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돌아보기 ②: 한국 공식 정치, 산업과 노동, 여성, 교육, 재난,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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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노란 조끼’ 운동이, 한국에서는 24살 청년 노동자의 가슴 미어지는 죽음에 항의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가 얼마나 다사다난하게 지나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듯하다. 〈노동자 연대〉는 한 해를 돌아보며 주요한 사건을 되짚어 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1부에서는 경제, 국제, 한반도 분야를 다뤘다. 이번에는 한국 공식 정치, 산업과 노동, 여성, 교육, 재난, 환경 분야를 살펴본다.
한국 공식 정치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일명 드루킹(김동원) 수사 과정에서 대선 전부터 친문재인 여론 공작을 온라인에서 벌여 왔음이 드러났다. 김경수(현 경남도지사)가 이 그룹과 민주당·친문의 연결고리 구실을 했다. 김경수가 드루킹에게 이재명 흠집내기를 지시한 문자도 나왔다.
특검까지 꾸려졌지만 경찰의 초기 수사가 부실했다. 12월 26일 재판에서 특검은 드루킹에게 댓글 공작, 뇌물 등의 혐의로 7년을 구형했다.
여론 조작을 위해 국가기관을 동원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못지 않게 민주당의 여론 공작은 그 둘이 다를 바 없는 지배계급의 정당임을 보여 준다.
군부와 기무사의 촛불 무력 진압 논의
여러 폭로와 문건,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군부 내에서는 촛불 운동 초반부터 군대가 출동해야 한다는 강경파가 있었지만, 촛불 운동이 워낙 크고 기세가 높아서 출동 기회를 못 잡고 포기한 듯하다. 모의의 중심에는 기무사령부가 있었다. 쿠데타를 일으킬 때, 전두환 직책이 보안사령관이었다. 하나회는 김영삼 때 공식 해체됐지만, 비공식 형태로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촛불 운동으로 한국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좀더 자리잡게 됐지만, 대단히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서 있음을 보여 줬다. 촛불 운동 당시에 무력 진압이 시도됐다면 혁명적 상황이 됐을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에서도 혁명은 현실적 개연성이 있는 사건인 것이다.
사법 농단 폭로
사법부가 신뢰를 받는 것은 국가가 중립이라는 생각이 강화되고 법치주의를 일상화한다는 뜻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더욱 자리잡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올해 드러난 대법원의 재판 거래는 그에 역행하는 사건이었다. 사건은 대부분 부당해고 등에 저항한 노동자, 세월호 유가족, 독재정권 하 고문 피해자, 일제 위안부나 강제징용자 등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이었다. 법원이 민간인 사찰까지 했다. 최근 법원은 수사를 위한 영장을 계속 기각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방해하기까지 했다.
지난해 이명박, 박근혜, 이재용 등을 구속하고 박근혜를 파면하면서 올라간 사법부 신뢰는 추락했다. 계급 이익 앞에 3권 분립은 허상이었고 국가는 중립적이지 않다는 게 드러났다.
문재인 우경화와 당내 좌파 죽이기
문재인 정부는 올해 지방선거에서 유례없는 압승을 거뒀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덕도 봤지만, 우파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라고 힘을 모아 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초부터 경제 지표가 악화되기 시작하자, 문재인 정부는 우경화하기 시작했다. 박근혜의 임금 삭감, 의료 영리화, 민영화 정책 등이 급하게 추진되고 있다.
이는 진보 개혁을 염원하고 지지한 층을 속이고 배신하는 것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를 망신 주고 제거하려 한 것이나, 노동개악 반대 집회에 갔다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갈군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당 안팎에서 좌파의 성장을 막으면 반우파 정서에 기대 재집권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태도는 아직 노동운동의 쟁점이다.
산업과 노동
4차 산업혁명
“4차 산업혁명” 유행이 계속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라는 기대로,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의 일자리를 뺏고 노동을 불안정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로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이 진정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바꿔 놓을 사건일까?
〈노동자 연대〉 기획연재 기사는 이런 물음들에 길잡이가 돼 줄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
문재인은 당선하자마자 인천공항을 찾아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제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이 사기라는 점이 명백해졌다.
자회사 채용이나 표준임금체계 도입과 같은 ‘돈 안 드는 개혁’을 추진한 탓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 불거졌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계속 항의 투쟁을 벌였고, 올해 6월 30일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큰 노동자들의 항의 시위로 노동자들의 불만이 확연히 드러났다.
최저임금/노동시간 개악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들의 소득이 늘면 경제도 살아난다며 ‘소득주도성장론’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정책이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이었다. 하지만 말잔치는 현실과 다르게 늘 친기업 정책으로 기울어 왔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로 ‘줬다 뺏는’ 개악을 한 데 이어, 내년 초까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악,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포함해 더한층의 개악을 추진하려 한다.
노동시간 단축도 마찬가지다. 주 52시간제가 시작되자마자 처벌을 유예하더니,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로 노동시간 단축을 무력화하려 한다.
조선업 구조조정 /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문재인 정부는 말로는 ‘노동 존중’을 표방했지만, 경제 불황이 지속되자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아니라 사용자 편들기를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조선업 구조조정과 한국GM 군산공장 폐쇄이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를 보호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는 묵살하면서도, GM의 자금 지원 요청이나 대형 조선소 사측을 지원하는 정책은 계속 내놨다. 세계 각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부자 맞춤형 국가 개입’만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임금 삭감, 노동조건 악화, 비정규직 해고 등에 시달려 온 조선업·한국GM 노동자들은 또다시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로 내쫓겼다.
광주형 일자리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자들 사이에 임금 격차를 줄이고, 지역의 일자리 창출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꼽는 대표적 사례는 광주형 일자리다. 광주형 일자리 계획은 ‘반값 임금’으로 현대자동차 공장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주형 일자리는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이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기초해 설계됐고, 임금 하향평준화를 노리고 있다. 노동운동이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해야 하는 까닭이다.
사측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에서 물러서지 않아 일단 연기됐지만, 문재인 정부는 2019년에도 이 모델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겠다고 선언했다.
투쟁에 나선 간호사들
2018년에는 여러 병원들에서 간호사들의 투쟁이 두드러졌다. 소화아동병원, 성심병원, 대구가톨릭병원, 서울대병원, 전남대병원, 가천대길병원 등등.
정부가 의료 서비스를 확대하려고 하면서도, 이를 노동강도 강화와 저임금 일자리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이 부문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될 공산이 크고, 노동운동 전체에 활력을 줄 듯하다.
사회적 대화/경사노위 논란
문재인 정부가 친기업 행보를 강화하면서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같은 사회적 대화 기구를 만들어, 노조 지도자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려 한다. 계급 협조주의를 부추겨 노동자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약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조 지도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우향우와 그 본질을 폭로하고 그에 맞서 단호하게 싸우자고 독려하는 데 힘을 쏟기보다는 경사노위 참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경사노위 바깥에서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싸운다면, 촛불 염원을 개무시하고 보라는 듯이 우경화하는 문재인 정부를 한 발 물러서게 만들 수 있다.
여성
올해는 여성 차별에 항의하며 성평등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문재인의 ‘페미니즘’이 말뿐이라는 것이 갈수록 분명해졌다. 낙태 단속·처벌 강화 시도가 한 사례다. 최저임금제 개악, 규제 완화 등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각종 노동 개악도 여성 노동자들의 조건을 악화시킨다.
불법촬영 항의운동이 대규모로 일어나다
올해 일어난 여성운동 중 가장 두드러진 운동은 ‘불법촬영’ 항의운동이었다.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을 계기로 5월부터 12월까지 벌어진 이 운동은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여성운동이었다. 여섯 차례 시위에 연인원 총 30여만 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했다. 학생과 젊은 노동계급 여성들이 주로 참가했다.
활력과 투지가 돋보인 이 운동은 불법촬영물 제작·유통에 미온적 태도를 취해 온 사법부·행정부·입법부 등 국가기관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말뿐인 페미니즘에 정면으로 항의했다. 이 운동은 일부 성과를 냈다. 올해 마지막 열린 6차 시위에는 역대 최대 규모로 결집해 웹하드 카르텔 “공범”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며 여전한 투지와 자신감을 보여 줬다.
사회적 반향 일으킨 ‘미투’ 열풍
올해 1월 서지현 검사의 고발을 계기로, 각계에서 미투 열풍이 불었다. 특히 권력자들에 의한 성적 비행이 여러 건 폭로돼, 대중의 공분을 자아냈다. 민주당 권력자들도 이 문제에서 다르지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심에서 보수적 잣대에 따라 무죄 판결을 받자, 2만 명 규모의 항의집회가 열리는 등 반발이 컸다. 올해 초 결성된 ‘미투시민행동’은 여섯 차례 거리 집회를 개최했고, 청소년들의 스쿨 미투도 있었다.
교육
문재인은 자신의 교육 공약을 저버리며 개혁 염원 대중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교육 개혁 열망 저버린 대입제도 개편
문재인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절대평가화 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오른쪽의 압력에 타협하며 결국 수능을 강화한다는 공약과 정반대 결론을 내렸다. 특목고·자사고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수능 강화 방침에 따라 특목고·자사고로 학생들이 몰리는 현상은 더욱 커졌다.
실패한 대입제도 개편은 공론화 과정이 비민주적 공약 파기로 이어진 또 하나의 사례였다.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거부
문재인은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를 공약했다. 이는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바로 시행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 ILO 등도 이를 숱하게 권고했다.
그러나 정부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ILO 핵심협약이 비준돼야 한다며 국회로 공을 떠넘기고 있다. 게다가 정부측 공익위원의 ILO 핵심협약 비준 내용도 노조인정 권리는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알맹이 빠진 안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 투쟁을 고무할만한 개혁 조처를 매우 꺼린다는 것과 노동자들의 독립적 투쟁이 중요함을 보여 준다.
비리 유치원에 대한 공분과 입법 실패
박용진 의원의 폭로로 사립 유치원의 비리 실태가 알려지며 큰 공분이 일었다. 유치원 비리를 제대로 관리·처벌하고,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하라는 요구가 컸다.
그러나 사립 유치원은 “사유재산”이라는 유치원 원장들과 자유한국당의 반발에 직면해 민주당의 ‘유치원 3법’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교육부는 여론의 압력 속에 국공립유치원 확충 계획을 냈지만 이를 제대로 뒷받침할 재원과 인력 마련 방안은 부족하다. 제대로 된 유치원 개혁을 위해서는 시장 논리에 타협하는 민주당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대중의 투쟁이 강화돼야 한다.
재난
2018년은 시작부터 대형 참사였다. 1월에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사망자 39명 포함, 사상자가 무려 190명에 이르렀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가 한 달 남짓 지났을 때다.
이후에도 고양저유소 폭발 사고, KT 아현국사 화재 사고, 강릉 KTX 탈선 사고 등 아찔한 사고들이 이어졌다. 11월에는 종로의 한 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고령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고, 12월에는 수능 시험을 막 마친 고등학생들이 가스 누출 사고로 사망했다.
산업 현장에서도 사고는 계속됐다. 태안 화력 발전소에서 일하던 24살 청년 고 김용균 씨가 “위험의 외주화”로 사망했다. 2022년까지 정부가 절반으로 줄이겠다던 산업재해는 증가 추세다. 2018년 1월부터 9월까지의 산재 사망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5퍼센트 증가해 1588명에 이른다. 문재인 정부의 관심사가 대중의 안전이 아닌 기업주들의 이윤 벌이를 지키는 데 있었던 게 분명하다.
환경
사상 최악의 폭염과 혹한, 동남아시아 쓰나미 등
2018년에는 한국의 1월 말 최저기온 영하 27.3도(경기 연천)에 이어 8월 1일 최고기온 42.1도(경기 광주) 등 극단적인 날씨가 이어졌다. 1월 24일까지 한랭질환자 수는 339명(사망자 8명), 8월 15일까지 온열질환자 수는 4301명(사망자 48명)으로 그 직접적 피해가 크게 늘었다.
해수면이 높아져 동남아시아에는 쓰나미(지진해일) 피해도 커지고 있다.
이런 급격한 날씨 변화가 기후변화의 효과라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이런 변화가 더욱 큰 규모로 자주 찾아올 것이라는 데에도 거의 이견이 없다. 기후변화의 원인은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를 태울 때 나오는 온실가스인데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는 국내외 정책은 사실상 무력화된지 오래다.
자본주의 이윤 논리 때문에 세계 최대 기업들의 무책임한 화석연료 생산·소비가 통제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건 도박의 판돈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