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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마이크 데이비스 | 《슬럼, 지구를 뒤덮다》, 돌베개:
체제의 심장부가 빈곤으로 덮이다

도시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하늘로 뻗은 마천루? 아름다운 야경?

그러나 화려한 겉모습의 자본주의 도시에는 그 아름다움을 질식시키고도 남을 가난이 있다.

마이크 데이비스의 《슬럼, 지구를 뒤덮다》는 도시빈곤의 도시별, 국가별 사례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고, 그 현실이 신자유주의 정책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20세기에 도시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1950년에 인구 1백만 명 이상인 도시는 전 세계에서 86개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4백 개다.

그러나 도시의 성장보다 더 빠른 속도로 빈곤도 늘었다. 라틴아메리카의 도시 빈곤율은 1980~1986년 사이에 무려 50퍼센트나 증가했다. 세계적으로 슬럼 인구는 해마다 2천5백만 명씩 늘고 있다. 에티오피아와 차드의 슬럼인구 비율은 무려 99.4퍼센트며, 아프가니스탄은 98.5퍼센트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이 끔찍한 현실은 “테크놀로지의 필연적 발전이 아니라 전 지구적 정치위기, 즉 1970년대 세계적 채무위기와 뒤이은 1980년대 IMF 주도의 제3세계 구조조정의 산물”이라고 마이크 데이비스는 지적한다.

1980년대 IMF와 세계은행은 채무를 빌미로 제3세계에 구조조정을 강요했다. 이것은 사유화, 농산물 보조금 중단, 공공부문의 무자비한 축소를 의미했다. 그 결과 제3세계에서 소농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고, 노동자들은 실업과 소득 폭락을 겪었다.

마이크 데이비스가 썼듯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 이론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세계은행과 IMF에 “피를 남김없이 빨린” 나이지리아에서는 아이 5명 중 1명이 5세 이전에 죽는다.

슬럼에서 산다는 것은 인간 이하로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홍콩 슬럼에는 “새장”이라는 독신자용 침대가 있다. 이 침대방에서는 사람 한 명당 생활공간이 0.5평에 불과하다.
페루 수도 리마의 카예호네에서는 수도꼭지 하나를 85명이 같이 쓴다. 인도 슬럼가 22개를 조사한 결과, 9개 슬럼에서는 화장실이 아예 없었고 10개 슬럼에서 10만 2천 명이 단 19개 화장실을 함께 썼다. 이런 비위생적 환경으로 식수는 오염되고, 관련 질병으로 하루에 3만 명이 죽어간다.

전 세계가 HIV/AIDS를 비롯해 결핵이나 말라리아 같은 각종 질병과 싸우기 위해서는 해마다 70억~1백억 달러(약 7조~10조 원)가 필요하다. 아프리카가 채권국과 채권기관에 내야하는 할부금은 해마다 1백35억 달러(약 13조 원)다.

노동계급의 해체?

국가가 슬럼을 없애는 방식은 빈곤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빈자들을 “청소”하는 것이다. 전두환 정권은 1988년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수도권에서 72만 명을 쫓아냈고, 중국은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이미 35만 명을 쫓아냈다. 산토도밍고에서는 슬럼을 철거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고 주민을 납치하고 임산부와 아이를 폭행했다.

필리핀 지주들은 들쥐나 고양이에게 등유를 붓고 불을 붙여 슬럼가에 푼다. 그러면 고통에 몸부림치는 들쥐나 고양이들이 여기저기 불을 옮기고 다닌다.

물론 쫓아낸다고 해서 슬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쫓겨난 사람들은 부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땅으로 옮겨간다. 산사태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나면 생명이 위험해지는 곳 말이다.

정부들은 이따금씩 슬럼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대책을 내놓지만, 그 혜택은 빈민들에게 거의 돌아가지 않는다. 인도 델리에서는 개발청이 소규모 부지 50만 개를 분양했지만, 이 땅을 사들인 사람들은 대부분 부자였다. 나이지리아에서는 건설하겠다고 약속한 공공주택의 5분의 1만이 지어졌고, 그조차 빈민들에게 돌아간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책은 1970년대 이후 구조조정이 만들어낸 슬럼의 빠른 성장에 대해 훌륭한 설명을 제공한다. 다만 슬럼과 함께 “비공식 노동계급”의 성장 때문에 노동계급이 해체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소셜리스트워커〉에 썼듯이, 예컨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거대한 슬럼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 곳은 일련의 대중파업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는 기니의 코나크리에서 일어난 총파업과 함께 시작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나이지리아에서도 대규모 파업이 있었다. 그리고 이 파업들은 조직된 노동계급이 아프리카에서 강력한 사회적·정치적 주체임을 보여 준다.

슬럼. 가난한 이들이 내뿜는 고통의 신음소리가 지구를 뒤덮고 있다. 아프리카 판자촌 어느 한 구석에서 배고픔과 질병으로 우는 아이의 눈빛을 보고, 왜 그런 일이 되풀이되는지 궁금해 해 본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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