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노동 개악 좌절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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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호황으로 올해 한국의 수출액은 1조 달러가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이 1조 달러를 넘기는 것은 미국, 중국, 독일에 이어 네 번째다.
그러나 늘어나는 부만큼 불평등도 커지고 있다. 올해 노동자 실질임금은 4~7월까지 넉 달 연속 하락했다. 8월에는 0.8퍼센트 증가했지만 여전히 0퍼센트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재명 정부는 기업 지원을 우선하며 노동 개악을 추진하고 있다. 메가프로젝트를 뒷받침하기 위한 초광역특구법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초광역특구법에 단일 법률로는 역대 최대인 320여 개의 규제 특례를 담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환경 규제 완화와 함께 영리병원 설립, 특권학교 설치 허용, 유해화학물질 명칭 은폐 허용 등 각종 친기업 개악 정책들이 포함될 것이다.
노동 개악도 추진한다. 상대적 고소득 연구·개발·전문직 노동자들에게 주 52시간제 적용과 휴게, 휴일, 연장·야간근로 규제를 제외하고,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6개월로 늘리고, 기간제 사용기간을 최대 4년으로 연장하고, 외국인 투자 기업에게는 무급휴일 허용과 파견 대상 확대·기간 연장을 허용한다.
역대 정부들이 하려 했지만 못한 각종 노동 개악이 망라된 것이다. 정부는 이 법을 신속하게 통과시켜 내년 상반기에 전국에 권역별로 초광역특구를 지정하겠다고 한다.
사실 초광역특구법 추진 이전에도 정부의 노동 개혁 후퇴와 개악 추진은 이어져 왔다. 노란봉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해 하청 노동자들의 원청 교섭 요구를 가로막았을 뿐 아니라, 올해 9월에는 영업이익 N퍼센트 성과급 요구와 공장 신설과 같은 경영상 결정을 교섭 대상에서 제외하는 시행지침을 발표해 노란봉투법에서 조금이나마 확대했던 파업권조차 후퇴시켰다.
역대급 초과 세수가 들어오는 상황에서 기업 지원과 국방비는 크게 늘었지만, 공공부문 노동자 임금과 복지 증가는 매우 부족하다. 지방정부에게 나눠 주는 보통교부세는 전년 대비 겨우 2퍼센트 늘어 지방정부가 제공하던 복지는 삭감되고 있는 상황이고, 교육교부금도 제도를 개악해 증가 폭을 크게 줄이려 한다.
대화와 투쟁 병행?
정부의 계속된 개악 추진에 민주노총 지도부가 대응하는 것을 보면, 투쟁과 대화를 병행한다는 자세가 지나치게 온건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정부가 메가특구법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하자고 해 놓고는 민주당이 노동 개악 법안을 발의하며 노동계의 뒤통수를 쳤다.
10월 23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반칙이 반복된다면 퇴장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수밖에 없다”고 했었다.
정부·여당이 약속을 어기고 노동 개악 법안까지 발의한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에 계속 참가한다면 노동 개악에 들러리 서는 상황을 면치 못할 것이다.
협상을 주요 업무로 하는 노조 상층 지도자들은 사회적 대화에서 정부와 주고받기 타협을 논의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노동 개악은 일부 양보하더라도 정년 연장을 받는 게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타협이 지나치면 1998년 배석범 집행부의 노사정 합의 때처럼 노동자들에게 고통 전가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당시 배석범 집행부는 전교조 합법화를 받았다면서 정리해고제 법제화, 파견법 제정을 합의했다. 그 결과 전교조는 여전히 노동 3권을 누리지 못하면서도 고용 불안정과 비정규직화는 급속도로 증가했다.
만약 정년이 연장되더라도 이재명 정부는 직무급제, 임금피크제 등으로 노동자 임금을 공격하고, 추후 연금 개악 등을 더욱 강요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 경쟁력을 우선하는 정부에 맞서 노동자의 삶을 지키려면 정부와의 대화보다 투쟁을 우선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생활고와 커져 가는 불만을 투쟁으로 표현하려 노력해야 한다.
파견 확대까지 추진 중
초광역특구법에서 주 52시간 예외 못지않게 위험한 내용이 파견 확대다. 법안에는 외국인 투자 기업에 대해 노동부장관이 파견 대상 업무를 확대하고 파견 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파견법은 허용 업무를 32개로 제한하고, 기간도 최장 2년으로 묶여 있지만 정부는 이를 풀겠다는 것이다.
파견법은 고용 유연화의 핵심 수단 중 하나다. 1998년 경제 위기 때 파견법이 제정됐다. 사용자는 임금과 고용을 직접 책임지지 않고 필요할 때 노동자를 쓰고, 버릴 수 있게 됐다.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 등은 파견이 금지돼 왔다. 그럼에도 현대자동차 등에서 ‘불법파견’ 논란이 벌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의 정규직 직원이라고 주장하며 싸워 정규직 전환을 쟁취했다.
이 때문에 사용자 단체들은 파견 허용 업종과 기간을 확대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윤석열도 노동 개악의 한 의제로 파견 확대를 추진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것을 이재명 정부가 하겠다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 기업에 한해서 파견을 확대하더라도 그 위험성이 적은 것은 아니다. 한국 기업주들이 해외 법인을 설립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또, 특구 내 외국인 투자 기업에 파견이 허용되면 역차별 운운하며 국내 기업으로 확대하라는 요구가 뒤따를 것이다.
주 52시간 예외뿐 아니라 파견 확대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
직무급제는 ‘동일임금’ 탈을 쓴 임금 억제책
정부는 12월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근로기준법에 관련 조항을 신설하고 직무별 임금 정보 제공을 확대하는 방안 등이 추진될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직무급제를 강화하려 한다. 동일임금을 주려면 직무 분석을 통해 직무급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요구가 여성과 비정규직 등에 대한 임금 차별 철폐를 위해 오랜 기간 제기돼 온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비정규직·여성·청년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폭 올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 된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이런 일을 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이 정부 들어 비정규직이 역대 최대로 늘어났다. 또, 초광역특구법을 통해 기간제와 파견제 등을 더욱 늘리려 한다. 한쪽으로는 비정규직을 늘리면서 다른 쪽으로는 동일임금을 말하는 정부의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다.
직무급제의 본질은 임금 억제다. 고령화로 임금 부담이 커지자 기업주들은 근속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를 허물고 싶어 한다.
이것은 여성이나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에게 결코 이롭지 않다. 직무급제가 도입된 서유럽과 미국에서는 임금 격차와 소득 불평등이 지난 수십 년간 더 심화됐다. 국내에서는 문재인 정부 때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전환자에게 적용된 직무급제는 평생 저임금을 고착시켰다.
노동조합의 교섭전문가층(지도층)은 상층 간부의 일부는 직무급제를 임금 차별의 대안으로 검토하며 정부와의 협상 대상으로 여겨 왔다. 민주당 주도로 구성된 정년연장 TF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참가해 왔고, 지난해 이 TF에서 정년 연장의 대가로 “업종별 직무급제”를 노사 자율로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임금 억제를 목적으로 한 직무급제를 노조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격차 해소의 진정한 동력은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이간질해 각개격파하려는 사용자들에 맞서 연대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이때 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고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잘 지키고 더 나아가 임금 인상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상향 평준화가 가능하다.
직무급제는 초광역특구법과 함께 저지해야 할 이재명 정부의 노동 개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