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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평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평등》 새 번역판: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대화

《평등》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이수현 옮김, 책갈피, 2022년, 268쪽, 15,000원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공언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개혁을 배신하자 대중은 실망하고 환멸을 느꼈다. 그 틈을 타서 윤석열은 ‘공정과 상식’을 모토로 내걸고 집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정보다 공작에 능하고 상식보다 몰상식·파렴치가 몸에 밴 자들을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공공연히 칭찬할 만큼 후안무치한 대통령이 역대급으로 낮은 지지율을 기록한 것 정도가 공정한 평가일 뿐, 한국 사회는 공정이나 평등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이것이 아마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일 것이다.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이런저런 형태의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을 요구하는 운동과 투쟁이, 또 공정과 역차별 여부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과 갈등이 널려 있다. 그래서 서점에는 평등·정의·공정을 주제로 다룬 책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평등과 정의 문제를 다룬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점만으로도 《평등》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비판적 대화

지은이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약간 독특하다. 평등과 정의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과 구체적 실천을 자세히 설명하기보다는 흔히 마르크스주의의 비판 대상으로 여겨지는 자유주의 정치철학과 대화를 한다는 점이 그렇다.

사실,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평등과 정의 논의가 단지 복잡하고 난해한 추상적 이론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김범수 서울대 교수가 지은 《한국 사회에서 공정이란 무엇인가》(아카넷, 2022)는 코로나 재난 지원금 지급 방식 등을 두고 벌어진 ‘선별적 복지 대 보편적 복지’ 논쟁에 존 롤스의 정의론을 적용하고, 날로 심화하는 소득 격차 문제에 로버트 노직의 이론을 적용하며, ‘금수저’와 ‘흙수저’, 합법적 ‘엄마·아빠 찬스’ 문제를 로널드 드워킨이 주장한 ‘자원의 평등’ 이론으로 살펴보고, 수능 시험 같은 대학 입시 제도의 공정성 문제에 아마르티아 센의 ‘역량 평등론’을 적용하며, 여성 할당제나 소수자 우대 정책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를 아이리스 영의 이론으로 검토하는 등 구체적 현실 쟁점에 추상적 정의 이론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평등》 3장 “평등과 철학자들”에서 캘리니코스는 바로 이들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자본주의 비판은 자본주의가 정의롭지 않다고 규탄할 수 있는 윤리적 원칙들을 분명히 제시해야 하는 이론적 과제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사이에 진심 어린 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캘리니코스에게 이런 대화가 의미하는 바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정의의 원칙들은 자본주의의 개혁이 아니라 전복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다(4장에서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다).

3장에서 캘리니코스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철학자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나서 그들의 가장 큰 약점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아래와 같이 결론짓는다.

계급, 근본적 불평등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불평등의 원인으로 착취에 주목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착취를 생산 자원이 불평등하게 분배된 결과로 본다. 사람이 착취당하는 경우는 남을 위해 일하도록 부당하게 강요당할 때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도록 강요당하고, 따라서 착취당할 수밖에 없다. 생산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자유로운 교환이라는 외관을 허울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노예나 농노와 달리 노동자는 잉여 노동을 직접 강요받지는 않지만, ‘경제적 관계의 말 없는 강제’ 때문에 자본가를 위해 잉여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의 자유는 부당하게 침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착취는 생산 자원이 처음 분배될 때 어떤 부정의(부당함)가 있었는지에 관계없이 그 자체로 정의롭지 않다.

더욱이 착취는 그 결과로 이익에 대한 접근권이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는 점에서 간접적으로도 부정의에 일조한다. 에릭 올린 라이트의 말처럼 “착취하는 자들의 복리와 착취당하는 자들의 궁핍은 서로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다.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 사이의 적대 관계가 계급 구조의 토대를 이룬다.

《계급, 소외, 차별》(책갈피, 2017)의 공저자 제프리 디스티 크로익스는 “착취라는 사실의 집단적·사회적 표현”이 계급이라고 한다. 계급은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사회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이므로 ‘평등한 계급 관계’는 형용 모순이다. 따라서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계급으로 주로 이뤄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평등은 불가능하다. 캘리니코스의 말처럼 “평등을 요구하는 것은 곧 혁명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것이 《평등》의 “철학적 핵심”인 3장의 결론이다. 그러나 현대적 평등 사상의 기원과 그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면서, 자유주의자들의 ‘상식’과 달리 자유와 평등은 상충하는 가치나 원칙이 아니라 함께 실현돼야만 온전히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하는 2장, 불평등과 자본주의 경제구조 사이의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4장도 중요하다. 어쩌면 이 책의 결론 격이라고 캘리니코스가 말한 4장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

이밖에도 이 얇은 책에는 중요한 주제와 논의가 많다. 예컨대 능력주의, 응분의 몫, 인센티브, 기본소득, 시장사회주의, 정체성 정치, 제3의 길, 신자유주의, 케인스주의, 세계화 등등. 물론 지면 제약 때문에 자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런 다양한 주제에 관한 캘리니코스의 통찰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점도 덧붙이고 싶다.

자본주의는 지금 핵전쟁의 위협과 기후 재앙, 끝이 안 보이는 경제 위기와 감염병 재난으로 지구와 인류를 파멸시킬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주의와는 다른 대안을 찾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훌륭한 이론적 무기로 쓰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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