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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이재명 정부 팔레스타인과 중동 전쟁 이주민·난민 긴 글

긴 글 21세기 제국주의:
다시, 전쟁과 혁명의 시대

이제 21세기의 첫 4분의 1이 지났을 뿐인데, 이미 많은 전쟁이 벌어졌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조지아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 이란 전쟁 등 주요한 전쟁만 꼽아도 이렇게 많고, 그중 3개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런 상황은 냉전 종식 이후 ‘평화와 번영’이 찾아오기는커녕 20세기 초에 시작된 유형의 지정학적 경쟁이 다시 돌아왔음을 보여 준다. 극우가 부상하고 있다는 점도 20세기 초반을 연상시킨다.

20세기 초 유형의 지정학적 경쟁으로 복귀

20세기 초 전쟁과 혁명을 낳은 역학은 당대 자본주의의 변화에 있었다. 거대해진 자본들이 국가와 융합하고 세계적으로 경쟁하는 단계가 된 것이다. 영국 제국의 주도하에 하나로 통합된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출현했고, 그런 경제 확장에서 신흥 산업국인 독일과 미국이 큰 득을 봤다. 19세기 말 경제와 정치의 불안정이 커지는 가운데 그 두 국가는 영국의 패권에 도전했다. 그 결과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20세기 초와는 다른 지정학적 상황이 전개됐다. 영국을 밀어내고 세계 패권국 지위를 차지한 미국이 소련과 함께 세계를 분할했다. 냉전 시기 지정학적 경쟁은 미국 대 소련의 양극 체제 형태로 지속됐다.

서유럽 국가들과 일본은 미국에 안보를 의탁한 채 그 정치적·군사적 지도력 아래 단결해 있었다.(‘서방’은 지도상 서쪽을 뜻하는 게 아니라 미국이 구축한 경제적·지정학적 공간에서 활동하는 주요국들을 뜻한다. 일본, 이스라엘, 호주, 한국 등도 포함된다.) 그들 사이의 경제적 경쟁은 격렬했지만 그것이 지정학적 충돌로 비화하지는 않았다. ‘지정학적 경쟁과 경제적 경쟁의 부분적 분리’가 나타났던 것이다.

1960년대 말 이후 주요 경제들의 이윤율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면서 경제적 경쟁이 격화하고 정치적 갈등도 증대했지만, 서방 진영은 그럭저럭 조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첫째, 소련과의 양극 대결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갈등)을 억제하는 구실을 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세계 경제 통합(‘세계화’)이 증대한 덕분에 다른 국가들도 미국이 주도하는 초국적 자유주의 공간 안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련이 붕괴하면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지정학적 갈등을 억제해 온 세계 양극 분할이 해체됐다. 이제 두 초강대국이 아니라 여러 강대국들이 무대를 지배하는 훨씬 더 유동적인 제국주의 간 경쟁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냉전 종식 즈음 많은 사람들은 미국 유일 초강대국 세계를 전망했다. 실제로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은 만만찮은 경쟁자가 없는 우위를 누렸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이고 불안한 우위였다.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미국의 경제적 지위는 1970년대부터 이미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었다. 세계화 속에서 경쟁자들이 떠오르면서 세계적 경제력 분포가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20세기 초에 그랬던 것처럼 이 세계화에서도 중요한 수혜자가 나타났는데,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은 세계 제조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었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 힘의 한계를 보였다 ⓒ출처 미 군

이라크 전쟁: 미국의 수렁

미국 지배계급은 이런 상황을 매우 우려했다. 어떻게 해야 미국 대자본들이 세계에서 계속 우위를 차지하고 미국이 패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 냉전 종식 이후 등장한 미국 정부들은 공화당과 민주당을 불문하고 한결같이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를 지키려고 애썼다.

첫 조처는 초국적 자유주의 공간을 전 세계로 확장하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워 세계 모든 경제의 빗장을 열어 미국 자본과 상품이 들어갈 수 있게 하려는 조처였다. 이와 함께 클린턴 정부는 유럽연합과 나토를 중·동부 유럽으로 확장해 미국의 영향력을 유라시아 대륙 중심부로 확대하려 했다.

그다음으로, 미국은 다른 강대국들에 견줘 결정적 우위를 지닌 분야인 군사력을 이용해 자신의 지배력을 굳히려 했다. 약소국들에 대한 일련의 전쟁을 통해 세계 패권을 재천명하려는 것이었다. 미국 지배자들은 “자유주의적 가치”를 위해 국제법을 무시하고 전쟁을 벌일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여겼다.

그 시작인 제2차 걸프전쟁(1991년)은 석유 공급의 안정이 미국 군사력에 달렸음을 보여 줌으로써 미국이 세계적인 지도력을 서방 동맹들에게 확인시키려는 수단이었다. 이를 통해 미국은 다른 선진국들과 경제적 쟁점을 놓고 협상할 때도 유리한 입지를 점하려 했다.

미국의 경제적 쇠퇴를 군사력으로 만회하려는 전략인 이런 양상은 조지 W. 부시 정부 들어(2001년) 특히 공세적으로 나타났다. 부시 정부 안에는 네오콘(신보수주의) 인사들이 포진해 있었는데, 그들의 상당수는 ‘미국의 새로운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라는 싱크탱크의 지지자들이었다. 그들은 미국이 여전히 다른 강대국들을 합친 것보다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런 압도적 우위를 사용해 미국의 세계 패권을 다른 국가들에 확인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9·11은 하늘이 내려 준 기회와 같았다. ‘테러와의 전쟁’은 알카에다 공격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네오콘의 세계 전략을 실행할 명분이었던 것이다. 부시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이어 9·11과는 아무 관계 없는 이라크를 침공했다.

최근 이란 전쟁 파병 논란이 일면서 마치 이라크 전쟁은 트럼프의 이란 전쟁과는 달리 ‘테러에 맞선 정당한 전쟁’이었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 전쟁 때는 이라크가 침략국이었고 우리는 반대편을 도왔던 것[이다.]” 그리고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주장했다. “이라크 파병 때는 9·11 테러라는 미국이 침략당한 전쟁이었기 때문에 파병의 정당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터무니없는 왜곡이다. 사담 후세인 정권은 9·11과 아무 관계 없었고, 부시 정부가 전쟁 명분으로 삼은 대량살상무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를 장악함으로써 중동 지배를 공고히 하고 석유를 통제하려 했다. 미국이 사용할 석유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 석유 공급 과정을 통제함으로써 중동산 석유에 대한 의존이 높은 유럽, 일본, 중국에 영향력을 높이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다른 선진국과의 경제적·정치적 경쟁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미국 지배자들은 생각했다. 물론 “깡패 국가”들도 이라크 다음 타깃이 되지 않으려면 미국 말을 고분고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실패로 끝났다. 미국은 이라크를 쉽게 정복했지만, 저항세력을 상대로 끝없는 전투를 치르며 수렁에 빠졌다. 미국이 2007~2008년경 가까스로 이라크를 부분적으로나마 안정시키고 출구 전략을 모색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군사력이 거둔 성과가 아니라 친이란계 시아파 이슬람주의 정당과의 정치적 타협 덕분이었다.

중동의 세력 균형이, 미국이 “악의 축”이라고 부른 이란에 유리해졌다는 점에서 이것은 미국에게 엄청난 지정학적 후퇴였다. 게다가 그런 타협이 수니파 이슬람주의 무장 조직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가 성장할 조건을 만들었다는 점도 비극이었다. 이라크 철군을 약속한 오바마가 2009년 집권한 뒤 미군은 2011년에 이라크에서 철군했지만, 고작 3년 만에 다시 돌아갔다. ISIS를 폭격하기 위해서였다.

이라크 전쟁 실패는 중동 전체를 불안정에 빠뜨렸다는 점에서 베트남 전쟁 패배보다 더한 파장을 남겼다. 베트남 전쟁 패배로 미국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지만 중국의 도움을 받아 인도차이나와 아시아를 그럭저럭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동은 그렇지 못했다.

게다가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져 있는 동안 중동 외 다른 지역에서 패권을 유지하기도 점점 힘들어졌다.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부들의 등장에 미국이 별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이 그런 사례였다. 동아시아의 빈국 북한을 다루기도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특히, 가장 중요한 점인데, 중국과 러시아는 조용히 미국을 무시한 채 자국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느끼게 됐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조지아 전쟁: 수렁에 빠진 미국의 약점 이용한 러시아

2008년 8월 일어난 러시아와 조지아의 전쟁은 그 대표적 사례였다. 조지아 전쟁은 러시아가 이라크 수렁에 빠진 미국의 힘의 한계를 시험하며 미국과 그 동맹을 상대로 자기 이익을 지키려 한 사건이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옛 소련 블록 국가들의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그들을 미국의 군사 동맹으로 결속시켰다. 조지아는 그런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테러와의 전쟁’은 좋은 명분을 제공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이용해 중앙아시아에 군사 기지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포위하려 했다. 미국과 조지아의 군사 협력은 조지아와 체첸 접경지 판키시 계곡에 숨어 있는 알카에다를 소탕하기 위한 것으로 포장됐다.

조지아는 아프가니스탄뿐 아니라 이라크에도 수천 명이나 파병했다. 미국과의 군사 협력이 강화되자 조지아는 남오세티아의 지배권을 되찾으려는 야심을 키웠다. 남오세티아는 조지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뒤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조지아가 남오세티아로 진격하자 러시아는 조지아 본토를 폭격했다. 러시아는 민간인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속셈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미국이 턱밑까지 밀고 들어와 위협하는 상황에서, 러시아 지배자들이 과거의 지배력을 되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와 관련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조지아는 러시아의 주요 표적 중 하나였다. 그러던 차에 조지아가 남오세티아를 공격하자 러시아는 그 기회를 이용해 군사력을 사용함으로써 옛 식민지에 자신의 힘을 각인시키고 미국에 한 방 먹인 것이다.

러시아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발이 묶인 약점을 이용한 것이다. 러시아는 세계적 수준에서는 미국과 경쟁할 수 없었지만, 몇몇 중요한 지역, 특히 중요한 에너지 공급 지역인 캅카스나 중앙아시아 등지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에 도전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문제는 그럴 수 있는 국가가 러시아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조지아처럼 지역 불안정을 부추길 세력들을 키워 놓았다는 점, 미국이 그런 불안정을 관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는 점은 세계가 얼마나 더 위험해졌는지를 보여 준다.

세계 경제 위기와 미국 쇠퇴 가속

2007~2009년 세계 경제·금융 위기는 이라크 전쟁 실패와 맞물리면서 미국의 쇠퇴를 촉진했다. 미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를 강타한 그 위기는 영미식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붕괴로 받아들여졌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지속 가능한 모델”이라고 자부했었는데 말이다.

더 중요한 점은 중국 경제가 이 위기에서 비교적 급속히 회복했고 다른 나라들의 회복을 이끌면서 미국과 대조를 이뤘다는 것이다. 중국은 2010년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됐고,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20퍼센트를 차지하면서 미국을 약간 앞서게 됐다.

2008년에 열린 미·중 고위급 비공개 회담의 한 장면은 미국의 위상 추락과 중국의 자신감 상승이라는 당시 상황을 잘 보여 줬다. 중국의 유력 정치인 왕치산(당시 중앙정치국 위원이고 나중에 국가 부주석까지 지냄)은 부시 정부 재무장관을 지낸 행크 폴슨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내 스승이었습니다. 행크, 그런데 지금 미국의 체제를 보니 말입니다. 당신들에게 더 배워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폴슨은 이때가 자신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초라했던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2007~2009년 세계 경제 위기는 중국에 유리하게 세계 지정학 관계도 변화하는 과정에 가속도를 붙였다. 이런 변화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는데, 중국의 경제 성장으로 세계적인 경제력 재편이 이뤄지면서 정치적 이합집산 구도가 변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군소리 없이 미국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국가들이 중국과의 무역을 늘리고 투자를 유치하면서 점점 중국과 밀착한 것이다.

가령 일본과 한국은 중국에 기계류와 설비, 반제품을 수출하는 쪽으로 산업을 재편했고, 이 과정에서 최대 수출국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한국 국회의원 다수가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더 중시하게 됐고, 일본의 하토야마 총리(2009년 9월 취임)는 미국 중심의 외교에서 벗어나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탈미입아(脫美入亞)” 노선을 주창하기도 했다.

중국은 아시아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영향력을 키웠다. 중국이 이 국가들로부터 막대한 원료를 수입하며 관계가 밀접해지자 그 국가들이 미국의 영향권에서 멀어지는 효과가 났다. 일부 국가들은 중국과의 관계를 이용해 미국을 견제하려 하기도 했다.

미국의 뒷마당인 라틴아메리카와 세계적 석유 생산지 중동에서의 이런 변화를 미국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변화가 국가 간 갈등이 갈수록 격화되는 경제 침체 맥락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랬다. 국가 간 대립이 심화하고 따라서 환율 정책과 무역 협상 등에서 자국 기업들이 최악의 타격을 입지 않도록 국가의 힘을 어느 때보다 과시해야 할 때, 미국은 이라크 전쟁의 실패로 약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중국은 군사력을 키워 미국의 태평양 제해권·제공권에 도전하려 한다 ⓒ출처 Kremlin.ru

미국의 경쟁자로 등장한 중국

오바마 정부는 이라크 수렁에서 빠져나와 아시아로 중심축을 이동함으로써 이런 문제에 대처하려 했다. 미국의 패권에 최대 위협으로 떠오른 중국을 억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구축해 온 동맹 체계 바깥에서 부상했다. 이것은 한때 미국의 경쟁자로 떠올랐던 일본이나 독일과는 다른 점이었다. 그들은 미국과 경제적 경쟁을 하더라도 정치·군사적으로는 미국 밑에 들어가기로 했다. 지금 트럼프가 유럽을 ‘종이호랑이’라고 비웃는 것은 이런 냉전 질서의 유산이다.

원래 중국은 소련 블록의 일부였지만, 1950년대 중반부터 소련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고 1969년 무력 충돌까지 벌였다. 1970년대 초부터는 소련에 맞서 미국과 동맹을 맺었다. 그전까지 중국은 고립된 나라였지만 1970년대 후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선별적으로 경제를 개방했다.

동유럽과 소련은 1989~1991년 체제가 붕괴하면서 사적 자본주의로 전환했지만, 중국은 이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중국 공산당은 해외 투자를 받아들이고 세계 시장을 겨냥한 상품을 생산하면서도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중국 공산당은 권력을 잃지 않았고, 중국은 국가자본주의와 사적 자본주의가 혼합된 형태로 발전했다.

중국은 (서방세계 내에서 부상한 미국의 경쟁자들과 달리)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와 지정학적 우세를 수용할 용의가 없었다. 첨단기술을 받아들이며 경제적으로 미국에 도전할 뿐 아니라 지정학적으로도 도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은 해군력을 강화해서 미국을 서태평양에서 몰아내고 아시아 연안에서도 내쫓고 싶어한다. 이것은 중국 지배계급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중국 경제는 인도양과 말라카 해협을 거쳐 중국 본토로 유입되는 엄청난 양의 원료와 석유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에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인 것이 미국에는 헤게모니를 위협하는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태평양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이 지배해 온 곳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시아는 세계 경제에서 날로 중요해지는 지역이어서 미국이 아시아에서 물러난다면 세계 패권도 잃게 될 것이다.

오바마는 미 해군 전력의 60퍼센트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배치했다. 미국의 접근을 막으려는 중국의 해군 전략을 무력화하려는 것이었다. 또, 오바마 정부는 중국을 경제적·군사적으로 포위하기 위해 동맹 강화에 힘을 쏟았다. 중국의 주변국을 대상으로 안보 및 군사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을 배제한 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전략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군 전력 증강 배치는 안보 딜레마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 줬다. 중국은 미군 전력 증강에 맞서 그것을 뚫기 위한 첨단 무기들을 놀라운 속도로 개발했다.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을 중국의 영향력에서 떼어 내기도 쉽지 않았다.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을 경계하면서도 중국과 경제적으로 단절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지난 10~20년 동안 경제 발전을 이룬 아시아 나라들은 모두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세계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국익을 추진하는 데서 점점 더 자신만만하고 적극적이 됐다. 시진핑 체제 이후 특히 그랬다.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향한 “중국몽”을 내세웠고, 핵심 이익인 대만 문제에서 양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시진핑 정부의 첨단산업 육성 계획은 알파벳, 아마존, 애플, 엔비디아, 메타 등 미국의 거대 첨단기술 기업들을 위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짚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오바마와 그의 후임자들이 거듭 보여 준 문제로서, 미국은 그토록 빠져나오고 싶어한 중동에 거듭 도로 빨려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적 수준에서 패권을 확인시켜야 하는 미국 제국주의의 처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한층 공공연해진 미·중 간 적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미국의 쇠락과 중국의 부상이 더욱 가속되고 두 국가 사이의 갈등이 증대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규칙 기반 국제질서’는 점점 균열이 가고 있다.

2017년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1기)은 이런 변화에 대한 미국 극우의 대응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의 ‘끝없는 전쟁’을 규탄했고, 중국을 상대로 경제 전쟁을 개시했다. 미국과 중국의 적대는 더 노골적이 됐고 파괴적 수단들이 동원됐다.

트럼프 정부(1기)의 주된 목적은 중국의 경제 성장을 막는 것이었다. 높은 관세를 매기고, 제재와 수출 금지라는 강압적 수단을 동원했다. 화웨이 제재나 첨단기술 제품의 중국 수출 제한 등처럼 말이다. 트럼프는 단지 무역적자 해소가 아니라 중국 경제와의 단절을 이루려 한 것인데, 그렇게 하면 중국이 첨단기술 경제로 도약하는 것을 막고 리쇼어링을 통해 미국 제조업을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조처는 상품과 자본이 국경을 넘나드는 것에 차질을 일으켰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트럼프 정부(1기)의 무역전쟁은 미국 자신도 난관에 빠뜨렸다. 미국은 각종 중국 제품에 의존하고 있는데, 특히 희토류 등 핵심 광물에 대한 의존과 그에 따른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싼 중국 상품에 의존하던 미국 소비자 시장도 충격이 컸다.

반면 중국은 좀 더 유연한 대처 능력을 보여 줬다. 대미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으로 수출하던 상품을 다른 시장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동안 중국 경제의 세계적 비중이 커지고 교역국이 크게 늘어난 덕분이었다.

2021년 취임한 바이든은 트럼프의 대중국 경제 전쟁을 이어받았다. 관세를 유지했고, 서방의 첨단기술 제품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하려고 했다. 더 나아가, 거액의 국가 보조금으로 미국 제조업 기업들의 대중국 경쟁력을 높이려 했다. 반도체 국내 제조와 첨단기술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반도체 및 과학법’이 대표적 사례다. 이는 군사력 강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골든돔 계획도 군사력과 첨단기술 산업 육성이 결합된 기획으로, 바이든과 트럼프 사이의 강한 연속성을 보여 준다.

이는 중국의 보조금을 비난하던 미국도 미·중 경쟁 심화 속에서 자국 자본을 보호·육성하는 방향으로 국가 개입을 강화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자본과 국가의 결합 경향이 국제 경쟁 격화 맥락 속에서 강화되던 20세기 초의 양상과 매우 유사하다. 이는 자본주의 기업들이 국제적 경쟁에서 자신을 지켜 줄 국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고,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의 융합을 보여 준다.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 모두 국가가 나서서 핵심 자원을 확보하거나 상대국이 핵심 자원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상대국에 대한 특정 상품 수출입을 제한하고, 제3국이 상대국과 첨단기술 교류를 끊도록 압박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희토류 같은 핵심 광물 자원 확보는 노골적인 병합 위협이나 이권 요구처럼(미국이 그린란드나 우크라이나에 하듯이) 갈수록 국가의 지정학적·군사적 능력에 달린 문제가 되고 있다. 돈으로 자원과 첨단기술 관련 상품을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는 세계가 더는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은 오늘날 제국주의 간 경쟁이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우크라이나인들을 제물삼아 서방은 러시아와 대결하고 있다 ⓒ출처 우크라이나 국방부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와 서방의 대리전

바이든이 트럼프와 달랐던 점은, 균열하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에 그가 다시 활력을 불어넣으려 했다는 것이다. 동맹 체계를 재건해 러시아와 중국에 맞서려 한 것이다.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을 결집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규칙 기반 국제질서”가 국제 평화나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 줬다. 정반대로 이 전쟁은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포식자들 사이의 쟁투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주류 정치인들, 심지어 좌파 일부조차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 제국주의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충돌로만 여겼다. 그러나 이 전쟁은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가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러시아를 상대로 벌이는 대리전이다. 제국주의 간 충돌인 것이다. 이 충돌은 20세기 초에 시작된 유형의 지정학적 충돌이 다시 돌아왔음을 극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었다.

미국은 전장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으면서도 우크라이나를 무장시켜 러시아 점령군을 몰아내려 했다. 미국이 추구하는 목표는 “러시아를 약화시키는 것”(바이든 정부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이었다. 또, 이 전쟁을 이용해 중국에도 교훈을 주기를 바랐다. 대만 무력 장악을 시도하면 그것을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리전으로 보는 관점은 처음에 상당한 반발을 샀지만(우크라이나의 영웅적 투쟁과 주체성을 무시한다는 둥) 시간이 지날수록 대리전 성격은 더 분명해졌다. 전쟁 시작 3년 뒤 〈뉴욕 타임스〉는 대리전을 인정하며, 미국 국방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얼마나 깊이 관여했는지 보도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군대에 단지 물자만 댄 것이 아니라 전투 지휘에도 관여했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가 동유럽의 이스라엘이 될 것이라며 서방 제국주의의 경비견 구실을 자처했다.

전쟁의 성격을 분명하게 규정하는 것은 그 전쟁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느냐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제국주의가 약소국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과 제국주의 간 전쟁을 혼동해선 안 된다. 비록 강대국 간에 힘의 차이가 있더라도 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제국주의가 약소국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으로 착각하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며 그에 대한 무기 지원 등 서방의 개입을 지지하거나 침묵하기 십상이다. 서방 제국주의와 그에 협력하는 국가에 사는 좌파들에게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자국의 주류 정치인들과 한편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제국주의 간 충돌로 본다는 것이 중립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20세기 초 레닌과 룩셈부르크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들은 제국주의 문제를 출발점으로 삼으며 전쟁을 낳는 체제에 맞서려 했고, 특히 자국의 지배계급에 초점을 맞췄다. 카를 리프크네히트의 구호처럼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것이다. 즉, 서방 제국주의와 그에 협력하는 국가의 좌파들은 자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해야 한다.

이것이 러시아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짚어야겠다. 일부 좌파들은 러시아는 이 충돌에 책임이 없고 그저 미국과 나토의 확장에 맞서 방어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록 미국보다 경제·군사적으로 약할지라도 러시아는 주변 지역뿐 아니라 중동 및 세계 다른 지역에 자체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가 있고, 세계 2위 핵무기 강국이다. “덜 나쁜” 제국주의 같은 것은 없다.

레닌은 한 강도가 다른 강도를 상대로 벌이는 강도질을 사회주의자들이 도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회주의자들은 강도들 사이의 쟁투를 이용해 그 강도들 모두를 타도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주의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진실을 소리 높여 말해야 한다. 즉, 이 전쟁[제1차 세계대전]은 노예주들이 노예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이라고 말이다.”

러시아 제국주의를 서방 제국주의에 비해 차악이라고 보지 않으면서도, 우리나라 정부가 지원하는 전쟁 또는 (혹시 모를) 우리나라 정부 자신의 참전에 맞서야, 곧 국내의 “주적”에 맞서야 하는 것이다.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창립자 토니 클리프가 냉전기에 제시한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닌 국제사회주의”라는 슬로건을 되새기고 적용해야 한다. 남한과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제국주의 충돌의 양편에 각각 서 있는 현실에서 이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러시아와 미국 모두의 기대와 달리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전으로 접어들었다. 러시아가 초기 작전에 실패하자 미국과 그 동맹들은 큰돈 안 들이고 푸틴을 저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예상보다 물리치기 힘든 상대임이 드러났고, 오히려 서방 측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을 결집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러시아를 경제적·지정학적으로 고립·약화시키지는 못했다. 중국과 인도는 물론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등도 러시아와의 협력을 유지했다. 이는 미국의 국제질서 장악력이 상당히 약화됐음을 드러냈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와 중국을 밀착시키는 효과를 냈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매여 있는 동안 세계 다른 지역에서 영향력을 더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 줬다. 2023년 중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외교 정상화를 중재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또, 2024년 페루에서 열린 아펙회의는 중국이 라틴아메리카에 더 깊숙이 진출하고 있음을 보여 줬다.

트럼프는 재집권 후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건하고 싶어했다. 트럼프 정부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는 ‘역 키신저’ 전략까지 운운하며 러시아를 중국에서 떼어 놓기를 바랐다. 그러나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드론 사용으로 전선은 더 처참해지고, 전세가 엎치락뒤치락을 거듭하며 확전 위험마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떠받치는 책임을 미국으로부터 넘겨받은 유럽 국가들은 군비를 증강하며 우크라이나의 공세를 지원하고 있고, 모든 것을 쏟아부어 패배를 감수할 처지가 아닌 푸틴이 우크라이나 드론이 모스크바까지 공격하자 유럽연합의 공급사슬을 타격할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트럼프의 포식성 제국주의

2025년 1월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오면서 세계는 한층 더 불안정과 혼돈 속에 빠져들었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자유주의적 규칙 기반 질서와 더 분명하게 단절했고, 경쟁국뿐 아니라 전통적 우방을 상대로도 횡포를 부리는 포식성 제국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그린란드 병합을 위협하고, 파나마운하를 되찾겠다고 하고, 우크라이나에 천연자원 이권을 요구하는가 하면, 우방국들에게 엄청난 관세를 때리며 그것을 조정해 주는 대가로 대규모 투자를 압박하고 안보 부담의 분담을 강요하고 있다.

트럼프는 그동안 미국이 동맹과 세계를 위해 희생하느라 등골이 빠졌다는 듯이 이제 관세나 안보 비용 등으로 다 돌려받겠다고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주도한 “규칙 기반 국제질서”가 미국 자본과 다른 나라 자본의 이해관계 사이에서 중립적이거나 모두의 공동 이익을 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미국은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그리고 달러 지배력을 활용해 자국 기업에 유리한 교역 및 투자 조건을 확보하고, 각국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제할 수 있었다. 미국이 구축한 제도들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했음을 보여 주는 사례는 널려 있다. 때로 이익을 관철하기 어려울 때 미국은 가뿐히 규칙을 무시했다.

게다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세계 수백 곳에 구축한 군사 기지들은 세계를 더 위험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끝없는 전쟁”으로 희생된 것은 미국 국가가 아니라 바로 중동의 보통 사람이었음은 길게 말할 것도 없다. 특히, 미국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대학살을 한결같이 지원해 왔다.

트럼프는 미국 자본주의의 쇠락과 패권 약화에 대한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의 극우 민족주의 성격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과 맥이 맞닿는다.

요컨대 트럼프 정부는 더는 일종의 ‘세계 경찰’처럼 국제 문제들을 해결하는 책임을 떠맡지 않고, 미국 국익을 우선하는 전략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미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세계 유일 강대국이었던 것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며, “우리는 지금 중국과, 어느 정도는 러시아와 그러한 상황[다수의 강대국이 존재하는 세계]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했다.

루비오의 말은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는 데 트럼프 정부의 관심이 집중돼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점은 매우 강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의 서반구 중시를 중국과의 대결에서 물러나 후퇴한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핵심 기반과 본거지를 확고하게 지키는 것은 공세를 위한 기본이다. 트럼프는 서반구에 뻗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것이지, 인도-태평양에서 물러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트럼프의 국방전략(2026)은 이 점을 국가안보전략(2025)보다 한층 더 분명하게 밝혔다. 그 문서는 “중국은 19세기 이래 미국에 가장 강력한 상대 국가”라면서 “곧 세계 경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될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국이나 다른 어떤 세력이 지배하게 된다면” 미국의 핵심 이익을 해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도 중국과의 경쟁에서 다른 국가들을 미국 뒤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동맹을 위협하고 갈취하는 이런 방식은 난점이 명백하다. 미국의 힘에 대한 신뢰도 떨어진 마당에 동맹의 균열과 이반을 초래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동맹들은 나름의 국익을 추구하며 살아남을 길을 모색하는데, 여기에는 정치적 이합집산과 함께 재무장도 두드러지게 진전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동맹의 도움 없이 세계를 호령하기 힘들다. 중동, 라틴아메리카, 아시아의 미국 우방 중 일부가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은 미국에 큰 위협이다. 또, 강대국들의 재무장은 세계를 더 위험하게 만들 것이고, 미국은 그런 세계를 통제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트럼프 새 전략의 한계는 무엇보다 그가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중동과 유럽 전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트럼프는 취임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던 우크라이나 전쟁에 발목이 잡혀 있다. 게다가 ‘끝없는 전쟁’을 비난하던 그가 중동에 다시 빨려 들어갔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을 지원하고,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 핵시설을 공격(2025년 6월)했을 뿐 아니라, 마침내 올해 2월 이란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트럼프는 이란을 쉽게 제압하고 세계 석유 흐름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오만한 착각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란은 중동의 거의 모든 미군 기지를 파괴했고, 무엇보다 세계 석유의 20퍼센트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

불안정한 휴전 속에 전투가 계속되면서 전면전 재개나 확전 가능성은 여전히 적지 않다. 그러나 전면전이 재개되더라도 트럼프는 위 두 능력을 앞세운 이란의 반격을 확실히 제압할 힘을 보여 주기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 군사 기지를 제공한 걸프 국가들을 이란 공격으로부터 방어하지 못했다는 점, 세계 핵심 에너지 수송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점은 미국의 패권에 한층 더 큰 상처를 냈다.

이런 상황은 미국이 겨루는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전선인 중국과의 대결에서 미국의 처지를 더 약화시키고 있다. 지난 5월과 9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어느 때보다 공손한 태도를 취한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시진핑은 트럼프보다 훨씬 자신 있어 보였고 대만 문제에서 물러서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5월 회담을 전후로 세계 여러 정상들이 문턱이 닳도록 중국을 방문했다.

아시아 국가들, 특히 미국에 군사 기지를 제공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 같은 곳에서는 대만 위기 시 미국이 자국을 방어할 수 있을지 논란이 일었다. 미국은 신뢰 실추를 만회하려고 억지력 제공을 약속하고 있다. 지난 8월 미 국방부 정책차관 엘브리지 콜비는 “우리는 아시아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손을 떼고 있는 게 아니라 그 반대”라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유리한 힘의 균형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전술핵 사용에 관해 언급한 것은 그 일환이었다. 한국과 일본에 전술핵을 배치한다면 아시아를 한층 더 위험하게 만들 것이다.

트럼프의 포식성 제국주의는 이데올로기적 대가도 치르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의 도덕적·정치적 지도력을 크게 실추시켰다. 동맹국을 위협하고 조롱하고 갈취하는 트럼프를 보면서 여러 국가 지도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거나 공개적인 비판 목소리를 냈다. 군사 작전을 펼쳐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와 그의 부인을 납치한 것에 전 세계 사람들이 경악했다. 더구나 미국의 중동 핵심 동맹인 이스라엘이 3년 가까이 가자 학살을 자행하고 미국이 이를 지원한 것은 미국 제국주의가 정당성 위기를 겪는 핵심 이유다.

특정 국가가 아니라 제국주의 체제 자체에 맞서 싸워야 한다

반제국주의와 사회혁명

오늘날 우리는 강대국 간 충돌이 전면에 대두한 세계에 살고 있다. 이것은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의 융합을 뚜렷하게 보여 준다. 이것은 냉전기는 물론 냉전 종식 이후 주로 미국이 약소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와 서방의 대리전이 벌어지고 있고, 더 중요하게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대결이 심화되고 있다.

또한 제국주의 경쟁은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 사이에서뿐 아니라 체제의 모든 수준에서 격화되고 있다. 가령 미국 패권의 쇠퇴는 중동에서 지역강국들이 부상할 공간을 열어 주면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 제국주의적 경쟁이 심화하는 원인을 이해하는 데 레닌의 불균등 발전은 크게 도움이 된다. 자본주의는 균등하게 발전하는 체제가 아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한참 뒤처져 있던 국가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 도전하거나 추월하는 일이 벌어진다. 오늘날 그 대표적 사례는 중국이지만, 세계 경제력 분포의 변화는 더 광범하게 벌어졌다. 그래서 미국이 중국의 부상에 직면해 자신의 패권을 지키려고 분투하고 있고, 지역 수준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제국주의 체제 내에서의 세력 균형 변화, 즉 미국 제국주의의 약화를 제국주의의 종말을 뜻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국주의를 단지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고 괴롭히는 것으로 보거나, 미국만이 유일 제국주의라고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착각하기가 쉽다. 반미 자주파가 그런 사례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미국의 지배로 환원되지 않는다. 20세기 초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했듯이, 제국주의는 강대국들이 세계 지배와 착취를 위해 서로 경쟁하고 다투는 국제 체제다. 그러므로 체제 자체를 반대해야 한다. 특정 제국주의 국가만 반대하거나, 특정 제국주의 국가에 맞서 다른 제국주의 국가를 지지해선 안 된다.

오늘날 많은 좌파들이 진영론을 받아들인다. 진영론은 중국, 러시아, 이란 등 미국의 경쟁국 또는 적성국을 편드는 것이 진보적이라는 이데올로기다. 특히 중국에 대한 환상이 큰데, 중국이 자국 노동자와 소수 민족을 대하는 태도로 보나 일대일로 사업 등에서 다른 국가들과 맺는 관계로 보나, 노동계급과 피억압자들의 처지에서는 중국이 미국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중국은 미국과의 지정학적 경쟁 속에서 국방 예산을 엄청나게 증대하고 있지만, 동시에 국내 치안과 감시에도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의 ‘국내 안보’ 예산은 2010년 국방 예산을 넘어섰는데, 그 후 속도가 빨라져 2018년에는 국방 예산보다 20퍼센트나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노동자 파업과 반부패 항의 시위,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투쟁 등 곳곳에서 분출한 저항에 대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300명이 넘는 인권 변호사와 운동가들을 무더기 연행·구금하는 등 탄압이 강화됐음에도 투쟁은 간헐적으로나마 계속되고 있다. 2018년 광둥성 선전의 자스커지(기계 제조 공장) 노동자들의 독립 노조 결성 및 학생들의 지원 운동, 2022년 코로나 정책에 항의해 일어난 청년들의 백지 시위 등이 그런 사례다.

그러나 진영론은 국가 대 국가로 세계를 이해함으로써, 미국의 경쟁국과 적국이 저지르는 억압과 착취, 차별에는 눈을 감는다. 반면, 노동계급 국제주의는 계급을 중심에 놓으며, 제국주의 열강과 하위제국주의 지역강국의 지배계급에 맞서 세계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을 지지한다.

물론 제국주의 열강과 지역강국 사이의 전쟁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이란 전쟁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패배하기를 바라야 한다. 이란 정권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이란 정권은 노동자와 빈민, 이란 내 소수민족을 억누르며 저항을 끔찍하게 탄압해 왔고, 궁극적으로 제국주의와 협상하려 해 왔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배를 바라는 것은 그것이 제국주의를 약화시키고,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 등 저항 운동을 북돋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 전쟁은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벌이는 제노사이드(인종 학살)의 연장이자 미국이 중동 에너지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패권 약화를 만회하려고 벌이는 전쟁이다. 우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의해 군사적으로 패배하기를 바라면서 우리나라 정부가 미국과 이스라엘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어떤 형식의 파병도 하지 못하도록 반대해야 한다.

또, 장기적으로 미국과 이스라엘 패배의 효과가 이란과 중동의 근본적인 변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만이 제국주의의 지배를 진정으로 무너뜨리는 길이다. 레온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에서 그런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이란과 중동의 노동계급에게는 현지 지배계급에 맞설 뿐 아니라 서방 제국주의와 그 경비견 이스라엘에도 맞설 수 있는 힘이 있다. 1979년 이란 혁명과 2011~2012년 이집트 혁명에서 그 잠재력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의 주류 좌파들은 진영론을 수용하는 한편, 이재명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독자적 국익을 추구하는 것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략적 자율성”이나 “자주”의 구호 아래서 말이다. 그러나 강대국 간 경쟁과 기존 국제질서의 균열 틈새에서 책략을 부려 이익을 얻으려는 중견국들은 긴장을 증폭시키는 당사자이지 제국주의 횡포의 해결자가 아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런 자국 정부를 지지한다면, 제국주의 체제에 맞서기는커녕 그 일부를 떠받치는 꼴이 된다.

오늘의 세계는 양차 세계 대전을 낳은 20세기 전반부와 매우 닮아 있다. 인류는 정말이지 재앙 위험 앞에 있다. 다시 양차 대전 같은 결말로 나아가지 않도록 하는 해법은 특정 제국주의 국가나 그 하위 중견국들이 아니라 오직 아래로부터 생겨날 수 있다. 특정 국가뿐 아니라 체제 자체에 도전하는 반제국주의 운동을 강화해야 한다. 100여 년 전 레닌은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본주의를 끝내는 노동계급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지금도 진실이다. 우리가 21세기 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고 그것이 위기 심화와 격변을 촉발할 것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것을 사회의 근본적이고 철저한 변화로 이끌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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