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용기 측의 특별한 언급을 계기로:
촬영물(“리벤지 포르노”) 보복성 유포행위를 살펴보다
〈노동자 연대〉 구독
‘불편한 용기’는 올해 마지막 불법촬영 항의집회(12월 22일)를 소집하면서, ‘일베’ 사이트에서 벌어진 메스꺼운 행태를 상기시켰다.
일베에는 ‘(전) 여자친구 인증’이라는 제목으로 여성의 성적 부위가 찍힌 사진들이 잇달아 올라왔었다. 심지어 얼굴이 드러난 나체 사진도 있었고, 사진 속 여성의 몸매를 품평하며 시시덕거리는 댓글까지 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 연예인 A씨의 전 남자친구 최모가 성관계 동영상 유포 협박을 한 일로 ‘리벤지 포르노’에 대한 대중적 공분이 있는데도 버젓이 그런 짓을 한 것이다.
18만 명 이상이 참가한 ‘일베’ 사건의 철저 처벌 국민청원 하소연처럼 “어디서 떠돌지 모르는 알몸 사진에 평생 불안해하며 살아가야” 하는 피해 여성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분노가 끓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에는 이혼한 전처에 앙심을 품고 성관계 영상을 유포한 남성에게 징역 3년형이 선고됐다. 그 판결문에 ‘리벤지 포르노’라는 말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이처럼, 헤어진 연인에게 보복하기 위해 유포하는 성적 영상물을 뜻하는 ‘리벤지 포르노’ 문제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보복의 목적이 뚜렷하지 않아도, 옛 연인의 성적 사진·동영상을 동의 없이 유포하는 행위를 모두 ‘리벤지 포르노’ 범주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 목적이 무엇이건 한때 감정과 신체의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교류했던 상대에게 이런 짓을 하는 것은 거의 병적인 현상이다.
이 현상을 자세히 다루기 전에 우선 ‘리벤지 포르노’라는 용어의 적절성을 검토해야 한다. 불법촬영 반대 활동가들의 지적처럼 ‘포르노’라는 말을 붙이면 의미가 부정확해지고 문제의 심각성이 희석될 수 있다. 포르노와 달리, 이것은 여성의 의사에 반해 벌어지는 명백한 성범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복성 불법촬영(물)’ 등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가장 급증한 성범죄
불법촬영 범죄는 공식 통계상 최근 10년간 가장 급증한 성범죄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카메라등이용촬영죄’는 2007년 564건(성폭력처벌법 위반 범죄의 3.9퍼센트)에서 2015년 7730건(24.9퍼센트)으로 급증했다. 물론 이는 불법촬영 범죄의 증가 추세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여성들이 ‘몰카’가 범죄임을 전보다 더 분명히 인식하고 적극 신고에 나선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너무 뻔한 것은, 공식 통계로 드러나지 않는 피해가 훨씬 많다는 점이다. 수치심에 신고도 못하고 속앓이 하거나, 본인이 찍힌 영상이 떠도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제대로 된 공식 통계가 없으므로, 옛 연인이 가해자인 비율이 얼마인지, 그 추이가 어떤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불법촬영의 전반적 증가 추세 속에 옛 연인이 유포한 건수도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5월~12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 접수된 신고 통계를 보면, 가해자가 옛 애인인 경우가 34.5퍼센트나 차지했다.
불법촬영 범죄가 여성에게 주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사진 유출 피해를 입은 유튜버 양예원 씨는 “평생 살면서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내 사진을 봤을까?’라고 생각할 거 같다”는 심경을 밝혔다. 이처럼 불법촬영 범죄는 피해 여성을 위축시키고, 다른 사람들과 정상적 관계를 맺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실직 등 불이익을 당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끊게 될 수도 있다.
옛 연인이 가해자인 경우에는 그 충격이 더 클 것이다. 배신감도 크겠지만, 내밀한 사생활까지 공유하던 상대가 자신의 약점을 잘 알 거라는 생각에 피해자의 두려움은 더 클 수 있다.
아무리 연인이라 해도 상대방의 성적인 사진이나 영상을 몰래 찍거나 유포했다면 그 자체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범죄다. 여성이 직접 찍었다 해도 비동의 유포는 범죄다. 이런 일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순 없다.
오히려 피해 여성의 삶에 미치는 악영향과 그 악랄함을 고려할 때, 보복성 불법촬영 범죄는 (다른 불법촬영 못지않게) 엄중·강력 처벌하는 게 당연하다.
설사 사귈 때 합의 하에 찍었더라도, 헤어지면 완전히 삭제해야 마땅하다.(더 좋기로는 여성이 안심할 수 있도록 원본을 삭제했음을 확인시켜 줘야 한다.) 그것이 일방의 손에 남아 있는 한 고의든 실수든 제3자가 보거나 유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성들을 얼마나 불안하게 만드는지 알아야 한다.
“이기적이고 비정상적인 집착”
온라인 게시판의 발달, 개인 컴퓨터와 카메라·스마트폰의 대중적 보급이 불법촬영물이 손쉽게 유포될 수 있는 조건이겠지만, 그런 수단들이 범죄의 원인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종종 연인관계, 더 나아가 인간관계를 병들게 한다는 점이 진정한 원인이다.
한때 사랑했던 연인을 공개적으로 능욕하고, 평판을 훼손하고, 대중의 눈요기거리로 전락시키는 행위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 정도로나 취급하는 극도로 후진적인 의식을 반영한다. 눈먼 소유욕은 자신을 떠나간 여성은 최악의 수치를 당해도 싸다고 여기고, ‘내가 못 가지면 남도 못 가지게 하겠다’는 심리일 뿐이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이런 빗나간 소유욕조차 정당화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여성과 성관계를 많이 하는 게 남성의 주된 능력인 양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는데, 여성의 성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성관계 전력을 과시하는 게 미덕인 양 여기는 남성들도 있다. 이런 환경에서 소수는 전 파트너와의 성관계 동영상을 공개하고픈 잘못된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이 모든 현상들은 자본주의적 소외와 관련이 있다. 노동의 소외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광범하게 소외가 확장된다. 사회적 소외는 생산의 주체인 노동계급이 생산 과정, 더 나아가 사회 생활 전반에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없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소외는 단지 생산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애정 관계를 포함해 인간의 삶과 경험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소외로 인해 대다수 사람들은 스스로 보잘것없다고 여기고 좌절감을 느낀다. 사람은 이윤 추구와 경쟁에 종속된 부속품 정도로 취급될 뿐, 사회는 그들이 겪는 심리적·정서적 문제들을 그저 개인이 알아서 할 문제로 내맡길 뿐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무력감과 외로움에 무겁게 짓눌린 채 살아간다.
러시아의 여성 혁명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이미 한 세기 전에 자본주의 하에서 성의 관계가 얼마나 뒤틀리게 되는지 통찰력 있는 묘사를 한 바 있다.
“외로움 때문에 사람들은 ‘영혼의 짝’을 발견하고자 하는 환상에 이기적이고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집착하기 쉽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이 곧 다른 사람의 영혼에 대한 권리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원한 외로움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잔인하고 배려심 없는 태도로 사랑하는 사람의 감정을 차지하기 위한 ‘공격을 감행한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상대방이 그때까지 형성해 온 모든 관계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 하고 상대방 삶의 가장 내밀한 곳까지 들여다보려고 서두르는 상황 말이다.” (‘성과 계급투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188~207쪽, 책갈피)
콜론타이의 탁월한 통찰은 오늘날 보복성 불법촬영 범죄를 저지르는 일부 남성들의 심리가 어디서 비롯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모든 사람이 소외의 영향을 받음에도 대다수 남성들은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대부분은 그런 짓이 치졸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자본 축적이 진전될수록 소외가 심화되므로, 파트너에 대한 소유욕·집착이 각별히 심한 개인들도 늘어날 것이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보복성 불법촬영물 유포는 대중의 각별한 관심을 받는 (그래서 유포 위협에 취약한) 여성 연예인들의 문제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일반인 피해자가 증가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된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지난 20년 간 확대된 시장화도 이 문제를 악화시킨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시장경제의 확장은 경쟁과 개인주의·원자화 경향을 강화해 개인들의 무기력과 외로움을 가중시킨다. 이는 한때 연인이었던 여성을 공격하는 망가진 심리의 변변치 못한 개인들이 증가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눈요기거리
설상가상으로, 불법촬영물로 막대한 수익을 얻는 기업들은 이들에게 놀이터를 제공해 왔다. 상업적 ‘몰카’ 유통 업체들은 보복성 불법촬영물이 소규모 개인들의 범위를 넘어 훨씬 더 폭넓게 퍼지고 확대재생산 되도록 하는 토양을 제공한다.
이는 피해 여성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심지어 돈을 받고 불법촬영물을 삭제해 주는 ‘디지털 장의업체’마저 웹하드 업체와 유착된 정황이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보복성 불법촬영 피해 여성들의 고통마저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그 고통을 증폭시키는 기업들은 엄중 강력 처벌받아 마땅하고, 그 수익은 몰수돼야 한다.
불법촬영물 유통 업체들이 이토록 판치는 것은 자본주의 하의 광범한 성 상품화와도 관련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성은 사고파는 상품처럼 취급되거나 남성들의 시선을 만족시켜 주는 눈요기거리로 취급된다. 여성의 ‘섹시한’ 몸매를 부각시킨 이미지가 도처에 널려 있고, 광고와 패션 산업은 여성들이 외모를 가꿔야 한다는 엄청난 중압감을 준다. 마치 여성의 유일한 목표가 남성을 유혹하는 것이라도 되는 양 여성의 성적 매력이 강조된다.
여성이 성적 물건처럼 취급되는 현상은 근본적으로 이 체제가 여성들의 체계적 희생을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자들은 서민층 가족, 특히 그 안의 여성에게 노동력 재생산의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이 탓에 여성에 대한 온갖 차별이 정당화되고 여성은 열등한 존재로 취급된다.
성의 소외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성생활이 만족스럽고 상호 존중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것도 소외가 만연한 사회에 내재된 모순 때문이다.
성 행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증대했고 누구나 만족스러운 성을 원한다. 하지만 스트레스와 긴장, 좌절감과 위축으로 가득 찬 보통 사람들의 삶은 이를 방해한다.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크기에 실망도 크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소수는 뒤틀린 심리를 폭력적이거나 억압적인 행동으로 표출할 수 있다. 보복성 불법촬영 범죄는 그중 한 형태다.
자본주의적 소외와 체계적 성차별, 또한 무엇이든 이윤 획득의 수단으로 삼는 기업들의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보복성 불법촬영 근절은 요원할 것이다.
따라서 여성이 해방되려면 자본주의 폐지를 지지해야 한다.
여성과 남성 노동자들은 함께 싸울 수 있고, 서로의 해방을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 이때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계급의 중요한 일원이라는 점, 그래서 자본주의에 타격을 미치는 노동계급 고유의 잠재력을 공유한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