. 기업을 선택하겠다고 말이죠.

그래서 사회적 대화는 경제 살리기, 신산업 육성을 위한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문재인 식 공정경제는 원청 갑질을 한 적도 없는 대공장 노동자들더러 대기업-중소기업 격차 해소를 위해 임금을 양보하라고 요구합니다. “대공장 노동자들도 원청과 담합해 특혜를 누렸다”면서 말입니다. 문재인 식 포용경제는 사용자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최저임금 개악을 수용하라고 요구합니다. “조직 노동자들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면서 말입니다.

문제는 적잖은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이 임금 양보나 생산성 협조 조처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광주형 일자리 추진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박병규 전 광주 부시장이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광주지회장 출신인 것은 의외의 일이 아닙니다.

지난해 보건의료노조가 공공병원 노·사·정 TF(일자리위원회 산하)에서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에 합의한 것은 민주노총 내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가이드라인’이 정부의 표준임금체계(안)과 마찬가지로 청소·경비·식당 등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차별을 고착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민주노총 산하 조합원들은 노조가 자신의 직무를 홀대하는 것에 서러움을 감추지 못했고, 자신들의 조건 개선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일부 노동조합들은 표준임금체계를 포함한 직무급제로의 임금체계 개편 등을 업종별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힌 바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 산하 노조들이 경사노위 업종별위원회에 참가해서 다른 노조들이나 조합원들이 수긍할 수 없는 합의를 한다면, 전체 노동자와 취약계층을 대변하기는커녕 큰 불만과 혼란을 자아낼 것입니다.


Q9 경사노위에 참가하지 않으면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이 떨어지고 주변화되지 않을까요?

A 민주노총이 전 사회적 관심이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위상이 높아진 경우는 예외 없이 대규모 투쟁으로 진보 염원 대중에게 본보기를 보였을 때입니다. 1997년 1월 파업 직후 민주노총은 여론조사에서 영향력 있는 단체 1위로 꼽혔습니다. 2013년 말 철도파업이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만의 초점을 제공하는 듯했을 때도 민주노총의 정치적 위상이 갑자기 높아졌습니다.

2015년 노사정위가 노동개악 합의를 발표했을 때 거기에 참여한 한국노총의 위상이 높아졌을까요, 아니면 그 합의를 거부하며 반박근혜 투쟁을 선언한 민주노총의 위상이 높아졌을까요?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운동 초기에 그 운동이 확대되도록 조직노동자들(특히 공공부문과 철도 파업)이 크게 기여한 것도 민주노총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 염원을 배신하면서 급속히 우경화하는 지금, 민주노총이 그에 맞서 불만의 초점을 제공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투쟁해야 정치적 위상을 높일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일면 협력하면서 촛불 염원에 훨씬 못 미치는 후퇴에 합의해 준다면, 민주노총은 문재인의 지지율 추락과 함께 동반 신뢰 하락의 위험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서유럽 노조들은 1990년대 이래 정치적 위상이 하락하고 특히 새 세대 청년층의 지지를 받지 못해, 조직 규모도 축소됐습니다. 그것은 그 노조들이 사회적 대화를 추구하면서 시간제 일자리 확대, 보호라는 미명 아래 간접고용 용인, 연금 개악 등에 합의해 준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다수 청년들이 노동조합을 불신합니다. 민주노총은 이런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민주노총 지도자들을 무시하지 않고 대화하자는 것은 좋은 일이고 바로 “노동존중”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대화 옹호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민주노총 지도자들을 국가정책 논의에 참가시키려는 것을 “권력 공유”라고도 표현합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하려는 일은, 노동자들의 불만을 자아낼 정책을 더 원만하게 추진하기 위해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의 도움을 얻는 것입니다. 사회적 대화와 다양한 수준의 교섭에 이들을 참가시켜, 개혁 후퇴 또는 개악에 합의를 이끌어 내어 정당성을 확보하고, 노동자들이 반발하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의 위상을 높여 줄지는 몰라도, 노동자들의 조건은 악화시킬 것입니다. 민주노총의 위상은 상층 지도자들이 대통령과 자주 악수한다고 높아지는 게 아닙니다. 노동자들이 단결해 싸워 조건 개선을 이뤄 내고 이것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길을 보여 줄 때 민주노총의 위상은 오릅니다.

노동조합에 관한 연구조사들은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할 더 큰 인센티브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 하나는 “고위급 협약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개인의 가시성과 경력 향상 측면에서 얻을 것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경사노위가 발행하는 격월간지 《사회적 대화》 6호에서 인용). 그러나 “권력 공유”의 대가가 평범한 노동자들의 조건 악화라면,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은 “노 땡큐” 해야 마땅합니다.


Q10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가하더라도 그것은 상층 논의이니 우리 사업장 문제와는 관계없지 않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가령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경사노위에서 합의되면 근로기준법이 개악돼 노동 현장에 적용되게 됩니다. 또, 노사관계 제도·관행과 관련해 사용자 대항권이 일부 합의되면, 역시 법이 개악돼 노동 현장에 적용됩니다. 그러면 점거 파업이 금지되고 정부가 파업 찬반투표에 간섭을 강화하는 등 단체행동을 제약할 수 있습니다.

임금 관련 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임금은 어차피 노사가 협상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경사노위 논의와 무관한 게 아닙니다. 직무급으로의 임금체계 개편이나, 격차 축소를 위한 정규직 임금 양보가 일단 경사노위에서 논의되기 시작되면, 즉시 현장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렇잖아도 사용자들은 임금체계 개편을 오랫동안 염원해 왔습니다. 현대차 사용자 측은 이미 직무성과에 의한 임금체계 개편안을 마련해 두고 있고, 이중임금제(신규 사원부터 개악)도 부분 추진 중입니다.

물론 제도와 법률이 개악된다고 투쟁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노동자들은 단결권 자체가 불법인 상황에서도 투쟁하면서 노동조합을 설립해 왔으니까요. 그러나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이런 개악을 방치하면 안 됩니다. 특히, 이런 개악이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의 합의로 이뤄지면, 그에 맞선 기층 투쟁은 정당성을 의심받아 더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노조가 없는 노동자들은 아무 방어막 없이 개악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는 점도 생각해야 합니다. 경사노위 테이블에 올라온 임금, 연금, 노동시간 등의 의제들은 민주노총 조합원뿐 아니라 노동계급 전체의 조건이 걸린 문제입니다.

따라서 현장 조합원들은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에게 개혁 후퇴나 개악에 합의하지 말라고 촉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동개악 저지 투쟁에 나서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개악을 설사 전부 막지는 못하더라도 그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기층 투쟁을 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실, 경사노위는 이미 지난해부터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노동자의 조건과 저항에 나쁜 영향을 미쳤습니다. 구조조정 기업들에서 “상생 협약”을 중재하면서 노동자들에게 백지수표에 가까운 일방적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성동조선해양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한국잡월드 중재도 그런 사례입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인 한국잡월드 노동자들은 자회사 전환을 거부하고 직고용을 요구하면서 45일간 파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경사노위가 중재한 안은 결국 자회사 채용을 수용하고 나중에 고용과 처우개선을 논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가하고 사회적 대화(대타협)가 정당화되면 이런 일은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Q11 문재인 정부가 탄력근로제 등 주요 개악을 중단하고 신뢰 회복 조처 취하는 것을 조건으로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가하면 되지 않을까요?

A 일부 사람들은 경사노위 조건부 참가를 주장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신뢰 회복 조처로 탄력근로제 추진 중단, 최저임금 개악 중단, ILO 핵심협약 비준 등을 약속하면 경사노위에 참가하기로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쟁점들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의지는 그동안 충분히 확인됐습니다.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 문제,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 철회 등이 지난 수개월 동안 사회적 대화 참가의 판단 기준으로 제시됐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기간에 문재인 정부는 이를 완전히 무시하며 보란듯이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관련 개악을 거듭해 왔습니다.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 철회도 하지 않았고요.

이런 조건을 처음 제시한 것은 김명환 위원장이었습니다. 그는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의 판단 기준으로 최저임금과 근로기준법(노동시간)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둘 다 누더기가 된 상황에서도 노사정대표자회의로 직진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 때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습니다.

전제조건이 거듭 무시되는 상황에서 그에 걸맞은 단호한 대응은 회피한 채, 조건 제시를 반복하면 민주노총과 노동계급의 처지만 우스워집니다. ‘두고 보자’는 사람 치고 무섭지 않다는 말처럼, 상대가 무시하기 딱 좋게 됩니다.

또한 조건부 참가론은 지도부가 싸우겠다는 것인지 경사노위에 들어가려는 것인지 모호해서 노동자들에게 혼란을 줄 뿐입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신뢰 회복 조처를 하는지 기다려 본다면서 시간만 낭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문재인 정부와 경사노위 측은 온갖 책략과 꼼수를 부리면서 민주노총과 노동계급을 혼란에 빠뜨리고 분열시킬 수 있습니다.


Q12 경사노위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대안이 무엇인가요?

A 노·사·정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사회 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전략은 실제로는 비현실적입니다. 촛불운동의 진보 염원을 이루려면 문재인 정부의 친기업·반노동 개악을 저지해야 합니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불참하고 개악을 저지하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경사노위 불참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투쟁을 해 개악을 저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경사노위 바깥에서 뒷짐지고 있는다면 사회적 대화를 내세운 개악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친기업·반노동 개악을 막고 촛불 염원을 현실화시키려면 단호하게 싸워야 하고, 투쟁을 최대한 확대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에게는 그럴 잠재력이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2016년 박근혜 퇴진 투쟁의 주도 세력이었기 때문에 지금 사기가 괜찮습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투쟁에 나섰고,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가세했습니다.

지난해를 돌아보면, 투쟁이 없었던 게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김명환 위원장 자신을 비롯한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이 대화에 미련을 두면서, 개별 투쟁들을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저항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주저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특히 최근 몇 달 동안 노동자들의 정서는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졌고, 그 때문에 경사노위 참가에 대한 현장 분위기도 빠르게 부정적이 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이런 변화를 읽고, 투쟁 기회를 허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 문재인의 지지율은 겨우 1년 반 만에 반토막이 났습니다. 그러자 우파가 사기를 회복했고, 자한당 등 우파 정당들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문재인 정부를 우파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제기됩니다. 그러나 애초 문재인 지지율 하락이 진보 염원을 저버린 탓임을 생각하면, 문재인 정부를 우파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중을 무장해제시키는 일일 뿐입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의 개혁 후퇴와 타협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비판하고 투쟁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재인의 배신에 실망한 촛불 대중의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문재인 지지 이탈층의 다수라는 20대 청년층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연서명] 민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불참과 대정부 투쟁 결의 연서명에 동참해 주십시오

http://bit.ly/경사노위참여반대

※ 민주노총 대의원·현장간부(와 조합원) 연명을 받아 1월 28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때 발표합니다. 연명 마감은 1월 26일(토) 저녁 6시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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