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의대 정원 확대 반대해 집단 사직과 파업:
노동계급의 일부다운 요구를 가지고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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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추진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과 파업에 나섰다.
정부는 모든 전공의에게 진료유지 명령을 내리고,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면허 취소 후 구제도 없다’며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주동자를 구속 수사하겠다고 밝히고, 전공의 파업을 지지한 의사협회 지도부의 면허를 정지시키는 절차에 착수했다.
전공의들이 이런 엄포에 쉽사리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정부에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정부는 PA 간호사, 군 병원,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을 활용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그럴수록 정말로 아무 대책이 없음을 보여 줄 뿐이다.
가장 먼저 집단 사직에 나선 ‘빅5’ 병원(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 병원)의 전공의 수는 2745명으로, 5곳 병원 전체 의사 인력(7042명)의 39퍼센트를 차지한다.
그 수만 해도 대체 불가능한데, 이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80시간가량 된다. 전문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버티는 전공의들이 아니면 누구도 이렇게 일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 병원들은 이미 수술 예약을 취소하고 응급실 접수를 중단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가장 크고 고도화된 이들 병원의 기능을 공공병원이나 군병원이 대신할 수도 없다. 그동안 정부는 공공병원을 홀대하고 낙후되도록 방치했는데, 지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또 전공의들을 비롯해 의사들이 반발할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별 대비도 없이 지금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한 것은 다분히 총선을 의식한 것일 테다. ‘민주당 정부가 실패한 일을 윤석열은 해냈다’는 것을 부각하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정부로서도 물러서기 어려워 사태는 장기화될 수 있다.
의대 정원은 확대돼야 한다
그럼에도 의대 증원 자체를 철회하라는 전공의들의 요구를 지지할 수 없다. 노동자 등 서민층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에서 동네 의원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의료 현장에 의사가 부족하다. 특히 응급실, 분만실, 소아과 등 필수의료 부문에서는 인력 부족이 극심하다. 이는 환자와 보호자뿐 아니라 다른 의료 인력과 심지어 전공의 등 상당수 의사에게도 부담이 된다.
물론 필수의료 인력 부족은 단지 전체 의사 수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피부과, 성형외과 등 수익이 높고 사고 위험이 적은 분야에서는 인력 부족 문제가 제기되지 않고 있다. 시장 논리에 내맡겨진 의료 체계는 그나마 있는 인력조차 이윤을 따라 움직이게 한다. 따라서 인력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람들의 필요에 맞도록 정부가 책임지고 의료 시스템을 재편해야 한다.
그럼에도 의사 수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인구 대비 의사 수는 OECD 국가 중 꼴찌에서 두 번째다. 인구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을 고려하면 그 부족은 더욱 심각하다.
의협 등은 나라마다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 등을 고려하면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병원을 자주 이용하거나 의료 쇼핑을 한다는 식의 비난이다. 엄청나게 과장된 데다 사실 이치에도 맞지 않는 얘기다. 병원에 못 가는 게 문제이지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일부 과잉된 부분조차 환자들보다는 의료를 시장 논리에 내맡긴 정부와 그에 순응한 병의원의 책임이 압도적으로 크다.)
문제는 이를 감당할 의사와 잘 갖춰진 시설 등이 부족하다 보니 환자가 유명 병원들에 집중되고, ‘3분 진료’ 같은 일이 당연시돼 온 것이다.
갈수록 영리화되는 의료 체계는 의료인에 대한 신뢰도 떨어뜨렸다. 수익을 위해 과잉 진료를 하는 것은 아닌지, 돈이 안 된다고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두 군데 이상의 병원에서 진단을 받으려 한다.
따라서 의협 등이 그동안 냉혹한 시장 논리를 지지하며 공공의료 확대 등에 반대해 온 과거를 자성적으로 돌아보지 않은 채 “민도가 문제”라며 애먼 사람들 탓을 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의협은 전공의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의사가 탐욕에 눈이 멀어 특정 정책에 찬성 혹은 반대한다고 여기는 것은 지나친 편견이다. 의대 정원 확대에 공감하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의협 회장 선거에 출마한 정운용 후보는 의대 정원 확대를 지지한다. 그는 부산 노숙인진료소 소장이자, 부산경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의사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경험을 살펴보면 그들의 집단적 선택과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실 의사들의 이해관계는 단일하지 않다. 의사는 직종일 뿐 같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집단이 아니고 착취 관계로 보자면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개원의들은 의원이나 병원을 경영하는 이들로 소자본가이거나 중간계급의 일원이다. 그래서 개원의들이 주도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장차 경쟁이 격화되고 자신들의 이윤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해 왔다.
병원협회나 의대 교수들은 의대 증원을 큰 틀에서 지지했는데, 의사를 고용하고 학생을 유치해야 하는 그들 나름의 이해관계를 보여 준다.(정부 발표 뒤에는 2000명은 너무 많다며 재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공의들의 이해관계는 어떨까?
의대생들은 대학 졸업 뒤 대부분 수련 제도를 갖춘 병원에 취직해 수련의(인턴) 1년, 전공의(레지던트) 3~4년 일을 하며 추가 교육을 받는다. 그 뒤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면 전문의 자격을 획득한다. 의학이 갈수록 세분화하면서 세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도 하고, 전공의 과정에서 충분히 훈련받지 못한 것을 보완하기 위해 몇 년 더 전임의(“펠로우”) 생활을 하기도 한다. 4~7년가량 되는 이 기간에 이들은 병원 ‘노동자’로 살아간다.
전공의들의 노동조건은 심지어 매우 열악하다. 전공의법에 따르면, 병원 사용자는 전공의에게 주당 80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다. 심지어 연속 36시간 노동을 시킬 수 있다. 이 법은 과로사하는 전공의들이 생겨나면서 그나마 2016년에 처음 시행된 것으로, 그전에는 기준조차 없었다.
개원의들과 구별되는 전공의들의 집단적 힘은 바로 이런 노동자로서의 계급적 위치에서 비롯한다. 이들에게는 노동강도 완화를 위해서라도 의사 수가 늘어나는 게 이롭다.
현재의 전공의 수련 체계는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병원의 규모와 진료 수준도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열악했을 때 만들어진 것이다.
소박한 규모의 대학병원들이 초대형 상급종합병원으로 성장하고 삼성·현대 등 재벌까지 의료 ‘산업’에 뛰어들 정도로 자본 축적이 고도화됐지만 이들 병원은 소수의 전문의만 고용한 채 전체 인력의 40퍼센트 가까이를 임시직인 전공의로 유지해 인건비를 절약해 왔다. 그 이익은 고스란히 병원 자본가들(많은 경우 의사다)과 마땅히 책임져야 할 복지 비용을 절약한 정부와 자본가 계급에게 돌아갔다.
오늘날 전공의 대부분은 전문의 자격 취득과 동시에 자신이 일하던 병원에서 나가 의료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 불안정한 처지이기도 하다. 수년에 걸쳐 숙련 기술을 체득하고 나면, 이제 그런 기술을 사용할 수도 없는 소형 병원이나 심지어 의원으로 나가야 한다. 예컨대 흉부외과 전문의나 소아중환자 전문의가 대학병원에서 자리를 얻지 못하면 어디서 뭘 하겠는가.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전공의들이 전문의 자격 취득 후 개원(11.6퍼센트)보다 취업(52.9퍼센트)을 선호하게 됐다.(2014년) 개원의가 되면 더 많은 수입을 얻을 가능성이 크지만, 소자본가로서 서로 경쟁하며 수익성을 우선해야 하는 상황을 모든 전공의가 바라는 바는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수련받은 병원에 남기 어려운 조건은 전공의들로 하여금 개원의들과 이해관계를 공유한다는 믿음을 강화한다. 지금은 노동자의 지위에 있을지라도 몇 년 뒤에는 개원의가 될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개원의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면 지금의 열악한 처지는 일부 감내할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들이 의협의 결정과 논리에 큰 영향을 받는 이유다.
그러나 객관적 조건으로 보자면 전공의들이 개원의들과 다른 요구를 내걸고 독립적으로 행동한다면 더 나은 조건을 쟁취하고 선배들과는 다른 길을 개척할 수 있다.
예컨대 수련병원들이 전공의들을 4년마다 갈아치울 것이 아니라 전문의 자격 취득 뒤 전면 채용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실제로 전공의들의 핵심 요구 중 하나는 수련병원의 진료를 전문의 중심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의료의 질도 보장되고 교육도 제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의 자격 취득 후 해당 병원에서 계속 일할 수 있다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할 이유도 없다. 장차 의사들끼리 경쟁해야 할 이유가 크게 줄기 때문이다. 그러기는커녕 사용자와 정부에 맞서 조건을 개선할 힘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된다. 병원을 추가로 세우라고 정부와 병원 측에 요구할 수도 있다.
전공의들의 현재 의식에서는 이런 요구가 당장에는 실현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다. 병원이 적자를 내서는 안 된다는 시장 논리에 익숙해서다.
그러나 전문의 고용을 늘리는 것이 합리적이고 그 비용은 정부가 지원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업주들과 부유층에 과세해 재원을 마련하고 병원이 노동자 등 서민층의 필요에 맞게 운영되도록 통제할 능력과 책임이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공공의료는 정부가 관료적으로 운영하면서도 투자는 제대로 하지 않아 낙후하고 비효율적인 병원으로 취급받고 그래서 전공의 대부분에게도 기피 대상이 됐다.
그러나 충분한 투자가 이뤄진다면 훨씬 개선될 수 있다. 해외의 경험도 이를 잘 보여 준다. 공공의료가 발달한 나라들에서 전공의들이 다른 병원 노동자들과 함께 정부와 사측에 맞서 조건 개선을 쟁취한 사례는 이제 낯설지 않다.
반면, 2020년 당시에도 경험했듯이 의협은 전공의들의 조건 개선에 진지하지 않다. 자신들은 그런 조건을 다시 겪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 의협 집행부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철회 방침만 확인한 뒤 전공의 조건 개선 약속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투쟁을 접어버렸다.
요컨대 전공의들은 노동계급의 일부이지만 전혀 다른 계급에 속한 의사들과 이해관계를 공유한다는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아 노동계급답지 못한 요구를 앞세우고 있다.
전공의들이 다른 노동자 등 서민층의 이익에 반하는 요구가 아니라 자신들의 조건을 개선하면서도 다른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요구를 내세우며 노동계급으로서의 힘을 발휘한다면 광범한 지지를 받으며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개혁도 쟁취할 수 있다.
병원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편, 보건의료노조 집행부가 전공의들의 잘못된 요구를 비판하는 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의협과 전공의를 싸잡아 비난한 것은 유감이다. 보건의료노조 집행부는 “정부를 굴복시키겠다며 집단적으로 진료를 중단하는 것은 국민 생명을 내팽개치는 행위”라며 전공의 파업에 맞서는 ‘국민운동’을 벌이자고도 했는데, 이는 사실상 윤석열 정부에만 이로운 일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필요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노동자 등 서민층의 이익을 위해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 의대 정원 확대를 뒷받침할 필수 조처도 전혀 준비하지 않은 채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다가 무기한 보류한 바 있다. 다시금 전공의들이 앞장서 파업에 나설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지금 전공의들은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을 당시 졸업을 앞두고 국가고시를 거부했던 학생들로 당시 경험이 머릿속에 생생한 이들이다.
정부가 이번 의대 정원 확대 방침 발표에 앞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한 이유다. 정부는 특히 전공의들의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구체적인 재정 투자 계획은 담기지 않아 하나 마나 한 소리가 됐다.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 필수의료에 공백이 생긴 근본 이유는 의사 인력 부족 외에도 한국의 의료가 시장에 내맡겨져 있는 탓이 큰데,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취임 초부터 시장 논리를 더 강화하는 방향을 향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방역의 중추 구실을 한 공공병원에 대한 지원은 팬데믹 종료 선언과 함께 대폭 삭감됐다. 건강보험 국고보조금 지원은 수십 년째 지켜지지 않았는데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국고보조금을 줄이려는 꼼수를 추진했다. 이런 정책 기조하에서 제시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사실상 눈속임용에 지나지 않는다.
파업에 나선 전공의들의 일부 언행이 평범한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이번 의료대란의 근본적인 책임은 윤석열 정부에게 있다.
노동자들이 당장에는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여겨 잘못된 요구를 내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주노동자 고용을 반대하거나 보호무역을 요구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요구들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가로막고 국적과 부문에 따른 경쟁 논리를 강화해 노동자들의 힘을 약화시킨다. 이는 기업주들에게 이롭다.
같은 요구를 내걸고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운동 내에 사실은 커다란 긴장이 존재하는 경우도 흔하다. 예컨대 한미FTA를 반대한다는 같은 요구를 내건 운동 내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자리와 조건을 지키기 위해, 일부 중소상공인들은 국내 생산 상품 가격을 높게 유지하려고 한미FTA에 반대했다. 높은 상품 가격은 노동자들의 실질 소득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이럴 때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취해야 할 태도는 동료 노동자들의 잘못된 요구를 동지적 입장에서 비판하는 것이어야지(눈감아서도 안 된다) 싸잡아 적대시하며 배척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하물며 공동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정부와 사용자 편에 서서는 결코 안 된다. 이는 장차 노동자들 전체의 힘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민 생명을 위협한다며 파업이라는 수단 자체를 비난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이는 병원노동자들의 투쟁을 자기제한적으로 만들어 노동자들의 이익과 권리를 지키는 데에 해가 된다.
지난해 전공의들은 보건의료노조 등이 윤석열 정부의 간호법 폐기에 반대해 싸울 때 간호법을 지지하지는 않으면서도 간호 인력 확충(간호사 1인당 환자 수 제한) 요구에는 지지를 보낸 바 있다. 당시 전공의협의회는 간호 인력 충원을 지지하며 정부를 향해 동조 파업을 경고하기도 했다. 전공의들이 병원 편이므로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병원간호사회의 비판에는 “병원 경영진과 젊은 비정규직 의사를 ‘의사 집단’으로 함께 묶는 것은 ‘허수아비 때리기’에 불과하다” 하며 반박하기도 했다.
다른 병원 노동자들도 전공의들의 올바른 요구에는 지지를 보내면서 비판도 한다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의대 정원은 확대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노동계급적 요구를 내걸고 싸운다면 전공의들의 현재와 미래의 노동조건도 개선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소수일지라도 이런 대안을 추구하는 전공의들이 목소리를 내고 동료들을 설득한다면 병원 노동자들 전체가 큰 힘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