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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해협 인근 서방 유조선 피격:
미국은 이를 구실로 이란 위협 강화하지 말라

이란과 미국의 갈등이 심각한 가운데 6월 13일 새벽에 중동 호르무즈 해협 부근 오만해에서 유조선 두 척이 공격을 받았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있는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5분의 1이 지나가는 곳으로 세계 자본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이곳은 페르시아만에서 아라비아해로 나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고, 바로 인근에 세계적 금융 허브로 부상한 걸프 연안 국가들이 있다. 그런 만큼 이곳에서 벌어지는 충돌은 그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한 달 전(5월 12일)에도 호르무즈 해협 부근에서 유조선 네 척이 공격을 당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격 수위와 피해 규모가 더 크다.

이번에도 누가 공격을 했는지는 불확실하다. 역시 미국은 이란을 공격 배후로 지목했고 이란은 혐의를 부인했다.

14일 미군 중부사령부는 이란이 범인임을 입증한다며 영상을 공개했다. 미국은 불발한 기뢰를 제거하는 이란혁명수비대의 모습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분도 안 되는 그 흐릿한 영상이 뜻하는 바는 불분명하다. 미군 말을 믿는다 해도 이 영상은 공격이 벌어진 지 한참 후에야 찍은 장면이다.

미국과 입을 모아 영국 또한 이란을 비난하는 가운데, 영국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은 미국이 제시한 증거를 전면 부정하며, 옳게도 이렇게 지적했다. “믿을 만한 증거 없는 영국 정부의 수사는 전쟁 위협만 키울 뿐이다.”

한편 유조선 선원들이 배가 공격 당하기 전에 “비행 물체”를 봤다는 보도도 있고(AP), 배가 어뢰에 공격당한 것 같다는 보도도 있다(블룸버그).

파장

그러나 이처럼 베일에 휩싸인 진실에 매달리기보다는 이번 사건의 배경과 파장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트럼프가 집권한 이후 미국이 이란을 향한 압박을 강화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쌓여 오고 있었다. 미국의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지역 경쟁국인 이란을 견제하려고 앞장서면서 그 긴장은 더욱더 악화됐다. 마침내 지난해 트럼프가 이란과의 핵합의를 찢어 버리고 중단됐던 대(對)이란 제재를 재개했다. 그리고 올해 미국은 항모 전단을 이란 부근에 파견했다. 이란은 미국 제국주의의 공세에 반발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거론했다.

따라서 잇단 유조선 피격 사건은 미국 제국주의의 이란 압박이 낳은 긴장 고조 속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이번에 두 선박이 공격을 당한 그날 일본 총리 아베는 이란을 방문해 중재를 시도하고 있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부글부글 끓는 가운데 아베의 이란 방문은 그다지 높은 기대를 받진 않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공격당한 두 선박은 일본인이 소유한 선박과 일본으로 가는 선박이었다. 배후가 누구든지간에 이번 공격은 중동의 긴장이 조금치도 누그러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줬다.

미국은 이번 사건을 대이란 압박을 강화하는 명분으로 삼을 것이다.

물론 상당수 미국 지배자들은 중동에서 또 대규모 전쟁을 치르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실패하면서 미국은 중동에서 곤욕을 치렀다.

반면에 이란의 영향력은 더 커졌고, 시리아 내전에선 이란과 러시아가 지원한 아사드 정권이 권력을 유지했다.

골칫거리

중동의 이런 상황은 미국에게 골칫거리다. 미국은 자신의 패권에 도전하는 경쟁국들, 특히 중국에 대처하는 데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동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국 지배계급의 이런 딜레마 때문에 트럼프가 긴장을 고조시키면서도 “전쟁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정권 교체를 바라진 않는다”며 다른 말도 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미국·이란 간 갈등의 저변에 있는 동역학 자체는 위험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미국 제국주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중동 패권을 쉽사리 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 패권 유지를 위해서라면 아주 위험한 도박을 감행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미국이 중동 상황을 자기 마음대로 온전히 관리할 수도, 모든 변수를 다 통제할 수도 없다. 중동은 이미 제국주의 국가들과 그 지역 내 열강의 갈등, 온갖 집단들의 반란과 충돌로 얼룩져 있다. 이런 상황에선 사태를 급격히 악화시킬 변수가 생길 여지가 있다. 이번 유조선 피격 사건을 가벼이 보아 넘길 수 없는 까닭이다.

유조선 피격 직후 미국은 사고 해역으로, 즉 이란의 코앞으로 구축함을 추가로 파견했다. 미국의 이런 군사력 전진 배치는 호르무즈 해협의 상황을 더한층 불안정하게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이 중동 패권 유지를 위해 그 지역에서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