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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N번방 방지법’과 통신 검열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편집자 주] ‘N번방 방지법’의 하나인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최미진 기자는 ‘불법촬영물 유통 방지’라는 목적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개정안의 몇몇 조항은 부적절한 수단으로 인한 역효과가 더 크므로, 불법촬영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더 효과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개정판에서는 주요 논지가 더 잘 드러나도록 수정하고 다듬었다.

● 관련 〈노동자연대TV〉 동영상 보기: [시사/이슈 톡톡] N번방 방지법과 통신 검열 논란

지난해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은 대중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그 여파로 ‘N번방 방지법’이라 불리는 일련의 법 개정안들이 통과됐다.

그 결과, 심각성에 비해 처벌이 약했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기존 법의 공백이 일부 메워진 것은 개선이라 할 수 있다. 2018년 수십만 명이 참가한 불법촬영 항의운동으로 디지털 성범죄가 피해 여성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는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된 덕분이다.

하지만 ‘N번방 방지법’의 하나인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의 경우, 그 몇몇 조항의 실효성과 역효과에 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통신·표현의 자유를 옹호해 온 진보적 시민단체 오픈넷은 올해 3월 개정안과 관련 시행령이 헌법상 통신 비밀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관련 자료는 https://opennet.or.kr/19463에서 볼 수 있다.)

개정안이 시행되자 여야 대선 후보들도 논란에 가세했다. 국민의힘 후보 윤석열과 이준석, 하태경은 “사적 검열”이라며 재개정 의사를 밝힌 반면, 민주당 후보 이재명은 개정안을 지지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장혜영·류호정 의원도 “꼭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라며 개정안을 적극 옹호했다.

개정안의 적절성을 논하기 전에, 우선 국민의힘 측의 위선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힘과 그 전신 정당들은 대표적 사상 단속법인 국가보안법의 존치를 옹호해 왔고, 사이버 테러방지법 같은 통신 도·감청 합법화를 추진한 바 있다. 하태경은 일명 ‘워마드 폐쇄법’을 발의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하태경의 ‘워마드 폐쇄법’은 역겨운 백래시’, 〈노동자 연대〉 279호) 노동계급과 피억압자들의 표현의 자유에는 하등 관심도 없던 우파의 ‘검열 반대’, ‘표현의 자유’ 운운은 위선이다.

게다가 지난해 개정안을 찬성했던 국민의힘 측이 이제 와서 반대하는 것을 보면,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정부의 ‘친 페미니즘’ 정책을 공격해 반사이익을 얻는 것이 이들의 진정한 관심사인 듯하다.

그러나 국민의힘 측의 위선을 비판하는 것과는 별도로, 노동계급과 평범한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 옹호라는 관점에서 개정안의 효과와 역효과를 진지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목적과 수단

불법촬영물 유포와 확산을 방지한다는 개정안의 목적이 정당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피해자들이 입을 실로 엄청난 고통을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대의에 공감하면서 불법촬영물이 근절되길 진심으로 바랄 것이다.

또한 온라인의 특성상 불법촬영물은 일단 유포되면 무한정 복제될 수 있으므로, 피해자들의 유포 불안을 덜어 주고 피해를 신속히 구제할 적절한 방안들이 강구돼야 한다.

다만, 목적을 뒷받침하는 수단의 적절성도 반드시 따져 봐야 한다. 아무리 명분이 정당할지라도, 그 수단이 효과적이지 않거나 부적절하면 재고해 봐야 하는 것이다. 특히 다른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지는 않는지 따져 봐야 한다.

사실 역사상 수많은 검열·단속 법들은 늘 ‘범죄 예방’이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워서 추진돼 왔다. 하지만 진보운동은 그것이 실제로 범죄를 줄이거나 막는 효과가 있는지, 오히려 다른 기본권 일반을 억누르는 역효과가 크지는 않는지 등을 고려해 왔다.

이번 논란도 이런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정안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일정 규모 이상의 SNS·커뮤니티·대화방 서비스 제공 사업자 등은 이용자들이 올리는 게시물이 이미 신고된 불법촬영물에 해당하는지를 사전에 확인해 걸러 내거나(필터링), 검색을 제한하는 기술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형사처벌(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이 조치가 최근 시행되면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에서 이용자가 어떤 게시물을 올리면 그것이 이미 신고된 불법촬영물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식별하는 필터링 과정을 수초간 거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식별 중’ 공지를 접하고, 사람들은 ‘내 게시물을 국가나 통신사업자가 사전에 일일이 다 들여다보는 것이냐’ 하는 불안감을 갖게 됐다.

먼저, 개정안 중 다음의 내용은 마땅히 필요한 조치이다. ‘통신사업자가 불법촬영물이 유통되는 사정을 신고, 삭제 요청, 기관·단체 등의 요청으로 인식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해당 정보의 삭제·접속 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통신사업자에게 ‘불법촬영물로 의심되는 정보를 상시적으로 신고·삭제 요청할 수 있는 기능’을 마련하도록 한 것이나, ‘불법촬영물을 유통할 경우 삭제·접속 차단되며 관련 법률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도록 한 것, 그리고 위 조치들을 이행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도록 한 것도 필요한 내용이다.

정부는 위와 같은 조치들이 제대로 실행되도록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이를 포함해 더 필요한 조치들은 뒤에서 자세히 다룬다.)

그러나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전 필터링·검색 제한 조치는 적절한 수단이 되기 어렵다. 이는 공개 게시판과 대화방 등에 올라온 모든 게시물들을 사전에 감시하여 걸러내도록 강제하는 방식으로, 여러 역효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오픈넷의 지적처럼, 불법촬영물만 정확히 골라내는 기술은 아직 존재하지 않고, 개정안이 규정하고 있는 기술적 조치들도 별로 효과적이지 못하다.

가령, 불법촬영물에만 사용되는 금칙어를 한정하기 쉽지 않고, 한정하더라도 금칙어와 실제 차단되는 정보의 내용 간의 상관성을 전혀 확보할 수 없다. 예컨대 “로리타”, “아동” 등과 같은 금칙어를 포함하는 정보의 내용이 실제 아동 성착취물인지 일반 포르노물인지는 사람이 그 구체적 내용과 전후 사정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렵다. 게다가 특수문자나 초성을 사용하는 등으로 우회하기도 쉽다.

이미 신고된 불법촬영물에 특정 코드값을 매겨서 대조하는 필터링 방식도 유사한 문제가 있다. 코드 작성 방식 등에 따라 합법적인 정보가 덩달아 차단될 위험이 있는 반면, 정작 불법촬영물이라도 새로운 것은 필터링으로 걸러낼 수 없다.(오픈넷, 헌법소원 심판청구서 27~28쪽)

‘일반적 감시 의무’ 부과의 문제점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어떤 방식의 필터링을 적용하든지 간에 특정 정보가 불법촬영물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용자가 공유하거나 공유하려는 정보를 통신사업자가 다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정보를 일반적·상시적으로 사전 모니터링해야 하는 것이다.(오픈넷, 위 청구서 28쪽)

이런 ‘일반적 감시 의무’를 통신사업자에게 부과하면, 결국 “플랫폼 운영자의 검열을 거친 콘텐츠만 올라오게 돼서 온라인 상의 표현의 자유가 심대하게 위축된다.”(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픈넷 이사)

더 나아가 통신사업자는 “자신의 법적 책임과 관련하여 애매모호한 정보는 모두 삭제를 하려고 하거나 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자신의 정책을 유지할 것”이다.(오픈넷, 위 청구서 43쪽) 이 때문에 국제 인권단체들도 통신사업자에 대한 ‘일반적 감시 의무’ 부과에 반대한다.

게다가 한국은 이미 언론과 온라인 표현물에 대한 규제가 강력한 국가이다.

방통위는 2020년 한 해에만 21만 건 이상의 게시물을 제재했고, 이 중 무려 3만 건 이상이 삭제됐다. 정보통신망법상 인터넷상의 임시조치 제도에 따라, 연간 45만 건, 하루 평균 1250여 건이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을 이유로 “지체 없이” 삭제, 접근차단 되고 있다. 선거 때만 되면, 각종 보도와 온라인 게시물이 선거관리위원회의 위법 여부 감시 대상이 된다.(김승주, ‘언론중재법에 반대한다 – 검열의 현황’, 〈노동자 연대〉 381호)

이 기사 작성 중에도, 공수처가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언론사 기자들의 통신 자료를 무더기로 조회해 들여다 본 사실이 폭로됐다.

이런 나라에서, 그것도 일반인들이 생활 속에서 흔히 쓰는 대화방이나 SNS 게시물마저 감시 대상이 된다는 것에 사람들이 반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를 두고 ‘불법촬영 피해자의 고통보다 잠깐의 불편함이 중한가’, ‘불법촬영물 올릴 자유를 옹호하는 것인가’ 하는 식으로 타박하는 것은 진의를 곡해하는 일면적인 접근이다.

한편, 방통위는 사적 검열 논란을 의식해 ‘카카오 1:1톡과 비공개 단체톡, 텔레그램 등 사적 대화는 필터링 대상이 아니다’ 하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만으로 위에서 지적한 더 넓은 맥락의 기본권 침해 문제들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또한 개정안 자체에는 어떤 사업자가, 어떤 온라인 공간에서, 어떤 기술적 조치를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채, 핵심적인 부분을 모두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다. 이런 점이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한 위헌이라고 오픈넷이 비판하는 까닭이다. 이런 식이면, 시행령이 변경되거나 그에 대한 정부의 해석이 자의적으로 바뀌어 어떤 것이 더 추가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오픈넷 최지연 변호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개정안에는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를 필터링하라고 돼 있지만, 그에 해당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텔레그램이나 비공개 톡방이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방통위의 사후 해석일 뿐이다. 방통위가 법 시행 이후 논란이 되고 나서야 기준이 무엇인지 보도자료를 내어 해명해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예측 가능성이 확보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텔레그램 그룹은 최대 20만 명까지 가입할 수 있고 텔레그램 채널도 무제한의 구독자를 보유할 수 있는데, 이런 곳에 올라오는 게시물들을 ‘일반에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또한 계도기간이 끝나면 현재 논란이 되는 카카오톡뿐 아니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유통되는 정보 중 ‘일반에게 공개’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것은 모두 필터링 조치의 대상이 될 것이다.”

더 나은 대안이 필요하다

요컨대, 개정안의 ‘검색 제한/사전 필터링’ 의무 조항은 그 부적절한 방식 때문에 대다수 이용자의 통신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역효과를 낼 우려가 크다. 또한 온라인 게시물 일반에 대한 사전 필터링 방식이 일단 선례로 자리잡기 시작하면, 향후 비슷한 명분을 앞세운 추가 규제가 야금야금 늘어날 우려도 있다.

그렇다면 불법촬영물 유포를 그저 방치하자는 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목적에 부합하는 더 효과적인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

2018년 수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디지털 성범죄 대처에 미온적이었던 정부를 강력 규탄했다. 그 요구에 제대로 화답하는 방법은 국가가 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불법촬영물 신고나 삭제 요청이 들어오면 통신사업자들이 신속히 차단·삭제하도록 국가가 철저히 관리·감독하여 추가 유포를 막아야 한다. 수사기관이 증거를 확보하여 유포자를 신속히 추적해 처벌하고, 국가가 피해자를 빨리 찾아내 적극 구제하는 일들도 더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성착취물을 포함한 불법촬영물을 제작·유통하는 자들에 대한 미온적 수사와 솜방망이 처벌도 사라져야 한다. 신고 시 경찰의 무성의한 태도도 개선돼야 한다. ‘텔레그램성착취공대위’ 활동가들에 따르면, 신고 당시 경찰의 무성의하고 적대적인 반응 때문에 피해자들이 위축되거나 법적 대응 의지가 꺾이기 일쑤라고 한다.

피해자들의 일상 회복을 위한 각종 지원 — 법률·의료·생계 지원, 신변 보호를 위한 이사 비용 및 개인정보 변경 지원 등 — 도 강화돼야 한다.

이런 일들은 모두 국가가 인력과 자원을 대폭 투자해야 가능한 일이다. 성범죄 피해자들의 삶을 보호하는 일에 우선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제대로 실행하지는 않은 채, 통신사업자들에게 모든 게시물에 대한 사전 검열권을 주는 것은 해결책이 못 된다. 이는 국가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은 소홀히 한 채 평범한 사람들의 자유만 위축시키는 꼴이 될 수 있다.

한편 아무리 촘촘한 법과 제도가 있어도 불법촬영물을 근절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 범죄가 생겨나는 토양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 뿌리 박힌 여성 차별과 성의 소외, 그것이 낳는 성 상품화, 그리고 여성·청소년 빈곤 문제 등이 바로 그 토양이다.

최대한의 법적 개선을 요구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이런 성범죄의 근원에 맞선 투쟁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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