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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집단 사직과 파업:
의대 증원 반대 요구를 지지할 수 없지만, 윤석열의 총선용 졸속 시행도 우려스럽다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해 집단 사직하고 파업에 나선 지 3주가 지나고 있다.

종합병원에서 수술과 검사 등이 지연되고, 응급실 기능이 축소돼 (뺑뺑이를 도는 등) 환자들이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전공의들에 대한 의사 면허 정지 절차를 실행하고 있다.

본지는 전공의들의 의대 증원 반대가 노동계급의 일부다운 요구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그 투쟁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전공의 탄압은 결코 의료 평등화를 위한 것도 아님을 분명히 해 왔다.

윤석열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지지하는 여론을 등에 업으면 총선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선거적 계산을 하면서 대응하고 있다.

이런 “법치주의”의 칼날은 노동계급의 또 다른 투쟁과 항의 운동을 겨냥할 수 있기 때문에 좌파라면 윤석열 정부의 전공의 탄압을 편들 수 없다.

정부의 이런 압박만으로 전공의들이 투쟁을 멈출 것 같지는 않다. 필수재인 그들의 노동력을 대체할 대안을 정부가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공의들의 요구가 정당하지 않다고 여기는 많은 사람들도 한숨과 분통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민주당 대표 이재명은 여야정·의료계 협의체를, 녹색정의당은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해결책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전공의들이 파업을 중단하고 병원으로 돌아와야 한다면서도 윤석열의 의대 증원 계획에도 결함이 많다고 지적한다.

또, 필수의료 공백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역의료와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대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석열은 야당과 협의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보다는 못 이기는 척하며 의대 증원 규모만 축소하는 식으로 빠져나가려 할 공산이 크다.

의료 시장화와 지역간 불균등 발전 때문에, 시장 하의 의사 증원은 경쟁 격화를 우려하는 대다수 의사들의 불안감만 자극할 뿐, 필수의료 공백을 해결할 대안이 못 된다.

지역의료와 공공의료를 강화하려면 시장을 제약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시장주의자들인 윤석열 정부는 재정 긴축과 의료 ‘산업화’를 기조로 삼고 있다. (그래서 의대 증원을 위해 여러 달 동안 준비해 내놓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조차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2020년 문재인 정부 시절 의사 수를 소규모 증원하려다가 실패한 민주당은 진정한 대안(비시장적인)이 없이 그저 총선용 "협의체"나 운운하고 있다. 강대강 충돌을 중재한 해결사를 자임하는 동시에, 여당 시절 자신들이 추진했던 정책을 합리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당의 의대 증원 정책에도 지역의료·공공의료 강화 대책은 극도로 미미했다.

의대 증원은 필요한 일이지만 제대로 지역의료와 공공의료를 강화하려면 보건의료 분야에서 시장 논리를 제거하거나 제약해야 한다.

시장화된 의료·교육 시스템에서는 의대 증원 같은 필수 조처도 반발을 낳고 그 결과도 뒤틀리게 된다

노동계급의 일부다운 요구를 제시해야

의대 증원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지지받을 수 없다.

전공의들이 보기에 의대 증원을 막으면 당장에 소득 수준을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될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시장 논리에 순응하며 자신의 미래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것은 환자나 동료 노동자 등 노동계급의 다른 부분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 되면 환자와의 신뢰 관계, 의학적 필요에 입각한 진료 등 의료 윤리, 동료 노동자들과의 연대 등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는 의사협회 등의 주장은 거짓말일 뿐이다. 의사 수 자체보다 지역별·과목별 불균형이 더 큰 문제라는 주장이 형식적으로는 맞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의사협회 등은 정작 불균형을 완화할 대안을 외면한 채 무조건 의사 수 증원에 반대하고 있다.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를 올리면 된다는 의사협회의 주장은 수십 년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봐도 전혀 진실이 아니다.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은 필요하지만, 시장 체제와 지역간 불균등 발전하에서는 개별 의사들의 소득을 높이는 데에 이용될 뿐이다.

의사가 되고자 하는 청년들 중 대다수가 개인의 이익만큼이나 대중의 필요를 중시하도록 해야 할 텐데, 그러려면 교육과 의료를 지금처럼 시장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공공 서비스 중심으로 완전히 개편해야 한다. 공공 의료 비중이 매우 적은 한국에서 그런 변화는 커다란 사회적 격변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과거에 전공의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해 파업 등을 벌였을 때 의협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전공의들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임시직에 엄청난 노동강도에 시달리면서도 선배 의사들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아야 하는 처지 탓에 저항이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전공의 노조’도 주도자들이 진급하면서 몇 년 만에 흐지부지됐다.

의대 정원은 늘어야 한다. 그토록 필수적인 조처를 정부가 단지 선거용 책략으로나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것도, 노동계급의 일부인 전공의들이 그에 격렬히 반발하는 것도 모두 지난 수십년 동안 한국의 의료와 교육이 시장에 내맡겨져 온 결과다. 이 방향 자체에 도전하는 운동이 필요하다.