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독립 염원을 저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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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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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 카를레스 푸지데몬이 “대화”가 우선이라며 카탈루냐 독립 운동의 염원을 배신했다.
현지 시각으로 10월 10일 밤 푸지데몬은 카탈루냐 자치정부 의회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책임감을 표하는 차원에서 대화를 우선해 ... 독립 선언 발효[절차]를 중단한다”
스페인 경찰의 탄압에도 독립 찬반 국민투표가 강행된 10월 1일 이전, 푸지데몬은 투표에서 찬성표가 더 많으면 48시간 안에 독립을 선포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투표자의 약 90퍼센트가 독립에 찬성했다. 그러나 푸지데몬은 약속한 48시간에서 1주일이 더 지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푸지데몬은 이렇게 말했다. “독립이 가결됐으니 나는 결과를 따를 것이다.” 참 오래도 걸렸다. 그런데 푸지데몬은 이렇게 덧붙였다. “우선 대화부터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목표를 달성키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파 총리 마리아노 라호이의 스페인 중앙정부는 대화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탄압과 협박으로 대응해 왔다.
푸지데몬은 정치인과 언론이 “진정”해야 하고 지금의 갈등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독립 운동이 심화하면서] 본사를 카탈루냐 밖으로 이전한 기업들에게 카탈루냐로 돌아오라고 호소했다.
푸지데몬이 이처럼 한 발 물러서는 것은 사태의 주도권을 라호이에 도로 넘겨 줄 뿐이다.
카탈루냐 자치정부 의사당 밖 공원에 모여 푸지데몬의 연설을 대형 스크린으로 시청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경악과 불신을 감추지 못했다.
“부끄러운 줄 알라”
분리독립을 지지한 반자본주의 정당 민중연합(CUP) 대열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부끄러운 줄 알라!” 민중연합 대열은 이렇게 경고했다. “우리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다.” (민중연합은 캐스팅 보트를 쥐고 푸지데몬 자치정부가 유지되도록 지지하고 있다.)
사태를 좀더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푸지데몬이 일방으로 독립을 선포하는 위험을 무릅쓰리라고 어차피 예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남성은 〈유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페인 국왕 없는 첫 날이 밝은 듯하다.”
분리독립 투쟁이 끝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푸지데몬의 10일 연설은 중대한 후퇴였다.
이런 후퇴에 유럽연합(EU) 고위 정치인들이 거간꾼 노릇을 했을 수 있다.
10일 푸지데몬은 의회 연설 시각을 한 시간 이상 늦췄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는 EU 집행위원회 위원장 장 클로드 융커 등과 논의한 후 연설하려는 목적에서였다고 한다.
그에 앞서 EU이사회 상임의장 도널드 터스크는 한 연설에서 “양측의 주장과 감정을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말한다면서, 푸지데몬에게 대화를 우선시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들은 카탈루냐 독립의 우군이 아니다. 이미 EU 집행위원회는 스페인 총리에 대한 확고한 지지 입장을 표하며 카탈루냐 분리독립을 둘러싼 갈등은 “스페인 내부 사정”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유럽연합 회원국 고위직 인사들이 이런 입장에 공감했다.
그들은 브렉시트 때문에 이미 수렁에 빠진 상황에서 유럽 질서가 또 한 번 타격을 입는 것을 감당할 수 없는 처지다. 일부는 카탈루냐 독립이 자국 내 독립 운동 염원에 불을 댕길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분리독립 요구 시위 대열에는 카탈루냐 깃발이 많았고 붉은 깃발도 조금 있었다. 그뿐 아니라 지역 치안위원회 현수막도 나부꼈다. [중앙정부의 탄압에 맞서] 분리독립 찬반 국민투표를 성사시키려 수립된 이들 지역 치안위원회는 국민투표 이후에는 정부의 탄압을 규탄하며 총파업을 조직했다.
푸지데몬의 후퇴는, 카탈루냐의 민주주의와 독립을 쟁취하는 데서 지역 치안위원회의 현수막이 상징하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짊어진 책무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