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자들:
단호한 점거 파업과 학생들의 연대로 승리를 거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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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자들이 단호한 점거 파업으로 학교 측의 양보를 이끌어 냈다. 2월 7일 기계실 4곳을 점거하고 파업에 돌입한 지 6일 만이다.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 기존 정규직과의 차별 없는 복지 적용을 요구했다. 지난해 서울대 당국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시설관리 용역 파견 노동자 763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직접고용했지만, 노동자들의 처우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월 12일 학교 측과 노동조합은, 기계·전기분회 조합원의 기본급을 노조가 요구한 시중노임단가(약 250만 원)에 근접하게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그간 서울대 기계·전기 노동자들의 임금은 약 200만 원으로, 다른 국립대나 사기업보다 매우 적었는데 이번 합의로 비슷한 수준이 된 것이다.
또, 이번 합의로 서울대 당국은 정액 급식비 월 13만 원, 맞춤형 복지비 연 3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청소·경비 조합원에겐 상여금을, 기계·전기 노동자들에겐 매년 명절 휴가비 5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정부가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명시한 수준의 복지조차 전혀 받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노조는 이 수준의 복지혜택(정액 급식비 13만 원, 맞춤형 복지비 40만 원, 명절 휴가비 80만 원)을 요구했다.
이를 모두 합치면 노동자들은 2017년 임금 총액 대비 약 20퍼센트의 임금 인상을 성취한 셈이다.
합의안은 13일 조합원 총회에서 96퍼센트 찬성으로 가결됐다(찬성 255표 반대 8표). 노동자들은 만족하고 기뻐하는 분위기다.
처우 개선
이번 투쟁은 ‘정규직 전환’(무기계약직화나 자회사 전환)이 됐지만 처우가 전혀 개선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불만이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인천공항과 파리바게뜨 등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자회사·무기계약직으로 ‘정규직’ 전환된 노동자들의 조건은 비정규직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이런 불만족스러운 조건을 담대하고 단호한 투쟁으로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추운 겨울 점거 파업으로 학교의 주요 건물들의 난방이 중단되자, 여기저기서 불편함들이 터져 나왔고 학교 당국은 난방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난방을 중단하는 건물을 확대해 갈 것이라며 학교 당국을 압박했다.
학교 당국이 대체 인력을 투입해 파업을 무력화시킬 수 없도록 노동자들이 기계실을 점거한 것도 파업 효과를 높혔다. 이번 파업은 노조 설립 이후 기계·전기 노동자들이 벌인 첫 파업이었는데, 노동자들은 집에도 거의 가지 않고 굳건히 파업 대열을 유지했다.
이와 동시에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면서 학생들에게 지지를 호소한 것도 효과적이었다. 노동자들은 학생들이 자주 오가는 길목에 파업 지지 호소 성명서를 부착했다.
“우리 노동자와 학생 여러분이 서울대학교의 양대 주체임을 확인합시다. ... 학생 동지 여러분에게 끝까지 싸워 반드시 승리로 보답하겠습니다.”(노조 성명서 중)
또한 노동자들은 오세정 신임 총장의 취임식 때 팻말 시위를 벌이며 학교 당국을 압박했다.
우파들이 이를 이기적 파업이라고 비난하고 서울대 당국이 “불법” 운운했지만, 굳건하게 점거 파업을 이어 간 것이 결국 서울대 당국을 물러서게 했다.
학생들의 연대
이와 함께 학생들의 연대도 투쟁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중앙도서관 등 건물의 난방이 중단되고 총학생회가 노조에 난방 재개를 요구하자, 우파들은 노조가 “학생들의 미래를 인질로 투쟁”한다고 비난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잘 먹히지 않았다. 학생들이 노동자들의 파업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면서 분위기가 점점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사회적인 여론도 시설 관리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이었다.
학생들은 파업 노동자들의 호소를 담은 영상을 배포하고, 이후 ‘서울대 시설관리직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꾸려 점거 농성장 지지방문, SNS에 파업 지지 릴레이 선언 하기, 학교 당국에 항의 전화하기 등을 호소했다.
사회대 학생회, 사회변혁노동자당 서울대분회, 사회학과/악반 학생회 등 학내 단체들과 노동자연대 학생그룹도 파업 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연대 활동을 펼쳤다.
학생들의 지지와 연대는 노동자들에게 큰 자신감을 줬다. 부적절한 입장을 취했던 총학생회도 입장을 파업을 지지하는 쪽으로 바꿨다. 총학생회는 2월 11일 아침 총장 출근에 맞춰 공대위와 함께 팻말 시위를 벌였다.
총학생회가 파업 지지 입장으로 선회하자 서울대 당국은 개강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시간을 끌어 봤자 학생들의 연대가 확대되는 등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빠르게 한 발 물러났다.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투쟁은 문재인 정부의 “무늬만 정규직화”에 맞서 다른 노동자들도 투쟁에 나서고 조건을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연대가 뒷받침되면 투쟁이 더욱 강력해질 수 있다는 점도 보여 준다.
이런 고무적 성과가 다른 곳으로도 확대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