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데이비스 특별 기고:
자본주의가 전염병 시대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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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데이비스는 오늘날 우리가 전염병이 창궐한 시대를 살게 된 것은 바로 자본주의적 발전 때문이라 주장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또한 극소수의 부유한 엘리트 집단과 그들을 뺀 나머지 대중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 사상이 설득력을 갖게 될 여지가 생긴 것이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미국의 사회주의자로 《코로나19, 자본주의의 모순이 낳은 재난》(책갈피, 2020)의 공저자다.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돌베개, 2008), 《슬럼, 지구를 뒤덮다》(돌베개, 2007), 《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이후, 2008년),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창작과비평사, 1994) 등이 있다.
우리 문 앞에 마침내 발을 들여놓은 괴물은 실은 너무나 익숙한 존재다.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이 괴물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최소한 서류상으로, 거의 매년 과학계는 당면한 전염병 위기에 대해 세계 지배자들에게 경고했다.
민간 제약회사들이 [전염병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필요한 항바이러스제와 백신을 공급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자본주의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인류 생존에 치명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
첫째, 자본주의는 더는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한다. 국제화된 생산에서 10억 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완전한 잉여 인력으로서 존재한다.
이들 중 대다수는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도심에 거주하며 비공식 부문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다. 이 비공식 부문만이 유일하게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둘째, 기후변화다. 자본주의는 완전히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로 인류를 내몰았는데, 기후변화가 질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지구 온난화가 지속되며 말라리아와 뎅기열 등을 옮기는 주요 곤충들의 서식지가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는 유럽에서 말라리아가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이는 거의 불가피하다.
셋째, 자본주의는 지금 우리가 겪는 종류의 대유행을 직접적으로 촉발하고 또한 그 원인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
그저 하나의 대유행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여러 대유행과 신종 질병이 창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적 세계화는 이런 새로운 전염병들을 생산했다.
자본주의로 인해 인간과 야생동물이 서로 엄격히 분리된 채 살아가던 이전 시대의 자연적·사회적 경계가 허물어졌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주로 박쥐에서 발견된다. 박쥐는 극도로 폐쇄적인 동물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박쥐나 박쥐에게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들과 접촉하기까지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변화를 촉진한 원동력은 다국적 벌목회사들이, 예컨대 아마존 같은 열대림을 대규모로 파괴해 온 과정이었다.
가금류와 가축을 기르는 목축업의 산업화와 공장형 축산도 있다.
일 년에 닭 100만 마리를 처분하는 가금류 공장들을 살펴보자. 이 공장들은 마치 바이러스감염증을 일으키는 입자가속기 같다. 새로운 종류의 바이러스를 배양하고 퍼뜨리는 데 이보다 더 효과적인 기계를 발명해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모든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한 점은 면역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류가 두 부류로 나뉜다는 사실이다. 한 부류는 영양상태가 좋고, 대체로 건강하며, 의약품을 구할 수 있다.
나머지 다른 부류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상당 부분 파괴된 의료체계에 의존해야 한다.
부채
이들이 의존하는 의료체계는 부채, 구조조정, 국제통화기금(IMF)이 여러 국가에 강요한 공공지출 삭감과 공공서비스 민영화로 인해 파괴됐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서 위생시설 부족 문제는 사람들을 전염병에 취약하게 만드는 단연 가장 큰 원인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없고 한 시간마다 비누로 손을 씻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금 남반구 빈민가에서 세계적 유행병이 폭발하면서 그로 인해 진정한 학살이 벌어질 위기가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다. 현재 상황을 우주에서 소행성이 떨어져 지구와 충돌한다는 식의 자연재해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만들어진 대유행이다. 과거 자본주의 체제는 국제화로 인해 질병 탐지와 조기경보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조금이나마 해야 했다.
이는 무역을 보호하고 북반구 제국주의 국가들에 사는 이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후기 빅토리아 제국주의 시대에 위생 관리에 관한 국제학술대회가 여러 차례 열렸다. 이 학술대회들이 명시하는 목적은 감염병 통제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948년 록펠러 재단에 의해 설립되고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중요한 구실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WHO의 본래 주된 관심사는 과일판매기업인 유나이티드프루트컴퍼니에서 일하는 농장 노동자들과 칠레 질산 광산에서 일하는 광원들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었다. WHO는 백신으로 병원균 자체를 겨냥해 질병을 퇴치하고자 했다. 천연두를 제거하는 데 이런 방식은 아주 성공적이었지만 그 외 다른 질병은 퇴치에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다른 대안적 전통이 존재한다. 바로 빈곤, 위생시설 부족 같은 사회경제적 요인들을 해결하려는 접근법이었다. [그러나 모두 과거지사고,] 오늘날에는 질병 감지를 위한 국제적 인프라와 공조 체제가 완전히 무너졌다.
WHO는 사실상 와해됐다. 현재 이 기구가 하는 구실은 매우 미미하다. WHO는 항상 자금 부족에 시달렸다. 미국을 포함한 주요 강대국들은 자신들이 공언한 만큼 WHO에 자금을 충분히 지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WHO는 주로 강대국에 로비하고 자선사업가들에게 의존하는 방식으로 생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예산의 80퍼센트를 채운다. 이 때문에 WHO는 미국, 중국, 자선사업가들한테 끊임없이 아부하고 간청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 4~5달 동안 이 점이 자못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명백히 드러났다.
국제적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질병 대부분을 감지하는 구실을 해 온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또한 와해됐다.
CDC는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이 현재 사용하는, 한 독일 제약회사가 개발한 [코로나바이러스] 진단키트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CDC는 자체 진단키트를 개발했지만 오류가 발견됐고 잘못된 결과를 내놓았다.
CDC는 우파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주는 자금에 의존하며 도널드 트럼프는 CDC 예산을 무참히 삭감해 버렸다. 이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 가장 먼저 취한 조처 중 하나였다.
트럼프는 취임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염병 관리 조직들을 허물고 관련 정책들을 뒤엎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미국을 전 세계에서 기술과 과학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나라라고 말하던 그날, 《뉴욕 타임스 매거진》은 수술용 마스크를 집에서 손수 바느질하는 방법을 지면에 소개했다.
또한 이번 위기는 국제적 위기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유럽연합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환상은 완전한 위기에 빠졌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는 다른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이 구호의 손길을 뻗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는 오히려 필수 보급품과 원자재 수출을 금지했다.
중국은 엄청난 경제적 영향력을 뽐내고 있으며 지난 20년 동안 세계경제를 주도했다. 하지만 중국이 지금 갖지 못했으며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소프트 파워와 더 많은 정치적 위신이다.
리더십
트럼프는 미국의 도덕적 지도력 혹은 인도주의적 대응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포기했다. 당연히 이탈리아는 핵심적 구호를 제공하는 데 앞장선 중국 정부에 손을 내밀었다.
중국은 어마어마한 역량을 동원해 필수적인 의료장비를 제공했다. 세계 도처의 구호 현장에 중국은 있었지만 유럽과 미국은 실종됐다.
17세기에 유행한 전염병들은, 특히 이탈리아에서 지중해 중심 경제가 북부 대서양 중심 경제로 이행하는 것을 가속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국 헤게모니에서 중국 헤게모니로 넘어가는 변화를 가속하는 계기인지 물어야 할 것이다.
이 전염병에 대한 대응은 너무나 국수주의적인 나머지 대다수의 세계 지도자들과 국수주의자들 자신조차 놀랄 정도였다. 국제적 협업은 붕괴했다.
국제적 생산이 회복되려면 국제 질병관리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재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노력은 사람들을 전염병에 취약하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어찌 보면 질병의 근본적 원인이라 할 수 있는)은 무시한 채 병원균을 공격하는 데 주안점을 둘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런 접근법을 따르더라도 백신과 항바이러스제는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민간부문은 [백신 등의 개발 용도로] 새로운 기술들을 활용하는 데서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생물학적 설계와 과학 발전의 잠재력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제약산업이 더는 생명을 살리는 의약품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 필수 의약품 생산은 이들의 독점적 지위를 정당화해 줬는데 말이다.
오늘날 제약산업은 더는 항바이러스제를 만들지 않고, 백신을 만드는 경우도 많지 않다. 국제적 [슈퍼 박테리아 창궐] 위기에 직면해 새 세대 항생제를 생산하는 것도 아니다. 거대 제약회사들은 기본적으로 연구와 개발에 힘쓰기보다는 자신들이 보유한 특허권을 손에 쥐고 그것을 홍보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쓴다.
제약산업은 의료혁명과 과학혁명의 발전에 족쇄가 됐을 뿐 아니라, 의약품 가격을 높게 매기고 복제 약품 보급을 막기 위한 엄청난 정치적 로비를 펼치는 데 몰두했다.
국제적 자본이 현재의 파편화된 국가별 대응을 극복하고, 자본의 주요 이해관계를 방어하고 이윤과 국제화된 생산을 지속하도록 관리할 수 있는 구조체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런 구조체는 또한 체제 중심부 인구의 의료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세계적 불황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질병이 불황을 일으키는 촉진제 구실을 하긴 했지만 질병 그 자체가 근본적 원인은 아니다.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은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모종의 새로운 국제공중보건기구를 창설하면 세계무역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국가들이 사회의학에서 언제나 핵심 주제였던 전 세계적 규모의 고통과 빈곤을 해결하는 데 자신들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고 믿는 한은 그럴 것이다.
백신이 개발된다 해도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이 백신을 구할 수 있을까? 그럴 것이라 믿을 만한 이유를 찾기 힘들다. 설사 가능하다 해도 그렇게 되기까지 여러 해가 걸릴 것이다. 우리는 세계 자본주의가 두 부류의 인류 사이에 존재하는 심연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드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물론 부유한 국가 내부에서도 그런 분단이 나타나고 있다. 질병이 인종차별의 유산과 빈곤 때문에 왜곡된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최소한 미국에서는 진보적 의제, 즉 의료를 인권으로 인정하고 유럽식의 보편적 의료제도를 주장할 절호의 기회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거대 제약회사를 해체하고 의약품 대량 생산을 국유화하자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적 주장을 내세울 기회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아마존은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한 독점기업으로 등장했다. 아마존이 스스로 필수 공익사업이라 주장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진보파의 대응은 아마존을 해체하거나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전통적인 사회주의적 요구를 내세울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 바로 아마존을 공기업으로 전환해 사회가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소유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번 위기는 좌파적 개혁주의를 넘어서 사회주의적 사상과 요구를 내세울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