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에 분노한 유럽:
멈춰 선 성장, 치솟는 물가, 늘어나는 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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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프랑스에서는 3주째 주말 시위에 경찰 추산으로도 32만 명이 나왔고, 독일 30여 개 도시에서는 청소년들이 집회를 열었다. 10월 30일에는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지에서 노동자들이 전쟁과 무기 수송, 치솟는 생계비에 항의해 파업에 나섰다.
이처럼 더는 못 참겠다는 반란이 유럽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 밑바탕에는 오랜 저성장과 고물가가 있다. 파업에 나선 그리스 항만 노동자는 “슈퍼마켓 갈 차에 기름 넣을 돈도 없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유럽의 물가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의 첫 충격 이후 내려오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의 이란 전쟁으로 물가는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프랑스 물가는 우크라이나 전쟁 전보다 18퍼센트가량 높다.
반면, 임금은 물가 인상을 따라잡지 못했다. 유로존의 실질임금은 2021년보다 2퍼센트가량 낮고, 이탈리아에서는 6퍼센트나 낮다.
이 와중에 유럽 각국은 교육과 보건 등 공공 부문에서 긴축을 시행하고 연금 개악 등 복지를 공격했다. 프랑스에서 교육재정 확충을 요구한 고등학생들의 저항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까닭이다.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시위에 나선 고등학생의 절규도 다르지 않다. “우리 학교는 누수로 천장이 무너지고 있는데 아무 조처도 없다.”
그런데도 지배계급과 주류 언론은 재정 적자의 원인이 유럽의 “복지병”에 있고 공공부문 긴축이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이렇게 반박한다.
“프랑스 공공부채의 역사를 보면, 공공부채가 가장 많이 늘어나는 것은 [정부가 은행과 기업 구제에 나섰던] 자본주의 불황과 금융 위기 때다. 그러고 나면 채권 보유자들은 우리더러 공공서비스와 연금을 깎고 세금을 올려 그 빚을 줄이라고 요구한다.”
이 그래프는 부채 비율의 수준이 아니라, 그 비율이 해마다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 준다. 선이 크게 솟은 때는 1980~1982년과 1991~1993년의 불황, 2008~2009년 세계 금융 위기, 2020년 팬데믹 불황이다. 반면 그 사이에는 부채 증가율이 훨씬 낮거나 심지어 부채가 줄었다. 복지가 방만해서 빚이 늘었다면, 부채는 해마다 꾸준히 늘었어야 한다.
정부가 재정을 흥청망청 쓴 곳이 있다면 복지가 아니라 은행·기업 구제, 그리고 국방비와 부자·기업 감세다.
예컨대 마크롱 정부는 국방 예산을 2027년까지 640억 유로로 늘리려고 한다. 기존의 국방비 증액 목표를 3년 앞당긴 것으로, 나토의 203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5퍼센트 목표에 맞추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무원 감축, 보건 지출 억제, 공휴일 이틀 폐지 등 430억 유로의 추가 긴축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스도 마찬가지다. 2036년까지 F-35 전투기와 방공 체계 ‘아킬레스의 방패’ 등에 약 280억 유로를 쓰기로 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미국에서 최대 40억 달러어치 무기를 더 사기로 했다.
그래서 10월 30일 파업에 나선 그리스 노동자들은 “돈을 무기가 아니라 교육·보건·주거에 써라”고 요구했다.
이번 반란을 낳은 경제 위기는 1~2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의 연간 경제 성장률은 최근 5년 동안 1.5퍼센트 안팎으로, 미국(2.5퍼센트)보다도 크게 낮다. 유럽연합 기업들을 조사한 한 연구를 보면, 기업이 투자한 자본에서 거둔 수익률은 2000년 13.4퍼센트에서 2024년 10.5퍼센트로 낮아졌다.
이윤이 갈수록 덜 나니 기업은 투자를 늘리지 않고, 성장도 저속이다. 자본가들의 신문인 〈파이낸셜 타임스〉조차 올해 1월 15일 자 유럽 연금 문제를 다룬 기사에서 문제는 연금 수급자들이 받는 돈이 아니라 저성장일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이럴 때조차 지배자들이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지금 시위대가 분노를 터뜨리는 것은 저성장 자체가 아니라, 지배자들이 저성장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앞서 봤듯 교육·보건과 연금은 깎으면서 군비는 늘린다. 그사이 부자와 기업은 더 큰 몫을 챙겼다. 유럽연합의 평균 법인세율은 1995년 35퍼센트에서 2023년 21퍼센트로 떨어졌다.
위기가 구조적인 만큼, 긴축과 군비 증강이라는 지배자들의 의식적 선택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최근 프랑스 총리 르코르뉘는 노동조합 대표들을 만났지만 별다른 양보안을 내놓지 않았다. 게다가 3대 신용평가사 중 두 곳이 이미 프랑스의 신용등급을 강등했고, 나머지 한 곳도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 긴축을 거듭해도 국가부채는 여전히 늘어날 전망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물가를 잡겠다며 9월 10일 금리를 올렸다. 그러나 금리를 올려도 전쟁 때문에 오른 기름값은 내려가지 않고 서민 고통만 키울 따름이다.
이처럼 지배자들은 이미 실패한 것으로 드러난 대책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이 위기를 돌파하려면 정치적 항의를 넘어, 사회와 경제를 마비시킬 수 있는 노동자들의 힘이 필요하다.
11월 5일에는 프랑스 노총들의 공동 파업이 예정돼 있다. 스페인에서도 주택난에 항의하는 시위로 촉발된 조기 총선 국면에 개입하기 위한 파업이 11일에 벌어진다.
이런 파업들은 아직은 운동에서 주변적인 위치에 있는 조직 노동자들을 끌어들일 중요한 기회다.
그러나 조직 노동자들의 힘을 깨우려면 혁명가들의 구실이 중요하다.
노조 지도자들은 9월 말 학생들의 투쟁이 시작되자 말로는 지지하면서도 학생 운동과 직접 연결되기를 꺼렸고, 통제력을 되찾으려 다음 파업을 5주 뒤로 멀찍이 잡았다. 이런 관료적 통제를 극복할 현장의 능력을 점차 키워야 한다.
고무적인 사례가 있다. 그리스에서는 애초 노조 지도부가 파업을 11월 말로 멀찍이 잡았으나, 교사·병원 노동자들의 압력으로 10월 21일 하루 파업을 선포했다. 일터와 캠퍼스에 뿌리내린 혁명적 좌파들이 그 과정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유럽의 반란은 이제 시작이다. 노동자들의 힘을 깨우는 촉매 구실을 할 혁명가들의 조직이 급속히 성장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