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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구하라 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11월 24일 가수 구하라 씨가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나와 같은 나이의 때이른 그의 죽음이 가슴 아프다. 그의 사망을 애도하며, 안식을 기원한다.

사망의 구체적인 경위는 수사 중이다. 다만 구하라 씨의 죽음은 지난해 그가 보복성 불법촬영물(이른바 ‘리벤지 포르노’) 위협으로 겪은 커다란 고통을 떠올리게 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지난해 9월 구하라 씨는 전 남자친구 최종범과 헤어지는 과정에서 성관계 영상 유포 협박을 받았다고 밝혔다. 최종범은 구 씨를 폭행하고 물건을 부수면서 “연예인 생활 못 하도록 하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동영상 유포를 실행에 옮기진 않았지만 연예 가십지에 제보를 시도했다.

여성(그것도 평판이 목숨과도 같은 연예인)에게 성관계 영상 유출은 회복되기 어려운 낙인이라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구하라 씨가 최 씨에게 무릎을 꿇고 비는 장면이 CCTV에 찍히기도 했다.

불편한 용기

불법촬영 근절운동 참가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보복성 불법촬영물 사건 ⓒ이미진

이런 최 씨의 범죄적 행위들과 더불어 최 씨가 한 궤변(”관계를 정리하는 개념으로 영상을 보낸 것일 뿐”)은 대중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지난해 ‘불편한 용기’ 시위는 최종범의 행태를 규탄했고, 보복성 불법촬영물(‘리벤지 포르노’)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 받았다.

그 뒤 당사자들 간 소송이 벌어졌고, 지난 8월 29일 1심 재판부는 최 씨에 대해 협박·강요·상해·재물손괴 유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최 씨가 구하라 씨의 의사에 반해 영상을 찍지 않았고 실제 유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폭력특별법(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 위반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최종범은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고 구속을 면했다.

그러나 촬영 당시 동의했더라도 비동의 유포는 범죄다. 또한 구하라 씨가 공개 폭로하지 않았다면 유포는 현실이 됐을 공산이 크다. 성관계 영상 유포로 여성을 공개적으로 능욕하겠다고 협박하며 고통에 빠트린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위협한 것으로, 엄중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뻔뻔하게도 최 씨는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 5월, 자신의 미용실 개업을 자랑하는 게시물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반성조차 없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구하라 씨는 우울과 고통을 호소하며 자살 시도를 했는데 말이다.

불법촬영의 토양

불법촬영 범죄가 여성에게 주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피해 여성은 자신의 성관계 영상이 어떤 곳에서 떠돌고 어떤 피해를 낳을지 몰라 두려움과 수치심에 시달린다. 이는 여성의 사회 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심지어 자살에 이르게도 한다. 특히 보복성 불법촬영은 한때 연인이었고 여성의 내밀한 사정까지 다 아는 상대가 자행한다는 점에서 여성에게 더 큰 배신감과 두려움을 자아낸다.

그래서 지난해 ‘불편한 용기’ 시위에 참가한 여성들은 자살한 피해 여성의 영상이 ‘유작’으로 떠도는 역겨운 현실을 고발하고 규탄했다.

“한때 사랑했던 연인을 공개적으로 능욕하고, 평판을 훼손하고, 대중의 눈요기거리로 전락시키는 행위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 정도로나 취급하는 극도로 후진적인 의식을 반영한다. 눈먼 소유욕은 자신을 떠나간 여성은 최악의 수치를 당해도 싸다고 여기고, ‘내가 못 가지면 남도 못 가지게 하겠다’는 심리일 뿐이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이런 빗나간 소유욕조차 정당화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최미진, ‘불편한 용기 측의 특별한 언급을 계기로 촬영물(“리벤지 포르노”) 보복성 유포행위를 살펴보다’, 〈노동자 연대〉 270호)

이런 일이 근절되지 않는 배경에는 자본주의 사회에 뿌리 박힌 여성 차별과 소외가 있다. 자본주의는 여성을 체계적으로 차별한다. 이런 토양 위에서 여성은 흔히 남성의 성적 대상이나 소유물로 취급되고, 여성의 신체가 상품화된다. 설상가상으로, 불법촬영물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들은 이런 영상이 일부 지인의 범위를 넘어 훨씬 더 널리 퍼지도록 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소외와 체계적 성차별, 기업들의 돈벌이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보복성 불법촬영은 사라지기 힘들 것이다.

고인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여성 차별과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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