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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이란을 위협하는가

미국과 이란의 위험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6월 2일 미국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는 이란에게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미군은 그날 페르시아만에서 모의 폭격 훈련을 했다. B-52 폭격기와 항공모함을 동원했다. 6월 7일에는 이란의 석유화학 부문을 추가로 제재했다. 대화 운운하면서도 여전히 이란을 압박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2015년에 당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맺은 이란 핵협정을 “찢어 버리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2018년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란은 협정을 어긴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미국의 핵협정 탈퇴 직후 폼페이오는 외교 전문 잡지 《포린 어페어스》에서 트럼프 정부의 대(對)이란 전략을 이렇게 제시했다. “갈등이 고조하면 손해를 보는 쪽은 이란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야 한다. 이란의 군사력은 미국에 견줄 바가 아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이란 지도자들에게 이 점을 일깨워야 한다.

“미국이 이란을 계속 압박한다면 … 이란과 종합적인 새 협상을 맺을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여러 미국 주류 언론들은 트럼프 정부의 호전적 대이란 정책을 독선적이고 제멋대로 구는 트럼프의 개성에 종종 결부한다. 〈워싱턴 포스트〉의 한 칼럼니스트는 트럼프의 대외 정책 전반을 다음 대선을 의식한 “광대극”에 비유했다.

트럼프가 막 나가는 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제국주의 열강 간 경쟁과 최강대국 미국이 거기서 처한 어려움이라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제국주의 경쟁과 미국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유일하게 전 지구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었다.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을 동원해 쇠퇴한 경제적 위상을 만회하려 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2001년)과 이라크(2003년)에서 전쟁을 일으켜, 경쟁국들이 석유를 의존하는 중동에서 패권을 다지려 했다.

그러나 미국의 구상은 실패로 끝났다. 이라크를 점령한 미군은 곳곳에서 저항에 부딪혔다.

이란은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득을 봤다. 미국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면서 이란의 경쟁자를 치워 줬다. 게다가 이란은 그 전부터 오랫동안 이라크 내 시아파 반대파 운동과 연계를 맺었다. 이들 중 일부가 새로운 이라크 정부에 참여했는데, 이란은 이들을 통해 이라크 정부 안팎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라크 내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미국이 부추긴 종파 갈등 역시 이란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배경이 됐다. 이런 종파 갈등, 지독하게 종파적인 시아파 이라크 정부의 실패, 아랍 혁명의 교착, 시리아 내전이 맞물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 세력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이하 “아이시스”)가 자라났다. 2014년 미국은 아이시스에 이라크 북서부 대부분을 내줬는데,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이란의 영향력 하에 있는 시아파 무장 집단에 기대야 했다.

오바마가 2015년에 맺은 핵협정은 이처럼 중동 상황을 뜻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미국의 처지를 반영했다. 오바마는 중국 견제에 역량을 집중하고 싶어 했지만(“아시아 재균형”), 중동이라는 수렁이 계속 발목을 잡았다.

오바마는 아이시스 격퇴에선 제한적이나마 미국과 이란이 이해관계를 공유한다는 계산에서 이란을 회유하고 이라크를 안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이란과 경쟁하는 중동의 친미 강국들(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에게 불만을 샀다.

시리아

특히 시리아 내전의 결과는 이들의 위기 의식을 부채질했을 것이다.

시리아 내전은 복잡하게 꼬인 중동 내 갈등이 중첩되는 과정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 혁명으로 위기에 몰린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타도하려고 수니파 반정부군을 일부 지원했다. 반면 이란은 아사드 정권을 지키려고 자국 군대는 물론, 자국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헤즈볼라, 이라크 시아파 무장 조직 등을 시리아로 보냈다. 이들은 시리아의 반정부 세력을 분쇄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물론 시리아 내전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한 것은 러시아였다. 2015년에 러시아는 기존 동맹인 아사드 정권을 방어하고 군사·외교적 개입을 확대할 기회를 잡으려 시리아에 개입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처지에서 시리아 상황은 만족스럽게 풀리지 않았다. 게다가 러시아가 시리아에 대대적으로 개입한 그 해에 미국은 이란과 핵협정을 맺었다.

트럼프가 이란 핵협정을 파기한 것도 이란이 중동에서 위상을 제고하고 동맹국들이 미국과 멀어지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트럼프가 보기에 오바마의 핵협정은 이란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내버려두는 문제가 있다.

대신 트럼프는 강력한 대이란 제재와 무력 시위에 베팅했다. 그것으로 미국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협정을 맺지 못하더라도 이란의 개입 능력을 견제할 수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위험천만한 베팅이기도 하다. 이미 이란·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등 중동 강국들은 시리아·예멘 등지에서 상당한 갈등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갈등들은 단지 미국의 의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국의 이해관계를 제고하려는 경쟁 동학에 따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우발적인 충돌이 벌어져서 더 심각한 갈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

트럼프는 “전쟁을 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미국은 이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미국은 반세기 동안 자신이 만들어 낸 혼란에 대한 통제력이 크게 약화됐다. 그렇다고 중동 패권을 결코 놓을 순 없지만 문제 해결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 주지도 못하는 수렁에 빠져 있다.

트럼프가 하루는 베네수엘라, 또 하루는 이란, 다른 하루는 중국을 압박하지만 트럼프라고 수렁을 나올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중동에서 일어나는 혼란과 비극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지배력을 둘러싸고 경쟁을 벌이는 제국주의 체제 자체에서 비롯한다. 트럼프의 모험은 이 위험과 혼란을 더 키울 것이다.


미국 제국주의는 어떻게 중동을 유린했는가

제국주의 때문에 중동이 난장판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 이전에는 당대 최강대국이었던 영국·프랑스가 중동을 통제했다. 오늘날 중동의 국경선이 이토록 곧은 것은 양국이 지도에 자를 대고 선을 그어 중동을 분할했기 때문이다. 서방 기업들은 지역의 통치자들에게 쥐꼬리만 한 돈을 지불하고서는 중동의 풍부한 석유로 막대한 이윤을 챙겼다.

제2차세계대전 후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은 미국 제국주의였다. 미국은 중동 지배를 매우 중시했다. 중동 석유를 지배하는 것은 세계 패권을 지키는 데에서 매우 중요했고, 지리적으로도 중동은 소련의 턱밑에 있었다.

냉전 시절 미국은 지역 내 동맹국을 활용해 소련을 중동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독점적 영향력을 확보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드 왕가는 미국의 핵심 동맹이 됐다.

영국 제국주의의 후원 속에서 탄생한 이스라엘도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 됐다. 이스라엘은 미국 제국주의의 경비견 노릇을 하며 중동 국가들과 피투성이 전쟁을 수차례 벌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이집트의 나세르를 필두로 부상한 아랍 민족주의가 서방 제국주의를 위협하자, 이스라엘은 1967년에 전쟁을 일으켜 아랍인들을 짓밟았다.

또, 이란에서는 민중의 지지를 받던 아랍 민족주의 성향 모사데크 정부가 석유 산업을 국유화하자, 1953년에 미국 중앙정보부(CIA)와 영국 정보기관 MI6가 쿠데타를 후원하고 부추겨 모사데크를 내쫓고 팔레비 왕정을 세웠다.

1979년 이란 혁명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대규모 시위와 파업이 벌어지고 친미 독재 왕정이 몰락했다. 미국 제국주의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중동 곳곳에서 이슬람 급진주의가 부상했다.

소련은 자국과 국경을 맞댄 아프가니스탄이 이슬람주의 물결에 잠식될까 봐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1980년 이라크는 서방의 지원을 받으며 이란을 침공했고 무려 8년 동안 전쟁을 벌였다.

미국 대통령 카터는 “[중동 지역의] 통제권을 획득하려는 외부 세력의 모든 시도를 미국의 사활적 이해관계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격퇴하겠다”고 천명하고 신속기동군을 창설했다. 이 신속기동군은 훗날 중부사령부로 재편돼 중동에서 여러 전쟁을 수행한다.

냉전 종식

냉전 종식 후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을 과시해 중동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해 다른 자본주의 경쟁국들의 잠재적 위협을 견제하려 했다.

미국은 자신이 얼마 전까지도 비호한 이라크의 후세인을 본보기로 삼았다. 1990년 8월 후세인은 미국이 자신을 후원하리라 믿고 쿠웨이트를 침공했는데, 미국은 이를 구실로 이라크를 공격했다. 그러면서 제2차세계대전 동안 독일에 투하한 것보다 더 많은 폭탄을 반년 동안 이라크에 퍼부었다.

이라크는 완전히 파괴됐다. 전쟁과 뒤이은 10년간 경제 제재로 최소한 200만 명의 이라크인이 사망했다.

미국의 오만함은 부시 2세 정부 때 절정에 이르렀다. 부시의 네오콘(신보수주의) 정부는 미국의 세계 패권 재천명을 목표로 중동 개입을 기획했다. 부시 정부는 2001년 9·11 테러를 이를 실현할 기회로 삼았다. 9·11 테러의 배후 오사마 빈 라덴을 처단하겠다는 명분으로(빈 라덴도 미국이 키운 자다!) 부시 정부는 2001년에 아프가니스탄을, 2003년에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러나 그 후 미국은 중동에서 거듭 실패를 맛봤고 수렁에 빠졌다.


혁명적 대중 투쟁만이 제국주의 체제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중동에는 미국 제국주의와 친미 지배자들에 맞선 강력한 저항 전통이 있다. 특히, 2011년 아랍 혁명은 미국 제국주의와 그 동맹자들이 직면한 매우 커다란 저항이었다.

혁명은 광장의 청년들에서 시작됐지만, 노동계급이 혁명적 잠재력을 드러내며 운동의 중심에 섰다.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튀니지의 벤알리 등 철권을 휘두르던 친미 독재자들이 줄줄이 몰락했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같은 독재자도 혁명을 피하지 못했다. 이집트 노동계급은 이스라엘의 봉쇄에 시달리던 팔레스타인 민중에 연대해 국경을 개방했다. 2000년 작고한 팔레스타인 출신 영국 혁명가 토니 클리프가 한 말처럼, “팔레스타인의 해방으로 가는 길은 카이로를 통한다.”

아랍 혁명은 전 세계를 고무했다. 스페인(‘인디그나도스’ 운동)과 미국(‘점거하라’ 운동)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아랍 혁명을 본딴 광장 점거 운동이 분출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제국주의가 군사 개입으로 혁명의 심화·확대가 차단되고 운동의 전진이 주춤한 틈에 지배자들이 세력을 회복하면서 혁명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아랍 혁명은 아래로부터의 대중 저항만이 제국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흘낏 보여 줬다. 지금 수단·알제리의 노동자 대중 항쟁이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계기로 발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