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서 한 장 없이 끝났다. 이렇게 정상회담에서 합의에 실패하는 것은 외교 관행상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내에서는 그 결과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청와대는 2월 25일 “북·미 사이에 종전선언이 합의될 가능성이 있다”며 정상회담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둘러싼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회담을 코앞에 두고도 대북 제재 완화 여부와 그 순서를 놓고 북·미 양측의 견해차는 해소되지 못한 듯했다.
결국 트럼프는 합의 실패 후 기자회견에서 제재 문제가 쟁점이었다고 했다. 북한이 (비핵화의 “상응 조처”로) 제재 해제를 원했지만, 트럼프는 제재 완화는 할 수 없고 제재는 계속 유효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측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제재 해제 없이 비핵화의 구체적 조처 이행을 요구한 듯하다.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원한 특정 지역과 시설의 비핵화에 [북한이] 동의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영변 핵시설을 넘어, 드러나지 않은 시설(미공개 우라늄농축시설) 해제까지 요구한 듯하다.
트럼프의 기자회견이 보여 준 점은 결국 트럼프 정부의 ‘선先 비핵화’ 압박이 합의 실패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미국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비핵화 시기와 순서에 문제가 있었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북한이 경제대국이 될 잠재력이 있는 나라라는 말을 반복했지만, 작은 제재 완화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는 그저 공치사에 불과했다.
2월 28일 오전에도 트럼프는 김정은을 앞에 두고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는 제재와 군사 위협에 시달려 온 북한 처지에서는 결코 달갑지 않은 말이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에겐 시간이 중요한데…” 하고 나지막이 말했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은 결코 대등한 상대의 협상이 아니다. 한 쪽은 세계 최강 제국주의 국가이자 상대방을 오랫동안 제재했던 국가이고, 다른 한 쪽은 정권 교체와 핵 공격 위협에 오랫동안 시달린 국가였다.
따라서 제재를 유지하면서 북한에 일방적 양보를 강요한 트럼프 정부에 정상회담 합의 실패의 일차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 협상을 둘러싼 국제 정세는 매우 불안정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를 위협하고 있고,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에서 격돌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적 경쟁이 계속 (진정한) 문제가 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베트남으로 오면서 비행기를 타지 않고 애써 철도를 타고 중국을 거쳐 갔다. 이것은 정상회담에 앞서 북한과 중국의 돈독한 관계를 부각시킨 것이다. 이 행위가 주는 정치적 메시지를 미국 협상팀은 특별하게 여겼을 것이다.
앞으로의 상황은 다소 불투명하다. 북·미 양측은 정상회담 실패에도 불구하고 협상은 지속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향후 협상은 전보다 더 많은 곡절에 부딪힐 것이다. 무엇보다, 강대국들 간의 경쟁이 낳는 국제 정세 불안정이 협상의 미래를 지속적으로 위협할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이 현실이 되려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 지도자들 간의 ‘합리적’ 선택에 기대를 걸 게 아니다. 100년 전 3·1운동에 나선 대중이 그랬듯이, 아래로부터의 반제국주의 대중 투쟁을 건설하는 것만이 확실하게 우리가 우리 운명의 주인이 되는 길일 것이다.
2019년 2월 28일
노동자연대(김영익의 대표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