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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종차별과 혁명

미국 경찰이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것에 대한 분노가 미국 전역에 들끓자 논평가들은 시위대에게 거리 시위를 멈추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하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가장 탁월한 미국 흑인 지식인의 한 명인 코넬 웨스트는 CNN에 출연해 그런 방법들을 사기라고 비판했다. “이 체제는 스스로 개혁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흑인들을 높은 자리에 앉혀 봤습니다.”

대안은 “혁명”이고 “혁명이란 ‘권력, 자원, 부와 존중의 민주적 공유’를 뜻한다.”라고 그는 말했다.

웨스트의 이런 호소는 여름마다 미국 곳곳의 흑인 거주 지역에서 반란이 터져나왔던 1960년대 후반에도 즉각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경찰의 인종차별, 흑인들의 실업과 가난, 열악한 주거 환경이 흑인들을 거리에 나오게 했다.

당시 기성 체제는 백인들이 독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체제를 뒤집는다는 생각은 흑인들을 선출해 사회 고위층에 있는 백인들을 갈아치우자는 생각과 쉽게 뒤섞이곤 했다.

흑표범당과 같은 가장 급진적인 단체들조차 혁명을 위한 노력과 자본주의 체제를 개혁하겠다는 발상을 결합시켰다. 그들은 여러 사회 복지를 조직하고 선거에 후보를 내면서도, 대놓고 총을 들고 다니면서 인종차별적 경찰을 감시하기도 했다.

탄압

흑인을 고위직으로 선출하는 전략은 투쟁의 보조물로 출발했다. 그러나 전투적이었던 1960년대가 가고 탄압과 후퇴의 1970년대가 오자 이 전략은 더 중요해졌다.

1969년 3월 미국 전역에 걸쳐 흑인 남성 994명과 흑인 여성 131명이 공직에 진출했다. 1975년 3월이 되자 그 수는 3배로 늘어나 흑인 남성 2969명, 흑인 여성 540명이 공직에 진출했다.

고위직에 진출한 흑인 수가 급증하자 거리 운동은 점점 축소됐다. 이제 사람들은 무언가가 해결되길 바랄 때 스스로의 시위나 운동 조직의 힘에 기대지 않고 흑인 시장, 흑인 상원의원, 흑인 하원의원을 찾았다.

주류화 전략이 낳은 또 다른 효과는 흑인 중간계급이 증가한 것이다. 흑인들이 고위직에 진출했을 뿐 아니라 그 자녀들도 그전까지 그들에게 열리지 않았던 엘리트 기관에 진출했다.

이제 그들은 다국적기업 이사가 되기도 하고 부유한 백인만이 모여 살던 동네에 살 수도 있게 됐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불러 일으킨 기대는 금세 산산조각 나버렸다 ⓒ출처 미 공군

이 전략은 2008년 버락 오바마의 당선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불과 150여 년 전만 해도 오바마를 노예로 취급해 사슬에 묶어둘 수도 있었던 나라에서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것은 실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기대가 하늘을 찔렀고, 해석의 여지가 많은 “희망”과 “변화”라는 오바마의 구호가 그런 기대를 부추겼다.

‘탈인종’ 사회?

주류 논평가들은 이제 미국이 ‘탈인종’ 사회가 됐다고 떠들어 댔다. 그러나 그런 환상에 금이 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수많은 가난한 흑인들은 이렇게 물었다. 대통령이 흑인이고, 법무장관이 흑인이고, 흑인 경찰국장들도 있는데 왜 아직도 비무장한 흑인을 죽인 경찰관을 살인죄로 기소하지 못하는가?

왜 흑인 미국인들은 백인 미국인보다 수감되는 비율이 6배나 높은가? 왜 흑인 남성은 전과가 없어도 고용될 확률이 백인 남성 전과자와 비슷한가?

대체 왜 흑인과 백인의 빈부 격차는 벌어지기만 하는가? 그리고 왜 흑인 간 빈부 격차가 심지어 더 빨리 벌어지는가?

이런 물음들은 흑인을 공직에 진출시키는 것이 가장 차별받는 자들을 위한 해결책이라는 생각에 깊은 균열을 냈다.

그렇게 교양 있고, 똑똑하고, 매력적인 오바마조차 미국의 인종차별적인 본질을 바꿀 수 없었다는 것은 인종차별의 원인이 사회를 운영한다는 사람들의 피부색이 아니라 좀더 체계적인 데에 있다는 증거 아닐까?

이 점을 이미 잘 이해한 흑인 급진주의자 맬컴 엑스는 1964년 이렇게 지적했다. “인종차별 없는 자본주의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마틴 루서 킹은 1967년에 이렇게 주장했다. “인종차별, 경제적 착취, 군사주의란 병폐들이 서로 모두 연결돼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 나머지를 그대로 둔 채 그중 하나만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종차별은 자본주의에 깊숙히 뿌리박힌 문제이고, 개혁과 더 나은 교육으로 제거 가능한 일탈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분열 지배 전략에 의존해 존속하기 때문이다. 맬컴 엑스와 마틴 루서 킹 모두 이 점을 잘 이해한 것이다.

국가

미니애폴리스와 그 밖의 거리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무장력에 직면한다. 이 국가의 주된 목적은 바로 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것이다. 최루 스프레이, 자동식 무기, 장갑차로 무장한 경찰은 너무 강력해서 무릎 꿇리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혁명도 나름의 무기가 있다.

사무실, 공장, 학교, 병원, 대중교통 체계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일한다. 이들이 없으면 체제는 돌아가지 않는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거리에 존재하는 분노와 투지를 작업장으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지배자들의 경제적 폭력에 짓눌린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장해야 한다. 우리의 생명을 기꺼이 이윤의 제물로 바치려 하는 이 체제가 우리를 분열시키고 짓밟기 위해 사악한 인종차별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이다.

몇몇 노동자들로 하여금 피부색을 이유로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 이 오랜 편견은 얼마든지 깨질 수 있다. 4000만 미국인들이 실업 수당을 타기 위해 줄을 서는 지금, 그럴싸해 보였던 그런 우월감들이 허망하다는 것이 너무도 쉽게 드러나고 있다.

혁명은 결코 쉬운 과업이 아니지만, 인종차별적인 경찰의 살인과 그 경찰들이 수호하는 악랄한 착취 체제에 대한 분노의 물결이 일어난 덕에 혁명을 위해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불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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