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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 1년 가까이 억류된 난민:
“바다나 호수 한가운데 버려진 기분이에요”

한 난민이 인천국제공항에 1년 가까이 억류돼 있다.

1월 17일 〈닷페이스〉가 이 소식을 상세히 보도했다. 난민 A씨는 지난해 2월 16일 인천공항에 도착해 공항에서 난민 신청을 했지만 법무부는 난민 신청 서류조차 주지 않고 입국을 거부했고, 그를 강제 출국시키려 했다고 한다. A씨는 〈닷페이스〉에 이렇게 증언했다.

“본국 정부에서 저를 찾고 있고 정부에선 제 쌍둥이 동생을 살해했습니다. … 원래 난민 신청을 하고 싶다고 하면 사무실로 데려가서 안내를 해 주는 줄 알았는데 아무런 설명도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타고 온 항공사 직원들을 시켜서 절 강제로 출국시키려고 했어요. 본국으로 돌려보내지 말아 달라고 무릎을 꿇고 1시간 동안 빌었습니다.”

그때부터 A씨는 인천공항 제1터미널 환승구역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됐다. 벌써 350일이 다 돼 간다. 비슷한 사정으로 인천공항에 287일 동안 억류돼 있었던 앙골라 난민 루렌도 가족보다 더 오래 갇혀 있는 것이다.

“오늘이 몇 주째, 무슨 요일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장기간 공항 억류로 삶을 잃어버린 난민A씨 ⓒ출처 닷페이스

루렌도 가족은 여러 단체와 인권 변호사, 개인들이 연대한 덕분에 2019년 10월 입국할 수 있었다. 당시 루렌도 가족의 사연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출국하는 길에 생필품과 음식, 지지금 등을 전달하며 도움을 줬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공항에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겨 지금 A씨는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처지다. 식당가 등 각종 편의시설도 문을 닫았다고 한다.

“원래 샤워실이 있었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폐쇄돼 있어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씻을 때는 화장실에 가서 몰래 씻고 나옵니다. 죄 지은 사람처럼요.”

그는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으로 버티고 있다. 마스크조차 출입국 당국이 아닌 유엔난민기구가 줬다고 한다.

“공항 직원들은 가끔 와서 제가 혹시 굶어죽진 않았나 확인만 하고 다시 갑니다. … 어느 바다나 호수 한가운데 버려진 기분이에요.”

A씨는 “본국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한국의 감옥에 갇히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본국의 현 정부가 있는 한 저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정부는 A씨의 난민 신청을 인정하고, 당장 입국을 허용하라. A씨처럼 가혹한 처지에 놓인 공항 난민들의 입국과 체류를 보장해야 한다.

폭력과 학대에 노출된 공항 난민들

한국 정부는 난민이 공항이나 항만에서 난민 신청을 하면 일단 입국을 막고서 정식 난민심사 기회를 줄지 말지 사전 심사(이른바 ‘회부심사’)를 한다. 이 제도는 사실상 난민의 입국을 차단하는 국경 통제 정책이다. 난민법이 시행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공항이나 항만에서 난민 신청을 한 1654명 중 690명(42퍼센트)만이 이 심사를 통과했다. 2019년에는 188명이 신청해 고작 13명(7퍼센트)이 통과했다.(〈난민법 시행 이후 7년, 한국 난민인정절차에 대한 고찰〉, 난민인권센터 & Rights Exposure, 2020년)

A씨를 지원하고 있는 이상현 변호사(사단법인 두루)에 따르면 “‘[A씨의 회부심사] 신청 자체도 받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법무부에서 밝혔고 그래서 신청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여기서부터 [법적으로] 다투고 있”다고 한다(〈닷페이스〉 인터뷰 중). 회부 심사조차 받지 못해 통계에도 잡히지 않은 채 강제 출국된 난민들이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난민의 입국을 거부한 후 강제 송환하는 과정은 매우 폭력적이다.

2018년에 강제 송환된 복수의 난민들은 신원을 알 수 없는 한국인 7명이 자신을 에워싸 수갑을 채우고 억지로 비행기에 태웠다는 동일한 내용의 증언을 했다. 그 과정에서 머리가 바닥에 짓눌리거나 맞기도 했다. 비행기 안에서도 계속 수갑이 채워져 다른 승객들이 이를 볼 수 있었고 심한 모욕감을 느껴야 했다. 이렇게 본국으로 송환된 한 난민은 가까스로 제3국으로 탈출해 난민 신청을 했는데, 한국에서 겪은 일을 난민 신청 사유로 추가했다고 한다(〈공항난민 인권침해사례 보고서〉, 난민인권네트워크, 2019년).

난민의 자포자기 기다리는 정부

강제 송환을 거부한 난민은 송환대기실에 구금된다. 송환대기실은 조건이 너무 열악해 난민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2017년 말에 송환대기실에 구금됐던 한 이집트 난민은 이렇게 말했다.

“원래 5명짜리 방인데 70명이 넘게 있었다.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 있고 화장실은 정말 너무 더러워서 토할 것 같았다. 투명 유리 밖에서 경비가 방 안을 상시 감시했다.”

이런 실상이 알려지며 규탄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2018년경부터 입국이 거부된 난민들을 무조건 송환대기실에 보내지는 않고 환승구역에 머물게끔 하고 있다. 그러나 A씨의 처지가 보여 주듯이 구금돼 있다는 본질은 변함이 없다.

환승구역에 난민을 방치하는 것은 학대나 마찬가지다. 송환 지시가 내려지면 항공사가 해당 난민의 여권을 압수하는 것이 관행이다. 이 때문에 난민들은 여권과 탑승권을 제시해야 하는 환승구역 내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소지한 돈이 떨어지면 끼니를 거를 수밖에 없다. 잠잘 공간도 없어서 의자에서 쪽잠을 자고, 수면을 방해하는 빛과 소음, 춥고 건조한 환경 등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게다가 아프기라도 하면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없다. 외부진료를 받으려면 항공사가 정부에 신청하는 긴급상륙허가를 받아야 한다. 항공사와 정부가 이에 협조적일 리도 없거니와 설령 허가를 받더라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루렌도 가족이 억류돼 있을 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이승홍 정신의학 전문의는 이렇게 말했다.

“공항에 사실상 구금된 상태로 지내는 한 의학적인 도움이 근본적으로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에 의사로서 좌절한다.”(2019년 8월 12일자 〈한겨레〉)

정부는 난민이 이런 무자비한 상황을 못 견뎌서 스스로 발길을 돌리게끔 만들려는 것이다.

국경 통제 강화에 나선 문재인 정부

2019년 말 기준 전 세계 난민은 7950만 명이다. 이는 유엔난민기구가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대 규모다. 더욱 안타깝게도, 난민은 늘어났지만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수는 크게 줄었다. 1990년대에는 매해 평균 150만 명 정도의 난민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지난 10년간 그 수는 매해 38만 5000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난민을 발생시킨 주요 원인, 즉 전쟁과 빈곤 등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위해 그런 비극을 야기하거나 크게 악화시켰고, 한국 정부도 미국과 서방의 그런 개입을 직간접으로 지원해 온 만큼 난민 발생에 책임이 있다.

난민이 세계적으로 늘자 유럽 국가들은 오히려 난민 인정 기준을 까다롭게 해 인정률을 크게 떨어뜨리고, 많은 난민을 구금 시설에 가뒀다. 이런 방식으로도 난민 유입을 막지 못하자 국경에서 유입 자체를 막으려고 강경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2015년 지중해를 건너다 터키 해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3살 꼬마 난민 쿠르디는 그런 정책의 결과였다.

한국 정부도 난민 유입을 차단하려고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난민 정책은 냉혹하기 짝이 없다. 2018년 500여 명의 예멘 난민들이 입국한 일을 계기로 일부 난민 반대 세력이 목소리를 높이자 이미 난민 배척적이었던 문재인 정부는 난민법 개악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 난민인정률은 0.8퍼센트로 떨어져 집계를 시작한 1994년 이후 가장 낮았다. A씨의 입국을 거부한 것은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예멘 난민 입국이 논란이 될 당시 난민 연대 집회가 열렸고 이후에도 이란 출신 청소년 김민혁 군과 루렌도 가족에 대한 연대 운동이 벌어지는 등 난민 지지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인종차별적 우익들에게만 반응해 타협한 것은 자본주의 국가의 통치자로서 문재인 정부의 선택이었다.

이뿐 아니라 지난해 말 문재인 정부는 재신청 난민(난민 불인정 결정을 받았지만 다시 신청한 경우)을 신속하게 추방하는 내용의 난민법 개악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개악안은 2월 6일 이후 국회 법사위 상정이 가능해진다. 개악안에는 공항 사전 심사에서 불회부 결정을 받은 난민이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것을 막는 내용도 있다. 더 빨리 난민들을 내쫓겠다는 것이다. 개악안은 당장 철회돼야 한다.

난민에게 국경의 문을 이중 삼중으로 걸어 잠그면 난민들의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난민들에게 국경을 열고 안정적 체류를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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