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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 빵 운송(화물) 노동자 파업:
“파리바게뜨 성공 신화 아래 우리의 피땀이 있습니다”

“사측 구사대”를 자처하고 나선 문재인 정부의 경찰 광주 화물 노동자 투쟁 ⓒ사진 제공 공공운수노조

추석 연휴를 며칠 앞둔 9월 16일, 제빵제과를 주력으로 하는 종합식품회사 SPC가 광주 공장(샤니)의 화물 노동자 40명을 해고했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일하는 운송사들에 계약 해지를 통보함으로써 사실상 조합원 전원을 해고한 것이다.

이 노동자들은 9월 초부터 사측의 합의 번복에 항의해 파업을 전개해 왔다. “(노동자들은) 10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대리점에 배송을 해야 하지만 차량과 인원은 그대로인 살인적인 스케줄에 시달리고 있다.”(화물연대) 사측은 증차를 약속했지만, 이를 뒤집어 버렸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자 손해배상 청구를 협박하더니, 급기야 계약해지까지 강행했다. (관련기사: 본지 385호 ‘SPC 화물 전면 파업과 대체수송 저지 정당하다’)

화물연대 SPC지회는 9월 15일 전국 파업에 돌입했다. 본지는 세종시에 위치한 SPC그룹 계열사 ‘밀다원’(밀가루 제분공장) 앞 투쟁 현장을 찾았다. SPC 성남·평택, 원주 공장 등에서 일하는 화물 노동자들이 대체수송 차량을 막아 서며 농성 중이었다.

SPC 성남·평택, 원주 지역 화물노동자들이 9월 17일 오후 세종시에 위치한 SPC 사의 밀가루 공장인 밀다원 앞에서 파업 농성과 함께 집회를 열고 있다. 노동자들은 파업 효과를 높이기 위해 공장에서 생산된 밀가루를 싣고 나가려는 차량을 막고 있었다. 밀다원 공장에서 생산되는 밀가루는 SPC 계열사의 제과 제품의 재료로 사용된다 ⓒ조승진

노동자들은 이번 파업이 광주에서 해고된 동료들에 대한 연대 투쟁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자신의 요구가 걸린 “나의 투쟁”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설명했다.

원주 물류센터에서 각 점포로 빵·생지 등을 배송하는 한 노동자는 말했다.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일을 할 수 있게 증차를 해 주고, 먹고살 만큼은 해 줘야지. 조건 개선을 요구했다고 (광주에서) 계약해지까지 하는 걸 봐봐요. 이건 생존권이 걸린 문제입니다. 광주(노동자들)가 당하면 우리도 당합니다. 이건 동조 파업이 아니라 내 파업이에요.”

양치기 소년

대형 차량을 몰고 성남 공장에서 전국의 물류센터로 제품을 수송하는 노동자가 말했다.

“SPC가 이달에 광주만이 아니라 다른 곳들에서도 똑같이 합의를 뒤집었습니다. 우리는 4월에 노동조건 개선을 합의하고,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6월에 몇 시간 파업을 했습니다. 6월에는 SPC 대표이사가 직접 나와 약속을 했습니다. 이번엔 다를 거라고 조합원들을 설득했죠. 그런데 사측은 또 뒤통수를 쳤습니다.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도 했는데, 조합원들에게 30만 원~70만 원씩 손해배상까지 청구했습니다. 이 문제를 9월 10일까지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또 번복했습니다. 양치기 소년도 3번이었는데, 해도 해도 너무 한 거죠.”

SPC그룹은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삼립(샤니), 파스쿠찌, 쉐이크쉑 등 40여 개 브랜드를 가진 대형 식품기업이다. 제과제빵, 아이스크림, 육가공, 제분, 물류 등 분야에서 52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중국·미국·프랑스·베트남·싱가포르 등 해외에서도 400여 개 매장을 운영한다. 그룹 측은 2010년 KBS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모델이었던 회장 허영인의 성공 신화를 내세우지만, 회사를 이렇게 일군 주역은 노동자들이었다.

SPC화물노동자들이 밀가루를 싣고 출차하려는 차량을 막자 경찰이 투입돼 노동자들과 대치하고 있다. 경찰은 밀가루를 싣고 출차하려는 차량을 보호하고 출차 시키고 있었다. 하루 전날엔 출차를 저지하려는 노동자 2명을 연행했다 ⓒ조승진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한 지 28년이 됐습니다. SPC그룹이 이렇게 커지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피땀 흘리며 고생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노동자들은 “파리바게뜨의 성공 신화” 아래 가려진 열악한 노동조건에 불만을 터뜨렸다. 하루 노동시간이 15~16시간씩 되고, 운송료(임금) 인상은 물가인상 수준에도 못 미치고, 인력 부족에 허덕인다는 것이다.

“하루에 15시간, 16시간을 일합니다. 그동안 점포가 많이 늘었고, 골목골목 다 배송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운송료(임금)는 찔끔 올랐습니다. 사고라도 나면 수리비도 수백만 원씩 드는데, 그게 다 빚입니다.”

“회사는 화물연대 조합원들에게는 운송만이 아니라 물건을 상하차 하는 일까지 시킵니다. 약속된 시간에 공장에 들어가도 (공짜) 대기시간이 길게는 5~6시간씩 됩니다. ‘기다려’라는 말을 정말 지겹게 듣고 있습니다.”

“간선차(대형 수송차)는 출퇴근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새벽 4시에 출근하고, 내일은 오후 1시에 출근했다가, 모레는 새벽 1시에 출근하는 식입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오면 자고 일어나 또 바로 일을 나갑니다. 10년 넘게 이렇게 살았습니다. 이제 친구도 없고 가정도 챙기기가 어렵습니다.”

이간질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SPC그룹도 프렌차이즈 등 부문에서 수익이 줄었다. 그럼에도 글로벌 매출은 6조 5000억 원이나 됐다. 지금도 사측은 공격적으로 사업을 늘리고 해외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측은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데 여념이 없다. SPC그룹이 노동자들을 계약해지하고 손해배상 청구 등 탄압에 열을 올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회피하려고 야비하게 복수노조 상황을 이용한 이간질도 시도하고 있다.

“SPC는 합의를 번복할 때마다 똑같은 레퍼토리를 댑니다.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한국노총과 합의를 해 오라고 합니다.”

가령, 광주에서는 증차를 하려면 코스 조정이 필요하니, 한국노총과 합의해 오라는 식이었다. 성남에서는 상하차 업무 부담을 줄이려면, 그 일을 하는 한국노총 조합원들을 설득해 오라는 식이었다. 인력은 늘려주지 않으면서 노동자들끼리 핑퐁 게임을 하라는 것인 셈이다. 조건 개선을 약속했으면, 그에 따른 부담은 사측의 책임이다. 그런데 한국노총을 핑계 대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SPC 사측은 그래 놓고는 이번 파업이 “노노 갈등”으로 인한 “명분 없는 파업”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보수 언론들도 “노조들의 이권 다툼에 가맹점들만 피해 보고 있다”고 비난한다.

노동자들은 이런 비난에 혀를 내둘렀다. “뭘 알고나 떠들어야죠. 우리 얘기를 한 번 들어보지도 않고 노노 갈등이니, 이기적이니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우리는 한국노총이 아니라 사측에 맞서서 싸우는 겁니다.”

특히 보수 언론은 노동자들의 대체수송 저지 투쟁을 “불법”, “폭력”으로 매도하며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대체수송 저지, 물류 봉쇄, 도로 점거 등은 화물연대가 집단적 파업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 노조 설립 초기부터 사용해 온 효과적인 투쟁 전술이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파업 효과를 무력화하려고 이를 불법이라고 비난하지만, 노동자들은 단호하게 싸웠을 때 운송을 마비시키고 물류를 마비시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신생 노조인 화물연대 SPC지회 노동자들이 이런 전통을 따르는 것은 정당하고 옳다.

대구 물류센터 앞 화물 노동자 투쟁 ⓒ사진 제공 공공운수노조

“촛불 정부? 개나 줘라”

화물연대 SPC지회를 비롯해 SPC그룹에 있는 민주노총 산하 네 개 노조는 모두 박근혜 정부 퇴진 촛불운동의 여파 속에서 새롭게 조직된 곳들이다. 노동자들은 길게는 4년에서 짧게는 1년 정도 사이에 노조(산하 지회)를 결성하고 투쟁해 왔다.

가장 잘 알려진 민주노총 화섬연맹 파리바게뜨지회는 2018년 사측과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정의당 비상구 등이 참여한 가운데 제빵기사 자회사 고용, 3년 안에 본사 수준으로 임금 인상 등을 합의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를 민간 부문에서 정규직 전환 모범 사례로 꼽으며 칭찬한 바도 있다.

그러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자회사 전환이 그랬듯이, 파리바게뜨에서도 자회사 전환은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지 못했다. 지난 4월 파리바게뜨지회는 “사회적 합의 후 3년, 현장은 변한 게 없다”고 발표하고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했다.

SPC 사측은 이에 그치지 않고 노조 탄압에도 나섰다. 복수노조를 이용해 합의 이행을 외면하고, 민주노조 탈퇴를 회유·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SPC그룹 산하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이 공통적으로 이런 탄압에 처해 있다.

노동자들은 “촛불 정부? 개나 줘라” 하고 말했다. “촛불 정부라고 해서 뭐가 좀 다를 거라고 기대했는데,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사용자 편만 들더라”는 것이다. “정부가 민주노총 위원장을 잡아 가둔 것과 SPC 사측이 우리를 탄압하는 것은 같은 문제입니다. 정권이 임기 말에 친자본 기조로 나가니까 SPC그룹도 저렇게 나서는 거 아니겠습니까?”

경찰 폭력 앞에 쓰러진 노동자(대구) ⓒ사진 제공 공공운수노조

경찰은 이미 SPC 사측의 든든한 경비대 구실을 하고 있다. 각 공장에서,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잔뜩 실은 대체수송차량이 나올 때마다 무장한 경찰 병력이 노동자들을 밀어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9월 19일 현재 노동자 46명이 연행됐다. 머리를 맞아 피가 흐르는 채로 구급차에 실려 가고 손가락이 부러지는 등 21명이 크고 작은 부상도 입었다.

“경찰의 무력 행사 때문에 대체수송을 막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사측에 타격을 주려면 대열을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며칠 사이 강원과 충북에서 물류센터를 막고 있던 노동자들은 속속 세종시로 거점을 옮겼다. 화물연대는 추석 연휴가 끝나는 다음날 SPC삼립 세종공장에서 확대간부 결의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SPC 성남·평택, 원주 지역 화물노동자들이 밀가루를 싣고 출차하려는 차량을 막고 파업 집회를 열고 있다. 노동자들은 파업 효과를 높이기 위해 공장에서 생산된 밀가루를 싣고 나가려는 차량을 막고 있었다. 밀다원 공장에서 생산되는 밀가루는 SPC 계열사의 제과 제품의 재료로 사용된다 ⓒ조승진
SPC 서울·경기, 원주 지역 화물노동자들이 9월 17일 오후 세종시에 위치한 SPC 사의 밀가루 공장인 밀다원 앞에서 밀가루를 실고 출차하려는 차량을 막고 구호를 외치며 파업 집회를 열고 있다 ⓒ조승진
SPC 서성남·평택, 원주 지역 화물노동자들이 9월 17일 오후 세종시에 위치한 SPC 사의 밀가루 공장인 밀다원 앞에서 밀가루를 싣고 출차하려는 차량을 막고 신발을 세차게 두드리며 파업 집회를 열고 있다 ⓒ조승진
SPC 서울·경기, 원주 지역 화물노동자들이 9월 17일 오후 세종시에 위치한 SPC 사의 밀가루 공장인 밀다원 앞에서 밀가루를 실고 출차하려는 차량을 막고 구호를 외치며 파업 집회를 열고 있다 ⓒ조승진
SPC 성남·평택, 원주 지역 화물노동자들이 9월 17일 오후 세종시에 위치한 SPC 사의 밀가루 공장인 밀다원 앞에서 밀가루를 싣고 출차하려는 차량을 막고 구호를 외치며 파업 집회를 열고 있다 ⓒ조승진
파업농성을 위해 서울·경기, 원주에서 온 여러 SPC 화물노동자들의 차량이 SPC 사의 밀가루 공장인 밀다원 앞에서 주차해 있다 ⓒ조승진
더 이상은 못참겠다. SPC 사의 밀가루 공장인 밀다원 앞에 SPC 사를 규탄하는 화물노동자들의 배너가 걸려 있다 ⓒ조승진
SPC 성남·평택, 원주 화물노동자들이 9월 17일 오후 세종시에 위치한 SPC 사의 밀가루 공장인 밀다원 앞에서 밀가루를 싣고 출차하려는 차량을 막고 구호를 외치며 파업 집회를 열고 있다 ⓒ조승진
SPC 사의 밀가루 공장인 밀다원 앞에서 파업 농성중인 서울·경기, 원주 지역 SPC 화물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조승진
SPC 화물노동자들의 차량 화물칸에 비어있는 빵상자들 ⓒ조승진
SPC 성남·평택, 원주 지역 화물노동자들이 파업 농성중인 SPC그룹 계열사 ‘밀다원’ 밀가루 제분공장 ⓒ조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