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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민족주의와 독립 운동을 어떻게 봐야 할까?

카탈루냐 독립 운동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계속되고 있다.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 카를레스 푸지데몬은 국민투표로 드러난 염원을 배신하며 10월 10일 독립 선언 발효를 중단했고, 16일에는 스페인 중앙정부에 서한을 보내 ‘독립 여부를 놓고 향후 두 달 동안 협상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실망한 카탈루냐 주요 노조들은 지난주부터는 예정돼 있던 파업을 취소했다.(이 때문에 지난 주말 카탈루냐에서 열린 대규모 시위는 독립 반대 우파 시위뿐이었다.)

우파 총리 마리아노 라호이가 이끄는 스페인 중앙정부는 협상할 생각이 전혀 없다. 라호이 정부는 16일 푸지데몬의 ‘러브콜’을 묵살하며 재차 최후통첩을 보냈고, 17일에는 카탈루냐 독립 운동의 두 주요 단체 ‘카탈루냐국민의회’와 ‘옴니움 쿨투랄’의 지도자들을 ‘폭동 선동’ 혐의로 구속했다.

이 탄압은 역풍을 불렀다. 카탈루냐 곳곳에서 수천 명이 구속에 항의하며 자발적으로 거리 시위를 벌였다. 〈노동자 연대〉 225호를 제작하고 있는 18일 현재, 카탈루냐 곳곳에서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작업장 중식 집회와 거리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기성 정치권의 책략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노동자 대중의 투쟁이 중요하다 ⓒ출처 가이 스몰만

스페인 자본주의, 노동계급, 카탈루냐 민족주의

카탈루냐가 스페인에 병합된 것은 1714년이었지만, 근대적 의미에서 카탈루냐 민족주의가 형성된 것은 20세기 가까이 되어서였다.

지중해 연안 지역이면서 프랑스와 국경을 맞댄 카탈루냐는 스페인의 다른 지역보다 더 빨리 산업 자본주의를 육성해, 20세기 초에는 스페인 경제의 중심지가 됐다. 이 때문에 카탈루냐에서 산업 노동계급이 대규모로 형성됐고 노동자 투쟁도 분출했다. 카탈루냐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한 1902년 총파업, 모로코 전쟁에 반대한 1909년 총파업 등 대규모 투쟁을 연거푸 벌였다.

산업자본주의의 성장은 민족주의의 성장도 촉진했다. 스페인 왕조는 카스티야 중심주의에 입각해 카탈루냐인들을 천대했다. 이에 항의하며 부르주아적 민족주의가 태동했는데, 이는 “낙후한” 스페인에 발목 잡히기 싫어한 카탈루냐 자본가들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카탈루냐 자본가들이 노동자 투쟁에 맞서 스페인 지배자들의 탄압을 거듭 지지하면서, 카탈루냐 민족주의 주류는 독립 국가 건설을 요구하는 중간계급 기반의 공화주의적 민족주의로 좌경화했다.

한편 카탈루냐 노동계급 투쟁은 계속 성장했고 스페인의 위기는 더한층 심화돼, 1936~1939년 스페인 내전으로 이어졌다. 당시 카탈루냐 노동자들은 혁명의 아성 구실을 했고, 그 덕에 혁명이 패배할 때까지 카탈루냐는 유례 없는 수준의 독립성을 누렸다. 반면 공화주의적 민족주의 운동은 스페인 혁명이 패배할 때까지 양대 계급의 투쟁 사이에서 동요하며 주변적 지위에 머물렀다.(스페인 혁명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본지 48호 ‘스페인에서 노동자 혁명의 목을 졸라 버린 민중전선’을 참고하시오.)

“개의 언어”

카탈루냐 민족주의가 다시 성장한 것은 프란치스코 프랑코의 군사독재 정부(1939~1975)가 들어선 후였다.

프랑코의 독재 하에서 카탈루냐는 혹심하게 천대받았다. 카탈루냐 언어·문화는 공적 영역에서 일절 금지됐고, 카탈루냐어에는 “개의 언어”라는 멸칭이 붙었다. 카탈루냐 민족주의 활동가들은 투옥되고 고문당했다. 독재 정권에 맞선 저항적 민족주의 정서가 고양됐다.

한편, 카탈루냐 경제는 1960~1970년대 ‘세계화’의 첨병이 돼 고성장을 구가했다. 이에 맞선 노동계급 투쟁이 부상하면서 카탈루냐 독립 운동이 대중적으로 분출했다.

카탈루냐 지방으로 이주한 스페인계 노동자들도 카탈루냐인들과 함께 카탈루냐 독립을 위해 투쟁했다. 이들은 함께 노동조합을 건설했고, 카탈루냐어를 제1언어로 교육할 권리 등을 요구하며 파업하고 점거 투쟁을 벌였다.(급진좌파들이 여기서 작지만 중요한 구실을 했다.) 노동자 투쟁은 계속 성장해, 1970년에 카탈루냐의 인구 1인당 파업 일수는 (노동조합과 파업이 완전 불법인 군사독재 치하인데도) 당시 세계 최대 수준이 됐다.

반면 카탈루냐 자본가들은 ‘민족적’ 요구를 대변한다면서 스페인 지배자들과 협상을 도모했다. 프랑코 사망 후 1978년에 새 헌법이 제정될 때 이들은 카탈루냐 독립이 아니라 자치권 확보로 요구를 제약했고, 모든 ‘민족적’ 요구가 노동계급 투쟁과 분리돼 (자본가 정당이 주도하는) 자치정부를 통해 제기되도록 했다. 노동운동에서 다수파를 차지했던 스탈린주의 정당 카탈루냐사회당(PSUC)은 여기에 타협했고, 이후 분열과 사기 저하를 겪었다.

결국 카탈루냐는 1979년 국민투표로 새 헌법이 통과되면서 자치권을 얻었다. 카탈루냐인들은 카탈루냐어를 제1언어로 교육하고 카탈루냐 문화를 공적 영역에서 드러낼 권리를 갖게 됐다. 수십 년 후인 2000년대 초에는 마침내 ‘민족’으로 공식 인정받았다. 그러나 정책 결정권은 여전히 중앙정부에 있었고, 카탈루냐의 ‘자치’는 수십 년에 걸쳐 계속되는 자치정부와 중앙정부 사이의 불안정한 타협으로 점철됐다.

경제 위기, 긴축, 카탈루냐 독립 운동의 재부상

2000년대 초 신흥공업국의 경제 성장에 힘입어 호황을 구가하던 스페인 자본주의가 2008년 위기로 큰 타격을 입으면서, 봉합됐던 갈등이 수면 위로 불거졌다.

스페인 우파는 ‘카탈라노포비아’(카탈루냐 천대)를 실질임금 삭감, 해고 규제 완화, 복지 삭감 등 긴축 정책의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삼았다. “부유한” 카탈루냐가 자치정부 지위를 악용해 스페인이 가난해졌다는 국민당의 카탈루냐 공격은 긴축을 부르는 주문이 됐다. 국민당은 카탈루냐를 ‘민족’으로 규정한 법률을 헌법재판소에 위헌 제소했다. 카탈루냐어 교육 예산을 삭감하고 사법권 등 자치권을 일부 제약하려고도 했다.

국민당보다 먼저 긴축 정책을 스페인에 도입한 사회당은 스페인 민족주의에 추수하는 것이 득표에 도움 된다고 보고 국민당의 카탈루냐 공격에 동조했다.

카탈루냐 자본가들은 경제 위기에서 자신들의 이윤을 보호할 수단으로 자치권 확대 요구를 내세웠다. 이들에게 ‘자치’는 재정 운영과 세율을 정할 권한을 카탈루냐 자본가들이 갖는다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치권 확대를 카탈루냐에 나름의 긴축 정책을 도입할 계기로 삼고자 했다. 푸지데몬이 속한 카탈루냐 부르주아 정당 통합과단결당(CiU)은 카탈루냐가 “유럽 질서에 걸맞은 국가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 왔는데, 이는 유럽연합 기준의 긴축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뜻이었다.(통합과단결당은 2015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른 민족주의 정당들과 함께 선거연합 정당 ‘[독립] 찬성을 위해 다함께’(JxSi)를 결성했고, 이 정당이 현재 자치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한편, 스페인 중앙정부의 긴축 정책 강요에 맞서 카탈루냐에서 대중적 노동자 운동이 분출했다. 노동자들은 2011년 스페인 전역에서 벌어진 대규모 광장 점거 운동에 고무돼, 교육 재정 삭감과 노동자 해고에 반대하는 파업, 거리 시위, 광장 점거 운동 등을 벌였다.(관련 기사 본지 86호 ‘솟구치는 스페인 노동자들의 반긴축 투쟁과 파업’, 2012년 7월 21일)

이 과정에서 카탈루냐 독립 요구와 긴축 반대 운동이 결합되기도 했다. 반자본주의 선거연합 민중연합(CUP) 등 카탈루냐 급진좌파들이 여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지지

카탈루냐가 스페인 자본주의의 첨병 구실을 했고 지금 독립 운동에 카탈루냐 자본주의의 이윤 보전을 원하는 우파가 포함돼 있다는 점 때문에 카탈루냐 독립 지지를 주저하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모든 근대적 민족주의 운동 안에는 좌우가 뒤섞여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 민족이 천대받는 민족인지, 그 민족의 자결권 요구가 기존 자본주의 질서에 맞서는 것인지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카탈루냐 독립 운동은 분명 스페인(과 유럽) 자본주의 질서와 긴축에 맞서는 흐름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관련 기사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카탈루냐 독립 갈등으로 스페인과 유럽연합의 취약성이 드러나다’)

푸지데몬이 유럽연합에 중재를 요청하고 (긴축 없는) 무조건적 독립 요구를 한사코 반대하는 것도 카탈루냐 독립으로 기존 자본주의 질서가 위기에 빠질 것을 두려워해서다. 스페인 5대 은행 중 하나인 (사바델시(市)에 근거한) 사바델은행을 포함해 카탈루냐 기업 500개 이상이 본사를 카탈루냐에서 철수함으로써 독립 반대 의사를 표한 것도 이런 두려움을 키우는 한 요인이다.(이런 일은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당시에도 비슷하게 벌어졌던 바 있다.)

역사적으로, 푸지데몬이 대변하는 카탈루냐 자본가들은 줄곧 노동자 대중 투쟁을 스페인의 지배보다 더 두려워해 왔다. 그 때문에 이들은 한사코 카탈루냐 독립 염원을 기성 정치의 틀 안으로 제약하려 들고 있다. 이는 운동의 기세를 꺾고 사태의 주도권을 라호이에 넘길 수 있는 위험한 처사다.

그러나 푸지데몬의 책략은 스페인 중앙정부와 카탈루냐 독립 염원 대중 양쪽 모두의 반감을 사고 있다. 민중연합 원내대표 미헤이아 보야는 푸지데몬이 카탈루냐 독립 선언 발효를 재개하지 않으면 현 정부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선포했다.(통합과단결당은 소수 여당이기 때문에, 민중연합이 지지를 철회하면 실각하게 된다)

역사적으로도 연거푸 그랬던 것처럼, 스페인 중앙정부의 탄압과 카탈루냐 지배자들의 동요에도 운동을 밀어붙인 원동력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이었다. 이번에도 중앙정부의 독립 활동가 구속에 항의하며 탄압 규탄, 구속자 석방 등을 요구하는 10월 20일 대규모 행동이 준비되고 있다. 카탈루냐의 주요 노동조합들은 아직 (3일 이후) 후속 파업 계획을 잡지 않고 조합원들이 “국민적 행동”에 개인 자격으로 참가할 것을 호소하고 있는데, 바라건대 집단적 노동자 투쟁을 건설해 운동을 더한층 전진시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운동이 더 많은 파업과 거리 시위 등을 불러와 대중 투쟁의 2라운드를 열어 젖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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