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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로 가중된 이주민 고통

이주민 차별 개선 않는 문재인 정부 지난해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기자회견에서 인종차별적 정책에 반대하는 이주노동자들 ⓒ조승진

3월 21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한국 정부의 인종차별적 정책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주민들의 삶은 코로나19 팬데믹 1년 동안 더욱 악화됐다.

많은 노동자·서민과 마찬가지로 이주민도 코로나19와 장기 불황으로 타격을 입었다. 정부가 발표한 《2020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5월 이민자 고용률이 2019년 5월보다 1.7퍼센트 감소했고 실업률은 2.1퍼센트 증가했다. 취업시간이 주 50시간 미만이거나 일시 휴직한 비율도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 전체의 고용률이 1.3퍼센트 감소하고 실업률이 0.5퍼센트 증가한 것에 견줘 변화 폭이 더 크다.

또한 외국인 임시·일용 근로자가 12.4퍼센트 감소했다. 결혼이주여성과 난민, 건설업의 중국동포들이 주로 해당될 것이다. 결혼이민자, 귀화자 등이 취업한 직종은 국민 일반보다 상용직 비중이 낮고 임시직 비중은 높다. 특히 일용직 비중은 훨씬 높다(〈2018년 다문화가족실태조사 연구〉, 여성가족부). 또, 난민은 체류자격이 불안정해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

이런 지표들은 이후 더 악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실직이나 소득 감소에 대비한 안전망도 취약하다. 외국인 고용보험 가입률은 54.3퍼센트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난해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이주노동자·동포·미등록 이주민·난민 등 약 170만 명을 배제했다. 서울시와 경기도도 같은 기준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가 이주·난민 단체들이 항의해 국가인권위의 개선 권고가 나오자 약간 확대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등록 이주민은 제외했다.

방역 사각지대 이주민, 알고도 방치하는 정부

많은 이주민이 의료 사각지대에 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가 낸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2020)를 보면, 내국인의 외래진료 이용률은 약 85퍼센트인 반면 이주민은 32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입원과 응급실 이용률은 두 집단이 거의 같았다. 이주민은 아파도 참다가 위급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병원을 찾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난민 등 더 열악한 처지의 이주민은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 미등록 체류 중인 한 나이지리아 난민은 설문지에 이렇게 썼다.

“건강보험이 없는 우리 가족에게는 무료진료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무료진료소가 문을 닫아 약을 먹지 못하고 있다. 머리도 아프고 힘들지만 일반 병원은 비용 때문에 갈 수가 없어 다시 무료진료소가 시작되기만을 바라면서 버티고 있다.”

최근 경기도와 충청도 등의 공장에서 이주노동자의 감염이 증가했다. ‘3밀’(밀집·밀접·밀폐)을 피할 수 없는 공장과 기숙사에서 집단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이주노동자 약 1200명을 대상으로 한 〈2018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주거환경 실태조사〉(이주와 인권연구소)를 보면, 평균 2.4명이 침실을 함께 쓰고, 한 방에 4명 이상 거주하는 비율도 14.7퍼센트였다. 응답자 30퍼센트 이상이 실내 욕실이 없고, 비좁고, 화장실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햇볕과 바람이 통하는 창문이 없다는 응답도 9퍼센트였다.

노동시간은 길고 숙소는 열악 이주노동자는 방역에 취약한데 검사받을 시간조차 부족하다 ⓒ출처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땜질 처방

정부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지난해 4월 정세균 총리는 당시 ‘방역 모범국’으로 불리던 싱가포르의 이주노동자 거주시설에서 집단감염이 급속히 확산하자 이렇게 말했다. “밀폐된 생활 공간과 방역 물품 부족 등 일단 감염이 발생하면 쉽게 확산되는 여건 때문으로 우리의 경우도 [싱가포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장의 방역 환경, 주거 실태를 “현황 점검”하겠다고 했을 뿐 실질적 개선을 위한 규제와 지원을 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12월, 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가 한파 속 숙소에서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농장주가 제공한 숙소는 비닐하우스 안에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가건물이었다. 이후에도 문재인 정부는 땜질 처방만 내놓고 있다.

한편, 최근 서울시, 경기도, 대구시, 경상북도 등은 이주노동자에게 진단검사를 받게 하라는 행정명령을 사용자들에게 내렸다. 심지어 서울과 경기도는 검사를 받지 않은 이주노동자에게도 200~300만 원 벌금과 방역 비용 등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노동조건과 주거환경 개선은 뒷전이고 권위주의적 조처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러자 지난 주말 경기도의 선별진료소들에 검사를 받으려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소동이 벌어졌다. 수백 명이 거리두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모이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이는 이주노동자들이 긴 노동시간 등으로 평소 검사조차 받기 어려웠다는 것을 드러냈다.

미등록자 무조건 합법화하라

코로나 위기 속에서 문재인 정부 이주민 정책의 모순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미등록 이주민 문제다. 현재 미등록 이주민은 약 4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을 제외하면 방역에 구멍이 생길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정부가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고 거듭 밝혀도 코로나 진단검사에 응하는 미등록 이주민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정부가 야만적인 단속·추방 중심의 정책을 시행해 온 탓이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미등록 이주노동자 2명이 단속을 피하려다 사망했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27일, 8월부터 배달업, 제조업, 건설업 등에서 미등록자 1294명을 단속했다고 발표했다. 서울 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사태 이후 비슷한 조건의 외국인‘보호’소(단속된 미등록 이주민을 출국 전까지 구금하는 곳)도 집단감염 우려가 제기됐으나, 정부는 구금된 이주민의 석방을 거부했다.

한편, 코로나19로 항공편이 막히면서 새로 입국해 미등록자가 되는 경우는 줄었지만, 체류 기간이 끝났으나 출국하지 못해 미등록자가 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몇 차례 출국 기한을 유예하면서도 그 기간에 취업은 금지했다.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도 제외하고 취업도 못 하게 하니 이주노동자들은 생계 걱정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올해 2월 출국 기한이 유예된 이주노동자들에게 최장 13개월 동안 농어업 ‘계절’ 근로를 허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농어업의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받아들여야만 합법적인 체류와 취업을 허용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주민 차별, 방역에 해롭고 자본가들에게만 이득

신규 이주노동자 유입이 급감하면서 농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사용자들도 일손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지난해에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이주노동자를 데려오기 위해 전세기를 띄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한국 경제는 이주민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이주노동력이 부족해져 정부는 체류기간이 끝난 이주노동자의 취업을 매우 제한적으로만 허용한다. 이것은 ‘단기 순환’ 기조의 기존 이주 노동력 정책에서 얻는 이득을 쉽게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고용허가제 도입을 앞두고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일시적 이주근로자 수입 제도는 자본가에게 ‘저렴하고’ 단결력이 없는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 할 수 있다.”(〈외국인근로자 고용허가제 도입 방안〉, 2000년)

정부는 고용허가제와 같은 이주민 통제 정책을 유지하는 것을 중시하며 미등록자도 혹독하게 대한다. 그것이 코로나 방역에 해롭더라도 말이다. 국경 통제를 일부 완화할 때조차 그 대가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한다.

요컨대 사용자들의 이익을 위해 유지돼 온 이주민 차별과 국경 통제가 코로나 위기 속에서 이주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방역에도 해로운 효과를 내고 있다.

이를 완화하려면 미등록 이주민을 조건 없이 합법화하고, 고용허가제 등 이주노동자를 옥죄는 정책을 폐지해야 한다. 또 이주민에게도 차별 없이 재난지원금과 의료서비스 등을 제공해야 한다.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의 분열을 조장하는 이주민 차별과 인종차별에 모두 함께 맞서야 한다.

이주노동자 진단검사 관련 행정명령을 다룬 부분에서 사실관계를 추가했다.(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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