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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불평등 ─ 왜 청년들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가?

이 글은 10월 14일에 열린 노동자연대 주최 온라인 토론회 ‘청년과 불평등 — 왜 청년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가?’(영상 보기)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을 보강한 것이다.

한국인 10명 가운데 6명이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퓨리서치). 이런 비관적인 응답 비율은 2013년 이래로 최고치였다.

오늘날 청년의 팍팍한 삶과 어두운 미래를 생각해 보면, 비관적 응답이 빠르게 늘어난 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것은 단지 막연한 걱정이 아니다. 현재 경제 활동을 하는 20대 청년 가운데 70퍼센트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보다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여 년 동안 청년 실업, 빈곤, 주거난 등 청년층의 열악한 처지가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심각한 취업난과 불평등 오늘날 대다수 청년은 좁디좁은 취업문을 향한 무한 경쟁, 실업, 빈곤,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린다

특히 청년 실업이 매우 심각한 문제다. 청년확장실업률은 2015년 21.9퍼센트를 기록한 이래로 계속 올라서 2020년에 25퍼센트를 돌파했다.(확장실업률은 구직 단념자와 불안정 취업자까지 포함된 것으로 그나마 현실적 지표로 여겨지는 통계다.) 학업을 마친 청년 중 적어도 150만 명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취업난이 심각하자 청년들은 열악한 일자리라도 붙잡게 됐다. 올해 5월 청년 취업자 수가 약간 늘었는데, 배달업 같은 단순노무직이 5만 명 증가한 것이 이를 견인했다.

기업은 청년들의 이런 처지를 이용해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을 강요한다. 그래서 청년층 73퍼센트가 첫 일자리에서 200만 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다. 학자금 갚기, 주거 마련 등으로 허덕이는 청년들은 이미 20~30대에 1인당 7000만 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20~30대 청년들이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지는 일도 끊이질 않는다. 얼마 전 인천에서 고층 아파트 유리창 청소를 하던 20대 청년이 보조줄도 없이 일하다 20미터 높이에서 추락사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18세에서 24세 청년층 산재 사망 1위가 배달 노동인 것(2016~2019)도 이런 열악한 현실을 보여 준다(한정애 의원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청년층의 삶은 더 악화했다. 2020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실업이 크게 늘었는데, 청년층에게 그 타격이 컸다. 청년층이 많이 유입돼 있는 서비스직에서 일자리가 크게 줄고,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취소하거나 줄였기 때문이다. 청년확장실업률이 올해 1~2월에 27퍼센트로 치솟아 2015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이처럼 오늘날 청년들은 좁디좁은 취업문을 향한 무한 경쟁, 실업과 빈곤, 열악한 노동조건 등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청년들의 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 이를 더 악화시켜서, 지난해 우울증 진료 인원 증가율이 20대에서 가장 높았다(23.6퍼센트 증가). ‘코로나 블루’로 인한 청년층 자살도 큰 사회적 문제가 됐다.

청년은 왜 이렇게 빈곤해졌나?

청년들은 왜 이런 처지로 내몰렸을까? 우선, 2008년 세계경제 위기가 청년 세대에 큰 타격을 미쳤다.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 이후 기업주들은 신규 인력을 뽑지 않고 기존 인력을 ‘탄력적으로’ 쥐어짜는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했다. 각국 정부는 기업 살리기에 돈을 쏟아부으면서 복지는 축소했다. 이런 방식은 특히나 청년층에게 크게 불리했다.

경제 위기 이전인 2007년 전 세계 청년 실업자는 6900만 명이었으나 2009년 750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 경제 위기 여파로 2011년 전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저항이 벌어졌다. 튀니지에서 가난한 청년 부아지지의 분신으로 시작된 튀니지 혁명이 이집트 혁명으로 이어졌고, 아랍 전역의 혁명으로 확산됐다. 미국에서도 청년들이 일자리, 교육, 의료를 요구하며 월가를 점거했고, 스페인에서도 청년들이 주축이 돼 ‘분노한 사람들’ 광장 점거 운동이 벌어졌다. 이 세계적 저항을 촉발한 중요한 불만이 바로 청년층의 실업과 빈곤이었다.

역동적으로 성장해 오던 한국 자본주의도 1997년과 2008년에 큰 위기를 겪었고,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다. 1970~1980년대 한국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노동력을 빨아들이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경제의 활력이 저하되고 일자리 창출도 줄어들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고용 감소는 생산성 증가의 결과이기도 하다. 10억 원 재화를 생산할 때 유발되는 취업자 수(취업유발계수)는 2000년 평균 26명에서 2019년에는 10명으로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이런 주기적 경제 위기와 실업 확대는 자본주의에 붙박여 있는 풍토병이다. 그런데 역대 우파 정부들은 벼랑 끝에 내몰린 청년을 대놓고 비난하며 청년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이명박이나 박근혜는 툭하면 청년의 “눈높이가 높다”고 비난했다. 너도나도 대기업만 가려 해서 청년 실업률이 높다는 식이었다. 또, ‘대학에 꼭 가야 하냐’며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고졸 취업 활성화 대책 등을 내놓았다. 그렇게 해서 확대된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과 고졸 취업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최근 수중에서 선박을 청소하다가 사망한 현장 실습생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문재인 정부는 청년 문제에 대해 말잔치는 많이 했지만, 실질적 개혁은 제공하지 않았다. 특히 일자리 문제가 중요한데, 이 정부가 내놓은 청년 일자리는 대체로 고용 수치 개선만을 노린 6개월짜리 저임금 일자리였을 뿐이다.

오히려 청년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공공기관과 지방 공기업은 2020년에 신규 채용이 크게 줄었다(6000명 감소). 노동 인력이 넘쳐나서 그럴까? 전혀 아니다. 공무원들은 인력 부족으로 과로사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인천에서 보건소 공무원이 자살했는데 그는 일주일에 70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그의 동료들은 한 달에 초과근무만 100시간씩 했다.

심화된 불평등

평범한 청년들은 내일이 오늘보다 나으리라는 희망이 별로 없다고 느낀다. 특히 아무리 ‘노오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격차, 불평등 때문에 절망한다.

실제로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빠르게 악화했다.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가 내놓은 2016년 통계를 보면,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소득의 43퍼센트를, 전체 부의 65.7퍼센트를 차지했다. 부와 특권은 상속으로 대물림된다. 최근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30대 하위 20퍼센트의 자산이 2000만 원인인데 상위 20퍼센트는 8억 원이나 됐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서른한 살 아들이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받은 것은 이런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또, ‘공정 어쩌구’ 하던 조국 전 법무장관도 자식 출세를 위해 계급 특권을 이용했다.

어떤 사람들은 불평등의 심화가 ‘세습 자본주의’의 등장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불평등은 특정 유형의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작동 방식의 결과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자본주의 착취 체제 때문에 한쪽에는 부가 쌓이고 다른 한쪽에는 빈곤이 쌓인다. 이윤율 회복을 위해 취해진 위기 대응 조처들(부자 감세, 규제 완화, 복지 삭감 등)이 빈부격차를 늘린 것만 봐도 자본주의 논리가 불평등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층 이동 사다리가 거의 사라진 것도 자본주의가 세대를 거듭해 발전하면서 계급 분단이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처럼 개천에서 용 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처럼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이자 계급 문제이다.

청년 문제 대안으로 제시되는 해결책들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의 대물림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신분제 세습 자본주의”를 비판했고,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도 세습 문제를 비판했다.

이들은 청년들에게 출발선이라도 동일하게 맞춰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취지에서 기초자산제, 기본소득 등 여러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기초자산제는 토마 피케티가 불평등 해소 방안으로 내놓은 것으로, 25세가 되는 청년에게 1인당 평균 자산의 60퍼센트인 12만 유로(1억 5800만 원)를 주자고 해서 관심을 끌었다. 기초자산제는 단지 소득 차이만이 아니라 부의 분배를 주목한다는 점에서 급진적인 측면이 있다.

이런 아이디어에 착안해 심상정 후보도 특정 연령이 된 청년에게 3000만 원씩 주는 청년기초자산제를 제안했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기초 자산은 열악한 처지의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지라도, 제한적이고(많은 청년은 3000만 원을 학자금 갚는 데 써 버리기 십상일 것이다) 불평등 개선 효과는 미미하다.

설사 청년들에게 상당한 수준의 기초 자산을 준다고 할지라도, 경쟁 시스템이 지속되는 한 승자와 패자가 생길 수밖에 없고 불평등은 다시 커질 것이다. 자본주의 착취 체제가 지속되는 한 대다수 청년은 노동계급이 돼 착취를 받아야만 하고, 생산수단을 소유한 극소수의 손에 부가 집중되는 경향은 계속될 것이다.

누구는 청년 창업을 부추기기도 하는데, 자본의 집중이 엄청난 현실에서 구멍가게가 버티기 힘들다는 건 청년들도 잘 안다.

어떤 사람들은 교육 기회를 확대해 개인들이 경쟁력을 높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불평등의 고착과 세습을 해소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교육이 사회적 지위에 작용하는 정도보다, 사회적 지위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크다는 점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 대학 진학률에 끼치는 영향

교육 기회의 보장을 강조해 온 문재인 정부하에서도 사회적 지위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커졌다. 부모의 경제력이 대학 진학률에 크게 영향을 미쳐서 2017~2020년 3년간 4년제 대학에서 차상위계층 비중은 줄어든 반면, 고소득층인 8~10구간 학생 비중은 무려 28퍼센트에서 42퍼센트로 훌쩍 늘었다.

세대 문제?

기성세대가 일자리나 복지를 다 챙겨가서 청년층이 불평등의 희생자가 됐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기성 언론들은 MZ세대와 586세대 간 갈등에 관한 기사를 쏟아낸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이런 대립 구도가 허구적임을 알 수 있다. 한 가정으로 본다면 부모가 자식 몫을 가로채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 청년 세대가 기성세대에 비해 더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앞서 살펴봤듯이, 자본주의 경제 위기와 이윤율 회복을 위해 권력자들이 취한 조처 때문이지 평범한 기성세대 탓이 아니다.

기성세대의 대다수는 자식의 삶이 나보다 낫기를 바라며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던 자본주의의 또 다른 희생자일 뿐이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부모에게서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하는 청년 ‘캥거루족’을 부양해야 할 부담마저 지고 있다.

청년 실업과 빈곤 문제를 세대 탓으로 보면, 기성세대의 양보를 대안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좋은 취지라 해도 이런 대안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고 문제를 야기한다.

가령 일부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사측에 신규 채용을 요구하면서 대신 기존 노동자의 임금 인상 포기와 같은 양보를 제안했다. 그러나 이런 타협은 충분한 청년 채용은 보장하지 못하면서, 정작 청년 일자리 제공에 진짜 책임이 있는 정부와 사측에 면죄부만 주는 결과를 낳기 쉽다.

한편, 청년 문제를 세대 간 갈등 문제로 보면서 청년 정체성을 강조하는 흐름도 있다. 청년 유니온 같은 청년 당사자 운동이 한 사례다. 청년 문제를 더 넓은 계급 문제와 연결시키지 않고 협소하게 세대 정체성 문제로 규정하면, 그 정체성을 가진 개인들이 높은 자리로 가서 나머지 청년들을 대변하겠다는 개혁주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쉽다.

실제 이런 운동은 종종 정부나 주류 정당의 위원회에 참여하거나 청년 할당제를 통해 간부직이나 국회의원에 진출하는 것으로 귀결되곤 했다. 그러나 이것이 평범한 청년 다수의 처지를 개선하는 개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MZ세대와 노동조합

최근 일부 언론은 MZ세대가 기존 노동조합에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로 단결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종종 보도한다. 얼마 전 항의 행동을 벌인 스타벅스 노동자들이 민주노총과 거리를 둔 것이 그 사례로 언급된다.

하지만 노동조합에 대한 MZ세대의 태도는 일면적이고 않고 불균등하다. 많은 청년이 박근혜 퇴진 운동 이후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일부 청년이 기존 노동조합에 대해 불신을 드러낸 일은 국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여러 번 있었다. 예컨대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 운동에서 그런 경향이 강했다.

사실 청년들의 불신은 기존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이 취한 부문주의적 태도나 배신 등에 대한 반발 성격인 경우가 많았다.

노동조합은 때로 청년들을 조직하고 청년들의 처지 개선에 관심을 갖지만, 부문주의와 개혁주의의 성격 때문에 노동계급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구실을 일관되게 하지 못하고, 청년 문제에서도 한계를 드러내곤 한다.

예컨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는 조합원의 조건을 방어한답시고 미래 신규 사원의 임금과 복지를 삭감하는 타협을 종종 해 왔다. 완성차 공장에 도입된 이중임금제나, 신규 입사자의 수령 시기를 늦추거나 액수를 깎은 공무원연금 개악이 그런 사례다. 정부의 탄력근로제 확대 공격에 대해서 일부 산별노조 지도자가 ‘우리는 단협으로 막을 수 있다’며 진지하게 투쟁을 조직하지 않은 것도 미조직·청년 노동자들의 처지를 외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타협과 외면은 결국 기존 노동자들의 조건에도 하락 압박을 가하고, 청년과 노동조합 사이에 반목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둘 모두에게 해롭다.

또한, 지난 몇 년 사이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 주요 세력들이 청년층이 민감하게 여긴 쟁점들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청년들이 크게 분노한 조국 사태에서 민주노총은 침묵했다.

노동조합이 청년 문제를 중시하고 이들을 조직하려 애쓰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이냐 아니냐 같은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청년들의 정당한 분노를 적극 지지하고, 이들의 저항을 충분히 뒷받침하는 속에서 신임을 얻는 것이다. 청년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러 쟁점과 운동, 예컨대 기후 운동이나 여러 차별 반대 운동에도 노동조합이 자신의 조합원에게 참가를 적극 호소하는 게 필요하다.

노동조합의 부문주의적인 성격에 맞서 논쟁하고 토론하며 노동조합이 청년 문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혁명적 좌파의 몫일 것이다.

자본주의에 맞선 대안

오늘날 평범한 청년들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가장 강렬하게 경험하고 있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실업과 일자리 불안정, 그로 인한 빈곤과 불평등 심화가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물려받은 지구는 심각한 기후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본주의의 우선순위에 도전해야 한다. 부를 복지 확대에 쓰도록 요구하고, 군비 증강 대신 괜찮은 일자리를 마련하라고 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본의 논리에 맞서는 광범한 투쟁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도 자본주의와 다른 근본적인 변화 없이 저지할 수 없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후 운동에 나선 청년들은 급진화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그러나 이런 저항이 성공하려면 특정 세대, 특정 부문만 참여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청년과 중장년 노동계급이 단결해야 거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한편, 노동자주의 경향이 있는 일부 좌파는 소위 ‘상위권’ 대학 청년들의 불만과 저항을 부잣집 엘리트의 보수적 행동쯤으로 싸잡아 취급하기도 한다. 조국 사태 때 이런 문제가 얼핏 드러났다. 그러면서 ‘상위권’ 대학의 청년이 아니라 지방대 출신의 청년이 급진적 잠재력이 더 크다며 이 둘을 대립시킨다.

그러나 ‘상위권’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모두 상층 계급 출신도 아니고, 부모의 계급이나 의식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도 아니다. 아직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않은 학생은 특정 계급이라고 볼 수 없고, 종종 이데올로기와 사회 부조리에 민감하다. ‘상위권’ 대학 출신 청년 중에도 급진화하고 노동계급의 규율을 받아들이면서 노동계급의 운동에 헌신하게 된 사람도 많다.

이처럼 출신 대학이나 사는 곳 등을 기준으로 청년들을 구분해 서로 대립시키는 관점은 투쟁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해롭다.

청년층의 조건과 특징을 이해하고, 청년과 노동자 투쟁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예컨대, 프랑스에서 1968년 반란 물결이 터져 나왔을 때, 프랑스 공산당을 비롯한 좌파 지도자들조차 학생들의 저항을 “부잣집 자식들”의 배부른 투쟁이라며 깎아내렸다. 당시 투쟁은 권위주의와 열악한 교육 조건 등에 불만이 쌓인 ‘상위권’ 대학 학생들이 시작했지만, 이들의 투쟁에 공감한 노동계급 배경 청년의 비중이 높은 대학으로 확산됐다. 또, 청년들의 저항은 노동자들을 크게 자극했고 1000만 명이 참가한 역사상 최대 규모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청년 빈곤과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국가가 재원을 쏟아부어 청년 일자리와 복지를 늘리라고 주장해야 하고, 이런 개혁이 가능하도록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저항 속에서 청년과 노동자들이 단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떤 방식의 복지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지를 충분히 늘리라고 요구하며 싸우는 것이다.

혁명적 좌파는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자본주의와 연결시키고, 그들의 반감과 저항이 반자본주의로 향하도록 애써야 한다.

청년·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청중 토론)

“저는 노동자연대TV를 애청하는 대학생입니다. 청년의 주거권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청년들의 주거가 경제 위기와 함께 매우 열악해져 왔습니다. 청년의 평균 주거 면적은 가뜩이나 비좁은데 지난 10년 동안 2평이나 줄었습니다[2008년 평균 약 11평에서 2018년 8.6평]. 청년의 전체 소득에서 임대료 비중은 지난 수년간 계속 올랐고, 최저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택에 사는 청년 가구가 전체 평균의 2배에 달합니다.

공공임대주택이 대안이 돼야겠지만, 현재 공공임대주택은 물량이 너무 적고, 면적도 코딱지 만합니다. 위치나 경쟁률 등을 따져 보면, 사실상 시장의 여느 부동산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청년들에게 지금 한국은 너무나도 불공정하고 불공평하고 견뎌내기 힘든 사회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4년 동안 ‘공정’, ‘공정’ 외쳐 왔지만, 말잔치만 벌였을 뿐,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킨 주범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라난 환멸이 홍준표나 이준석 같은 우파가 20대 사이에서 지지를 받게 된 토양이 됐습니다.

청년들이 겪는 여러 문제는 단지 청년만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그 자녀들이 겪는 문제입니다.

다시 살아나는 노동자 투쟁이 공정 담론을 넘어서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노란 조끼 운동은 극심한 계급적 불만이 대중 항쟁으로 얼마든지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줬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새롭게 투쟁에 뛰어드는 청년과 노동자들의 쟁점을 살펴서, 운동이 벌어졌을 때 망설임 없이 뛰어들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 20대 대학생

열악한 주거 환경 좁디좁은 방과 높은 전월세로 고통받는 청년들


“저는 얼마 전까지 중소기업 청년 노동자였다가 지금은 실업자입니다.

청년들이 고통받는 이유는 개인의 탓이 아닙니다. 개별적 노력이나 스펙 쌓기를 통해서 일부는 좀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거나 승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청년 실업이나, 소외, 고통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부나 언론은 청년들에게 ‘일자리는 충분히 많으니까 대기업 욕심 그만 부리고 주제 파악해서 중소기업으로 취직하라’ 하고 말합니다.

저는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2년 동안 일하면 1300만원 목돈을 더 얹어 주는 정부의 청년 정책인 청년내일채움공제를 했습니다. 중간에 그만두면 그간 적립된 돈을 도로 가져가서 [2년 동안] 꼼짝없이 노예처럼 일해야 했습니다. 청년내일채움공제를 빌미로 사장은 저임금을 정당화했습니다.

정부의 이런 정책은 청년들 잘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산업예비군인 청년들을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입니다.

청년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저는 회사에 다니면서 사장들에게 괴롭힘 당한 뒤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퇴사한 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불안 증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인들 중에서도 직장 스트레스, 취업 준비, 주거 문제 등으로 항불안제나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사람이 상당합니다.

오죽하면 청년 노동자인 우울증 환자의 이야기를 다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 같은 부류의 책이 청년층에서 인기를 엄청 끌었겠습니까?

[청년의] 정신 건강 문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닙니다. 취업이 안 돼 고통스럽고, 저임금 일자리뿐이고, 막상 힘들게 들어간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정부의 청년 정책에만 기댄다면 이런 상황은 되풀이될 것입니다. 청년 불평등 문제는 정규직, 비정규직, 청년, 기성세대가 단결한 투쟁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 중소기업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청년


“저는 인천에 살고 있는 20대 청년입니다. 청년들의 자살과 자본주의에 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최근 발표된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한국은 자살률이 높은데 그중에서도 20대 자살률 증가 폭이 높습니다. 특히, 20대 여성 자살률의 증가 폭이 매우 큽니다. 이는 코로나 이후 타격을 받은 음식숙박업, 도소매 서비스업, 교육 서비스업에 많이 종사하던 2030 여성들의 실업과 큰 연관이 있습니다.

저도 최근에 일하던 개인 카페에서 해고를 당했습니다. [사장은] 코로나를 핑계로 대면서 인건비 때문에 적자가 난다면서 알바생을 모두 해고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청년이 실업 상태에 놓이면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입니다. 앞으로 미래마저 희망이 없다고 느끼면 정신적 질병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엥겔스 말을 인용하자면, 청년들은 “어떤 도피 수단도 없는 처참한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스스로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업에 돈을 쏟아붓고 있죠. 청년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에게 지원과 복지를 늘리라고 주장하면서도, 자본주의 자체가 경제 위기를 내재하고 있고 코로나 같은 심각한 전염병을 만들면서 사람들을 빈곤과 고립으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혁명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감을 얻고 삶의 희망을 느꼈던 역사도 언급하면서 투쟁을 통해 함께 자본주의를 끝장내자고 주장해야 할 것입니다.”

― 최근 카페에서 일하다 해고된 청년

이 밖에도 노동계급 기성세대를 옹호하며 세대가 아니라 계급적 단결이 중요하다는 의견, 이재명과 심상정의 청년 정책의 의의와 한계, 문재인 정부가 키운 교육 불평등 폭로 등 여러 발언이 있었다. 노동자연대TV 유튜브에서 생생한 청중 토론을 포함한 토론회 전체 영상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