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종차별 반대 투쟁:
트럼프에 대한 반대가 더 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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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강경 행보로 중첩된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트럼프는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연설에서 “우리는 급진 좌파, 마르크스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선동가, 약탈자를 격퇴하는 중”이라며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미국의 [인종차별적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조각상을 무너뜨리고, 미국의 역사를 지우려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10일 트럼프는 플로리다주(州)에 있는 미군 남부사령부를 방문하여 “경찰 재정을 절대 감축하지 않을 것”이고 “[이주민에게] 국경을 개방하지도, 경찰을 해체하지도, 국방 예산을 감축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강경하게 맞설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같은 날 트럼프는 ‘러시아 스캔들’의 핵심 중 하나로 지목돼 징역을 선고받은 로저 스톤을 복역이 시작되기도 전에 감형·석방했다. 이에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 일부도 “전대미문의 부패 행위”라며 반발했다.
트럼프의 강경 행보에 고무된 인종차별적 극우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와 충돌했다. 7월 4일 백악관 앞에서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가 “미국은 위대했던 적이 없다”고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를 맞받아쳐) 외치고, 일리노이주 볼티모어에서는 시위대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을 끌어내려 항만에 던져 버렸다. 그런데 두 곳 모두에서 무장한 극우가 시위대를 공격해 부상자가 생겼다. 같은 날 워싱턴주 시애틀에서는 19일째 도로를 점거하던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에 극우 한 명이 차량을 돌진시켜 시위대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크게 다쳤다.
그러나 사태는 트럼프의 뜻대로 되지는 않고 있다.
대선이 네 달 앞으로 다가온 현재 트럼프 지지 여론은 역대 최하로 떨어졌다. 트럼프 지지율은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에 두 자릿수 차로 뒤지고 있다. 7월 10일 〈US 뉴스〉는 “미국인 3분의 2가 미국의 중대한 위기들에 대한 트럼프의 대처에 반감이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10일 남부사령부 방문은 공화당 전당대회 개최 예정지인 플로리다주 표심을 단속하려던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같은 날 미국의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는 7만 명을 넘었고, 다음 날인 11일 플로리다주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는 미국 주(州) 중 최대인 1만 5299명을 기록했다.
이미 의료 시설의 수용 한계가 한참 초과된 마당에, 예전부터 코로나19 확산세가 두드러졌던 북부 대도시뿐 아니라 남부에서도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졌다. 텍사스주에서는 지난 2주 동안 일일 평균 사망자 수가 그 전에 견줘 50퍼센트 이상 증가해, 시신을 냉동트럭에 보관하는 실정이다.
들끓는 여론 때문에 7월 11일 트럼프는 코로나19 위기 이후 처음으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퍼포먼스를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는 9월 학기부터는 학교 운영을 ‘정상화’ 하겠다고 나서 빈축을 샀다.
코로나 위기에 악화되는 경제 위기도 지지율 하락의 큰 요인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3월 이후 미국의 실업 급여 신청자 수는 지난번 경제 위기가 터진 2008년의 최소 세 배에 이른다. 코로나19 대책의 일환으로 도입한, 매주 평균 600달러(한화로 약 72만 원)인 연방정부 실업 급여가 7월 말에 종료되는데도, 트럼프 정부는 후속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표가 많이 나온 백인 저소득층에서 지지율 하락폭이 큰 이유이기도 하다.
중첩된 위기
이처럼 미국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촉발한 중첩된 위기가 여전히 미국 사회를 불안정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위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증폭된 인종차별과 경제 침체 때문에 사상 최대의 다(多)인종 항쟁으로 번져 미국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다.
이 운동은 의미 있는 몇몇 성과들을 이끌어 내면서 다음 단계를 모색하고 있다.(관련 기사 본지 329호 ‘미국을 뒤흔든 인종차별 반대 운동 앞에 놓인 것’)
온건 시민단체들과 민주당 친화적 인사들은 이 운동이 이제 트럼프를 선거에서 심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워낙에 사악한지라 적잖은 사람들이 트럼프를 떨어뜨리려고 민주당 권력층 후보 바이든에 투표하려는 듯하다.
바이든은 광범한 반(反)트럼프 정서에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바이든이 좋아서 그를 찍는 게 아닐 것이다. 바이든은 철저한 기득권 후보, 즉 지금의 위기를 낳은 바로 그 정치를 대변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바마 정부의 긴축 공격에 실망해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거부한 ‘러스트 벨트’(오대호 인근 쇠락한 제조업 지역)에서 바이든은 트럼프를 크게 앞지르지 못했다.
바이든은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의 요구를 한사코 받아안지 않으려 한다. 7월 8일 바이든과 버니 샌더스의 ‘통합 태스크포스팀’이 발표한 정책 권고사항에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핵심 요구 중 하나였던 경찰 재정 삭감이 아예 빠졌다. 오히려 “지역사회 경찰 활동 활성화”를 내세운다. 그러나 “지역사회 경찰 활동”은 그동안 지역사회 수준에서 경찰 무장력을 강화하고 거리에서 (주로 유색인종의) 위법 행위를 단속할 사실상 무제한의 권한을 경찰에 부여할 때 사용된 글귀였다.
바이든과 샌더스는 “법집행기관 감시” 항목에서 경찰 업무 감시를 강화하고, 경찰의 가혹행위에 대한 전국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는 등의 안을 제시하는데, 이는 트럼프가 6월 17일에 발표한 경찰 ‘개혁’ 행정명령과 표현까지 똑같은 것들이다. 당시 이 안을 두고 〈워싱턴 포스트〉조차 “경찰 개혁에 잠깐 신경 쓰는 척할 뿐인 안”이라고 논평했다.
그 밖에도 이 정책 권고사항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 일례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권에 관해서는 침묵한다. 물론, 권고사항에는 연방 최저임금 15달러로 인상 등 운동의 몇몇 오랜 요구안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바이든과 민주당 실세들이 그런 ‘진보적’ 권고를 얼마나 진지하게 여기겠는가.
샌더스가 “경찰 재정 삭감”을 공공연히 반대하며 바이든 선거 운동에 매달리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오랫동안 설왕설래만 거듭하다 미뤄지고 현실성이 없다며 단칼에 무시됐던 요구들”이 거대한 대중 운동에 의해 달성되고 있는 현재 미국의 상황은 대중의 자주적인 투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샌더스가 모범으로 삼는다던 유진 뎁스(1855~1926)도 민주당을 공화당과 다를 바 없는 자본가 계급 정당이라 보고 — 그는 두 당을 두고 “‘민주공화당’이라는 사실상 하나의 당”이라 했다 — 노동 대중의 자주적인 투쟁을 옹호하지 않았던가.
한편, 이에 대한 미국 민주사회당(DSA)의 침묵도 아쉽다. DSA는 자당 ‘스타’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당의 결정을 위배하고 바이든 캠프의 정책팀에 참여한 데에도 침묵했다. DSA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 참가에는 굼뜬 반면 민주당 예비경선에는 열성적으로 임했는데, 이는 그 당의 개혁주의적 문제점을 보여 준다.(관련 기사 본지 322호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④ 미국 민주사회당(DSA)의 민주적 사회주의’)
노동조합들이 인종차별 반대 파업을 준비하다
그러나 운동이 단순히 투표로만 수렴되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변화를 요구하며 투쟁에 나서려는 움직임이 있다.
흑인 차별뿐 아니라 다른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도 더 자라날 조짐이 있다. 6월 18일 미국 대법원이 트럼프 정부의 ‘이주 아동 추방 유예 행정명령(DACA)’ 폐지 시도를 위헌으로 판결한 데 고무돼, 트럼프 정부의 이주민 차별 핵심 기구인 이민세관단속국 자체를 폐지하자는 요구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미국 반자본주의 단체 ‘마르크스21’ 활동가 빅터 페르난데즈는 “대중 운동이 모든 이주민을 합법화하고, 인종차별적 이민법과 [이민세관단속국 같은] 그 집행 기구들을 완전히 철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무적이게도 노동자 파업 소식들도 들리고 있다. 6월 19일 국제항만노조(ILWU) 서부 지역 노동자들이 인종차별 반대를 걸고 하루 파업을 벌여 항구 29곳을 하루 동안 마비시켰다.
7월 20일에는 북미서비스노조(SEIU)와 농장노동자노조(UFW) 등이 주도해 전국 25여 개 도시에서 하루 파업에 나설 계획이다(관련 기사 본지 330호 ‘흑인 목숨을 위한 파업이 준비되다’). 이 노동자들은 인종차별에 반대할 뿐 아니라 작업장 방역·안전 보장, 유급 병가 보장, 시급 인상, 의료보험 사측 부담액 인상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미국에서 코로나19 피해를 크게 입은 요양 노동자들과 대농장 노동자들이 이날 파업에 많이 동참할 전망이다. 요양 노동자들은, 한 통계에 따르면 87퍼센트가 여성이고 그중 절반 이상이 유색인종이며 대유행 이전부터 낮은 임금과 위험한 노동 환경에 시달려 왔다. 상당수가 중남미계 미등록 이주민들인 대농장 노동자들도 열악한 처지에 시달려 왔다.
한편, 7월 14일 현재 메인주(州) 배스의 제너럴 다이내믹스 조선소에서는 기계항공노조(IAMAW) 조합원 4300명이 6월 22일부터 3주째 파업 중이고, 일리노이주 졸리엣의 세인트조셉종합병원 보건의료 노동자 700명이 임금 인상과 방역·안전 보장을 요구하며 10일째 파업 중이다.
미국 노동자들은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이던 지난 3월 1일부터 수백 건의 비공인 파업을 벌여 왔는데, 이런 투쟁들도 그 연장선에 있다.
현 국면을 돌파하려고 트럼프가 인종차별을 더한층 부추기는 지금, 대중 투쟁이 거리에서, 그리고 작업장으로도 더욱 심화·확대돼야 한다. 혁명적 좌파는 이런 투쟁들에 흠뻑 지지를 보내고 운동의 심화·확대에 기여하면서, 새롭게 급진화하는 사람들과 관계 맺고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