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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방, 또 다른 국가자본주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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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7월 5일 영국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애드리언 버드가 한 발제와 토론 정리를 글로 옮긴 것이다. 애드리언 버드는 하트퍼드셔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 강연의 원래 제목은 ‘또 다른 국가자본주의 시대?’로, 제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에 기고한 논문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국가자본주의 시대가 열리게 된 국제적 인과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중국”과 “서방”을 제목에 포함시켰습니다. 이들의 국제적 경쟁이 새로운 형태의 국가자본주의를 추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정치에 눈 뜬 이래, 정치경제학에서 오랫동안 우세했던 이데올로기는 세계화였습니다.
그것이 정설이었죠. 크리스 하먼은 1991년에 발표한 ‘오늘날 국가와 자본’[국역: ‘오늘날 국가와 자본주의’, 《자본주의 국가 —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책갈피, 2015)]에서 그 정설과 그와 비슷한 주장들을 훌륭하게 논박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정설로 통했고 우리는 세계화와 세계시민주의의 시대가 도래하고 국민국가가 해체되고 국경을 넘는 통합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꽤나 두드러지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먼저 그 배경과 관련 이론을 간단히 다룰 것입니다. 그 다음 현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새로운 유형의 국가자본주의의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하겠습니다.
분명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 바이든 정부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 바 있습니다. 바이든 정부는 대규모 산업 정책을 폈고 이는 트럼프 하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미국의 반도체 산업과 과학·기술을 지원하고, 미국산 첨단 제품의 대(對)중국 수출을 규제하고, 네덜란드·일본·대만·남한의 반도체 제조 기업들과 반도체 장비 기업들에게 ‘중국에 판매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엄청난 압박을 가했습니다.
또한 미국 제조업 재건을 위해 자본을 본토로 불러들이겠다며(‘리쇼어링’) 연방 정부와 여러 주정부(사우스캐롤라이나, 캔자스 등)들이 발벗고 나서며 반도체 산업을 유치하고, 중국을 글로벌 가치 사슬에서 배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어떤 형태로든 전보다 경제에 더 많이 개입하는 양상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방에서는 국가가 조율하는 중국 자본주의 모델의 성공을 마지못해 인정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최근 경제학계에서는 그러한 “국가 자본주의” 관점의 하위 조류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주로 사회민주주의적인 관점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되돌릴 것을 권유하는 흐름입니다. 금융 과세, 법인세 인상, 국책 연구 개발 사업, 대학 연구 지원 강화 등을 실시하고 대기업들이 차지하던 몫을 국가가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죠.
영국 노동당의 유력한 당 대표 후보 앤더 버넘조차 템즈워터[영국 최대 상하수도 기업] 재국유화를 거론합니다. 물론 정말로 그것을 실천할지, 그리고 왜 템즈워터 재국유화에 머물러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변화를 이해하려면 마르크스를 넘어서야 합니다. 마르크스는 국가론에 관해 그다지 많은 저작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는 원래 6부작의 하나로 국가론을 다룰 계획이었지만, 그가 완성한 것은 《자본론》뿐이죠.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우리 국제사회주의경향(IST)의 창립자 토니 클리프가 옛 소련을 이해하기 위해 발전시킨 국가자본주의론이 중요한 돌파구였습니다.
소련 국가자본주의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인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였습니다.
클리프는 자본주의가 세계적 생산양식인 만큼 어느 한 부분도 전체와 떼어 놓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오늘 강연 제목에 “중국”과 “서방”을 덧붙인 취지와 비슷하죠.
옛 소련은 나머지 세계로부터 비교적 차단돼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결코 철저한 고립이 아니었습니다. 클리프는 소련이 해외에서 서방과 벌이는 경쟁이 소련 국내에서 발전의 역학과 동기를 낳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소련이 가진 경쟁 수단은 노동력 착취를 통한 자본주의 발전뿐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1928년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스탈린 반(反)혁명이 이뤄지고 소련 국가자본주의가 탄생했습니다.
스탈린도 이를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신의 말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자주성을 지키려면 국방에 필요한 공업을 충분히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는 선진국보다 50~100년 뒤처져 있다. 10년 안에 그 격차를 좁혀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저들이 우리를 분쇄할 것이다.”
이런 노선에 따라 소련에서는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잔혹하게 계급 세력 관계가 바뀌었습니다. 1917년 혁명의 유산이 철저히 파괴됐고 전혀 새로운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구축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련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소련이 국가자본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이기는 했지만, 국가자본주의는 더 광범한 추세였습니다.
당시는 ‘국가자본주의의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는 19세기 말에 시작돼 1960~197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시대에는 자본주의가 세계적 체제로 발전하면서 모든 국가가 서로 경쟁했습니다. 그래서 각국은 자국의 공업을 육성하고, 해군·육군을 키우는 데 매진했습니다. 그 결과 양차대전이 벌어졌죠.
양차대전 종전 후 반(反)제국주의 투쟁이 벌어지고 식민지들이 독립했습니다. 갓 독립한 신생 국가들은 부족한 민간 자본을 대신해 국가를 동원해 자국의 자본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이렇듯 국가자본주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토니 클리프가 기초로 삼은 이론 하나는 볼셰비키 이론가 부하린의 이론입니다. 부하린은 생산·무역·투자의 국제화 경향 때문에 자본가들의 이해관계가 일국화(국가화)한다고 지적했습니다.[관련 기사: ‘부하린의 제국주의론과 오늘날의 제국주의’(최일붕)]
자본이 국가와 가까워지고 해외 자본과의 경쟁을 위해 국가의 지원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의미심장한 대목인데, 지금 세계 체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와 ‘마가(MAGA)’ 진영도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가 보기에는 끔찍한 것이지만.) 그것이 트럼프주의를 움직이고 미국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오래전 부하린의 사상, 즉 국제화와 국가화가 동일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상호 의존적 현상이라는 점이 너무도 분명하게 나타나는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균형 있게 보기
여기서 신자유주의에 관해서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앞서 말한 고전적 국가자본주의 시대에 뒤이어 일어난 신자유주의 ‘반혁명’은 점차 커지고 있던 국가의 구실을 되돌릴 것처럼 보였습니다.
당시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체제의 위기 때문에 지배자들은 노동자들이 쟁취한 개혁들을 후퇴시키고, 자본에 대한 규제와 과세를 완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렇게 신자유주의가 시작됐습니다.
마거릿 대처 정부가 벌인 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를 두고 이런저런 의견이 있을 수 있을 테지만, 실증 자료를 통해 확인되는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국가 개입은 악(惡)이고 자유시장이 선(善)이다’라고 떠들어 댄 대처 정부 하에서도 국가가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그 추세는 토니 블레어, 즉 노동당이 배출한 가장 우파적인 총리 하에서도 계속됩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는 국가가 하는 구실의 증대를 둔화시켰을 뿐, 되돌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다른 일을 했습니다.
프랜시스 캐슬은 《국가가 사라진다고?》라는 중요한 책에서 1980~2005년, 즉 신자유주의 절정기에 국방, 치안, 교육, 보건 등의 분야에 대한 국가 지출의 등락을 추적합니다.
그 책은 두 가지를 보여 주는데, 첫째는 국가 지출이 일반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복지 지출이 가장 많이 늘었다는 것입니다.
대처 정부 하에서 국민보건서비스(NHS) 지출이 늘었다는 것인데, 여기서 그 책의 문제점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국인들은 대처 정부를 거치며 병원 대기 순서가 길어지는 등 NHS가 악화되는 것을 모두 몸소 경험했으니까요.
이 문제와 관련해서 제가 직접 자료를 조사해 봤는데, 그 진상은 좌파 개혁주의자 히피라고 할 수 있는 조지 몽비오의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조지 몽비오는 이렇게 말했죠.
“가난한 사람은 세금을 내고, 부자는 세무사를 고용하고, 대부자는 정치인을 매수한다.”
신자유주의 하에서도 보통 사람들은 세금과 보험료를 전과 같이 납부했습니다. 반면, 부자들은 정부 덕에 세금 부담을 줄였죠. 보통 사람들이 낸 세금은 NHS로 가고 NHS는 그 돈을 지출하죠. 그리고 그 지출은 증가했는데 민간자금주도사업(PFI) 방식으로 병원을 짓기 위해 기업들에 돈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잠시 얘기가 샜지만, 신자유주의 시기에도 국가의 구실이 전면 축소되거나 19세기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날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국가자본주의는 어떤 형태를 하고 있을까요?
소련 붕괴 후 약 20년 동안 많은 국제관계학자들은 미국과 대등한 경쟁을 할 나라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련의 붕괴로 일극 질서가 도래했습니다.
미국은 소프트 파워가 있었죠. 모두가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보고,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미국은 하드 파워도 갖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 군사력의 50퍼센트를 차지했죠. 달러의 영향력도 빼놓을 수 없죠. 미국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꿈꿔야 할 세계란 이런 것이다’ 하고 제시할 모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시대는 끝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국가자본주의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지출 비율은 38퍼센트, 중국은 33퍼센트입니다.(2025년 기준) 미국의 수치가 중국보다 더 높은 것이죠. 중앙정부, 지방정부, 복지 지출을 합쳐서 보면 미국 경제가 더 국가화돼 있습니다.
다만 이 자료에는 국유 기업이 빠져 있습니다. 미국에는 국유 기업이 사실상 전무한 반면, 중국 경제에서는 약 30퍼센트를 차지합니다. 스탈린주의 소련 시절과 달리 100퍼센트는 아닙니다. 중국 경제에서 국유 기업은 사실 비중이 꽤 작고, 민간 기업들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중국은 동일한 국가자본주의의 스펙트럼 안에 있는 것입니다. 전 세계가 이 스펙트럼의 어딘가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나라가 해당하는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를 두고 여러 논의가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토비아스 텐 브링크가 중국을 염두에 두고 ‘국가 침투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런저런 것을 적당히 아우르려는 나름의 시도입니다. 모든 나라에서 화폐, 중앙은행, 재정을 통해 국가가 자본주의에 침투했다는 것이죠.
저는 세 가지로 나눠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권위주의적 국가자본주의입니다. 이란, 이집트가 그 사례입니다. 이란의 혁명수비대는 이란 경제의 거대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혁명수비대는 여러 축구팀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보통 일이 아니죠.
이집트에서는 거의 모든 필수품을 국가가 생산합니다. 심지어 꿀이나 야채 같은 것도 군대가 소유한 산업의 일부입니다.
이런 나라들이 권위주의적 국가자본주의에 해당하지만, 세계경제에서 이들은 ‘주변부’에 있고 ‘핵심부’는 아닙니다.
더 관심이 가는 큰 나라, 그중 중국을 먼저 봅시다.
우리 국제사회주의경향은 오래전부터 중국을 다뤄 왔습니다. 토니 클리프가 소련 국가자본주의에 관해 쓴 것은 많이들 아실 테지만, 그가 중국에 관해 쓴 것은 훨씬 덜 알려져 있습니다. 클리프는 중국어를 공부했고 1957년에 《마오의 중국》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후에도 우리 경향은 주기적으로 중국을 분석했고 1~2년 전에도 관련 책을 낸 바 있습니다.
오늘날의 중국은 국가자본주의의 한 변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중국은 마오 시절과 사뭇 다릅니다. 마오주의로부터 상당한 후퇴가 있었습니다.
공산당이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지만 그 양상은 예전과 많이 다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국유 기업은 경제 생산물의 30퍼센트만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전략적 계획 경제가 여전히 있습니다. 옛 스탈린주의식 5개년 계획이 수립되는데 지독하게 낭비적입니다. 계획은 중앙 정부가 세우고 집행은 지방 정부가 하기 때문입니다. 한 경제학자는 이런 상황을 두고 ‘하나의 국가, 32개의 경제권’이라고 불렀습니다.
중복 지출이 엄청납니다. 모든 성(省)마다 고속철도를 놓으려 하는 바람에 노선이 너무 많고 텅텅 빈 열차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지방정부들이 인접 지방정부와 조율하지 않고 자기 욕심만 앞세워 고속도로를 건설해 댄 탓에 행정구역 경계선에서 끝나 버려 쓸모없는 고속도로가 많습니다. 엄청난 양의 시멘트와 에너지, 자원이 낭비된 것입니다.
그러나 계획 경제의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예컨대 은행 부문의 약 50퍼센트는 국가 소유입니다.
중국은 개발도상국에서 도로, 항구, 광섬유망 등의 인프라를 건설하는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그 국가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대는 것이 국유은행 두 곳입니다. 이렇듯 국가가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중국공산당은 민간 대기업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시진핑이 집권한 지난 10년 동안 안보를 강조하는 방향 전환이 이뤄졌고, 주요 기업들은 모두 이사회에 공산당 간부를 일정 비율 포함시켜야 했습니다. 예컨대 중국 월마트의 이사진에는 공산당 당원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국가 침투 자본주의’라는 명칭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고, 특히 석유나 에너지 같은 전략 부문에서 그렇습니다.
에너지 분야의 세계적 기업 중에는 국유 기업이 많습니다. 중국의 경우 국유 기업이 여러 분야(탐사, 시추, 정유, 판매 등)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 국유 기업을 중심으로 민간 기업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어서 석유 시추나 원료 생산을 돕습니다.
이렇듯 국유 기업과 민간 기업은 공생 관계이고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상호 침투하고 있습니다.
‘초크포인트’
시진핑을 중심으로 한 국가 지도부는 전략적 이익을 위해 이런 기업들의 네트워크를 동원합니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틀어쥐고 있듯이 중국이 틀어쥐고 있는 전략적 부문으로는 희토류 등의 전략 광물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1980~1990년대에 서방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고 소련이 무너졌을 때 서방은 승리주의와 자만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이 지저분한 산업을 다 처분하고 중국인들에게 떠넘기자’고 판단해 희토류 광산을 모두 처분하고 중국산을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희토류 산업은 실제로 유독성 폐기물이 많이 나오고 방사선 노출 위험도 높습니다. 희토류 광산에서 일하는 많은 중국인들이 암에 걸립니다. 이것은 부정적 측면입니다.
중국 지배자들의 입장에서 긍정적 측면은 희토류 시장의 거의 독점적인 공급자가 됐다는 것입니다. 희토류는 휴대폰, 유도 미사일, 첨단 IT기기 등 온갖 기기에 쓰입니다.
그래서 트럼프가 중국에 막대한 관세를 매겼을 때, 시진핑은 희토류의 미국 수출을 제한하는 것으로 응수했습니다.
이후 트럼프의 대외 정책은 중국 바깥의 희토류 매장 지역과 관련이 깊습니다. 그린란드, 우크라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콩고가 그렇죠.
한편, 중국은 다른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구축할 때에도 희토류에 대한 준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합니다.
그런 대상의 하나가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중국은 희토류뿐 아니라 녹색 기술을 통해서도 사우디에 대한 영향력을 크게 키웠습니다.
녹색 기술은 희토류 다음으로 중국이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중국은 전기차 산업의 선두 주자입니다. 몇 주 전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중국 전기차 업체 BYD를 당해 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BYD의 전기차가 기술적으로 테슬라에 뒤지지 않고, 배터리 기술도 세계 최고인 데다, 가격은 절반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태양 발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걸프 국가들이 중국과 밀착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빈살만을 포함해 걸프 연안국들의 지배자들은 자국 경제의 석유 의존도를 줄이려 합니다. 지구온난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압력 때문이기도 하고, 자국 석유가 언젠가 고갈될 것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태양 에너지로의 다변화를 택한 것이죠.
중국은 관련 분야의 국가 소유 기업들을 활용해서 중동 내 입지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에서 소프트 파워는 별로 없습니다. 중국 국가가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물질적인 장비나 기술이 관계를 구축하는 데 동원되는 것입니다.
미국 국가자본주의
오늘날 국가자본주의의 세 번째 사례는 미국입니다.
미국도 팔짱 끼고 앉아만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대응은 국제관계학 학자들의 강조가 무색하게 ‘소프트 파워’를 앞세우지 않습니다. 매우 공격적입니다.
이 대목에서 AI와 데이터센터를 살펴 보겠습니다. 구글 등 미국 IT 자본들은 AI를 위해 데이터센터 네트워크를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AI는 단지 민간 기술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레바논, 이란을 폭격할 때 AI로 표적을 산출합니다.
앤 알렉산더는 이스라엘의 디지털화된 대규모 살상 산업이 미국의 국방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관련 논문: ‘인공지능(AI)과 군비 경쟁’, 《마르크스21》(2025년 겨울)] 이스라엘은 서방 국가들에게 대체불가능한 존재로 자리 매김하기 위해 서방 기업들과의 연계를 세심하게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 결과, 앤 알렉산더가 말한 ‘실리콘 방패’가 형성됐습니다. 대만의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 때문에 미국이 대만을 중국으로부터 보호하지 않을 수 없듯이, 이스라엘도 중동의 다른 국가들로부터 보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죠.
AI를 위한 데이터센터 네트워크의 구축은 스타게이트 사업을 통해 추진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참여하고 있고 주요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최고 사양 GPU는 얼마전까지도 미국 바깥으로 판매가 엄격하게 금지됐죠. 중국으로 흘러들어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이제 아랍에미리트(UAE)도 여기에 가세해 엔비디아 GPU 사용 허가를 받았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역시 스타게이트 네트워크를 건설하고 있는 만큼 미국 안보 네트워크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물론 중국도 대응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천인계획’(千人计划, Thousand Talents Program)을 통해 더 나은 연구 환경, 더 나은 보수, 더 우월한 기술을 제공하겠다며 세계 최상급 과학자들을 대거 끌어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체제 최상층부에서 두뇌 유치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AI 디스토피아
이 AI 기업들은 자신들이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기업이라고 선전합니다. 월가의 금융 기업과는 다른 혁명적 도전자이자 반항아를 자처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군대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군 대령이 이사진에 참여하는 곳도 있습니다.
멀리 사는 노모가 AI의 도움을 받는다는 푸근한 광고는 AI 기술이 나아가고 있는 실제 방향과 매우 동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무슨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국가자본주의는 어떤 것일까요?
복지국가로의 회귀는 결코 아닙니다. 복지는 늘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의 지출과 경제 개입은 늘어날 테지만, 그것은 기술적 하드 파워로 자국 국유 기업과 민간 기업의 국제 경쟁을 지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노약자나 청년, 아동을 지원하려고 개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서방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몇 해 전 시진핑은 ‘복지는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든다’고 연설한 바 있습니다. 마거릿 대처와 죽이 맞을 것 같은 이 발언은 그가 추구하는 바를 잘 보여 줍니다.
영국의 현 총리 스타머는 또 어떻습니까? 퇴임을 앞둔 그는 후임자를 위한 국방 투자 계획 수립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야당인 보수당은 노동당이 복지에 너무 많은 돈을 쓴다고 비판합니다. 국방비 인상에 골몰하는 이 정부가 복지를 확대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국방비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려고 복지 예산을 줄일 공산이 큽니다.
그런 만큼 또 다른 형태의 국가자본주의가 도래하는 것을 반길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국가의 경제 개입 강화와 신자유주의가 병존하는 혼합물일 것이고,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신자유주의의 상당 부분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일부 좌파가 국가 개입 자체를 사회주의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가 개입’이라는 형식에 시선을 뺏기면 중요한 문제를 놓친다는 것을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앤더 버넘이 생계비 위기의 원인으로 대처리즘과 민영화, 시장화를 지목한 것은 좋은 일입니다. 사실 그 발언에 좀 놀라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자신이 차기 당대표가 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때 한 말입니다. 차기 당대표가 될 전망이 유력해진 지금도 같은 말을 입밖에 낼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국가자본주의는 나라마다 상이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국, 독일, 일본, 미국, 이란 등 각국의 국가자본주의는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그 자본가 계급들이 빚어 내고 있는 미래는 거대 기술 기업들이 주도하는 디스토피아입니다. 중국 자본가들이든 서방 자본가들이든, 어느 쪽이 승리하든 그 미래는 이전까지의 신자유주의 시대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위험하고 끔찍한 디스토피아일 것입니다.
토니 클리프는 소련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발전시킴으로써 스탈린주의로부터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전통, 노동계급이 스스로의 행동으로 해방될 수 있다는 비전을 지켜 냈습니다.
또 다른 국가자본주의의 위기가 아른거리는 지금, 그런 노동계급의 자력 행동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정리 발언
많은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모두 답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새로운 국가자본주의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에 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소련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개방형 국가자본주의’를 제안하신 분도 있고, ‘하이브리드 국가자본주의’를 말씀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아직 변화의 과정 속에 있고, 국가 개입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자본주의 ‘시대’를 논하는 게 과연 유의미한 일인가 하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자본주의 국가는 흔히 야경국가로 불립니다.(‘야경’이라는 표현은 사실 과장입니다.) 당시 정부 지출은 국가 경제의 10퍼센트 수준이었고 국가의 구실은 사법, 통화 발행, 국방 등에 머물렀습니다. 복지도 없었고, 학교 교육도 (일부 초등학교를 제외하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자본주의 체제가 성숙함에 따라 노동계급 운동도 발전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내걸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동시에 제국주의가 등장하고, 제국주의 갈등이 벌어지면서 국가는 새로운 지상명령을 얻었습니다. 한편, 참전 병사들에게 ‘수고했네 제군들, 앞으로는 실업자로 살도록!’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참전 군인에게 주택이나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약속은 언제나 허울뿐이었지만, 최소한의 허울은 유지해야 했습니다.
결국 체제가 발전하고 체제 내부에서 생겨난 모순 때문에 국가는 갈수록 큰 구실을 맡게 됐습니다. 그래서 국가자본주의의 “시대”를 논하는 것입니다.
대만에 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미국이 리쇼어링을 통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면 대만 등과 거리를 둘까?’
그런데 미국이 리쇼어링을 통해 이루려는 것은 TSMC나 삼성전자 같은 최첨단·최대 반도체 기업들이 대만과 남한에 기반을 두는 동시에 미국에도 기반을 두게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목표는 대만과 남한을 자국에 단단하게 결속시켜 중국 편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대만이 토사구팽 당할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게다가 미국에게 대만은 단지 제조업 기지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대만에 관해 덧붙이자면, 트럼프의 이란 전쟁 실패의 최대 수혜자로 중국을 꼽는 연구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이 제 발로 수렁에 들어가는 것을 조용히 지켜 보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란 같은 상대적 군사 약소국에 쩔쩔매는 것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과연 미국이 중국에 맞서 대만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이 당장 대만과 통일을 이뤄야 할 이유는 별로 없지만, 미래에 그럴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미래를 논하는 것은 다른 자리에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AI가 낳을 위기와 미래
파시즘과 국가의 우경화에 대한 주장도 있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논의입니다.
신자유주의 시기에 우리는 ‘이제 국가는 껍데기만 남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앞서 말했듯 과장입니다. 그렇지만 일말의 진실도 있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국가는 시위를 진압하거나 극빈층을 구제할 때에나 등장하는 것이 됐습니다. 그런데 IMF는 그 알량한 식량 보조금마저도 줄이거나 없애라고 집요하게 촉구했죠.
몇몇 분들이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이제 그런 일이 세계 체제의 중심부에서도 벌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카메라와 인터넷을 통해 감시가 용이해지고, 드론으로 시위대를 감시하고 진압할 것이라는 거죠.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AI를 중심으로 형성된 금융의 구조가 매우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닷컴 버블이 터지기 직전 시기를 뚜렷하게 연상시킵니다.
아직까지는 용케 빠져나가고 있지만 트럼프는 주식시장을 의식해 갈지자 행보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란 전쟁에 관한 트럼프의 중대 발표는 주식시장 변동과 맞물려 왔습니다.
아직까지는 미국 주식시장이 호황입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미국 경제 성장의 90퍼센트는 데이터센터 건설과 AI로 추동된 것이었고, 그 덕에 금융 부문도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중동에 관한 한 강연에서 필 마플릿은 이집트 상황을 다루면서 또 다른 ‘아랍의 봄’의 가능성을 전망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구제금융과 보조금으로 이집트 지배계급을 파산하지 않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시에, 두 국가는 미국 국채와 미국 기업들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약 미국 주식시장 거품이 터지기 시작하면 사우디 등의 걸프 연안국가들은 위기에 처할 것이고, 그러면 이집트의 엘시시 정권을 지탱할 자금을 지원하기 어려워져 이집트에서 다시금 시위대가 타흐리르 광장을 가득 메울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한 시나리오일 뿐입니다. 그러나 아주 황당한 시나리오는 아니죠.
이렇듯 미국 AI 산업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AI 역풍”과 커지는 분노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신기술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형태와 새로운 성격의 투쟁도 벌어진다고 한 동지가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이곳 영국에서는 구글 직원들이 본사가 미국 전쟁부와 맺은 계약에 항의해 노조를 결성했습니다. 또한 구글 기술이 팔레스타인 인종학살에 쓰이는 것에 항의하는 구글 노동자들의 시위도 벌어진 바 있습니다.
프랑스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최근호 머릿기사의 제목은 ‘AI 역풍이 시작되다’였습니다. 그 기사도 새롭게 등장한 투쟁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많은 중간계급이 방향 감각 상실을 호소합니다. 대학에 진학하는 많은 학생들은 자신들이 목표했던 전문직 일자리를 AI가 빼앗아 가고 자신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빚더미에 앉은 실업자가 될 것이라고 불안해 합니다.
그런 만큼 분노가 큽니다. 빅테크 기업과 조만장자들이 대체 무슨 권리로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하냐고 분노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앤트로픽은 최근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AI 모델은 군대의 모든 방어망을 무력화하고 전국의 의료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세상을 망가뜨릴 만큼 강력하다. 그래서 이 AI를 공개하지 않고 어딘가 가둬 두겠다.’
이 말대로라면 인류의 미래는 선출된 정치인들이 아니라 제정신 박힌 AI 기업주들의 선의에 달려 있습니다. 별로 살고 싶은 세상은 아니죠.
그런 만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사에서 미국인의 70퍼센트가 데이터센터에 반대한다고 답한 것은 놀랍지 않습니다.
미국은 감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데이터를 최대한 긁어모으려 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적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공격할지, 데이터를 이용해 사람들을 어떻게 괴롭히고 국가가 어디까지 들여다 보고 있다고 압박할지 등.
미국인 70퍼센트가 데이터센터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그 이유는 다양하고, 결코 단일하지 않습니다. 일부는 ‘님비’ 현상일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깨끗한 물가에서 뛰어 놀아야 하는데 지저분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더 원칙에 입각해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데이터센터가 농지를 발전소 부지로 잠식하고, 지하수를 고갈시켜 물 부족을 초래하고, 일자리를 거의 만들어 내지 않고, 무엇보다도 막대한 전력을 빨아들여 전기세를 올릴 것이라는 것이죠.
데이터센터 감시 웹사이트(datacenterwatch.org)에 따르면, 올해 1사분기 미국 24개주에서 142개의 활동가 단체가 데이터센터 반대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1,300억 달러어치에 해당하는 75개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지연됐습니다. 또 얼마전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미국 지자체들은 데이터센터 신축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지방정부 중 가장 멀리 나간 곳은, 익히 예상할 수 있지만 캘리포니아에 있습니다.
혁명적 좌파가 개입해야 할 필요성
이것은 하나의 운동이고 오른쪽으로 향할 위험도 분명 있습니다.
만약 AI 거품이 터지면, 미국의 보통 노동자들을 위해서는 많은 돈이 쓰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40년 동안 임금이 동결된 노동자들의 분노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마가 진영은 이를 파고들 태세가 돼 있습니다. 마가 진영에서 가장 우익적 인물의 하나인 스티브 배넌은 최근 보수 인사 60여 명이 연명한 AI 반대 공개 서한을 작성했습니다. 데이터센터는 세계시민주의 자본가들의 부속물이니까 더는 허가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렇듯 AI 반대가 오른쪽으로 향할 위험은 실질적입니다.
그러나 구글 노동자들의 투쟁, 아마존 노동자들의 투쟁, 미국인 70퍼센트가 데이터센터에 반대한다는 그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개입에 따라 AI 반대 운동을 왼쪽으로 끌고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AI는 세계시민주의, 외국과 연계돼서 싫어’가 아니라 ‘AI가 지구를 망칠 것이기 때문에 싫어’로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30년이 되면 데이터센터들의 에너지 소비량은 일본 전체와 맞먹을 것이라고 합니다.(물론 데이터센터들이 실제로 완공됐을 때의 얘기지만 말입니다.) 또한 그 무렵 아일랜드에서는 전체 발전 설비의 5분의 1이 데이터센터만을 위한 가동될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나간 짓입니다. 이것을 민주적 계획으로 대체해야 하고, 혁명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환경 위기는 사람들에게 혁명적인 민주적 계획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습니다. 세계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세계 자체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고, 필요한 과제에 부응할 수 있으려면 혁명적 당에 가입하고 근본적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에 함께합시다. 템즈워터를 일시적으로 국유화했다 재판매하는 식으로 체제의 일부를 손질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전체를 무너뜨릴 운동을 건설합시다.
쟁취해야 할 세계가 있고,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