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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마르크스주의자 마이크 데이비스(1946~2022) 조사:
가장 필요한 시기에 우리 곁을 떠난 걸출한 마르크스주의자

마이크 데이비스 덕분에 우리는 자본주의가 낳는 각종 재앙을 분명히 꿰뚫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있게 됐다고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말한다.

미국 마르크스주의자 마이크 데이비스(1946~2022) ⓒ출처 Wikimedia Commons

마이크 데이비스의 죽음으로 우리는 이 시대에 단연 탁월했던 마르크스주의적 상상력을 잃었다. 호기심이 끊임없이 샘솟던 인물인 마이크는 차량 폭탄 테러, 소행성 충돌, 슬럼, 1960년대 로스앤젤레스 등 그야말로 온갖 주제를 다루면서 학문적 집중력과 탁월한 문체를 발휘했다.

마이크가 2020년에 존 위너와 공저한 책 《이 밤을 불사르자》는 위의 주제들 중 마지막 것을 다루는 동시에 마이크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이크는 1946년 캘리포니아 남부의 노동계급 가정에서 태어났고, 16살에 학교를 떠나 당시의 시민평등권 운동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민주학생연합SDS 조직자로서 독일계 미국인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허버트 마르쿠제에게 편지를 썼던 일화를 내게 들려준 적이 있다. 당시 마르쿠제도 마이크처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살고 있었다. 마이크와 그의 동지들은 마르쿠제 집에 초대받아 맥주를 상자째로 마시면서 그와 토론을 벌였다고 했다.

마이크는 트럭 운전수로 일했고 곧 사회주의 활동가가 됐다. 처음에는 공산당 LA지부에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로 이주한 뒤에는 국제마르크스주의그룹에서 활동했다. 격월간지 《뉴 레프트 리뷰》가 마이크의 지적 재능을 발견하고는 런던으로 불러들였다. 내가 마이크를 처음 만난 곳도 여기였다.

마이크는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시작된 자신의 노동계급 배경을 한 번도 잊지 않았고, 1980년대 말에 그리로 돌아갔다. 이후 마이크는 학계에 자리를 잡게 됐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따르면, 처음에 마이크는 “일주일 동안은 트럭 운전사로 일하다가, 트럭 먼지 날리며 대학에 도착해서 강의를 하고서는 다시 트럭에 몸을 싣고 돌아가곤 했다.”

마이크는 놀라운 저작들을 계속해서 써냈다. 《수정의 도시》(1990)에서는 로스앤젤레스가 지리적으로 계급에 따라 양극화돼 있다는 잔혹한 현실을 들춰냈다. 책 출간 2년 후, 빈민들의 대규모 반란[1992년 LA 흑인 항쟁을 말함 — 역자]이 터져나와 마이크의 진단이 정확했음을 입증했다.

후속작 《공포의 생태학》(1998)에서는 캘리포니아에서 화재나 홍수 같은 “자연” 재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것을 조사했다. 그 책의 백미는 ‘말리부 해변이 불타도록 내버려두는 이유’라는 제목의 챕터로, 이윤을 좇은 과잉 개발이 지역 생태계와 충돌한 탓임을 폭로했다.

이런 성취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드는 작품은 2001년에 출간된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홀로코스트》[국역: 《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이다. 《뉴 레프트 리뷰》의 당시 편집자 페리 앤더슨이 이 책을 마이크의 걸작으로 꼽은 것은 옳았다. 이 책에서 마이크는 19세기 인도·중국·브라질의 자유주의 세계경제로의 통합이 엘니뇨 기후 주기와 맞물려 파괴적 기근을 낳았음을 설명한다.

이 책은 풍부하고 매혹적일 뿐 아니라, 그 정치적 메시지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하던] 조지 W 부시와 토니 블레어의 시대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함을 마이크 자신이 분명하게 밝혔다. “이 책의 과제는, ‘식민지 백성’들을 아사로 내몰았던 제국 정책의 상당 부분이 도덕적인 면에서는, 폭탄을 1만 8000피트 상공에서 떨어뜨리는 것과 정확히 똑같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자연계의 물리적 변동과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은 마이크의 후반기 글들의 핵심 주제에 속했다. 2005년작 《문 앞까지 온 괴물》[국역: 《조류독감—전염병의 사회적 생산》]에서는 2002~2004년 사스 팬데믹을 살펴보며 훨씬 더 거대한 생물학적 재난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하면서, 농·축산업의 산업화와 세계화를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 예측이 (그의 다른 많은 예측들처럼) 현실이 됐을 때, 나는 “전염병의 해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행운을 누렸다. 이 뉴스레터는 마이크가 날마다 관련 뉴스와 자신의 논평을 편집한 것으로, 코로나 팬데믹 첫 해 동안 발간됐다.

마이크는 엄청나게 박식하고 지적으로 용감하기도 했지만, 마지막까지 헌신적인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이기도 했다. 최근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도 그는 개혁주의 좌파에 대한 날 선 비판을 내려놓지 않았다. “[미국] 공화당은 항의 운동과 선거 정치를 연결시키는 일에서 눈부신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공화당이 저강도 거리 투쟁 운동을 거느리게 된 것도 문제이지만, 그들이 당의 안과 밖을 변증법적으로 연결시키고도 있는 반면 민주당의 진보적 인사들은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일각에서는 마이크가 너무 비관적이라고 폄하하지만, 마이크에게 헌정된 논문집의 제목 “재앙과 혁명의 길목에서”야말로 그의 진정한 전망을 제대로 포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이크는 심오하면서도 명쾌한 통찰로 “대재앙 자본주의”(마이크의 표현)가 낳고 있는 참사들을 분석했다. 그러나 그것이 혁명의 가능성도 품고 있다고 봤다.

널리 회자되고 있는 마이크의 말은 그의 생을 잘 요약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계속 살아가는 에너지의 가장 밑바탕에 있는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 복종에 대한 반발, 남이 정한 결론에 대한 거부다. 그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도리다. 서로 사랑하라. 서로를 방어하라. 투쟁하라.”

마이크의 파트너 알레산드라 모테주마와 그의 자녀, 친구, 동지들께 사랑과 애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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