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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파업 4주차:
의대 증원 필요하다. 하지만 의료 시장을 규제하지 않으면 불균형 줄지 않을 것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 파업이 한 달째다.

‘빅5 병원’을 비롯해 상급종합병원들의 진료 기능이 대폭 축소됐다.

인력이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 중증 환자 진료를 유지해야 하다 보니, 입원 병동을 축소하는가 하면 심지어 응급실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응급 질환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술 등 치료 일정이 연기된 암 환자와 그 보호자들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노인, 소아, 만성질환자 등 취약층은 불안에 시달리고, 일부는 반강제로 2차병원으로 내몰리고 있다.

사실 윤석열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는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표한다. 총선용 졸속 정책이라는 게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형병원 진료에 차질이 생기자 지역 보건소 등에 배치했던 공보의들을 대도시 병원에 투입하고 있다. 가뜩이나 취약한 지역 의료를 더 열악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의 압도 다수는 의사 수가 늘어야 한다고 여긴다. 지금대로라면 필수의료·지역의료의 공백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일부 필수의료 분야의 노동강도가 매우 높고, 농어촌 지역의 인구밀도가 낮은 점 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진료 시간도 지금보다 더 길어져야 한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이 당연한 조처에 반대해 파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민을 설득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설득할 명분이 없음을 자신들도 이미 알고 있거나, 오만하게도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여기거나, 혹은 둘 다일 것이다.

전공의들의 요구가 노동계급의 일부답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행동이 특별히 원성을 사는 이유다.

도덕주의적 비난과 공허한 대화는 도움 안 돼

윤석열 정부는 이런 분위기가 총선에 유리하게 작용하리라고 여겨 타협안을 제시하기보다는 강경 대응으로 대처하고 있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 수천 명에게 면허 정지를 통보하고 형사 처벌 등도 예고하고 있다.

지금 전공의들의 요구와 파업은 지지할 수 없지만, 좌파라면 윤석열 정부의 대안 없는 이런 대응을 지지해서도 안 된다. 전공의들의 요구가 노동자 등 서민층의 이익과 상충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생명’ 운운하며 도덕주의적 비난을 앞세우는 것은 부메랑이 될 뿐이다.

하지만 정부 여당은 선거에만 관심 있을 뿐, 노동자 등 서민층을 위한 의료 개혁에는 별 관심이 없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지난 20여 년 동안 여야 모두 의료 영리화와 시장화를 추구해 왔다.

지역 간 분과 간 의료 불균등 발전 상황에서 정부가 의료 시장을 규제하고 공공의료에 투자하도록 하려면 만만치 않은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벌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운동이 취약한 지금, 정부와 의료계 지도층과의 대화는 서민층을 위한 개선 효과는 거의 없고 정원 확대 규모 축소, 수가 인상 등 의사들과 병원, 정부만 이득을 챙기는 어정쩡한 절충안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대화는 진정으로 진보적인 의료 개혁 의제를 부각시키기보다는 노동계급 등 서민층에 불필요한 타협을 요구받거나 심지어 들러리가 될 공산이 크다.

어처구니없게도 윤석열은 자신이 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을 다시 만지작거리며 간호사들에게 무거운 짐을 떠넘기고, 병원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려 한다.

윤석열 정부는 또 이참에 상급종합병원은 중환자와 응급환자에 집중하도록 하고 경증 환자나 중등증 환자는 2차병원이 담당하게 하는 식으로 의료 체계를 ‘바로잡겠다’고 한다. 일부 ‘전문가’들과 언론들도 이를 ‘의료 개혁’이라며 받아쓰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는 의료 서비스 질의 하락일 뿐이다.

경증이나 중등증 환자 상당수가 빅5 등 대형병원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무지와 맹신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은 수십 년간의 경험을 통해 중소병원들과 의원이 상대적으로 낙후하고, 그들도 돈벌이에 더 치중한다는 사실을 안다. 한국 의료 체계가 시장에 내맡겨진 채 불균등하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중병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가장 앞선 기술과 인력을 보유한 대형병원을 가는 게 의료 사고를 피할 수 있는 길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제로 2차병원으로 가라는 것은 진정한 개혁이 아니다.

시장화된 의료 체계에서는 과잉의료와 필수의료 공백이 공존한다. 바이오의약품 등 큰 이윤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에는 엄청난 돈이 투자되지만, 소아과, 산부인과 등 필수적인 부분에는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단순히 의대 정원만 늘린다고 이런 문제들이 자동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고, 시장 하에서는 불균형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을 시장에 맡겨 둔 것이 근본 문제다 ⓒ이미진

의료사고 면책?

전공의들의 또 다른 주요 요구는 의료 사고에 대한 면책 요구다. 정부가 이미 형사처벌 부담 완화 정책을 약속했지만, 더 폭넓은 면책권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병원에서 환자가 사망하거나 중대한 장애가 남았을 때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특히, 의사-환자 간 정보 격차를 고려하면 과실 여부의 조사가 의사와 병원 측에 유리한 조건과 인사들에 의해 이뤄져서는 안 된다.

의료인이 불합리하게 처벌받은 경우보다, 드러나지도 않고 처벌받지도 않은 의료 과실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라는 지극히 합리적인 의심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의사들은 2018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을 대표적인 ‘과잉 처벌’ 사례로 꼽는다. 해당 의료진은 최종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의사들은 이 사건 이후 소아청소년과에 지망하는 전공의가 대폭 줄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원은 의료진의 잘못이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다. 검찰이 그 잘못을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데 실패했으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무리 저체중아들이라도 신생아 네 명이 동시에 패혈증에 걸려 죽었는데, 균에 오염된 주사제가 원인이었든 다른 경로로 감염된 것이든 관리부터 최종 행위에 이르기까지 의료진의 과실이 없었다는 주장은 억지다.

이 사고 때문에 소아청소년과 지원이 급격히 줄었다는 것도 과장이다. 사고 다음 해에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은 20퍼센트가량 줄었는데, 저출산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소아 환자가 줄어든 것이 지원율 급감의 주된 이유였다.(2020년 74퍼센트 ➞ 2021년 37.3퍼센트).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2023년에 소속 회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전공의의 84.3퍼센트는 저출산과 수가를 이유로 그 과에 지원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부족한 인력, 매뉴얼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병원과 정부의 허술한 관리 시스템이 사고 위험을 키웠을 수 있다.

그러나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술이나 처치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안이 없어 한 행위가 사고로 이어진 경우에도 그 행위가 얼마나 적절한 것이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다만, 인력이 충분하다면 그런 상황에 훨씬 덜 놓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전공의들의 의사 수 증원 반대 주장은 인력 부족을 유지하라는 요구다. 그 요구는 의료의 사회적 필요보다 협소한 자기 미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