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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교수들, 전공의에 이어 집단 사직:
의대 증원이 필수의료 대책 되려면 공공의료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전공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대한 기대는 위기 관리 능력에 대한 실망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있다. 당장의 고통은 물론이고 이대로라면 의대 증원이 병원 사업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노동자 등 서민층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회의도 늘고 있다.

정부는 의협 지도부에게 면허 정지를 통보하고, 전공의들에게도 면허 정지와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 등을 예고하며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슬쩍 물러설 조짐도 보이고 있다.

3월 18일 윤석열은 전공의 파업 이후 처음으로 일선 병원 현장을 찾아 교수들의 협조를 부탁했다.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같은 날 오전 라디오에 출연해 증원 규모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고도 답했다.

서울아산병원을 방문한 윤석열. 대형병원 이윤을 걱정할 뿐 서민층 위한 개혁은 부실하다 ⓒ출처 대통령실

그러나 정작 그동안 명분으로 내세워 온 ‘필수의료 강화’ 대책은 전혀 부실하다.

비판이 계속되자 정부는 수가 체계 개편 등으로 필수의료 분야에 1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추가로 내놨다.

하지만 이 10조 원은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출하겠다는 것으로, 제대로 된 대책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도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60퍼센트를 간신히 넘는 수준인데, ‘필수분야’에 10조 원을 추가 지출한다면 그만큼 다른 분야의 보장성은 더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장성이 줄어드는 다른 분야가 피부 미용이나 성형 등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이런 의료 행위는 이미 대부분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 그보다는 소아과와 산부인과 지출을 늘리는 대신 감염내과와 정신과에서 지출을 줄이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임기응변에 그칠 공산이 크다.

수도권에 추가되는 대학병원들은 지역의료 강화와 거리가 멀고, 민간 병원으로서 적자를 감수하며 필수의료를 유지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 추가로 배출되는 의사들의 상당수도 개원 등 시장 의료 속으로 뛰어들게 될 것이다.

출생률이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에서 소아과, 산부인과 등의 필수 기능을 유지하려면, 또 심장 수술을 해야 할 흉부외과 전문의가 흉부외과 진료를 계속하려면, 중앙·지방 정부가 직접 병원을 짓고 ‘착한 적자’를 감수하며 운영해야 한다. 시장에 맡겨두는 한은 수가 인상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다.

당장에 이런 공공 병원에서 의사들을 일하게 하려면 불가피하게 일정한 타협(장려책과 우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의료 시장화에 제동을 걸고,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 의료를 강화해야 한다.

또, 의사가 되려는 청년들이 개인적 투자와 희생에 대한 보상에 덜 매달리도록 교육·수련 제도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처럼 시장화된 의료 시스템에 2000명을 내맡길 것이 아니라 200명 정원의 공공의대를 10개 신설하고, 이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제공하고, 졸업 후 일할 잘 갖춰진 공공병원을 짓고, 그 병원에서 일하면서 늘어난 학생들을 가르칠 전문의를 수천 명 채용한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대중의 목소리에 민감한 의사 수만 명을 몇 년 안에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윤석열 정부에 이런 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민주당이 총선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든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공공의료를 확대하는 운동이 더 꾸준히 벌어지고 더 크게 성장해야 한다.

의사와 계급

전공의에 이어 ‘빅5 병원’을 중심으로 의대 교수들도 오는 25일 의대 증원 원점 재논의를 요구하며 집단 사직서 제출을 예고했다.

이들은 사직서 제출이 곧 진료 거부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길어야 한 달 안에 진료가 중단될 것이라고 최후통첩을 한 셈이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교수는 전국에 1만 명가량으로, 진료와 수술 등 핵심 업무를 담당하는 동시에 관리자로서의 업무도 한다. 일부는 병원 경영진으로 자본가 계급의 일부다. 이들은 노동계급의 일부인 전공의는 물론이고, 중간계급의 일부인 소규모 개원의와도 이해관계가 다르다.

그래서 대학병원 교수들은 그동안 의대 증원에 대해 전공의나 개원의와는 다소 다른 태도를 취해 왔다.

병원 경영진인 의사들은 의대 증원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노동자 의사들이 많아지는 게 자본가로서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여긴다. 그들의 협의체인 병원협회는 의대 증원을 일관되게 요구해 왔다.

빅5 병원만 해도 전체 의사 인력의 40퍼센트가량을 전공의로 채워 비용을 절약해 왔다. 현재 수도권에만 6000병상 이상의 분원을 추가로 짓고 있는 대학병원들은 더 많은 의사가 배출되기를 바란다.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이 총선을 노린 것이기는 하지만, 이들 병원 자본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동기도 커 보인다. 지금대로라면, 늘어난 의사 인력의 상당수는 장차 이쪽으로 흡수될 듯하다.

중간 관리자 구실을 하는 교수들의 경우 소득과 명예는 물론이고 정년이 보장되지만, 대개 퇴직 전후로 개원을 한다. 최신의 기술을 습득하고 경험도 풍부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경쟁을 시작할 수 있지만, 시장 경쟁의 압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들 중 상당수도 대규모 증원에는 반대한다.

막무가내인 전공의와 달리 의대 교수들은 사회적 시선에도 신경을 쓸 것이다. 방재승 서울대 의대 비상대책위원장은 18일 방송을 통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기형적인 의료 환경의 작은 희생자이자 어쩌면 방관자인 저희의 자기 연민으로 가장 큰 희생자인 국민의 아픔을 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같은 날 오후에는 집단 사직서 제출을 예고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 아픔을 감수하라는 얘기다.

응급실과 중환자실 가동률이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지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출산을 앞둔 산모, 항암치료 일정이 미뤄진 환자,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뇌혈관 질환을 수술해야 하는 환자, 휴가를 내고 어렵사리 대학병원 수술 예약을 잡았다가 미뤄져 곤란하게 된 환자 등.

그럼에도 대부분의 의료 현장이 차분하고 정부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커지지 않는 이유는 의사 수가 늘어야 한다는 데에 사람들의 압도 다수가 동의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선 현장의 구급대원들은 평소보다 119 신고가 크게 줄었다며 평범한 사람들이 얼마나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